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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관동팔경 답사 계획(안)
* 일 자 : 2010년 10월 6일 - 10월 9일 (3박4일) * 참가자
* 일 정
10/6 (수)
06:20 동대구역 출발 12:35 강릉역 도착 (운임 14,800원 경로) 117번 버스(5.07Km,35분) 화부산막국수 하차 869m걷기 초당 할매 순두부집(033-652-2053) 강릉시 초당동307-4번지 초당순두부 4,000원 순두부백반 5,000원 모두부 5,000원
14:30 초당동 - 허난설헌생가 - 경포호 - 경포대 - (오죽헌) 18:00 시외버스터미날 행 20:00 주문진 야시장 멤버스텔(033-662-1577 010-6232-3816) 1인당 10,000원 주문진 터미날 도착 후 전화하면 pick up 한다.
10/7 (목)
08:00 아침식사 09:00 소돌아들바위, 향호호수 관광 10:30 낙산사행 버스 (38.86Km ,2시간30분 소요) 13:00 낙산사 관광 - 속초 14:00 속초에서 점심 15:00 청간정 출발(033-680-3361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속초 - 청간리 ( 10Km 50분소요, 도보 800m ) 거진행 1번버스 수복탑에서 승차, 1-1번버스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승차 16:00 청간리 도착 청간정 답사 18:00 저녁식사 Beachblue (033-631-1070, 010-2458-6376) 13평형 40,000원/2인 + 10,000원/1인 = 60,000원
10/8 (금)
08:00 청간정 일출 , 아침식사 09:00 청간리 - ( 10 Km 1시간 ) - 속초 - (120Km 2시간) - 삼척 12:00 삼척도착, 점심식사 14:00 죽서루 ( 033-570-3670 ) 16:00 삼척 - 울진행 ( 70Km 1시간40분소요 요금 8,000원/1인) 18:00 울진도착 19:00 저녁식사 20:00 망양정 도착 해맞이펜션 ( 054-781-3213 010-4011-6569 ) 밀물 썰물 36.3m2 평일 60,000원 금토일 80,000원
하늘빛펜션 ( 054-781-3911 016-787-3911 ) 물향기 솔향기 80,000원
10/9 (토)
08:00 아침식사 09:00 울진 - 평해 (35Km, 50분소요) 10:00 월송정 11:00 월송정 - 후포항 12:00 후포 점심식사 (후포항 횟집) 14:00 후포 출발 18:00 대구 도착 20:00 해쳐 모임
1. 청간정 (靑澗亭)
강원도 유형문화재 32호 1971년 12월 16일 지정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청간정(靑澗亭)은 창건연대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산록에 위치하여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중종15년(1502)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1884년 갑신정변에 소실되었다가 1928년 재건하였고, 1980년 정자를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조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좌상으로 재직시 이곳에 들러 친필로 썼고, 그 후 1953년 고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현재까지 걸려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월출시의 장엄함과, 밀려오는 파도가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가는 황홀경으로 관동팔경 중 수일경으로 손꼽히는 청간정은 아름다운 주위풍광으로 예로부터 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노송 숲 사이로 뚫린 오솔길을 더듬은 뒤, 탁 트인 동해를 굽어보는 정취가 그윽하다.
청간정의 일출 관동8경, 설악일출 8경, 고성8경이라는 유혹의 이름 청간정. 찾는 이는 많아도 언제나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맑게 갠 청명한 아침이라도 일출 직전에 안개나 구름이 일출의 모습을 감춰버리는 일이 잦고, 빗방울 떨어지던 하늘이 일출 직전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변덕스럽게 변하는 날씨를 유난히 뽐내는 한 계절에, 궂은 날씨로 시작한 청간정 앞 바다에서 안개 사이로 태양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드러내면, 기다리던 한 달여 시간은 모두 잊고 그저 탄성만이 가득하다.
청간정에 오르는 길 청간정에는 일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송이 줄지어 선 좁다란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즐기는 일도 빼먹지 말자. 쉬어갈 필요가 없을 만큼 짧은 길이지만 길 옆 곳곳에 쉬어가며 감상하라고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노송 사이로 아름다운 청간정의 해변을 훔쳐볼 수 있어, 고성의 여유를 맘껏 느낄 수 있다. 청간정에 올라 만나는 해변은 또 어떠한가. 노송 사이로 보이던 고운 모래와 하늘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면 선조들이 즐기던 풍류가 어떠했는지 실감이 난다.
