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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산(지리산)의 아픔을 간직한 달뜨기 능선을 찾아
산행지 : 이방산에서 밤머리재까지 달뜨기 능선을 찾아(경남 산청) 산행일 : 2006. 01. 15 (일)흐림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차량회수 : 밤머리재에서 진주에서 오셨다는 부부 산님의 도움을 받음 ^*^ 밤머리재 매점에서 1톤 봉고차를 이용할 수도 있음 05:00 서대구출발 06:15 함양 나들목 06:25 산청I.C 06:45 밤머리재 07:00 찬새미가든 차량운행거리 : 140km 07:00 찬새미가든 식당(휴업중) -산행시작- 07:20-07:50 초입 정상등로에서 벗어나 알바함 08:09 정자나무 쉼터 08:18 상사바위 08:27 굴바위 08:50 능선안부 09:10 이방산 09:35 헬기장(능선중 유일하게 천왕이 조망되는 곳) 09:55 임도 10:20 감투봉(폐헬기장) 11:25-11:45 926봉(수양산갈림길) 컵라면으로 중식 12:20 너덜지대 14:07 웅석봉 갈림길 16:30 밤머리재 -산행종료- 총 산행시간 : 9시간 30분 (약 18km) 꼭지의 느린걸음으로~^^
▲산행지도 (부산일보에서 발췌 편집)
달뜨기 능선에 대한 소고 일반적으로 달뜨기능선은 웅석봉과 감투봉 사이의 산 능선을 일컫는다. 국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피해 빨치산들이 지리산 치밭목이나 조개골에 숨겨진 비트에서 이 능선 위로 차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생각에 가슴 앓았다하여 달뜨기 능선이라고 부른다 한다.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과 이태의 <남부군>에서 잘 알려진 달뜨기 능선 토벌대를 피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리산 살을 에이는 추위와 굶주림과 고독에 몸부림치면서도 달뜨기 능선에 차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그들은 인민해방과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었다. 이념의 갈등 속에 비운의 삶을 마감한 그들 빨치산.. ‘앞서가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감격어린 소리로 외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거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남부군은 드디어 그 긴 여로를 겪어 목적한 곳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수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신비로운 웅봉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하! 하는 탄성이 대열 속에서 바람소리처럼 일었다.” .................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 낡은 총자루를 옆에 두고 구수하게 풍기던 된장냄새와 아내의 젖비린내와 어머니의 말라붙은 가슴팍을 떠올렸을 것이다. 입술을 악 물고, 밤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에 넋을 놓은 채 달을 보고 있었으리라. .................중략 참고 : 월간 마운틴 중봉과 동부능선에서 늘 바라보기만 했던 달뜨기능선 오늘 그들의 숨결을 찾아 꼭지(아내)와 길을 나선다. 밤머리재에서 시작하면 알바 할 확률이 높고 이방산이나 수양산에서 시작하려니 초입 찾기가 그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여러 산님들의 산행기를 봐도 확실한 감이 잡히지 않아 늘 마음한구석 숙제로 남겨두었었는데 얼마 전 부산일보의 산&산 에 실린 웅석봉-이방산 산행기를 보고 확실한 들머리를 알게 되었다. 이방산 들머리인 <찬새미 가든> 찾아가기 밤머리재를 지나 59번지방도 덕산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대원사갈림길을 지나 5분여 더 내려가면 바로 도로변 좌측에 찬새미가든 식당 간판이 보인다. 들머리는 찬새미가든 식당건물 우측으로 20여m에 있는 농로 길로 올라야 한다. 농로 길로 오르다가 우측 사면의 과수원 길로 붙으면 된다.
▲찬새미가든에서 이방산 들머리 초입에서의 알바“리본은 간곳없고 밤송이만 즐비하구나.” <찬새미가든>식당앞 주차장에 큰대자로 버젓이 주차하려니 아무래도 찝찝하여 노견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하지만 식당은 휴업중이라 주차해도 무방) 부산일보의 들머리사진을 숙지하고 꼭지와 “이길 같으이..” 휘파람을 불며 밤나무.감나무 과수원길 따라 초입에 들어섰는데 웬걸 리본은 보이지 않고 흐트러진 밤송이만 지천에 깔려있어 애를 태운다. 아니나 다를까 과수원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에고~~ 길도 덩달아 없어졌다. 초반부터 꼭지에게 체면 다 꾸겨지고 애 궂은 부산일보만 원망한다. 시키는 대로 올라왔는데.. 씩씩~~@@ 다시 백하여 이곳저곳 발걸음을 옮기다 “이 길인가?”하며 좌측 사면을 치고 오르려는데 동네 주민이 한 분 올라온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저기 요~ 이방산을 가려는데 이 길로 가면 되나요?” “그 쪽으로 가면 엄청 힘들고 저기 우측으로 계류를 건너면 길이 있습니다.” 너무나 고마워서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드리고 계류를 건너니 그제야 리본이 보여 안도의 한숨을 쉰다. 30여분 동네 과수원을 헤집고 다녔으되 꼭지에게 체면까지 꾸길 수는 없는 일 투덜거리면서도“알바는 이 맛이야.”꼭지를 위로하며 잠시 휴식을 갖는다.
