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두산을 오르려고 가는 중인데 이영섭 동지는 북망산으로 먼 길을 나섰네요. 방용석 지부장님 따라 가장 먼저 길을 나섰군요. 이승에서 만나서 밥 한 끼 나누고 싶었는데 당신이 자신의 약한 모습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견을 존중했었는데, 이제는 만날 길이 없기에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영섭 동지여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동지와의 인연은 제가 원풍모방에 1975년 입사하였고, 그때 고인은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었죠. 같은 공장 한 부서 노동 현장에서 7년을 함께 생사고락을 했네요. 1982년 9,27 노조파괴 올해가 44주년이니 반백년이 훨씬 넘은 인연이네요.
당신은 큰 키에 수려한 외모, 서울 말씨에 우리 여성 조합원들에게는 인기가 있었죠. 그 인기가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기성순 동지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 직장인이자 노조 부부 조합원을 탄생시켰습니다. 부부 동지 덕분에 노조에서는 임산부를 배려하는 단체협약을 제정하여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했습니다.
1982년 9.27 노조 파괴 때 이영섭 씨가 생각나네요. 당시 두세 살 아들과 연로한 어머니를 모신 가장이었죠. 피에 굶주린 이리 떼들은 불의에 굴복하는 각서를 요구했죠. 거부하자 OB맥주에 근무하는 형님을 협박했죠. 형님과의 불화 속에 어머니의 근심까지 덧붙여져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래도 굴복하지 않자 그 형님을 좌천시켜서 결국 형제간의 의리를 끊고 살았죠. 동지는 부부가 원풍 노조원이었기에 해고를 당하면 당장 생계가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고심은 얼마나 컸을까요.
7년 전쯤에 126인 증언록 인터뷰 때 그 당시 착잡했던 심정을 진술했죠. 당시 동료들의 성화, 즉 너라도 들어가야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죠. 형제의 좌천도 걸리셨겠지요. 고민 끝에 그 당시 구사대 앞잡이를 집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당신의 손을 멈추고 돌아오게 한 것은 한 부서에서 생사고락을 했던 수많은 여성 동지들의 얼굴들이 아른거렸다죠. 당신은 끝내 정의를 지켜냈고, 그 힘이 오늘날 원풍동지회 역사를 빛냅니다.
고생 참 많이 하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세상 돌아가는 길, 여한이 많으셨겠지요. 모든 아픔 다 내려놓으시고 훠이훠이 가십시오. 일 년 전에 먼저 가신 방용석 지부장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이영섭 동지의 건강을 걱정하셨는데... 훠이훠이 따라가셔서 악수라도 나누십시오.
수고 참 많으셨습니다.
원풍동지회의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는 데 함께 동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승길이 아득히 먼 곳이라고 하던데, 국화꽃길 가을길 따라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2026.9.6. 가을길에서
황선금 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