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경북 울진군 평해읍 직산1리 제장로라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그 일대의 서씨 시조묘가 있습니다.
몇대손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달성서씨의 본거지는 대구인데 ~
제가 태어난 제장동이란 곳과 너머에 작은 동네 용정리란 곳이 있는데
유독히 서씨가 많았습니다.
얼핏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었다는 내용을 본듯한데
혹씨 정치적 박해를 피하여 울진까지 피신한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추리를 해보았습니다.
아시는분 안계십니까?
저는 달성서씨 판서공파 26대손으로 족보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돌림자는 錫입니다.
자식대는 德을 돌림자로 사용하며, 부모대는 廷을 돌림자로 사용했습니다.
자식들은 족보에 없고요.
족보는 계속 갱신되는가요?
가끔씩 갱신되나요?
족보를 아실만한 어르신들은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신다해도 도시로 진출한 지금에사
어르신들도 없으니 왕래가 있을턱이 없어서
아이들의 족보 문제를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답니다.
울진지역에 서씨가 작은 집성촌을 이룬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첫댓글 희석님의 글은 잘읽었습니다. 울진에 입향조의 묘소가 있다는 이야기네요,,,묘갈이나 상석 같은 없는지요,,,판서공할아버님께서 장사(영덕지역)에서 유배생활을 하셨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울진과 그리 먼거리는 아니지요,,,그리고 판서공은 파보를 발행이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발행시기는 되었습니다. 현재 전자족보 제작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 수단지를 제출하여 등재를 하시면 됩니다...
제가 아마도 4월7일 포항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모친이 계시는 울진 평해 제장로(그냥 어릴적부터 서씨 시조묘라는 그 묘의 사진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묘의 벌초를 아버지 대신해서 여러햇동안 했었는데... 그냥 우리묘가 아니다. 이런 생각에 풀은 개끗히 벌초했는데 그닥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사회 생활하다 엉뚱한 사람에게 듣기로 이천서씨중 일부가 대구로 향했고 또 다른 일부가 울진 지역으로 향해서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는데 그 사람란 그냥 약장사 하는 김씨라서 참고만햇고요...지금은 40후반 내년엔 50이될텐데 지나다가 대종회를 보니까 궁금해서 문의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친께서 족보갖고 많이 가르켰
데도 어릴적엔 사실 관심이 없었네요. 같은 서씨라도 희한하게 공부 잘하는 서씨 집안이 있었고요. 공부 별로 못하고 못사는 서씨도 있었고,,, 하여튼 우리 시골동네 60여가구중에 제 기억으론 20여가구 이상이 서씨였으니 엄청 많은것이지요. 저희 초등동창이 총 11명이었는데 그중 5명이 서씨였으니 대단한 집성촌 아닐까요? 그런데 왜 그 바닷가 동네에서 가장 위치가 좋은 지역에 문중묘가 있고,여러채의 집이 종중 재산이었고 밭이 종중 재산이었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한답니다. 대부분 부도처리로 날아가버렸지만서도,,, 진짜로 궁금합니다. 달성서씨는 대구인데 왜 울진지역에서 터를 잡았을까?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사화와 임.병 양란 당시 이거를 하신 선조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각종 역병이나 돌림병 등으로 인해 타지로 이거하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족보 제작 문제는 기다리겠습니다.
http://cafe.daum.net/boeun0673/4ql4/5883(연암) 이쪽 사이트와 서재덕님께서 운영하시는 사이트는 다른 것인가요?
반갑습니다 저는 고향후포인 판서공파 26대손 서철호입니다 저희본가가 평해문중 종가입니다 저의 아버님 성함은 정자 백자입니다 평해문중의 입향시조의 묘는 병 곡휴게소 근처입니다 궁금한사항은 011,827'8621로 ..
