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신문에서 보도한 “호주에서 애완견과 일주일에 한 번씩 산책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호주동물 협회인 RSPCA가 동물 복지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법안을 제출하기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애완견의 주인은 1주일에 한 번씩 개를 데리고 산책해야 하며, 체인으로 묶어 놓거나 먹이를 제때 주지 않으면 1만2천 호주달러(한화 12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벌금을 내지 못하거나, 애완동물의 복지상태가 현저하게 문제가 될 시에는 감옥 형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법안을 제출할 RSPCA의 의장인 휴 윌스는 ‘새로운 동물법은 호주 내 애완동물의 복지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법안을 위반한 초범 애완동물 주인에게 감옥행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그 상황에 따라 판사가 감옥 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 여론과 애완동물 주인들은 이 법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은 조만간 호주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는 것이다.
참으로 인간들이 동물들 앞에서 점점 더 그 입지가 좁아지는 씁쓸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니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하자.『이스라엘의 딸들 중에서는 창녀가 있지 못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에서는 남색자가 있지 못할 것이니라. 너는 창녀의 몸값이나 개로 번 돈을 주 너의 하나님의 집에 어떤 서원하는 일로도 가져오지 말라. 이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주 너의 하나님께 가증함이니라』(신 23:17,18). 이 두 구절은 문맥상 남색으로 번 돈을 “개로 번 돈”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말씀은 개를 불결하고 가증한 일에 비유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는 썩은 고기를 먹고 배설물을 먹는 천한 동물로 여겨지는데, 그 어떤 설화나 실화가 개를 제아무리 충직하고 사랑받는 짐승으로 묘사한다 할지라도 개는 개일 뿐이다. 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동물로 종류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그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며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더러는 개중에 놀랍도록 주인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따르는 개들이 있어서 그 개에게 효견(孝犬), 또는 의견(義犬)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개들과 못된 사람들을 빗대어 말할 때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는 또한 눈과 귀가 밝고 냄새를 잘 맡아 예로부터 집 지키기와 사냥용으로 사용하곤 했는데, 이제 개를 군견으로 훈련시켜 나라를 지키고 밀수로 들여오는 마약도 찾아내는 데 유용하게 쓰고 있다. 맹인에게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개도 있고, 외로운 독거노인들이나 기타 사정으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동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애정과는 달리 언젠가 순하던 개가 돌변하게 되면 맹수로 변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이다.
반면에 사람 또한 개를 천대하기 시작하면 언제는 그렇게도 예뻐하면서 자기 자식을 부르듯 “강아지”라고 부르다가도 조금만 성가시면 발길로 차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욕할 때 그 욕에는 개를 앞세워하는 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속담에도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개도 먹을 때는 건들지 않는다. 오뉴월 개 팔자. 개 따라가면 측간에 간다. 개 패듯 패야 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등 많은 말들이 개를 천하게 여겨 지어낸 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점차적으로 애견가가 생겨나더니 요즘은 애견숫자가 수백만 마리, 애견인구 수백만 명, 거기에 애완동물 시장 규모는 수조 원을 넘고 있다니 놀랄 일이다. 동물병원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치료뿐만이 아니라 개에게 장식물로 달아 줄 각종 애완용품들을 판매하는데 그 종류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샴푸, 린스, 치약, 칫솔, 향수, 빗 등은 기본이고, 헤어드라이어, 염색약, 구취 제거제, 개 신발, 심지어 애견용 기저귀까지, 옷도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파카, 여름에는 반소매, 원피스, 외출용 드레스까지, 마치 아기용품점과 같은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사료 코너에는 쇠고기 맛, 닭고기 맛, 불고기 맛 등으로 표시된 캔 제품들이 즐비하고, 뚱뚱한 애완견용 다이어트 간식, 벌꿀과 곡물이 혼합된 초코바, 치석제거용 껌도 있다. 개를 위한 껌은 그야말로 껌 값이 아니다. 추운 캐나다 땅에서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이곳 캐나다도 개를 산책시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를 보면 대단한 강추위에도 즐거워만 한다. 원래가 야생인 그 개들은 추워도 춥지 않을 텐데 거추장스런 개 드레스나 개 신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두들 개와는 상관없이 자기만족에 그렇게들 법석을 떠는 것이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핥아먹는 더러운 짓을 행하는 동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개가 자기의 토한 것으로 돌아감같이 어리석은 자도 자기의 미련함으로 돌아가느니라』(잠 26:11). 성경에서는 가축 중에 개와 돼지를 당연히 불결한 동물로 분류하고 있다.『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2).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는 개를 사람보다 더 높이고 위하는 나머지 자신의 개를 무시하고 또는 학대했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벌이다 심지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개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하며 자신을 “엄마”라고 하면서 개를 얼러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어리석음 때문에 때로는 개보다 못할 때가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전 9:4). 그 개가 어떤 종류이든 개는 개인 것이다. 개는 개일 뿐 법적 장치까지 만들어 지나치게 높여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BP
카페 게시글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