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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故國)
이 범 선
그날도 낚시는 신통치 않았고 오월 신록이 한챵 피어나는, 호수 건너 앞산에는 뻐꾹새만 구성지게 울어대는 날이었다. 나는 호수에 거꾸로 잠긴 산봉우리 흰구름에 찌를 세워놓고 마냥 한가하게 앉아있었다.
사실이지 나는 낚시터에서 일찍이 한 번도 푸짐히 잡아본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꽤 자주 그곳을 찾곤 했다. 그리니까 낚시보다 호숫가 경치에 반했던 것이다. 삼심 리나 밑에서 막은 댐으로하여 괸 물이 그 삼팔선(三八線) 가까운 깊은 산골짜기에 호수를 이루었고 그 맑은 호수에 거꾸로 잠긴 병풍 같은 산들은 과연 절경이었다. 내가 늘 찾아가 앉곤 하는 낚시터는 그 호수 북쪽 도원리(桃源里)라는 조그마한 마을 앞이었다. 어쩌다가 그곳만이 평평한데 물이 약간 후미져 들어와 있어서 낚시를 담그기에 꼭 알맞았다.
그날은 한낮이 기울도록 겨우 댓 수의 붕어를 낚아올렸을 뿐이었다. 매우 지조하다. 게다가 나는 아까부터 찌에보다 자꾸만 등 뒤에 신경이 쓰이던 것이다.
저 친구, 저게 혹 간첩이 아닌가?
내가 앉은 물 가에서 조금 올라간 바로 내 등 뒤 소나무 밑에 아까부터 우두커니 앉아있는 한 오십 쯤 나 보이는 사나이. 그는 그 차림새로 보아 분명 낚시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만치 대여섯 집 모여있는 도원리 마을 사람 같지도 않았다. 뱀가죽처럼 얼룩얼룩한 셔츠에 커다란 체크 무늬의 신사복을 입었는데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나는 낚시를 들어올려 떡밥을 다시 꿰어던지고 한 번 더 힐끔 사나이를 돌아보았다. 너부죽하고 거무접접한 얼굴에 코가 벌름한 게 영락없는 노동자인데 옷은 신사복을 걸치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그렇게 와 앉았는지는 딱히 알 수 없었지만 아까 내가 그를 발견하고 나서도 벌써 두 시간이 넘는다. 그는 꼼짝않고 거기 그렇게 두 다리를 뻗고 두 팔을 뒤로 짚은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산골짜기에서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아무래도 수상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낚시꾼 간첩을 생각했다.
그런데 간첩이라면 복장이 좀 부자연스럽다. 신사복이 그 인상에나 그 환경에나 다 어울리질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찌가 스물스물 솟아올랐다. 나는 흠칫하고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손에 오는 감각이 제법 큰 놈이었다. 천천히 끌어내었다. 한 뼘이 넘는 붕어였다. 붕어를 따내어 어망에 넣고 다시 낚시를 담그고 나서 손을 씻으며 나는 또 한번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사나이는 여전히 그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점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쯤 또 흘렀다. 오후 두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쪼그리고 앉았던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뒤의 낚시 가방을 집어들었다. 사나이는 여전히 그렇게 지만치 앉아있었다. 나는 낚시 가방을 들고 슬금슬금 소나무 밑 그에게로 걸어갔다. 차라리 그렇게 접근하여서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의 옆에 낚시 가방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흉내나 내듯이 꼭같은 말로 답하며 몸을 일으켜 바로 세웠다. 표정은 그대로 그저 덤덤했다.
“이 도원리 마을 분입니까?”
“아닙니다.”
사나이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그런 묘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그럼……?”
“그저 한번 와봤습니다.”
사나이는 그 거무접접하고 촌스러운 인상과는 딴 판으로 말투가 제법 점잖았다.
“낚시를 좋아하시나요?”
“아니오.”
“그럼 여행을 좋아하시나 보죠?”
나는 그의 옆에 가 앉았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가방 속에서 김밥을 꺼내어 펴며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하고 권했다. 좀 전까지 그는 간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의 그 어련무던해보이는 인상과 굵직한 음성으로해서 쉬 해소되었다.