대구-포항(청하)-영덕-평해--후포,직산리(제장.용정)등으로 이어져 왔나보네요. 그 중에 제장.용정에 서씨가 많아서 궁금했었습니다.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판서공파 26대손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평해,제장,거일 용정 후포등 주변후손분들은 평해문중 자손일가능성 99.9
반갑습니다. 서정백님의 함자를 들어본것도 같고 동명이인 같기도하고 헷갈리네요. 그럼 제장리에(용정너머) 있는 묘지의 주인도 아시는지요? 지금 그곳의 문중땅은 모두 종손분의 사업 부도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시는지요?
정자백자님이 본인이 생각하시는분이 확실하지싶읍니다
오늘 족보를 상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 판서공파 5권 평해부분을 집중적으로 - 서철호님(족보명은 輔碩이시고 25세손 서정백님 차남이시네요.)의 상세 기록을 보았습니다. 평해 일대의 종가시로군요. 저보다는 7-8년 연장자시구요.
저는 족보상 이름은 輔熙로 등재되어 있고 一名은 희석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언제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
족보를 세심하게 살펴보니 돌림자 문제로 뒤죽박죽이더라구요, 닭머리님네는 형제분들이 끝자리 鎬자이시고 자식들은 끝자리 碩자를 써셔서 족보랑 일치하지 않고 저희 가까운 일가는 끝자리 錫자돌림에 자식대는 原자돌림을 사용하는 추세인데 저만 유일하게 德으로 호적신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것은 현재 닭머리님의 호적등본(가족관계부)에는 대구 서씨로 되어 있습니까? 달성 서씨로 되어 있습니까? 궁금합니다. 만약 잘못이라면 큰 사명감으로 일가들에게 홍보해야 할듯합니다.
용정에있는묘는입향시조 로부터 14대조부님 묘소로 알고있습니다 그분의묘 벌초는 저의형님과 본인 하고있습니다 희석님께서 벌초하신묘는 아닌것..묘에 아주큰비석이잇습니다
희석님도 저희일가지 십습니다
여기 카페의 선영 및 사적사진에 제장리(용정너머)에 있는 묘지 사진을 올렸습니다. 큰 비석 있습니다. 여기에 카페지기님께서 <<통훈대부예빈시정벼슬은 증직을 받은 것이고 봉사손 정백이라는 분이 44년전에 세운 것이네요,,,>>라고 해독하셨습니다. 정자 백자 어르신이 그분이신가보네요. 용정리에 조상의 일을 잘 아시던분이 계셨는데(지금은 존함이 가물거립니다. 廷자 항렬이셨고, 지금 장남이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서성석이라고 합니다.-그분은 조금 아실듯하고.. 제 부친은 서정원(작고)이시고요. 제 기억으로는 15년 이상을 그 묘지를 관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묘지의 벌초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묘지 관리가 거의 안되어서 궁금해진 것입니다. 묘지가 통째로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난뒤부터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묘지 바로 밑에 서씨 일가가 있는데 그 집에서 밭을 경작하는 것으로 보아서 묘를 관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14대 조부님의 묘는 아마도 제가 말하는 그묘지이지 싶습니다. 그 일대에 그렇게 큰묘는 바로 그 묘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은 좀복잡합니다,용정에게신 할아버지께서는 울릉도와 평해만호를 역임하쎠답니다(만호란"수군지역부대장급입니다
입향시조께서는 영천에서 내려오신걸로 알고있습니다,조상님들묘소가 다방면에 산재해있습니다 현평해여고 옆.기성방율.온정조금 평해학곡남산.용정뒷산..등
대구-영천-포항(청하)-영덕-평해가 아니고 대구-영천-평해인셈인가요? 영천과 평해는 생활권도 다르고 교통 문제도 있는데,
평해만호를 하셨던 분이 계셨군요... 그래서 조상님의 묘지가 제장리에서 바다가 제일 잘보이는 풍광이 좋은 곳에 넓은 부지와 함께 존재하였나봅니다. 이제 궁금증이 조금이나 풀리는듯합니다. 묘지에 소속된 재산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서 후손분들이 제장리에 거주하다가 후포 일대로 이주를 한듯 싶네요. 제가 어슬프게 알기로는 거일2리와 직산2리에 문중일에 관심이 많으신 어르신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친 장례후에 그 어르신들이 이런 저런 절차를 밟아서 부친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울릉도를 관할했다는 대풍헌은 구산리에 있는데 하필이면 작은 제장과 용정리에 집성촌을 이루었을까요?
