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18일): 강릉 선교장과 오죽헌 그리고 오대산 월정사
정동진을 뒤로하고 솔향의 도시 강릉에 들어선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흰 모래 사장.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울창한 노송으로 둘러싸인 경포대의 경관이 빼어나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은 명승지로서 명사들의 수많은 시·서·화가 있어 역사문화경관적가치가 높은 곳이다.

-김홍도의 경포대와 경포호 그리고 경포바다-
宋江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경포대를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했으며, 숙종과 정조도 정선과 김홍도가 그린 진경산수화의 경포대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한 어제시를 볼 수 있다. 이 율곡 선생이 10세 때에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도 걸려있다.
江南小雨夕嵐暗(강남소우석람암) :강남에 비 개이자 저녁 안개 자욱한데
鏡水如綾極望平(경수여능극망평) :비단 같은 경포호수 가이없이 펼쳐졌네
十里海棠春欲晩(십리해당춘욕만) :십리에 핀 해당화에 봄이 저물고 있는데
半天飛過白鷗聲(반천비과백구성) :흰 갈매기 나지막이 소리내며 지나가네
-김홍도 경포대를 보신 후, 조선 제22대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御製詩(어제시)-
경포대는 월출이 더욱 아름답기로 유명한 누각이다. 달빛이 쏟아지면 하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제일의 달맞이 명소이다.
필자의 사랑도 52년 전 경포의 달밤에 취해 이루어졌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요즈음의 강릉이 한결 젊어졌다. 강릉에 들어서면 커피향이 은은하다. 공장을 카페로 리노베이션한 테라로사! 강릉항에서 안목해변으로 이어지는 카페거리도 매력적이다. 산토리니 등 20여개의 카페, 산토리니는 이쁜 카페 중 손꼽히는 장소로 연인끼리, 친구끼리 인생 샷을 남기기 좋은 장소로 여러 프로그램에 방영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강릉은 커피향의 거리, 젊은이의 거리가 되었다. 더하나 추천하고 싶은 것은 강릉에도 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중앙시장에 꼭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값싸고 맛있고 양이 많은 먹거리에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자연 경관도 먹거리도 좋지만 강릉을 대표하는 두 여성이 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우리 스케줄은 신사임당이 거처한 오죽헌을 방문하기 때문에 비운의 시인 허난설헌을 간략히 소개하고 싶다.
허난설헌, 허균 생가터, 기념관
강릉에는 두부로 유명한 초당이 있다. 이 곳에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다. 이 생가터에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과 그녀의 동생인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을 기념하는 문학공원을 조성하였다.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난설헌·허균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즈넉한 한옥마당을 거닐고 가옥 주변의 소나무 숲은 전통적인 한옥의 멋과 넉넉함을 더해준다.
시인이며 작가이며 화가인 난설헌 허초희(1563-1589)는 조선조 중엽 동지중추부사 허엽(호 초당)의 셋째 딸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여 이달(李達)에게서 시와 학문을 배웠다. 1577년(선조 10년) 안동김씨 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의 무능과 불륜, 시집살이 그리고 서녀로 태어난 신분차별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그녀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의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과 초당 생가-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서예와 그림에도 능했다. 남편 김성립과 시댁과의 불화와 자녀의 죽음과 유산 등 연이은 불행을 겪으며, 27세로 요절하였으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1608년(선조 41년) 남동생 허균(許筠)이 문집을 명나라에서 출간함으로써 알려졌고 그후 일본에서도 출판해 당시 우리나라 작품이 최초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초당 허봉은 이곳 맑은 물로 두부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맛이 사람을 매료시켜 이 두부를 상품화한 것이 초당두부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선교장
선교장(船橋莊)은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99칸의 사대부가의 상류 주택이다. 1967년 4월 20일 국가지정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며 10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예전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이름지었다. 선교장 터는 ‘하늘이 족제비 떼를 통하여 점지했다는 명당이다’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선교리)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붙였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순조 15년(1815)에 이후(李厚)가 세웠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선교장 전경-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집 밖의 활래정과 함께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 한국최고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선교장은 홈스테이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오죽헌
경포호의 서쪽 들녘 너머로 보이는 죽헌동에 오죽헌이 있다.