“어서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나이는 비로소 빙긋이 웃어보였다.
“사양하실 거 없습니다. 낚시꾼은 점심밥을 넉넉히 싸들고 다니니까요.”
“그렇지만…….”
“자 같이 듭시다. 이렇게 호숫가에서 먹는 맛은 유별나죠.”
나는 신문지 위에 김밥 도시락을 펴놓았다. 사나이는 도리어 뒤로 물러나앉았다.
“정말입니다. 사양하지 마십쇼. 보십쇼. 이렇게 많지 않습니까. 자 좀 드십쇼.”
나는 도시락을 들어서 사나이 앞으로 내밀었다.
“허 이거. 그럼 하나만…….”
사나이는 맨 가장자리에서 김밥을 한 개 조심스레 집었다.
“낚시를 좋아하시나 보죠?”
사나이는 손에 든 김밥을 들여다보며 인사치레처럼 그렇게 물었다.
“네 .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신통치 않은데요.”
“그렇군요. 아까부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야 그저 이렇게 호숫가에 앉아서 먼산 바라보는 게 좋아서 자주 오죠.”
“네에.”
“보십쇼. 이 경치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대로 선경이죠. 이 마을 이름까지 도원경(桃源境)의 도원리랍니다.”
“그렇죠.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사나이는 김밥을 먹으며 새삼스럼게 먼산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럼 선생도 이 마을이 처음이 아닌가 보군요.”
“네. 오래 전에…….”
“그래요?”
나는 새삼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의 그 투박한 얼굴 어디엔가 어떤 쓸쓸함 같은 그늘이 느껴졌다.
“꼭 이십오 년이 됐습니다.”
사나이는 반 쪽 남았던 김밥을 마지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참 평 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는 호수 한복판으로 시선을 띄웠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멍청히 지켜보고 있었다. 졸지에 주객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도원리는 저 밑에 있었죠. 지 물 깊은 밑에 말입니다.”
“그래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말이지만 그 댐을 막은 것은 십 년 남짓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사나이는 댐이 생기기 이전 마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선생은 본시 그 마을에 사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지 몇 번 와본 일이 있었죠. 제 고향은 이북(以北) 입니다.”
“그래요?”
나는 다시 사나이에 대한 의혹이 생겼다. 북에서 온 사나이.
“자, 더 드십쇼.”
나는 도시략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허 . 이거 참. …… 오래간 만에 먹어보니까 참 맛있습니다.”
사나이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서 또 한 개 조심스럽게 김밥을 집었다. 순간 나는 섬뜩했다. 아까는 미처 못 보았었는데 그의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이 뭉툭하니 잘려있었던 것이다.
“그럼 지금은 어디 사십니까?”
“…… ? 아주 먼 데 살고 있습니다.”
사나이는 다시 호수 한복판으로 시선을 띄우며 말했다. 아주 먼 데. 그러면 거기 강원도 두메에서 멀리 부산쯤이란 뜻일까?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제주도쯤인가? 아니 어쩌면 북한 어디?
“이십오 년 만이라고 했던가요?”
“예.”
“그럼 정말 먼 데 살고 있는 모양이죠?”
나는 슬쩍 그렇게 떠보았다.
“예. 멀지요!”
사나이는 한숨처럼 답하며 그 거무집접한 얼굴을 천천히 들어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흙덩이 같은 얼굴 생김과는 너무나 걸맞지 않게 서글퍼서 나는 방금 섬뜩했던 느낌이 금시 스르르 사라지며 그는 결코 간첩 따위일 수는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두 홉들이 진로 소주를 끄집어내었다. 마개를 따고 종이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소주 한 잔 합시다.”
“……!”
그런 눈빛을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사나이는 하늘에 띄웠던 시선을 거두어 나를 향해 돌리다말고 그대로 그 시선을 내 손의 소주병에 꽃았다. 그래, 그건 바로 꽃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시선이었다. 그는 내가 내민 잔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손가락 둘이 잘려나간 오른 손을 소주병을 향해 불쑥 내밀었다. 나는 그에게 술병을 내어주었다. 그는 술병을 유심히,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바로 이겁니다! 진로(眞露) 딱지가 바뀌었군요. 그러나 크기도 꼭 이거였죠! 이 두꺼비, 바로 이겁니다! ”
“……?”
