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가르치나 (상구보리하화중생, 생각)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 검사가 검사적격심사를 통과하고
"누가 누구의 적격을 심사하는지 황당하다"고 한 말을 듣고 드는 불법이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다
상구보리하화중생은
불자들의 꿈이고 스님들의 이상이다
上求菩提下化衆生을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로 번역한다
불자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은 마땅하고 지당하다
뭐라 시비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화중생이 걸린다
깨달아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게
임은정 부장검사가
"누가 누구의 적격을 심사하느냐"
일갈했듯이
"누가 누구를 가르치느냐"
묻고 싶다
세상살이 어느 정도 살아보니. 배울 건
중생의 삶이요, 중생의 삶의 지혜다
불교에서 중생은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마디로 '사람과 뭇 목숨(숨탄것)'을 말햔다
사람과 뭇 목숨을 교화한다, 제도한다, 가르친다가 맞는 말인기?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특히 요즘 조계종단을 장악한 자승이나 설정 전 총무원장 출신의 권력 마구니들,
그 권력 마구니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해인사를 비롯한 주요 사찰을 점령한 졸개 중들
이들이 입만 열면 하는 말이
상구보리 하와중생이다
이들은 계율을 시궁창에 집어던지고
중생이 보시한 금은보화로
부처님이 하지 말라는 탐진치에 빠져
계집질, 노름질, 골프질... 돈질하고 다니고
그 탐진치의 잇권을 서로 가지려고
패거리 지어 싸움박질을 백주대낮에 버젓이 벌인다
조계종 종단의 어르신이라 할 조실이나 방장이나, 원로 스님들 누구도 이런 부패, 비리를 꼬집어 말하지 않고 눈 감고
간화선이니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
알듯 말듯 한 선문답 하는 선승으로 자기만족한다
이판사판 개판이 된 것이다
이런 불교계의 눈 뜨고 못 볼 낯 뜨거운 모습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하나
너 네나 잘 사세요(잘하세요)
중생은 죽비를 내리친다
불교계가 이렇게 이판사판 개판이 된 것은
하화중생을 잘 못 알기 때문이다
한자말 下化衆生은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 제도한다, 가르친다로 한글 옮김을 한다
이 옮김이 잘못 뜻 새긴 것이다
化 자 새김이 관건이다
化는 되다 화 자다
化 자는 변화를, 돌고 도는 세상을 상징하는 말이다
동양철학(유불선)은 化의 세계관이 중심이다
이 化를 모르고선 동양철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주역은 이 化를 수로 풀은 대표되는 化의 사상이론서다
불교도 이 化의 세계관이 중심이다
무상, 무아는 이 化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화하니, 돌고 도니, 스스로 저절로 되어가니 (化) 집착을 버리고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길을 가라(고집멸도)고 한다
下化衆生의 化는 한글로 되다의 뜻이다
아래로 내려가 중생이 되다. 다
중생 속으로 들어가다. 다
흔히 말하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다.
다
들어가다를 불교식 용어로 하방(下放)한다고 이해해도 된다
참나를 찾아가는 길을 그린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단계,
입전수수(入廛垂手)가 바로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을 나타내는 길이다
입전수수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중생 속으로 들어가 중생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입전수수를 노래한 시를 싣는다
진흙 속에도 물 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내지 않네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
하화중생을 중생을 교화한다, 제도한다, 가르친다가 강조되면서 중생을 대상화시키고 소외시키는
본디 부처님 말씀과 어긋난 수렁길을 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중생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으로 교화한다는 것은 그릇된 가르침이다
"깨달았다는 것은 중생 속으로 들어가 배우겠습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