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도로테아(Dorothea)
축일 10월 30일
프러시아의 몽토에서 출생한 성녀 도로테아는
17세 때에 부유한 알베르트란 사람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의 겸손하고 우아한 생활 자세는 다소
거칠던 남편을 완전히 변모시켰고,
그래서 남편은 도로테아와 함께 수차례나
순례를 떠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하였다. 남편이 그녀의 로마(Rome) 순례에
동행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을 때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도로테아는
1391년에 마리엔워더로 이사하고, 2년 후에
그곳에다 은둔소를 짓고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녀는 특히 성체에 대한 신심이 뛰어났고,
환시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시성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프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도로시(Dorothy)라고도 부른다.
================================
성 루카노(Lucanus)
축일 10월 30일
성 루카누스(또는 루카노)는
프랑스 파리(Paris) 근교의 라늬에서 순교하여
그곳에 안치되었다. 그는 라늬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 마르첼로(Marcellus)
축일 10월 30일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북아프리카 탕헤르에 주둔하던 로마군의
백인대장이었다. 사령관 포르투나투스의
임석 하에 황제의 생일 축하식을 거행할 때,
모든 휘하 장병들이 그들의 이방 신상 앞에
절하며 봉헌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큰 소리로 고백하고
봉헌을 거부하였다.
“나는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나는 더 이상 황제를 신으로
섬길 수 없고, 또 나무와 돌로 만든 당신의
신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귀머거리
우상들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축제가 끝나고 아우렐리우스 아그리콜라누스
앞에 끌려갔지만, 관리들은 그의
용맹성을 보아 배교하기를 회유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섬깁니다.”고 대답하였다.
마침내 그는 동료들이 휘두른 칼 아래 쓰러져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후에
에스파냐의 레온(Leon)으로 옮겨져 그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성 루페르쿠스(Lupercus)(또는 루페르코)
성 빅토리우스(Victorius)
축일 10월 30일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성 루페르쿠스(또는 루페르코)와
성 빅토리우스(Victorius)는 형제지간으로
백인대장 성 마르첼루스(Marcellus, 10월 30일)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에스파냐의 레온(Leon)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초기 베네딕토 수도원의
하나인 갈리시아(Galicia) 수도원의
성인들로부터 그 이름을 따온 성인들
(Titular Saints)이다.
================================
성 막시모(Maximus)
축일 10월 30일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막시무스
(또는 막시모)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소아시아 중부 프리지아(Phrygia)의
아파메아(Apamea)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쿠마이에서 순교한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
성녀 벤베누타(Benvenuta)
축일 10월 30일
이탈리아 프리울리(Friuli)의 치비달레에
딸 6명을 둔 어떤 아버지가 이번에 태어날
아이는 꼭 사내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 역시 딸인 줄 알고 처음에는 다소
시무룩하였으나 곧 그의 쾌활한 성격에서
“좋아! 이 애 역시 대환영이야!” 했다고
하여 벤베누타로 이름을 지었다.
벤베누타는 소녀 시절부터 성모께 대한
신심이 남달랐다. 그리하여 그녀는 스스로
정결을 지킬 것을 결심하고, 도미니코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관상생활을 희망하였다.
어떤 밤에는 3번 이상 일어나 기도하고
몸을 단단히 묶어 고행하는 일이 너무나 잦았다.
그러다가 건강을 크게 해쳤는데, 거의 5년
동안이나 고난의 연속이자 미사참례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가, 어느 날의
끝기도에서 ‘살베 레지나’를 노래한 뒤에
말끔히 치유되어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벤베누타의 인내심은 환시와 탈혼으로
그 보상이 주어졌다. 그녀는 병과 유혹에 대한
용감한 인내심으로 살아 있는 성인으로
칭송받다가 1292년 10월 30일에 평화롭게
운명하였다.
================================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축일 10월 30일
성 사투르니누스(또는 사투르니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탈리아 샤르데냐(Sardegna) 섬의
칼리아리에서 순교하였다. 별로
신뢰할만하지 않은 순교록에 의하면 그는
주피터 신의 축제 중에 참수되었다고 한다.
================================
성 세라피온(Serapion)
축일 10월 30일
‘잇다이 교리’라고 부르는 4세기의
시리아 문서에 성 세라피온이 나온다.
그는 로마(Rome)의 주교 성 제피리누스
(Zephyrinus)로부터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그의
학식이 풍부하였고 특히 그의 신학 저서가
유명했다고 한다. 세라피온의 재위 때에
소위 ‘베드로 복음’이라는 영지주의적인
위경 사건이 실리시아(Cilicia)의 로소스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
성 세라피온은 그 내용을 자세히 모른 채
신자들에게 읽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으나,
이단적인 내용을 발견하자 즉시 사용
금지를 내렸다. 그는 정통교리의 수호자였다.
================================
성 안젤로(ANGELO)
축일 : 10월 30일
이탈리아 아끄리 태생인 안젤로는 까푸친회의 입회를
두 번이나 거절당하고, 3번째의 청원에서 허가를
받았다(1690년).
그는 주로 설교 사도직을 수행했는데,
첫번째의 설교는 너무나 실패작이라서 그는 수 없이
기도하고 연습하여, 1711년 사순절 동안 실시한
나폴리의 설교가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위대한
설교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일생 동안 줄 곧 칼라브리아, 나폴리 등지를 돌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고, 치유의 기적도 행하였다.