2. 낙산사(洛山寺)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神興寺의 말사로서 해변에 위치하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산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유래한 말이며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의 하나로 671년(문무왕 11) 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낙산사 창건 이후 이 절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는 元曉,調信, 사굴산파의 개산조 梵日의 이야기 등이 전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범일에 의해 중건된 후 여러 차례 불타 중건이 거듭되었으나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복구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당(僧堂)·객실(客室)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유적은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 낙산사7층석탑(보물 제499호), 낙산사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원장(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홍련암(강원도유형문화재 제36호), 양양낙산사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1977년에 화강암으로 만든 동양 최대의 海水觀音立像이 있으며, 절 앞에는 의상의 전설이 담긴 홍련암 등이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낙산사원장·원통보전· 일주문·낙산사홍예문 등 주요 전각과 낙산사동종이 소실되고, 낙산사 7층 석탑이 일부 손상되었다.
3. 경포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 강원도 강릉시 저동의 경포호수 北岸에 있는 조선시대 樓臺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1326년(충숙왕13)에 知秋部學士 朴淑이 현재의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는데, 1508년(중종3) 府使 韓汲이 현 위치로 이건(移建)한 후 현재까지 7차에 걸쳐 중수했다. 평면은 앞면 5칸, 옆면 5칸이며 총 28개의 기둥을 두었고, 바닥은 우물마루로 짜여져 있으며 3단의 단차를 두어 사용자의 신분 및 계급에 따라 자리배치를 달리하던 평면에서의 位階를 보여준다. 또한 벽체의 구성없이 모두 난간을 가설하여 누대가 갖는 공간적인 개방성을 보여준다.
공포는 기둥머리에서부터 초익공이 나와 주두를 감싸면서 상부의 2제공을 받고 있는 이익공(二翼工)으로 그 상부에 재주두를 놓아 대들보를 받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昌枋) 위에는 앞면과 뒷면에 2구, 옆면에 1구씩의 복화반(覆花盤)을 놓아 구조적 의장재(意匠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구(架構)는 종보·중종보·대들보로 이루어진 7량가로서 매우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지붕의 형태는 부연이 가설된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서 양 측면에 충량이 2개씩 나와 합각부의 무게를 대들보와 측면의 평주로 분산시켜 주고 있으며,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내부에는 율곡(栗谷)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한 것과 肅宗의 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과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4. 죽서루(竹西樓)
죽서루(竹西樓)는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누각으로 보물 213호로 지정되었으며, 관동팔경 중의 하나이다. 다른 관동팔경의 누,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죽서루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 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
창건자 및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이승휴의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년)에 이승휴가 안집사(安集使)였던 진자후와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1266년 이전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러다가 조선 태종 3년(1403년), 부사 김효손이 대대적으로 중창하였고, 그 뒤 오늘날까지 여러 번의 보수 및 증축이 이루어져 왔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는 이유로 죽서루로 명명되었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전한다.
누각 내에 걸려 있는 第一溪亭 이라는 현판은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이며, 전면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41년(1715년)의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다. 그리고 海仙遊戱之所 라고 적혀있는 현판은 조선 헌종 3년(1837년)의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이 외에도 부사 허목이 쓴 竹西樓記와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 중수기"를 비롯하여, 여러 현판과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 이이의 "죽서루차운"(竹西樓次韻), 조선 정조가 직접 지은 시판 등 26개의 현판이 죽서루에 걸려 있다.
또한 죽서루 내에 존재하는 작품 외에도 죽서루에 관한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이었던 金克己가 지은 죽서루 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자 조선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청북도 옥원군수를 지냈던 이봉의 서녀 였던 옥봉 이원이 지은 시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지은 여러 편의 시도 현재까지 남아 있다.
5. 망양정(望洋亭)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은 그 위치가 고려 때에는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세워져 있었으나,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이곳의 망양정이 오래되고 낡았다하여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다 한다.
그 후 1517년 폭풍우로 넘어진 것을 1518년(중종 13)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부탁하여 중수하였고, 1860년(철종 11)에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더불어 현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屯山洞)으로 이건하였다 한다.
그 후 오랜 세월 풍우로 인해 낡은 것을 1957년 울진군, 울진교육청이 국·도비 보조금과 뜻있는 지역인사들의 도움으로 1959년 9월에 중건 낙성한 것을 1979년11월에 군에서 보수 정화한 바 있고, 1994년 9월에 사업비 9천1백20만원을 들여 재 보수 하였다.