나는 그저 멀거니 그의 그 뭉툭한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두꺼비를 묻어두고 떠났죠!”
“……?”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저기 저 밑에, 호수 깊은 곳에 말입니다!”
그는 술병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서 그저 그의 하는 짓을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공연히 이거…….”
사나이는 문득 정신이 돌아온 듯 술병을 내게로 돌리며 머리를 끄덕해보였다.
“약주를 좋아하시나 보군요.”
무언가 석연지 않은 대로 나는 다시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아 이거 제가 먼저 받아서 되겠습니까?”
“술은 내 술이니 선생이 손님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의 손에 잔을 쥐어주고 잔 가득히 찰찰 넘치도록 따라주었다.
“그럼·…·고맙습니다!”
그는 천천히 잔을 들어올렸다. 코 앞에서 잠깐 잔을 들여다보던 그는 잔을 입에 대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용히 잔을 기울였다. 맥주컵보다논 조금 적지만 소주잔으로는 세 배나 큰 그 하얀 종이 잔에 가득찬 소주를 그는 단숨에, 그도 아주 천천히, 마치 맛을 보듯이 천천히 입 안으로 흘려넣는 것이었다.
“아아! 바로 이겁니다! ”
잔을 다 비우고 난 그는 아쉬운 듯 한 번 더 잔 속을 들여다보며 중열거렸다. 그는 내게로 잔을 돌렸다. 그리고는 술병을 들어 눈앞으로 한번 비쳐보고 나서 내 잔에다 따랐다. 몇 차례 잔이 오고갔다. 나는 그리 술이 세지도 못하거니와 사나이가 너무나도 술을 달게 마시기 때문에 내 잔에는 반잔씩만 받았고, 그에게 더 많이 따라주었다. 사나이는 그때마다
“이거 이러면 안 되겠는데요.”
하면서도 굳이 사양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안주도 안 집고 잔을 비우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입술에 묻은 술까지 혀끝으로 핥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얼마 안 해서 2홉들이 소주병은 곧 비워버렸다. 그는 술병을 잔에 거꾸로 세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서 핥다시피 마시고 나자 빈 병을 손에 쥐고 이리지리 돌려가며 한동한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자니까 도리어 내 편이 목마르고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만에 술을 마신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나는 하도 궁금해서 그렇게 물었다.
“아니죠. 술이야 거의 날마다 저녁이면 마셨지요. 그러나 이 두꺼비는 이십오 년 만입니다.”
“이십오 년 만이라뇨. 어째서 그렇죠?”
“거긴 두꺼비가 없으니까요.”
“거기라뇨?”
나는 얼른 말꼬리를 붙들고 그렇게 물었다. 실은 그게 아까부터 가장 궁금했었다. 그가 어디서 온 사나인지 .
“예. 미국서 어제 돌아왔습니다.”
“미국서요!”
나는 새삼스럽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흙덩어리 같은 거무죽죽한 얼굴, 거기에 촌스러운 옷차림,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삼각지 거리 같은 데서 간혹 보는 사복을 하고 나온 흑인 병사에게서 느끼는 그런 야단스러운 옷색깔 같은 것이 그에게서 풍기긴 했다.
“왜, 놀랐습니까?”
벌겋게 취기가 오른 그의 너부죽한 얼굴이 해벌어지게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좀…….’
“그랬을 테죠.”
“그린데 어제 바로 미국서 돌아왔다면서 어째서 오늘 여기 이렇게 산골짜기엘…… 혹 부모님의 무덤이라도 이 부근에 어디……?”
“부모님의 무덤요?”
그는 마치 어떤 비밀스러운 약점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곧 빙그레 자조(自嘲)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건 없습니다. 난 고아니까요. …… 하긴 묻긴 묻었더군요.”
