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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청원외교라는 말을 쓰는 까닭이 있다. 만일 미국이 대등한 조건에서 조선에게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구했다면, 협상제의라는 말을 써야 하지만, 부등한 조건에서 협상을 개최하자고 요청했으니 협상제의가 아니라 협상청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무릇 청원이란 낮은 지위에 있는 행위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상대자에게 자기 소원을 아뢰는 행동이다. 오늘날 조미관계에서 조선은 미국으로부터 거듭되는 청원을 받을 만큼 우세한 지위에 있고, 그와는 반대로 미국은 조선에게 청원을 거듭해야 할 만큼 열세한 지위에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 외무성이 미국 국무부의 거듭되는 청원을 받고서도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고 무시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거만하고 도도하기로 소문난 미국이건만, 조선으로부터 그처럼 거듭 무시를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다. 비공개 청원을 거듭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의 응답을 받지 못해 고심하던 미국 국무부는 공개 청원으로 돌아섰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27일 마익 팜페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그의 팀을 현장에 보내 나의 팀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훌륭하고 확실한 결과를 이끌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게 신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청원하기 나흘 전인 2019년 8월 23일 이례적인 일이 생겼다. 리용호 외무상이 담화를 통해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한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그를 질책한 까닭은, 2019년 8월 21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국 언론매체와 대담하는 중에 “만일 북조선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비핵화가 옳은 길임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시건방진 말투로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을 들은 리용호 외무상은 8월 23일 담화를 발표하여 팜페오 국무장관을 심하게 질책했던 것이다. 질책담화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떻게 그가 이런 망발을 함부로 뇌까리는지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고, 이런 사람과 마주앉아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지 실망감만 더해줄 뿐”이라고 하면서, 그는 “미국 외교의 독초”이고, “조미협상의 앞길에 어두운 그늘만 던지는 훼방군”이라고 책망했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런 질책을 받고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나흘 뒤에 조미협상이 하루빨리 재개되기 바란다는 청원의사를 언론대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청원해온 미국 국무부의 다급한 사정은 2019년 9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대표의 연설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는 미시건대학에서 연설하면서 “현재 조미 쌍방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협상탁에 마주 앉아 타협점을 찾고 협상의 운률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조선도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행동을 그만두고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게 조속한 협상재개를 청원하다가 질책까지 받고서도 내색하지 못하는 미국의 쪼그라든 몰골, 그리고 그들의 거듭되는 청원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질책까지 주저하지 않는 조선의 위풍당당한 태도, 바로 이것이 오늘 조미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 새로운 대안 가져오라는 조선의 요구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며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3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2019년 2월 27일과 28일에 진행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단된 조미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선결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조미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조미공동성명을 리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리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략)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여져야 나는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였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적으로 거부한 미국의 계산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며,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작성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람이 바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나는 2019년 4월 1일 <자주시보>에 실린 ‘핵협상 결렬시킨 트럼프, 텔리미트리 점검하는 전략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2019년 3월 29일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 소속 백악관 특파원이 직접 읽어보았다는 백악관 외교문서, 다시 말해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 관한 보도내용을 검토하면서, 그 외교문서에 담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사진 2>
(1) 핵동결 - 조선은 현존하는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고, 새로운 핵시설 건설도 중단한다.
(2) 핵신고 - 조선은 자기의 핵프로그램에 관한 포괄적 선언을 한다.
(3) 핵반출 - 조선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한다.
(4) 핵폐기 - 조선은 핵기반시설, 탄도미사일, 미사일발사차량, 관련시설들, 생화학무기프로그램을 해체한다.
(5) 핵사찰 - 조선은 미국인 전문가들과 국제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찰단에게 핵폐기현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한다.