망양정은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져 있으며, 그 경치가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가는 곳이라 하여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하며, 숙종과 정조가 친히 지은 어제시와 정추(鄭樞)의 망양정시, 정철(鄭澈)의 관동별곡초, 채수(蔡壽])의 망양정기 등의 글이 전해오고 있다.
기성면에 있었던 구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중 한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망양정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 노한 고래 뉘라서 놀래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히 구는지고. 은산(銀山)을 꺾어내어 육합(六合)에 나리는 듯 오월장천(五月長天)에 백설은 무삼일고. 져근덧 밤이 들어 풍랑이 정하거늘 부상지척(扶桑咫尺)에 명월을 기다리니 서광천장(瑞光千丈)이 뵈는 듯 숨는고야. 주렴을 고쳐 걸고 옥계를 다시 쓸며 계명성(啓明星)돋도록 고초 앉아 바라보니 백련화 한 가지를 뉘라서 보내신고. 이 좋은 세계 남대되 다 뵈고져···
망양정 아래 포구에는 군이 1985년에 개설한 망양 해수욕장이 있고 인근에 천연기념물 제155호인 천연동굴 성류굴이 있다.
6. 월송정(越松亭)
평해읍 월송리 362-2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越松亭)은 팔작지붕 주심포, 고상누각으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중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퇴락되었던 것을 1933년 향인(鄕人) 黃萬英등이 다시 중건 하였다.
그후 일제말기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기(연합군)내습의 목표가 된다하여 월송주둔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하여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69년 4월 평해·기성·온정면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金剛會의 후원을 받아 철근2층 콘크리트의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하여 1979년 해체하고 새 설계 아래 도비 8천만원으로 1980년 7월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조선 성종이 당시 국내 명화가를 시켜 “팔도의 사정(활을 쏘는 활터의 정자)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을 그려오라” 명하자 그 화공이 영흥(永興)의 龍興閣과 평해의 월송정을 그려 올렸더니, 성종은 『용흥각의 芙蓉(연꽃)과 楊柳(버들)가 아름답기는 하나 월송정에 비할 수 없다』며 월송정과 그 주변의 경치에 감탄했다 한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의 푸른 소나무와 흰모래 밭에서 雄志를 품던 도장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월송정은 숙종 때 송강 鄭澈이 이곳을 찬미한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 정자위에서 바라보는 빽빽히 우거진 노 송림과 明沙十里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은 가히 손꼽을 만한 名勝地이다.
월송정은, 달밤(月夜)에 송림(松林)속에서 놀았다하여 月松亭이라고 했고, 월국(越國)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했으나, 전해오는 각종 자료에 의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 불리고 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3칸, 26평 규모의 옛 모습으로 복원된 월송정은, 주변정비를 말끔히 단장했다. 또 1989년에 산책로 1,200m를 조성,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고, 주변에는 송림을 자랑하는 구산(邱山) 해수욕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월송정”현판은 80년 준공당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로 새겨져 있다. 월송정에 대한 詩 몇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肅宗 御製詩 선랑고적장하심(仙郞古蹟將何尋)―화랑들이 놀던자취 어디가서 찾을건고 만주장송족족삼(萬樹長松簇簇森)―일만그루 푸른솔이 빽빽하여 숲일런데 만한풍사여백설(滿限風沙如白雪)―눈앞가득 흰모래는 백설인양 방불코나 등임일망흥난금(登臨一望興難禁)―한번올라 바라보매 흥겨웁기 그지없다.
* 安軸의 詩 사거인비수자동(事去人非水自東)―옛사람 간 곳 없고 산천은 의구한데 천년유적재송정(千年遺跡在松亭)―천년전 옛 자취 오직 송정에만 남았으며 여라정합교난해(女羅情合膠難解)―겨우사리 다정한 듯 서로 엉켜 아니풀고 제죽심친속가춘(弟竹心親粟可春)―형제대가 마음맞아 좁쌀방아 찧는구나 유저선랑동자학(有底仙郞同煮鶴)―어느 화랑 예 있어 학을 구워 술 나누리 막령초부학도룡(莫令樵斧學屠龍)―초부의 도끼로서 용잡는 것 배움말라 이모중도회유지(二毛重到會遊地)―머리털 절반 희어 예 놀던 곳 찾아오니 각선창창석일용(却羨蒼蒼昔日容)―솔은 늙지 않았구나 푸르고 푸른 네 모습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