▲알바 후 잠시 휴식하며 내려다본 풍경(붉은선은 정상등로/녹색선은 알바한 구간) 하늘 한번 쳐다보고“야! 오늘 날씨 참 좋데이~~” 그저께 비가 내려서인지 눈은 흔적도 없이 다 녹아버렸고 한겨울인 1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봄날처럼 더워서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과수원길이 끝날 즈음 산새소리가 요란하니 남부군의 박태영이 말하는 새소리인가? 박태영은 지리산에 있는 새만 해도 그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는데.. 이른 아침의 재잘대는 새소리는 언제나 듣기가 좋다.
▲상사바위
정상등로에 들어서니 리본표시기가 서로 키 재기를 하며 무더기로 붙어있다. 그중엔 <부산일보>의 노란리본은 가장 최근에 달아서인지 산뜻하여 더욱 눈에 잘 띤다. 정자나무 쉼터와 상사바위를 지나니 등로는 가파르게 이어진다.
▲이방산 오름길의 누런 황금빛의 낙엽들 등로엔 낙엽이 푹신하게 쌓여서 한 겨울속의 가을을 느끼게 해주고 도토리나무와 굴참나무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비벼대며 하늘높이 솟아있다. 가파른 곳은 굴참나무를 베어서 만든 작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한결 수월한데도 꼭지가 여전히 힘들어하는지라 또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느긋하게 오른다. “황금능선이 따로 없구나.” 상사바위에서 30여분 드디어 지 능선이다. 비에 씻겨 깨끗한 황금색이 된 낙엽이 양탄자처럼 푹신하게 깔려있는 오솔길 어디에 가서 천혜의 이러한 황금능선을 밟아볼 수 있으랴.
▲“황금능선이 따로 없구나.”꼭지의 걸음이 가볍다. 무엇이 그렇게 무거운 짐이 되었을까? 회한도 내려놓고 번뇌도 내려놓고, 사랑도 내려놓고 연민도 내려놓고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추운겨울을 맞이하는 나목 겨울날 발가벗은 채로 있는 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인 적이 있었던가?
나목 사이사이로 등로는 낙엽에 덮여 희미하지만 곳곳에 표시기가 붙어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이방산에 오르니 조망은 없지만 도토리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반갑게 맞아준다.
▲헬기장에서 처음으로 천왕방향으로 조망을 조망이 양호하다는 헬기장에서 희미한 천왕의 모습을 바라본다. 하루종일을 천왕을 마주하며 걷고 싶었는데.. 하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서럽도록 슬픈 얼굴의 하늘만이 산야에 짙게 내려앉고 있을 뿐이다. 773봉을 향해 뾰족하게 생긴 감투봉을 내려서니 등로에 금방 지나간 듯한 멧돼지의 흔적이 뚜렷하다. 은근히 불안감이 앞서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뒤따라오는 꼭지와의 걸음을 좁힌다.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온다면? ....................... “부스럭~~ 후다닥~~” 헉~! 머리털이 쭈빗 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회색빛 산토끼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난다. 토끼흔적은 여러 번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조우하니 기분이 묘해 토끼가 달아난 방향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괜스레 토끼를 놀래게 해서 미안한 생각이 앞서나 금방 멧돼지와도 조우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저기 그 뚜렷한 흔적들을 주시하며 둘러보지만 멧돼지는 이미 우리를 피해 숨어버린 듯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다.
▲임도를 건너 바로 치고 올라야한다.(표시기가 많음)
773봉을 내려서니 그제야 멧돼지의 흔적은 사라지고 안부까지 고도는 하염없이 떨어진다. 이렇게 자꾸 떨어지면 926봉 오르기가 무척 힘들 텐데.. 은근히 꼭지가 걱정된다. 하지만 안부에서 수양산 갈림길인 926봉까지 고도차가 300정도 나는데도 고만고만한 능선으로 이어져 그렇게 힘들지는 않는다.