(6) 핵기술집단해체 - 조선은 모든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을 비군사직종으로 전직시킨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나는 그 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고 하면서, “미국측이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조미실무협상에 나오라는 뜻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3. 조미실무협상에 포괄적 의제 오른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조선 외무성으로부터 무시와 질책을 받으면서도 거듭 청원해온 조미실무협상을 오는 9월 하순에 개최할 수 있다는 조선의 청원수락이다. 조선의 청원수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은 조미실무협상이 열리면 포괄적인 의제를 토의하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할 비핵화방안만 토의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도 토의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할 평화실현방안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안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평화협정, 불가침선언, 보장협약의 3중구조 위에 수립하려는 조선의 평화실현방안에 대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선이 미국에게 조미실무협상 개최시점으로 제시한 2019년 9월 하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게 제시한 시한(2019년 12월 말)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이것은 조선이 2019년이 가기 전에, 다시 말해서 앞으로 석 달 안에 조미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해놓은 대미협상시간표에 따라 앞으로 3개월 동안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변화의 급류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올해 언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려는가?”고 물은 백악관 출입기자의 질문을 받고 “올해 어느 때 그렇게 된다. 틀림없이 그들은 만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켜보자. 나는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도,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는 “그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엉뚱하게 답변하였다. 이 엉뚱한 답변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진 3>
비록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생뚱맞은 답변이지만, 거기에는 올해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그의 생각이 녹아있다.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조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면, 올해 안에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에 맞춰 올해 안에 반드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는 말은 올해 안에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이 비핵화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로 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과 미국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각자 외교력량을 집중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9월 4일 유엔주재조선대표부는 오는 9월 하순 뉴욕에서 진행되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리용호 외무상이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발표하였다. 2019년 7월 10일 유엔사무국이 발표한 유엔총회 연설자 명단에는 조선의 상급(장관급) 인사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로 되었었는데, 지난 8월 30일에 수정된 연설자 명단에는 상급이 대사급으로 바뀌었다. 리용호 외무상은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므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려던 계획을 그만둔 것이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오는 9월 하순에 열릴 조미실무협상에 외교력량을 집중해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조치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조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담긴 뜻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특별담화에서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앞으로 열리게 될 조미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조선이 받아줄 수 있는 계산법에 기초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분별없이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또 다시 꺼내놓으면, 조미협상은 그것으로 완전히 파탄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한 것이다.
2019년 9월 9일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였음을 알려주는 속보가 <연합뉴스> 웹싸이트에 실린 시각은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속보가 실린 시점을 보면, 최선희 제1부상은 오후 11시 30분경에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간으로 오후 11시 30분을 워싱턴 시간으로 환산하면,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이다. 정오가 가까운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이 영어로 번역한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의 2019년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미국 통신사 <블룸벅 뉴스>는 2019년 9월 11일 보도기사에서 지난 9월 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가 제재완화를 반대하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격론을 벌였다고 하였지만, 긴급회의에서는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와 함께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도 논의되었다.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강하게 반대하였다. 대이란제재완화문제와 조미실무협상개최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격론을 벌였다.
미국 언론매체들에 실린 동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3시 10분경 백악관 집무실을 나선 모습이 나타난다. 오후 7시에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엇빌에서 열리는 공화당 대통령선거유세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으므로, 그는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가기 위해 긴급회의를 마치고 백악관 정원으로 나갔던 것이다.
백악관 정원에서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들 가운데는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발표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북조선에서 방금 나온 성명(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을 보았다. 그것(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뜻함-옮긴이)은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지만, 언제나 나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쁜 것이 아니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답변을 읽어보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조미협상개최문제에 기대를 건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집한 긴급회의에서 조미실무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자기의 의견을 반대한 볼턴에게서 느낀 불편한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엇빌을 향해 이륙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페이엇빌 선거유세장으로 가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뜻밖의 긴급보고가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도착하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5시 53분(평양시간으로는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조선이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또 다시 진행하였다는 긴급보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리둥절하였다. 그의 천박한 정치적 식견으로는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 4>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장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7시 9분이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등장에 환호하였지만, 조선이 왜 조미실무협상을 개최하자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자마자 위협적인 시험사격을 단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선거유세 중에 조미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세계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동맹관계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최선희 제1부상이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약 7시간 30분이 지난 9월 10일 오전 6시 53분 평안남도 개천비행장 활주로 공터에서 거대한 불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제2차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므로, 시험사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미국의 협상청원을 수락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한 때로부터 7시간 30분 만에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단행하였다.