오죽헌(烏竹軒)은 보물 제165호로, 강원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생가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양반집 모습을 보존한 희귀한 예로서 주심포(柱心包) 계통의 청순하고 소박한 팔작집이다. 뒤뜰에 오죽이 자라고 있어서 오죽헌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오죽헌-
한국의 영원한 어머니, 최고의 여성으로 대표되는 신사임당. 우리 지폐에는 모자(母子)가 같이 모델이 되었다. 최고액가인 오만원권은 신사임당, 오천원권은 율곡 이이다. 또한 오천원권의 뒷면에는 오죽헌 그림이 있다. 이들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것 같다.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 1504년 12월 5일(음력 10월 29일) ~ 1551년 6월 20일(음력 5월 17일))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자수와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사임당은 시와 그림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일곱 살 때에는 화가 안견의 그림을 본떠서 그려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특히 산수화와 포도, 풀, 벌레 등을 그리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아울러 사임당은 유교의 경전과 좋은 책들을 널리 읽어 학문을 담았다.[
이는 사임당의 재능을 인정한 친정아버지와 남편 이원수공의 배려로 조선시대의 가장 유명한 여류 예술인이 될 수 있었다.
사임당은 글, 글씨, 그림에 두루 능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시는 2편 있으며, 글씨 또한 해서와 초서에 능했는데, 병풍과 글씨가 남아 있다. 그림은 여러 사람들이 절찬하기 주저하지 않았는데 풀벌레, 포도, 화조어죽(花鳥魚竹), 매화, 난초, 산수 등의 다양한 소재를 잘 그렸다. 효성스런 딸, 훌륭한 어머니, 남편의 내조자로서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은 여성의 섬세함과 정교함을 더하여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한시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과 「사친(思親)」이 남아 있고 그림으로 「초충도(草蟲圖)」, 「자리도(紫鯉圖)」, 「산수도(山水圖)」, 「연로도(蓮鷺圖)」, 「노안도(蘆雁圖)」가 있다.
그러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신사임당은 오죽헌, 파주 율곡리(자운서원과 이율곡 가족묘), 평창군 봉평 판관대, 서울의 수전방(현재의 청진동)과 삼청동을 오가며 살았다.
그러나 4남 3녀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그중 셋째 아들 이이를 대정치가로, 대학자로, 그리고 아들 이우와 큰딸 매창을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 평가한다.

-사임당 그림-
신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던 것이다.
아울러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준 좋은 환경이 있었다.
그래서 신사임당이 완전한 예술인으로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잘 조화를 이루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죽헌에는 신사임당의 좌상, 이율곡의 입상인 동상이 있으며 율곡 이이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 문성사와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과 율곡 이이 기념관 등이 있다.
오죽헌 앞마당에는 사임당도, 율곡 선생도 어루만졌을 600여년이나 된 배롱나무(목 백일홍) 고목이 있다.
월정사(月精寺)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五臺山) 기슭(374-8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오대산 깊은 산과 계곡은 온통 붉게 물들고 있다. 여기가 우리 60주년 축하의 최종목적지,
달같이 아름답게 살라는(月精)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이번 추억여행, 시간여행을 통해 깨닫게 한다.
누가 그럽디다. 인생은 One Way Ticket이라고,
인생이란 가는 승차권은 있어도 오는 승차권이 없으니
그동안 한 장만 손에 쥐고 여기까지 왔다. 뛰어왔다.
되돌아오는 길이 없다. 또한 ‘다시’라는 단어도 없다.
이번 여행 ‘소풍'이라는 단어가 정겹게 느껴지는 3일간,
어느 시인의 시귀 처럼,
‘나, 소풍 끝내고 돌아가리라’
덕평자연휴게소
2박3일의 소풍을 끝내고 우리는 한때 고속도로휴게소 맛집 Contest 에서 1등한 소고기국밥을
덕평휴게소에서 다 함께 들게 되는 행운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표운 표민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