그는 저만치 호수의 잔잔한 수면으로 다시 눈을 띄웠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차라리 간첩이 아닌가 했던 때보다 더 강한 호기심이 솟았다. 그러나 뭐라고 자꾸 캐어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둘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지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 호수의 옛날 이름을 흑 아십니까?”
이윽고 사나이가 불쑥 물어왔다.
“옛날이라뇨? 이 호수는 십 년쯤 전에 댐을 막으면서 생긴 것인데요.”
이십오 년 동안이나 외국에 나가있던 그 사나이보다는 내가 그 사실은 더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안 그렇습니다. 옛날에도 지만치 꽤 큰 못이 있었습니다. 호수라고까진 못하겠지만요.”
“그랬나요?”
나로선 초문이었다.
“꼭 고구마 모양의 못이었죠. 그 못을 여기 사람들은 보지못이라고 했습니다.”
“보지못이오? 좀 점잖지 못한 이름이군요.”
“그래요. 이런 두메에서는 어째서 그런 이름을 산이나 바위에 다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거긴 그럴듯한 이유도 있죠. 여길 보십쇼. 선생!”
그는 슬며시 일어서 산 쪽으로 돌아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저 산줄기를 보십쇼. 꼭 여자가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있는 형상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서있는 여기는 바로 그 두덩인 셈이죠. 이렇게 물이 괴기 전에는 이 두덩이 꽤 높았구요. 여기서 골이 지면서 좀 내려간 바로 저만치 꼭 그 모양의 못이 있었죠. 아무리 큰 가믐에도 절대로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그 못을 사람들은 보지못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거 그럴듯 하군요.”
“그런데 지금 와보니 이렇게 달라졌군요. 옛날에는 저 밑에, 그러니까 그 못 둘레에 마을이 있었습니다. 다 잠겨버리고 몇 집만 지금처럼 저렇게 중턱으로 옮겨 지은 모양이조.”
“그런데 여기가 고향도 아니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나요?”
“예. 제가 신세 많이 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기 사셨죠. 그래서 몇 차례 와서 며칠씩 묵어가곤 했어요. 지금도 저 물 속에 마을 모습이 선히 보입니다.”
그는 또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았다.
“여기 올 때까지는 이렇게 변한 줄은 몰랐나요?”
“전혀 몰랐조. 국내에 돌아와 보니까 전보다 많이 변했더군요. 우선 고속도로가 생겼고, 농촌에도 이층 양옥들이 들어섰고, 서울엔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고층 빌딩 이 쑥쑥 솟았고, 그야말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 산골짜기까지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데 턱하니 와보니 늘 그리던 그 마을은 간 데 없고 이렇게 치렁치링 물이 차 있지 뭡니까. 허무하더군요. 정말!”
사나이는 나를 한번 돌아보며 쓸쓸히 미소를 흘렸다.
“그러면 그 할아버지 할머니도 못 찾았겠네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벌써 돌아가셨죠. 제가 미국으로 건너가고 이태째 되던 해에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원체 연세가 많으셨으니까요. 동장 어른이 편지를 주셨더군요. 그 동장 어른도 이젠 돌아가셨겠죠.”
“그럼 여기 아무트 아논 이가 없겠군요?”
“없죠. 아무도!”
그렇게 대답하며 그는 슬며시 손을 내려 거기 기어다니는 개미를 한 마리 손가락에 묻혀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매우 서운하겠습니다. 아는 이는 한 사람도 없으니 .”
“아니죠. 애당초에 두 노인께서 돌아가신 건 알고 있었고 그밖에 누구 사람을 만나보려고 찾아온 건 아니니까요.”
“그럼?”
“그저 이 산들, 그리고 골짜기, 또 그 못, 그리구 또 하나 꼭 기대한 것은 두꺼비였어요. 허허허. 그런데 그 두꺼비마지 지 물 밑에 깊숙히 잠겨버렸지 뭡니까.”
“두꺼비라뇨?”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어린애 같은 짓이죠. 허허허 .”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글쎄요. 무슨 이야긴지 잘 못 알아듣겠네요.”
