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랑
가끔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나는 외갓집이었고 그는 이모의 고모 아들로 외갓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동갑
내기였으니 우린 친구였다. 고등학교 다닐땐 내가 목포에 살고 있는 친구집을
찾아갔던 기억은 있지만 만났는지 생각이 안난다. 친구의 형과도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러니까 펜팔이 길진 않았던 것 같다.
친구가 군대를 갔을 때 위문편지 같은 걸 몇 번 주고 받았지만 동갑내기라서
내 눈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뜻밖에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우리집에 먼저
와서 하룻밤을 머물다 가기도 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것에 별 의미를 담지
않았던게 나와 같았는지 모른다.
나의 위문편지는 늘 내용이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깨알같이 많은 이야기를 담
았어도 다 읽고나면 친구에게 어찌 지내냐고 묻는다거나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
지 삶의 이야기는 없고 허공속의 떠 다니는 이야기로 들렸을까. 직접적인 화법
없이 추상적이고 비유적 표현만으로 담았던 글에 실망했는지 모른다.
위문편지를 쓴 것으로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하지만 연락도 없이 두 사람은
결혼을 미루는 것 같았다. 곁에서 보기엔 그랬나보다. 답답했던 이모가 다리를
놓았다. 나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도 가지고 있던 편지를 우편
으로 보내주었다. 혼기를 놓칠까 어른들이 걱정할즈음 이모는 한 사람이라도 먼
저 결혼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전했다.
앳된 미소년의 모습에 너무 착한 이미지가 내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의 형과
펜팔도 신경이 쓰였다. 내놓고 말 할 수 없는 형제간의 갈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혼기를 서둘러야 할 때 쯤 외갓집 사촌 결혼식이 있었다. 나
는 엉뚱하게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결혼하자고...
친구가 먼저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을 걸었을 때 내가 먼저 말을 해야지 생각했다.
우린 지하 커피숍에 앉았다. 하지만 머뭇거리던 사이에 친구가 말했다.
"내가 먼저 결혼 할 것 같아."
속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하마트면 우리 결혼하자고 말 할 뻔 했는데...나는 아
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아예 묻지 않고 지냈다. 직업은 뭘까. 잘 살고 있을
까 생각하면서 ...어쩌면 내게 제일 잘 해줬을 것 같은 인연 중의 한 사람이었을지.
주말에 혼자 집에서 싱크대 먼지를 닦다가 왜 그 친구가 떠 올랐는지 모르겠
다. 소백산으로 등산 간다고 밤새 설쳤던 남편이 새벽에 늦었다고 동동거리
더니 잘 갔을까. 덩달아 잠을 설치고 맥없이 앉아있는 내가 섭섭한 건지.
첫댓글 좋은 추억이네요 모든 것은 신의 뜻이 겠지요
그런가요? 삶의 순간순간이 운명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