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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2018년은 이스라엘 역사상 큰 의미가 있
는 해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들이 1948년 5월 14일 약 1,900년 만에 나라를 되찾아 건국 70주년을 맞은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원
연맹과 독일 March of life(생명의 행진) 단체가 주관하고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
인 후원으로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에 우리 교회도 초
청받았다.
이 행사는 이스라엘 리블린 대통령의 영
상 축하 메시지와 정보통신부장관 외주요 인사들의 축사가 있었으며, GOD TV와 독일방송을 통해 생방송되었다.
우리 교회 선교팀은 5월 13일, '2009 이재록 목사 초청 이스라엘 연합대성회'
의 개최 장소인 예루살렘 ICC에서 있었던 오프닝행사에 VIP로 참석했다.
14~15일에는 국회 방문과 VIP 컨벤션 참석 등 각종 만남을 통해 김진홍 장로(G
CN방송 국장)가 인사말과 더불어 당회장 이재록 목사와 만민의 선교 사역에 대해 소개했다.
▶2018년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았
다. 하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중동 및 이슬
람권에서는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가 나
타났으며,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으며 이 때는 라마단이
라 이슬람권 입장에서는 더욱 반이스라엘 감정이 늘어났다.
▶2017년 박지훈이 시구 수준의 공으로 이분에게 끝내기를 맞았다.
▶2014년 축구 선수 박지성, 현역은퇴 선언.
▶2012년 디아블로 3의 전야제가 있었다
▶2010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발사되었다
▶2009년 국내 첫 조류 발전소, 울돌목 조류발전소 준공.
▶2009년 미안마 아웅산 수치 여사 투옥
👉🏿 총 13년간 가택에 연금돼 온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64) 여사가 ‘미국인의 자택 잠입 사건’과 관련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됐다. 이번 수감은 지난 3일 밤 존 윌리엄 예토(Yettaw·53)라는 미국인 남성이 호수변에 있는 수치 여사의 자택에 헤엄을 쳐서 잠입한 뒤 이틀간 머물고 몰래 빠져나오다 체포된 데 따른 것이다. 수치 여사측은 예토의 행동이 개인적인 모험심에 따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오는 5월 27일을 불과 2주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 때문에 일각에선 군부측에서 함정을 팠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2008년 조용기 목사가 원로목사 추대예배.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1만5천여 명의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 림.
▶2005년 고교생들의 두발제한 폐지 집회
▶2004년 헌법재판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 각판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됨
👉🏿 헌정 사상 초유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해온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14일 오전 10시 선고 공판을 열고 탄핵소추안에 대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은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으며,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 등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면서 “노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는 파면 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기각이유를 밝혔다.
▶2003년 카를로스 메냄 전 아르핸티나 대통령 사퇴, 차기 대통령에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취임
▶2002년 수지 김 사건의 피의자 윤태식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됨.
▶2001년 필리핀 \피의 총선\~ 83명 사망.
▶ 2001년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총리 뇌경색으로 사망
▶ 1998년 한글판 조선왕조실록 발견
👉🏿한글로 된 조선왕조실록이 있었다. 제작연도는 구한말 때인 1908년 경, 대한제국 황실이 ‘왕조 정사’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국어학자료팀 이광호 박사는 1998년 5월 14일 조선조 시대 최고의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국보 151호) 중 현종(18대)에서 철종(25대)에 이르는 기사를 발췌해 한글로 번역한 ‘실록초본’을 서고에서 발굴, 공개했다. 글씨는 남성의 필체로 짐작되는 단정한 해서체다. 내용은 인명만 한자이고 나머지는 순한글이며 왕의 등극 사망 왕세자책봉 종묘사직제사 정치사건 등 국왕의 재위 당시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서술하는 형식으로 돼있다.
▶1996년 권오기 통일원장관, 북한에
4자회담 수용을 촉구
▶1993년 정부, 5.18 명예회복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연행구금등 보상금
지급키로 확정.