“이야기 하자면 꽤 길죠. 내가 자란 곳이 이북이란 말읕 했던가요? 6.25 때 남한으로 내려왔죠. 그때 내 나이 스물이었어요.”
그는 손바닥에서 요리조리 놀리던 개미를 다시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땅에 내려주었다.
“끝까지 내려간 곳이 부산이더군요.”
그는 손바닥을 한 번 마주 비비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부산 거리를 헤매던 그는 어느 창고 옆에서 두 노인이 부쳐 파논 감자 부침개를 사먹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그 노인들이 들어있는 창고에서 한겨울을 같이 지냈다. 뿐만 아니라 그 할아버지의 소개로 부두 노무자 반장을 알았고 그때부터 부두에서 노동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연히 한 흑인 병사와 친했다. 그보다 두 살 많은 아주 좋은 병사였다. 그들은 미군 병사와 노무자라는 신분의 차이나 흑인과 황인종이라는 종족의 다름 같은 것을 넘어서 아주 친해갔다. 흑인 변호사의 아들로서 대학 중에 지원해서 나왔노라는 그 흑인 병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53년에 휴전이 되었다. 흑인 병사는 본국으로 들어갔다. 그는 몹시 서운했다. 그러나 거의 매주 흑인 병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강원도 그들의 마을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부산 거리에 혼자 남아서 그날그날 노동으로 지냈다.
부모의 얼굴조차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란 그이면서도 문득문득 막연히 누군가가 그리운 때가 있었다. 그런 때면 그는 며칠 일을 쉬고 삼팔선 부근의 도원리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곤 했다. 두 노인은 아들도 딸도 없이 못가 초가집에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는 두 노인에게서 육친의 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산골짜기의 경치가 아롬다웠다. 봄의 진달래, 가을의 단풍은 가위 절경이었다. 그는 어디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으로 꿈을 꾸듯 며칠씩 그 마을에서 보내곤 했다.
그러던 55년 가을이었다. 미국의 흑인 명사한테서 초청장이 왔다. 그곳에서의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미국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곧 결심을 했다. 그 누구 피붙이 하나없는 그에게 야 부산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강원도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다. 그래도 작별인사라도 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그는 그 두 노인뿐이었다.
“역시 우리 두 늙은이 팔자에는 자식이 없군! 우린 그래도 자넨 아들이거니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그에게서 미국 이민 이야길 듣자 두 노인은 등잔불 앞에서 자꾸만 눈물을 찍어내었다. 그날 밤 앞산에서는접동새가 유난히 피나게 울었다. 그는 그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접동새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십오 년 지난 날들과 또 앞으로 이국땅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몸을 뒤채었다. 한 열흘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떠나온 북한땅에 다시는 못 가고 지낸 지 오 년 인데, 이제 아주 그 곳에 살기로 작정하고 남의 나라로 떠나가면, 과연 언제 용케 이 땅에 돌아와 볼 수나 있을 것인지 그지 아득하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사립 밖으로 나섰다. 보지못에선 뽀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못을 끼고 주춤주춤 마을을 거닐었다. 그 마을도 이제 마지막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고향도 아무 것도 아닌 그 골짜기가 공연히 마음 속에 엉켜붙는 것이었다. 그는, 못 맨 안쪽 모서리 창포밭에 펀펀하니 누워있는 공알바위를 돌아서니 마을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에까지 왔다. 상품이란 거의 아무 것도 없고 한쪽 흙벽에 붙은 시렁 위에 소주병이 몇 개 먼지를 쓰고 서있었다. 그는 문득 생각이 나 소주를 두 명 샀다.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나누자고 생각했다.
“그래 자네가 주는 것이니 한 잔만 꼭…….”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할아버지는 밥주발 뚜껑에 받은 술도 겨우 입에 대었다 떼었을 뿐이었고 결국 그가 혼자 소주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그래, 정말 가겠나? 웬만하면 여기서 같이 살자구.”
할머니는 그의 손을 쓸어보며 울먹였다.
“할머니 갔다가 돌아올께요!”
그는 할머니의 여윈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흔들며 웃어보였다.
