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예쁜 가래여울 입구에는 호두나무 옆에 가래나무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호두나무와 구별하기 어렵지만 좀더 단단하고 길죽한 모양의 나무입니다. 한자로는 추자라고 하지요.
우리동네 강동구에서 가장 더디성장하는(개발논리도 봤을때) 동네 가래여울. 이곳은 하일동에서 굳이 동명칭을 바꿔 강일동이라 불리우는 그 동네 언저리 작은 마을입니다.
가래가 많이 열려서 가래여울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대단위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보상이 끝난 옆동네와 달리 소박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상일동 고덕동, 명일동, 암사동 등 시멘트 천지인 동네를 거쳐 가래여울에 와서야 숨을 돌리는 02번 마을버스는 오래된 슈퍼앞에서 두어명 탈지말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60년대 농촌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온듯한 기분. 우린 시골서 놀던 옛추억에 빠져 마을을 돌고 있지만 외지인을 바라보는 동네아저씨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딱지사러들 오셨나?‘ 아줌마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니 그런 오해를 살법도 합니다.
요즘, 강동아줌마들이 조용히 혁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에 대한 사랑을 통해 생명과 평화를 실천하고자 하는 모입니다. 사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그냥 우리동네 잘알기 프로젝트 쯤으로 설명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성환경연대와 한살림 강동지부에서 준비를 하시고, 저 또한 시민단체 실무자이긴 하지만 이동네 아줌마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7년을 지역에서 활동해왔지만 고작 몇십년전의 우리동네 역사도 모르고 지명의 유래 또한 거의 모르고 지냈습니다. 사랑하면 알고싶어지는데 당연한텐데, 저의 지역에대한 사랑이 혹시 가식적이지 않았나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동네에는 암사선사유적지가 있고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교통의 요충지로 명일동이 명일원이란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광주분원이 설치되어 도자기의 주류를 이룬 곳이고 일제시대에는 바로 제가 사는 동네에서 3.1운동대 사발통문을 통해 만세운동을 벌여 많은 분들이 일제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곳입니다.
길동자연생태공원이 있는 성삼봉은 우리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일제시대때 쇠말뚝을 박았다고 합니다. 명일동에는 키크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장수가 많이 나오는 곳이어서 그 기운을 끊어내고자 하는 일제의 속셈이 아니였을까 합니다.
동쪽 끝 하남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동구는 1970년대 초부터 대규모 주택지가 조성되기 시작해서 1982년에는 명일동, 고덕동 상일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바로 그 오래된 5층 아파트에 저도 세들어 살고있습니다만, 조만간 재건축이 될 것이기에 애특한 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많은 나무와 풀, 새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지... 이제 마지막남은 우리가 서있는 이곳 가래여울을 제외한 강일동도 모두 아파트로 뒤덮일 예정입니다.
얼마전 상일시장 딸아이와 떡볶이를 사먹다가 강일동에서 홀로사는 윤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노라며 재개발 때문에 충청도 증평에 있는 공공임대로 이사갈거라며 눈물을 글썽이시더군요. 이사가시면 돌아가시기 전에 뵙지도 못할텐데... 개발은 노후된 건물뿐 아니라 노후한 사람마저 떠내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강일동은 청송 심씨의 집성촌입니다. 예전에 강동구의장을 지낸 심재풍 의원도 이곳출신이지요. 마침 동네를 돌고 있는데 검은 승용차를 몰고 마을길을 지나더군요. 하이~ 심씨일가가 매년 안산에서 산신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산신제를 지낼수 없다는 군요. 제를 지낼 젊은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합니다. 심씨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꼭 사람과 돈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래된 전통은 낡은 풍습으로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일 테지요.
가래여울에 가래나무가 한그루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낙네들이 모여 두런두런 입방아를 찧던 말우물은 약수터로 조성되었지만 인적이 드물어 수도꼭지가 말라있습니다. 가재가 많이 잡혔다는 가재골은 그많던 논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멋진 전원주택들이 가득차있습니다.
10년 전에, 아니 20년전에, 아니 100년전에 이곳은 어떤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눈을 감으니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뿌옇게 펼쳐집니다. 아니, 손에 잡힐듯한 그 많던 가래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간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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