또 그는 환시와 탈혼의 경험이 많아서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영혼을 궤뚫어 보는
능력있는 고해 신부였다. 그는 아프리의 수도원에서
운명하여, 1825년에 시복되었다.
================================
성 아스테리오(Asterius)
축일 10월 30일
성 아스테리오는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어느 시시안 사람으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의 설교가 21편이나
남아있다고 한다. 성 포카스의 찬사에 따르면
그는 성인 호칭기도를 만들어 순교자들의
유해를 공경함과 아울러 순례할 때 기도하도록
권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교우들이
순교자들의 축일을 얼마나 준비하고 성대하게
거행해야 하는 지를 묘사한 글도 남겼다.
성 아스테리우스는 로마 순교록에 기록된
성인은 아니다.
================================
성 알퐁소 로드리게스(Alphonsus Rodriguez)
축일 10월 30일
에스파냐의 세고비아(Segovia) 태생으로
마요르카(Mallorca) 섬에서 운명한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
(Alfonsus Rodriguez, 또는 알퐁소 로드리게스)는
성공한 양모업자의 아들로서 23세 때 아버지의
가업을 상속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업이
기울고 아내와 어린 두 아이가 죽자, 평소에
늘 염원해오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그의 나이 40세 때 발렌시아(Valencia)의
예수회에 평신도 조력자로서 받아달라는 청원을
드렸다. 얼마간을 망설이던 수도회는 그를
받아들여 마요르카 섬의 몬테시온 대학에 보냈다.
그는 여기서 여생을 살았으며 홀 포터로서 일하였다.
따라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로드리게스 수사와
접하게 되자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의 충고를 유익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학생으로 있던 성 베드로 클라베르
(Petrus Claver, 9월 9일)는 자주 그와
이야기하였지만, 신비에 관한 놀라운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장상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체험들을 글로 옮겼다.
제럴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의 시
(1930년) 속에는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를
찬양하는 시가 있다.
================================
성 에우노(Eunus)
축일 10월 30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동료들과 함께
순교한 성 에우누스(또는 에우노)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2월 27일에 기념하는
순교자들과 동일인물이다. 그리고
성 마카리우스(Macarius)는 12월 8일에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중복은 로마 순교록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또 다른 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이 포함되면서 생겼다.
그리스 축일표에서는 이들을 모두 10월 30일에
공동으로 기념하고 있다.
================================
성녀 에우트로피아(Eutropia)
축일 10월 30일
성녀 에우트로피아는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그 순교 시기는 아마도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로 보인다.
================================
성 에텔노스(Ethelnoth)
축일 10월 30일
캔터베리의 그리스도 대성당에 재직 중일 때부터
성 에텔노스의 학덕과 성덕이 널리 알려졌고,
‘착한 사람’이란 이름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곳의 주교가 서거하자 1020년 에텔노스가
그곳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2년 후에
그가 로마(Rome)를 방문하였을 때
교황 베네딕투스 8세(Benedictus VIII)는 그를
따뜻이 영접하면서, ‘위대한 대주교’로
호칭하였다. 다음 해에 에텔노스는 선임 주교인
성 알페기우스(Alphegius)의 유해를 런던에서
캔터베리로 이장하고, 국왕 카누투스(Canutus)의
원조를 받아서 훌륭한 경당을 지었다.
그와 국왕은 매우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는 국왕을 움직여서 대성당을 재건하는 한편
그리스도인의 증가에 크게 기여하였다.
================================
성 요한 슬레이드(John Slade)
축일 10월 30일
잉글랜드(England) 도체스터(Dorchester)에서
태어난 요한 슬레이드(Joannes Slade)는
옥스퍼드의 뉴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고 교사가
되었으나 국왕의 교회 수위권을 거부한 죄로
체포되어 윈체스터(Winchester)의 감옥에 갇혔다.
그는 1583년 윈체스터 네거리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
(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
성녀 제노비아(Zenobia)
축일 10월 30일
성 제노비우스(Zenobius)와
성녀 제노비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성 제노비우스는
소아시아 연안 아이가이(Aegae, 오늘날의
알렉산드레타 Alexandretta) 마을의 의사이며
성녀 제노비아는 그의 여자 형제이다.
성 제노비우스는 주교였을 가능성이 크고 또한
그는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제노비우스
(10월 29일)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
성 제라르도(Gerard)
축일 10월 30일
이탈리아 남부 피아첸차(Piacenza)에서
태어난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포텐차에서 성직에 오른 후 연만한 나이에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
제르마노(Germanus)
축일 10월 30일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교황 성 호르미스다(Hormisdas)의 파견을 받고
유스티누스 황제와 비잔틴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아카치아 이단’을 종식시키는데 큰 업적을
남긴 분이다. 그는 또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가까운 친구였다.
성 베네딕투스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에서
그의 영혼이 떠나가는 장면을 환시를 통하여
목격하였다고 전해온다.
================================
성 테오네스토(Theonestus)
축일 10월 30일
성 테오네스투스(또는 테오네스토)는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옛도읍인
필리피(Philippi)의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의 위협에 의해
주교좌에서 내려와야 했고, 교황은
마인츠(Mainz)의 성 알바누스(Albanus, 6월 21일)가
포함된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를 독일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파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반달족(Vandals)의 침략으로 인해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 테오네스투스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Veneto)
지방의 알티노에서 순교하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아마도 베네토 지방의 순교자인 다른
성 테오네스투스와 혼동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