“미국이 그렇게 멀다문서, 그야 언젠가는 돌아올 수도 있겠지. 허지만 그땐우린 둘이 다 없을 긴데 뭘.”
할머니는 기어이 눈물을 훔쳤다. 그는 덩달아 가슴이 뭉클해지며 코가 메케하니 쓰라렸다.
“그날 나는 그 남은 소주 한 병을 공알바위 밑에다 꼭꼭 묻었어요.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그때 파내어 마시자 하는 어린애 장난 같은 생각에서였조.”
거기까지 이야기한 사나이는 나를 한 번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다시 얼굴을 호수 쪽으로 돌리면서 계속했다.
“그게 이상하더군요. 미국에 건너가서 그래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건 이 도원리 마을뿐이었어요. 그리울 말로야 어려서 자란 북한의 마을이 더 그리워야 할 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고 한국 하면 그건 곧 이 도원리 마을이었으니 참 이상하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 두 분 생각에 이 마을이 그립더군요. 그러나 두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어땠는지 아십니까? 그거 참 맹랑하조. 고국에 대한 내 그리움의 속씨(實)는 바로 그 조그마한 소주병이었어요. 두꺼비 그림이 있던 그 소주병 말입니다. 공알바위 밑에 묻어놓고 떠난 그 두꺼비 말입니다.”
사나이는 또 한번 나를 돌아보았다.
“알 것도 같군요.”
나는 그렇게 대꾸해주었다.
“아마 잘 모를 검니다! 세상에 소주 한 병 때문에 그리운 고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놈은 그랬단 말입니다. 일 년이 가고 오 년이 지나고 또 십 년 이십 년이 흘러가면서 차츰 고국에 관한 것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이심오 년이 되어도 또렷히 잊히지 않는 것이 꼭 하나 있었거던요. 그게 바로…… 웃지 마십시오. 그건 바로 공알바위 밑에 묻고 떠나온 소주병이었단 말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힐끔 돌아보는 바람에 웃음을 거두고
“그야 누구하나 고국에 혈육이 없었으니까 그랬겠지요 뭐.”
하고 위로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따지면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을 때 고국도 고국인 거죠. 내겐 그런 인간이 없단 말입니다!”
그는 시무룩해지며 두 손가락이 뭉툭하니 잘려나간 오른손을 펴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심경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그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는 땅이면서도 안타깝게 그리웠던 고국, 결국 그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그리움의 끈을, 땅 속에 묻고 온 조그마한 소주병 목에 어설프게 동여매고 이십오 년이란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리라.
“그곳에선 무슨 일을 했나요?”
나는 담배를 새로 붙여 물었다.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했다.
“여러 가지 일을 했죠. 기계 공장에도 있었고, 트럭 운전수도 했고, 제재소에서도 일을 했고, 거기서 이렇게 두 손가락을 잘렸죠. ……그러나 지금은 농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다들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결혼은 했습니까?”
“예. 애가 둘 있죠. 그 흑인 병사의 누이동생이 제 아냅니다.”
“그랬군요. 이번엔 무슨 일로 나오섰나요?”
“내 아내가 일본에 무슨 학술회의에 참가했어요. 대학 교수거든요. 그래서 나도 따라나와 봤죠.”
“그럼 우리나라엔 혼자만 왔나요?”
“예. 혼자 왔어요. 잠깐.”
“언제 돌아갈 예정 입니까?”
“오늘 서울로 올라갔다가 내일 떠날 생각입니다.”
“왜, 모처럼 고국에 돌아왔는데…….”
“글쎄요. 여기는 이렇게 와 봤으니까. 뭐 별로 다른 일도 없고…….”
그는 또 한번 멀리 호수를 둘러보았다.
결국 나는 일찍 낚시를 거두고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버스 속에서의 그는 시종 창 밖을 바라볼 뿐 거의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장동 터미널에서 내렸다. 나는 두 손가락이 없는 그의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안넝히 가십시오.”
“오늘 감사합니다.”
그의 호인스러운 얼굴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 번엔 부인과 아기들 다 함께 오십시오.”
그러나 그는 그저 쓸쓸히 웃어보였을 뿐 아무 대담도 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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