7시간 30분 시차를 두고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가 발표되고,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진행된 것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양면조치였다. 만일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끝내 고집하여 조미협상이 파탄되면, 조미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될 수 있으므로, 조선은 그런 상황에 대처할 압도적인 무력을 시위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실상을 정확히 보도하지 않아서 독자들이 모르고 있지만, 이번에 조선이 시험사격한 초대형 방사포는 압도적인 위력을 지닌 타격수단이다. 주한미국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줄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 초대형 방사포의 시험사격은 백악관에 보내는 조선의 강력한 경고메시지였다.
5. 트럼프, 조미협상 가로막은 큰 걸림돌 치웠다
페이엇빌에서 선거유세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그가 움직인 동선을 시간대별로 추적해보면,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간 시각은 오후 10시쯤이다. 창가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초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 내려앉고 있었던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전화통화는 볼턴에게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오늘 밤에 그만두라는 해임통보였다.
그날 밤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한 통으로 볼턴을 전격 해임할 줄은 각료들과 백악관 고위보좌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튿날 오전 8시 58분에 트위터로 발표한 볼턴 해임소식을 듣고서야 간밤에 볼턴이 해임되었음을 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해임을 단행한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언론매체들은 9월 9일 오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소집된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제재를 완화하는 문제를 놓고 볼턴과 격론을 벌인 것이 볼턴을 해임한 이유라고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국가안보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전격 해임한 까닭은, 오는 9월 하순에 조미실무협상이 실패하면, 조미협상이 파탄될 것이라는 최선희 제1부상의 서릿발 같은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2019년 9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볼턴 해임과 관련하여 언급한 발언에서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존(존 볼턴을 지칭-옮긴이)은 나와 아주 잘 어울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 리비아 모델은 꺼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뒤로 밀어냈다. 솔직히 그는 나보다 더 강경하지 않지만, 강경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알다시피, 그는 강경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우리를 이라크(전쟁터)로 끌어갈 만큼 강경했다. 그는 나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행정부의 다른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그가 리비아 모델에 대해 언급하자 재앙이 일어났다. 가다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보라. 나는 그 이후(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꺼내놓아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선이 대미협상을 중지한 이후라는 뜻-옮긴이), 김정은(위원장)의 발언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는 존 볼턴과 상종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볼턴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을 뜻함-옮긴이)은 강경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해 말을 삼갈 줄 아는 명석함의 문제다. 존은 우리와 같은 길에 있지 않았다. 때로 그는 우리가 너무 강경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사진 5>
위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제기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재앙’의 책임을 볼턴에게 떠넘겼고,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조미협상이 7개월 동안 지체된 ‘재앙’의 책임까지 볼턴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백악관에서 내쫓아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제1부상의 특별담화를 읽고 볼턴을 전격 해임한 것은,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함으로써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긍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조치에 의해 조미협상을 가로막았던 큰 걸림돌이 치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는 것은 핵동결,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기술집단해체를 요구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 중에서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를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는 것이다.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에서 핵심내용은 핵반출, 핵폐기, 핵기술집단해체인데, 그런 핵심내용을 들어내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만 남겨두면, 그것은 더 이상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이 아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있는,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방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계산법에 기초한 비핵화방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최선희 제1부상이 지난 9월 9일 특별담화에서 언급한 “조미 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바 있고, 2007년 2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5차 6자회담 제3단계 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이행을 위한 2.13합의’에 따라 조선은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신고를 실행하고 핵사찰을 허용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면 녕변핵시설에 대한 핵동결, 핵신고, 핵사찰(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을 합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일단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이 등가적 상응조치를 실행하면, 녕변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문제도 합의될 수 있다. 2018년 9월 19일에 채택,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바로 이것이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이다.
오는 9월 하순 조미실무협상이 개최되면, 미국은 조선이 제시하는 동시행동원칙에 따른 단계적 비핵화방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석 달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원이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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