▶1993년 통계청, 「83~92년 실업구조
변화」 발표. 실업자수는 1983년
61만3000명, 92년 46만3000명
▶1992년 정부,과학기술투자를 국민
총생산(GNP)2.24%에서 2.8%인 7조
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1992년 미 고장난 위성 궤도재배치
엔데베호 우주유영 8시간만에
▶1992년 이삼노 일ㆍ북한수교회담
북한대표, 북한에서 플루토늄을 증식
카네기재단 보고서, 사실이라고 시인
▶1990년 문교부 문화부 총무처간 마찰을
빚었던 도서관 업무가 문화부 소관으로
3부간 최종 합의.
▶1990년 KBS 부분 정상화
▶1990년 외무부는 비자발급업무를
개시하지 않고 있어 주한 소련 영사처장
대리에게 공식 항의했다'고 발표.
▶1989년 전교협, 서울ㆍ부산등 전국
10개지역서 교원노조발기인대회 강행
▶1988년 정부, 통일논의와 자료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정
▶1987년 공기업민영화방안 확정,
국민은행 등 7개기관 3년내 민영화,
한국전력 등 3개기관의 주식 매각키로
▶1986년 문교부, 전국 111개 대학에
교직원에 의한 수색작업을 지시.시위용
품 7590점 수거
▶1985년 서울역 앞에서 200여
대학생 시위, 5개대생 115명 연행
▶1984년 세계보건기구(WHO) 이사회,
한국을 서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이사국으로 선출(제네바)
▶1984년 미국 연방대법원, 통일교주
문선명 목사에게 징역18개월 확정
▶1984년 해운항만청, 해운회사
63개사를 통폐합하기 위한
해운산업합리화방안 발표
▶1983년 찰스 도미니카연방 수상 내한
▶1982년 미국 국방성, 주한 미군사령관
로버트 W.세네월드 대장을 임명
▶1981년 경북 경산에서 열차 추돌,
사망 54명·부상 253명
▶1976년 공연윤리위원회 설립
▶1976년 북, 중앙 인민위, 인민 무력부장
최현 해임, 후임에 오진우 임명.
▶1976년 남산 3호 터널 기공
▶1971년 일본, 재일동포 북송 재개
▶1969년 중앙정보부, 국회의원 김규남 등60여명 관련된 간첩단 사건 발표
▶1963년 민정당 창당(대표 김병로,
대통령 후보 윤보선). 공화당, 박정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
▶1963년 남대문 국보 제1호 중수
공사 완공 준공식-윤태일 서울 시장
▶ 1955년 바르샤바조약기구 창설
👉🏿1955년 5월 14일 동구권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체결됐다. 이 조약기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항하기 위해 체결된 `동구 우호 상호원조 조약`이라는 군사동맹 조직으로 조약체결국은 소련·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동독 등 8개국이다. 이 조약은 소련의 위성국들에 대한 지배 강화 및 사회주의국가들의 동맹 강화를 목적으로 체결됐다. 조약의 내용은 무력 공격의 위협에 대처하는 협의 및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 방위가 근간을 이룬다. 이날 서명국들은 국제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사용의 자제에 동의하고 군비철폐와 평화를 위해 협조할 것을 다짐했다.
▶1952년 정부, 제4차 개헌안
(대통령직선제˙양원제) 제출.
▶1950년 공군항공기 "건국호" 헌납
▶1948년 북한 12시부터 대남 송전 중단,
남북협상 결렬.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1> 서기 135년 로마제국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후 유태민족은 가혹한 보복을 받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후 유태인들은 가는 곳마다 경제, 문화적으로 빼어난 성취를 이루었지만 민족종교를 중심으로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바람에 그 지역의 다른 민족과 융합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여러 차례 박해의 대상이 됐고 결국은 잃어버린 옛 땅에 유태인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운동이 19세기말부터 시작됐다. 1918년 중동을 점령한 영국은 밸포어 선언을 통해 시오니즘을 지지했지만 아랍민족의 지지가 동시에 필요했던 영국이 이후 애매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유태인 국가 건설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2>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은 히틀러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은 2차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친시오니즘에 힘입어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갔고 1947년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국가와 유태국가의 두 부분으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태민족에게는 비원의 성취였지만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유태인 테러단체의 폭력을 피해 원주민의 70%에 해당하는 72만명이 내쫓기듯이 살던 곳을 떠났다. 그리고 이들은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결성,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마치 유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1928년 조명하 의거,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장인인 구미노미야 기니히코 육군 대장을 독검으로 공격.
