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베란다 우수(雨水) 통에서 들릴 듯 말 듯 소리 없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갈급한 대지를 촉촉이 적서 주는 반가운 손님이다. 어린아이 머리맡에 산타 할아버지가 밤새 찾아오셔서 선물상자를 놓고 가신 듯 시들어가는 나의 가슴에 온기(溫氣)를 넣어주는 듯하구나. 입춘(立春)이 지난 지가 보름이 가까워온다. 18일에는 우수(雨水)라는 절기(節氣)인데 이름값을 하는 모양이다. 만물이 엄동(嚴冬)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활짝 펴는 생명수를 주시니 모두가 감사를 하여야겠다. 세상만사 홀로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게 창조하셨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인과관계를 갖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연도 아니고 필연임을 깨우쳤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에 하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오늘 새벽에 나를 깨우쳐 주었다. 워낙 우매하여 손에 쥐여주어도 잘 모르는 새벽에 봄비 오는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보았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소중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광활한 하늘은 어디에도 우산처럼 보호를 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며칠만 햇살이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미쳐 날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사하여야 할 충분한 조건이다, 봄비 역시나 마찬가지다. 가물어 대지가 불타고 식수가 모자라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한다.
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지하수를 개발하고 하천수를 가두는 일이 엊그제가 아니었던가. 논바닥이 갈라지고 심어놓은 벼 싹이 말라 지면 내 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안타까운 마음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식수가 모자라서 소방차로 실어 나르는 모습에 물통 들고 길게 줄을 서서 받아 가는 모습들을 간혹 보아왔다. 하류(下流)의 하천수(河川水)를 확보하려고 하상(河床)을 거슬러 굴착(掘鑿) 하고 물을 끌어들여 정수(淨水) 과정을 거처 공급하기도 하였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새 나가지 않도록 수로(水路)를 정비하고 아껴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늘에 의존하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도 가뭄이 들면 왕께서 직접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올려다. 산업사회를 거처 정보화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이 생활의 패튼을 모두 바꾼다 하여도 하늘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 역시나 자연의 일원으로서의 주어진 자연을 개량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차 산업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여도 자연은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여야 한다. 오기(傲氣)를 부린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넘치는 것은 부족함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겸손의 자세를 가르치고 배워 실천하게 하였다. 소리 없는 봄비에 감사하여야 한다. 혹시나 새싹을 다칠세라 가만히 내리는 봄비에 감사하여야 한다. 지구가 존재하는 동안은 사람들은 생활의 터전이다. 훼손하지 않도록 모두가 보호하고 가꾸어야 한다. 누구나 보통으로 말할 수 있는 이 말을 지키지 못하여 이변(異變)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아왔다.
염천(炎天)의 하늘에서 우박(雨雹)이 쏟아지고 엄동의 기온에 장대비가 쏟아져 하천이 범람(氾濫) 하고 생활의 터전이 휩쓸리는 모습도 매년 연래 행사처럼 보아오고 있다.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였다. 지구의 허파라고 알려진 산림지역에 화마(火魔)가 덮쳐서 태워버리는 광경에 전율(戰慄) 하기도 하였다. 산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어지며 생활터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묻혀 버리는 모습에 남의 나라 일로 간주(看做) 하지 않았던가. 태풍이 홍수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려도 남의 일로 보아왔다. 만년설이 있는 남극이나 북극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바닷가 저지대 사람들은 언제 침수가 될지도 모르고 귓밥만 만지작거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땅속에도 마그마가 호시 탐탐 노리고 있다고 한다.
언제 어디에서 솟아올라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에도 경험하였다. 경주의 지진과 포항 일원의 지진을 보고 놀라고 우려하였지만 피해 복구와 대처는 어떻게 하였는지 알려주는 곳이 없다. 자연의 재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의 능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런데 대처하는 일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다르게 나타난다. 만년의 빙설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삼천리 국토의 모습이 바뀔 것이다. 무슨 대책 같은 것 발표한 사실이 없다. 강 건너 남의 나라 일로 보고 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발생된 쓰나 메의 무서움을 보았다. 모든 것을 삼키고 말았다. 우리에게 오지 말라는 우연만이 믿고 있다. 모든 정쟁(政爭)을 중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나라를 살리는 일에 여야가 따로 없다.
사라진 뒤에 망해버린 뒤에 여야는 무엇이며 보수와 진보는 또 무엇인가.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아주 원초적인 물음에 답하여야 한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싸움질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이 얼간이들아! 손뼉 받을 일들을 두고 죽기 살기 식으로 이전투구(泥田鬪狗) 하는 모습에 환멸(幻滅) 마저 들고 있다. 피눈물 나게 노력하여 쌓은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뛰어가는데 비(比) 하여 걸어가기라도 하였으면 하는 기대도 무너지고 오직 뒷걸음만을 하는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다. 기회는 다시 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왔을 때에 주저함이 없이 잡아야 한다. 가져다주는 떡도 마다하고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미쳐 돌아가고 있다. 오늘 뉴스에는 국회 외교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북조선의 비핵화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보도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근간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바로 세우기에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날마다 걱정거리를 오지랖에 싸고 있는 실정이다. 영원한 새로운 역사를 새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성공하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다시 돌아보아도 이해를 할 수 없다. 공산사회가 되면 당신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영원히 잊지 못할 영웅이 되는 것인지 역적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가족뿐만이 아니고 5천만 명의 국민은 모든 것을 상실하여도 좋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송충(松蟲) 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자유(自由)를 먹고 사라 온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여 당신들과의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사상(思想)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리이다 보니 당신들의 생각을 탓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당신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다던지 아니면 강요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수많은 고난을 몸소 겪으면서 이어온 이 나라다. 하룻밤 사이에 밥상을 엎어버리는 죄악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내 밥그릇을 훼손하고자 한다면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밥솥에서 밥이 뜸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원래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는 말이 많고 법석을 떨어가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른길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정리하여 반석을 만들어 가는 체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식이 모자라서 혼몽(昏懜) 하다면 또 다른 문제이지만 우리의 국민의식의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라 하여도 무방한 의식 수준이다. 이럴진대 이들에게 온갖 유혹을 한다 하여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치세(治世)를 보면 우려스러운 점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한 나라 안에서 한솥밥을 먹고 같은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성장하였다.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근본(根本)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내가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하여 될 일도 아니지만 스스로 입은 옷을 벗어던져 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 새벽에 가만히 내리는 봄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기도하였다. 내 안의 문제를 스스로 풀고자 하는 의지의 문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