구산리와 제장리(직산1리)는 교통편이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 거주하시는 곳은 어디신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가까운 일족분을 만난 것 같으시네요,,,그런데 어떠한 근거로 입향조께서 영천에서 내려오신 걸로 아시는지요,,,
입향시조께서는 영천에서 내려오신걸로 알고있습니다,조상님들묘소가 다방면에 산재해있습니다 현평해여고 옆.기성방율.온정조금 평해학곡남산.용정뒷산..등 - 위 닭머리님(판서공파 26대손 서철호님) 댓글중에 있습니다.
저의할아버지 (평해문중대종손)및 일부어르신들이 일본징용끄ㄹ러가셔서돌아오지못하였습니다 저의부친(대종손)께서도 유복자로 태어나셨습니다 거주지는 대구입니다.영천근거는 부친생전에 저도 동참하여 영천제실에 가끔다녀왔고 아버님께서 누차말씀하쎴습니다
조상님들이 열심히 모여사시다가 먹고사는 문제로 다시 뿔뿔이 흩어지니 후손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생업에 종사하느라 쿤타킨테가 가졌다는 뿌리에 대한 의문을 품을 근거도 없이 살아가는듯 합니다. 저희 큰아버지는(작고하심) 징집을 피하려고 일본에 있는 산업체에 스며들어 결국 그곳에서 자수성가 하셨는데~ 사촌 형님들은 조상일에 관심이 전무하고 동생인 부친이 대신 조상모시는 일을 하다보니 저또한 어릴적부터 어르신들이 뭐라뭐라 하신듯한데 장손이 아니다보니 귀귀울이지 않아서 지금에사 궁금해지네요.(어쩌다가 실질적인 장손이 되어버렸습니다.)-후포에 사셨으면 소주라도~1년에 4-5회정도 고향엘 갑니다. 지금은 거주-의정부
생업은 서울입니다. 대구에 사시는군요...대구에 고향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생업과 관련한 거래운이 잘 안트이네요...타 도시는 거래가 잘 트이는데 달성서씨 본거지인 대구는 잘안되네요...대구 사람도 고집이 쎄고 달성서씨도 대구 고집이다보니 서로 융통성이 없는지 어렵네요...저는 대형.중장비 엔진부품을 취급합니다. 용정리에 살던 분들이 대구에 많이 계십니다. 용정리의 최고 큰 형님분이 지금은 귀농하셨으니 이번 여름 휴가때 만나뵙고 여쭤봐야 할것 같습니다. 그분들마저 언젠가 돌아가시면 고향에 사람이 없으니(있다해도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만 있지요) 왜 거기에 그 묘지가 있게되었는지 알 까닭이 없으지겠네요,
그 묘지가 왜 그리 궁금한가하면 어릴적 저희 놀이터였고 자라면서 벌초를 했었고, 저희 밭과 산이 바로 경계하고 있어서 수없지 지나다녔고, 여름철 바다를 조망하면서 더위피하는 명소였는데 어느날 그 묘지에 부속한 땅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누구시길래 제가 알기로 그 일대에 묘지가 땅을 보유한 곳이 없기에 대단히 궁금해졌던 것입니다. 남은 숙제는 여름 휴가때 해결해보렵니다.
서희석님 닭머리님 정말 두분께서 뿌리를 알고계십이 넘 아름답습니다.전달성서씨판서공파.시조서보님의 함자를 족보에서 학생때 한번본것으로기억합니다.딸이라고 어른들이 아들도 아닌데 족보를 볼필요가없다고 하셨고 한문으로 되어있어서 잘알수는 없었는데 풍수선샘을 따라현장에 가보면 달성서씨분들이 좋은곳에 계시는것같아서 조상님이 휼륭하셨다고생각합니다.점말 부끄럽지않은 후손 사이가좋은 후손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