👉🏿 1928년 5월14일 오전 9시55분경, 무개차 한 대가 대만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초(大正町) 도서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차가 커브길을 도는 순간 군중 속에서 한 청년이 차로 뛰어올랐다. 차 안에는 대만을 방문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타고 있었다. 청년이 독이 묻은 단검으로 구니노미야를 찔렀으나 독검은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쳐갔고, 다시 군인을 향해 독검을 던졌지만 또 빗나갔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은 스물 세살의 조명하(趙明河)였다. 구니노미야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사망했고, 조명하는 황족위해죄로 그해 10월10일 이국땅에서 처형됐다.
▶ 1913년 록펠러재단 설립
👉🏿1913년에 설립된 록펠러 재단은 미국의 자선 단체이며, 민간 재단이다. 앤드류 카네기의 저서에 영향을 받아 자선을 시작한 역사상 역대 부자 순위 중 1위인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1937년도의 재산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3360억 달러로, 당시 미국 경제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세계 석유 95%를 지배했고 거의 모든 산업에 문어발 확장을 했었던 록펠러는 사업적으로 무자비하고 경쟁자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박살냈던 걸로 유명하다. 록펠러는 자신의 재산을 록펠러 재단으로 간접 상속시켰다. 하지만 꾸준한 기부 활동의 결과로 록펠러 재단의 자산은 2013년 3월 기준으로 41억 달러에 불과하여, 미국 15위의 재단에 랭크되어 있다.
▶1901년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
(김창식, 김기범)
▶ 1811년 파라과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파라과이 공화국은 볼리비아와 더불어 남아메리카에 있는 내륙국이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파라과이는 숲이 우거졌고 비옥한 땅이었다. 그곳에서 반(半)유목 생활을 하며 과라니어를 쓰는 부족들이 살았다. 1525년 에스파냐 A.가르시아가 파라과이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로 1536년부터 식민지화를 시작했다. 1537년 아순시온에 정착지가 건설됐다. 이 도시는 18세기 남아메리카 예수회의 선교지였으며, 에스파냐 식민지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 동부 파라과이에 예수회 공회도소가 설치되어 150여년간 번성했으나 1767년에 에스파냐 왕가가 예수회를 추방했다. 파라과이는 1811년 5월 14일에 에스파냐 지역 정부를 전복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 1610년 프랑스 부르봉왕조 창건한 앙리4세 피살
👉🏿 ‘낭트 칙령’을 공포,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30년간 계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 전쟁)을 종식시킨 장본인인 앙리 4세가 1610년 5월 14일 구교도 광신자의 칼에 찔려 숨을 거뒀다. 앙리 4세가 즉위할 당시 프랑스는 구교도가 그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자 에스파냐의 침입을 받을 정도로 종교 대립으로 인한 혼란이 극에 달했다. 왕은 사태 수습을 위해 자신이 직접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면서 신교도(위그노)에게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공포했다. 내전 종식과 왕권 확립, 사회제도 개선 등의 공로로 그는 오늘날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 1452년 저평가된 명군, 조선왕조 5대 왕 문종 서거
👉🏿조선의 제5대 임금 문종(文宗, 1414 ~ 1452)은 세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비(妃)는 권전의 맏딸 현덕왕후(顯德王后)였다. 학문을 좋아하고 인품이 관후하였으며, 1421년(세종 3) 세자로 책봉되었다. 약 30년 간 세자로 있으면서 문무관리를 고르게 등용하도록 하고, 언로(言路)를 자유롭게 열어 민정파악에 힘쓰는 등 세종을 보필한 공이 컸다. 1445년 세종이 병들자 그를 대신하여 국사를 처리하였으며, 1450년 왕에 올랐다. 몸이 약하여 재위 2년 4개월 만에 병사하였고 곧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