▲926봉을 오르면서 좌측으로 내려다본 안마근담 마을과 지나온 이방산
▲밋밋한 926봉으로 수양산갈림길 감투봉에서 926봉까지 1시간 30분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30분이 단축됐다. 배고프다는 꼭지와 따뜻한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잠시 쉬어간다. 926봉은 분지 같은 밋밋한 봉우리로 수양산갈림길이다. 비록 이정표는 없지만 표시기가 양쪽으로 많이 붙어있어 방향을 잡아 진행하면 된다. 등로 주의구간 (954봉과 986봉사이) 926봉에서 954봉아래 까지는 뚜렸한 등로가 능선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멀리(100M정도) 습지도 보인다. 이렇게 높은 고도에 습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곳은 동부능선의 왕등재 습지라든지 또 대구의 팔공산 가산(902m)에도 습지와 연못이 있는 것을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우측에 보이는 습지를 지나 뾰족 솟은 954봉을 어찌 오를까 걱정이 될 즈음 등로는 좌측 우회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능선안부에 닿는다.
▲마근담 방향이 이방산 방향(낙엽위로 희미한 족적이 보인다.
▲저 아래 하얀 잔설이 보이는 곳이 습지 웅석봉에서 내려오는 분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알바를 하는 구간으로 954봉과 986봉사이의 중간지점이다. 능선으로 붙으면 고령토채취장으로 해서 백운계곡으로 떨어진다. 작년여름에 이수영님도 이곳으로 진입해 40여분 알바를 했고 그 외 초행길의 대부분의 산님들도 그런 것 같았다. 웅석봉에서 출발할 때는 절대 주의를 요한다. 전망대를 지나 986봉 우회길인 너덜경을 지나면 만나는 갈림길인데 능선으로 붙지 말고 우측으로 난 우회 길을 선택하면 수양산,이방산 갈림길인 926봉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없으나 리본이 많이 달린 방향으로 가면 된다. “달뜨기 능선엔 달은 없고..” 너덜경을 지나니 달뜨기 능선 최고의 전망대라는 암봉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망은 없다. 창산님이 갔을 때는 그렇게도 조망이 좋더만 오늘의 지리는 모든 문을 잠그고 있다. 오후가 되면 갠다던 하늘은 안개와 진눈개비로 우리를 시샘한다.
▲좌측으로 986봉 우회로를 들어서면 만나는 100m정도의 너덜지대
▲달뜨기능선 최고의 전망대에 올라섰으나 조망은 없고
▲멀리 지나온 926봉이 보이고 서서히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서서 운무의 장막이 쳐진 지리를 바라본다. 닥나무가 많다는 딱바실골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지만 거산 지리의 참 모습은 그 어디에도 비쳐지지 않는다. 다만 가야할 달뜨기 능선과 지나온 926봉이 희미하게 조망될 뿐이다. “달뜨기 능선엔 달은 없고 하늘은 진눈개비를 뿌리며 울고만 있네.” 꼭지의 탄식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달뜨기 능선은 그때의 회한을 되씹고 있는가.
▲전망대를 지나면 이제는 등로가 능선 우측사면으로 이어진다.
▲운무가 허리를 감아도는 멀리 1079봉의 조망
▲앙상한 떡갈나무 숲이 무척 평온하게 느껴진다.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 비트에 숨어서 달뜨기 능선너머로 차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그 아래 두고 온 고향과 식구들을 그리워하던 빨치산 그때의 달빛이 부서져 내리던 그 마루금을 지금 꼭지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비록 달빛속이 아니어도 좋다. 쏟아져 내리는 진눈개비 속에서도 오늘은 그들의 마음이 되고 서럽도록 내 디딘 그들의 발걸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인가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눈발이 더욱 거세게 날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있다. 마루금은 하늘에 닿은 채 슬픔에 젖어들고 얼어붙은 회한의 아픔은 차디찬 진눈개비가 되어 낙엽위에 구른다. 아~~! 하늘이여 우리에게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기를.. .................... 비운의 여인 정순덕 1951년 2월 겨울 삭풍에 온몸이 떨리는 어느 추운 날 밤 결혼 1년을 갓 넘긴 새색시의 몸으로 남편의 옷을 챙겨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산으로 들어갔다가 남편을 따라 빨치산 유격대가 된 비운의 여인 정순덕 그녀는 1933년 이곳 산청군 삼장면에서 태어나 1950년 1월 결혼한 남편이 6·25전쟁 발발 후 북한 인민군을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자 남편을 찾아 1951년 2월 입산한 뒤 빨치산 유격부대에 동참했다. 하지만 1952년 남편이 전사하여 그 아픔은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게 된다. 그 후 국군의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과 1953년 휴전협정을 거치면서 남아있던 빨치산들은 소부대로 분산됐고, 그녀도 덕유산으로 옮겨 빨치산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다시 지리산에 들어와 멀리 조개골과 치밭목에서 은신하며 이곳 달뜨기능선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녀가 체포된 것은 입산 이후 12년만인 1963년 11월 지리산 내원골 민가에서 체포돼 최후의 빨치산“지리산의 전설”로 불렸으며 마지막 여자 빨치산으로 기록됐다. 체포과정에서 대퇴부에 총을 맞아 오른 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불구의 몸으로 대구,공주,대전교도소에서 23년간 복역하고 1985년 8.15특사로 가석방됐다. 그리고 2004년 4월 정순덕은 71세의 나이로 그 비운의 삶을 마감한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지리산>의 저자 이병주의 말을 음미하며 잠시의 상념에서 벗어나니 어! 벌써 웅석봉이 지척이다. 웅석봉을 뒤로 하고 웅석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거세지던 눈발도 그치고 하늘은 내 언제 그랬냐는 둥 고요 속에서 시치미를 뗀다. 찌부덩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꼭지를 기다리라하고 웅석봉에 다녀올까 말까. 잠시 갈등을 하다가 “에라 생략하고 그냥 가자.” 가봐야 조망도 없을 테고 그 무거운 곰돌이 정상석을 누가 훔쳐가지도 않았을 테니.. 밤머리재로 바로 간다고 하니 꼭지가 좋아서 싱글벙글 이다.
▲웅석봉갈림길(웅석봉까지 왕복40-50분소요) 달뜨기 능선은 딱바실 방향
▲밤머리재가는 길에 바라본 딱바실골 방향의 조망
▲밤머리재 가는 길
▲도토리처럼 오똑 솟은 도토리봉과 그 아래의 밤머리재
▲도토리봉에서 끝없이 이어진 동부능선
지금까지는 낙엽 쌓인 황금빛의 비단길(?) 흙 하나 밟지 않고 왔었는데 밤머리재가는 길은 이제와는 반대로 질퍽한 진흙길이다. 왕재를 지나니 도토리봉과 밤머리재가 시야에 들어오건만 천왕은 운무의 장막 속에 숨어 여전히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 끝 - |
첫댓글 따뜻함. 맛있음. 배부름. 안락함. 즐거움. 행복함. 그리움.....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이어지는 저항군들에게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질량의 저같은 감정과 느낌들이 존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려움. 공포. 적의....의 깊이와 무게는 응축되고 응축되어 폭발직전의 초신성같이 두 눈알에 박혀 형형한 살기로 번득였
겠지요. 스무살 중반에 이태의 남부군에 나타난 지리산과 회양산을 느끼며 원혼의 골짜기라 여겼습니다. 달뜨기능선이 애틋한 장면으로 푸르게 다가오지만 실제로 가신 걸음에는 무심한 갈색낙엽만 수북하군요. 5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세월이건만 빠른 속도로 과거는 멀어져갑니다. 한번씩 달뜨기능선을 이와같이 불러주지
않으면 빛과 같은 속도로 흑백과거가 될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 이념과 사상을 향해 눈물을 글썽였건만, 나이가 들수록 겨울 찬 숲속에 꼬꾸러져 마지막 숨을 하얗게 토해내는 투쟁의 절명을 향해 눈시울이 붉어지는군요. 달뜨기 능선..... 정작, 사랑방 형님의 발걸음은 경쾌한 줄을 잊고, 아침주책을 떨어봅니다.^^
산사랑방님! 작년 8월 21일 우리가 산행한 [밤머리재~웅석봉~감투봉~이방산~도대마을] 코스를 반대로 다녀오셨군요. 과연 산사랑방님 답습니다. 내려오면서 만약 반대로 오르면 훨씬 힘들 것이라 생각했었지요. 산행시간을 보니 우리는 9시간 48분 걸렸는데 9시간 30분이면 우리보다 더 적게 걸렸군요.
물론 웅석봉을 생략하셨지만 오름길인데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닌듯 싶습니다. ㅎㅎ 저는 황홀한 조망대신에 야생화만 보고 왔는데 산사랑방님께서도 운무만 보고 오셨으니 피장파장인것 같습니다. ㅋㅋ 남부군 스토리와 함께 멋진 산행길 즐감했습니다. ^^
지리산과 회양산-->지리산과 회문산 .. 요즘 영 기억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아우님 오랜만에 산행기를 올렸더니 줄 간격이 맞지않아 영 엉망이네요. 수정도 에러가 나서 잘 안됩니다. 아우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머리아픕니다. 사실 달뜨기능선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운치와 깊이가 있는데 조금은 시원섭섭하더이다.
수영 형님, 밤머리재에서 출발하는 것도 장난이 아닐겁니다. 휴~~ 그 나무계단이 어디 모통 계단입니까? 작년에 알바하신걸 알기에 전 힘이 좀 들어도 이방산에서 부터 치고올라갔지요 . 약간 어두워서 초입에 알바는 좀 했지만.. 한데 조망이 너무없어서 아쉬운 산행이 되었습니다.
여러 산님들이 지리산 언저리를 돌면서 천왕봉으로 눈길을 주었지만 천왕은 쉽게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군요. 뿌연 하늘이 안타까운 날입니다. 늘 함께 하시는 두 분 부럽습니다. 병술년 한 해도 건강하시고 즐산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