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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사회의 교육문제와 불교
1. 여는 말
우리는 지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초생산의 시대, 가상현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소프트웨어의 초연결 시대, 융복합화된 초통합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와 변혁의 한가운데서 머무를 자리와 나아갈 바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새삼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런 시점에 ‘바람직한 가정교육’ 나아가 ‘불교의 지혜’를 조합한 논제가 주어졌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유형 중 1인 가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점에 과연 가정교육이 의미 있을까? 결혼을 인간 발달 과업이나 인생의 필수여건으로 여기지 않으며, 결혼해도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는 딩크(DINK)족이 늘어나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얼핏 가정교육의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중 1인 가구가 약 31.7%인 664만3천 가구에 이르는데, ‘바람직한 가정교육’을 논함이 탁상공론으로 남지 않을 근거가 있는가? 2022년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서 보면 전체적으로는 부모를 비롯한 편부, 편모, 조부, 조모 등등을 포함하여 함께 생활하는 2~4인 이상 가구가 여전히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아직은 가정과 가정교육을 생각해볼 여지가 남아 있는 통계치이다.
한편 ‘불교의 지혜’에 대한 주문은 또 다른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2021년 현재 한국인의 종교 분포를 보면 개신교 17%, 불교 16%, 천주교 6%이다. 연령별로 보면 불교인의 경우 20~30대 5% 내외, 40대 11%, 50대 이상 25% 내외로 고령층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종교를 가진 598명에게 요즘 성당, 교회, 절 등 종교시설을 방문한 빈도를 물은 결과 개신교인 57%, 천주교인 42%가 매주 교회나 성당을 가는데, 불교인은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나 가족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등, 연간 참여가 더 보편적이다. 한편 믿는 종교가 있다고 답한 사람에게 종교 활동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54%가 종교 활동이 삶에서 매우 중요하거나 중요한 편이라고 답했다. 반면 43%의 사람들은 종교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종교 인구 비율이나 종교 활동 중요도 인식 모두 높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불교계의 이러한 현황 앞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1인 가구의 비중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가정교육을 위한 불교의 지혜’를 논하는 의미가 막막해 보인다. 먼저 선행연구 자료들을 검토함으로써 우리가 머무른 자리와 나아갈 자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2. 가정교육과 불교
1) 현대, 종교, 가정교육
미래학자들은 미래 사회의 변화를 조망하며 “있음 직한 미래(the, probable/ predictable future), 있을 수 있는 미래(the possible fut-ure), 선호하는(the preferred) 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있음 직한 즉 예견되는 미래를 조망하는 것을 메가트렌드라 하고, 다른 방향의 미래도 있다는 관점에서 다른 시각의 메가트렌드가 있을 수 있음을 일깨우는 카운터트렌드 개념을 제시한다. 오늘날 세계를 하나로 조직하고 연결하는 IT 기술 관련 네트워크 구성(network organizing)은 가족 및 확장된 친족 네트워크(kinship network)의 손실이라는 강력한 반작용을 배태하고 있다. 부모-자녀, 부부, 형제, 대가족 등 친족 네트워크를 통해 매개되는 ‘가족 기반 관계’가 기술의 확장으로 인하여 지역사회 구성원, 친구 및 이웃도 포함되는 다른 추세로 변화되는 것이다.
2022년에 이르러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며,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비전으로 하여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함양이 가능한, 특히 디지털 AI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학습 및 평가체제 구축을 중점적으로 개정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과정의 혁신을 “인간과 환경의 공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태전환교육 및 시민성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 등 공동체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찾고 있음을 볼 때, 불교적 지혜를 논하는 이 글의 특성상 의미 있게 들린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임하여 종교는 어디에서 그 가치와 위상을 확인하는가? 이정덕과 서병숙에 따르면, 종교와 가정의 구조는 동일하며, 종교가 가족적 상징체계를 어떤 대상의 상징체계보다도 많이 사용하고, 가정의 모형이 곧 종교의 이상적 모형이며, 가정의 생활을 통하여 종교의 이상이 실현된다. 가정(家庭)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또는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를 뜻하며, 가족(家族)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나 구성원을 뜻한다. 종교 생활과 관련한 삶에서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가족 내 부모의 불교 이해도는 자녀 양육과정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교는 그 자체가 교육이면서 동시에 문화 형성의 틀(frame)이다.
불교에서 가정은 연기법에 의해 가정의 구성원이 전생에 부모일 수도 또 형제일 수도 내세에 자녀가 될 수도 있으므로 독립적이고 평등한 입장에서 존재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미성숙한 자녀에게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하여 자녀의 발달하고자 하는 의지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존재이므로 가정은 보살도를 실천하는 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불교 경전에 나타난 부모와 자녀는 인연 공덕으로 맺어진 평등한 관계로서, 그 인연이 다하면 윤회 속으로 흩어지는 무상한 존재이므로 자녀에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부모는 자녀의 삶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서 실제 교육에서 동반자 모습의 모델이 되어, 양육 책임 및 역할 수행에서 자비와 사랑은 가지되 자녀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경계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 내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종교적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최근 유아기부터 중고등학교 시기 청소년 자녀를 둔 개신교 아버지 388명을 대상으로 아버지의 신앙심, 아버지 역할에 대한 태도,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 그리고 가정 내 신앙활동 등의 상관관계를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 아버지 개인의 신앙심, 아버지 역할에 대한 태도, 양육 참여도는 가정 내 신앙활동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이거나 부모교육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을 때 가정 내 신앙활동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개신교 아버지들의 자녀 양육과 신앙생활 및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지만, 불교 가정 아버지들에게 연장, 대입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물론 앞서 통계청의 자료에서 개신교 교인이 교회를 방문하고 신앙활동에 참여하는 비율과 불교 교인이 절을 방문하고 신앙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미루어 보아, 두 집단을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표명하는 수준의 아버지라면 개신교 아버지들의 가정 내 개인적 신앙생활과 자녀양육의 태도와 유사하리라 짐작된다.
자녀의 도덕성 형성의 경우에도 부모의 심리적 태도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최근 여성의 사회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자녀교육은 어머니 몫’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사라지고 오히려 가정교육에서 아버지의 비중이 강조되며, 아버지에게 ‘가정의 경제적 책임자’라는 기존의 역할 인식보다는 ‘자녀의 능동적 양육자’로서 역할을 보다 많이 기대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 기대가 ‘성공적인 직장인 · 자상한 남편 ·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 전통적 가정교육
사실 ‘자상한 남편,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이미지 또는 아버지의 역할 기대와 양육 태도라는 개념이 현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선시대 중기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선생의 가정교육을 통해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가 실천해온 아버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우계 선생의 가정교육을 살펴보면, 우선 검소하게 생활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모범을 보이며, 가학(家學)인 도학(道學)을 계승하여 의(義) · 리(利)를 분별하고 청수자립(淸修自立) 및 신중한 언행을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우계 성혼과 동시대를 산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선생도 총 164자 17개 조목의 〈소아수지(小兒須知)〉를 통해, 대인관계와 스스로의 몸가짐, 학습 태도 등 자녀교육 내지 아동교육에서 금하여야 할 지침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범했을 때는, 큰 잘못은 한 번이라도 벌하고 작은 잘못은 세 번 모아서 벌하도록 벌칙의 범위까지 제시하여, 아버지 또는 부모가 취할 양육 태도의 모범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고려 후기의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후손들은 〈가정교육 50훈(訓)〉을 통하여 유학을 숭상하는 집안의 현대적 재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엄격함과 너그러움을 적절히 배합하라는 교훈부터,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모성애를 발휘하며, 유희삼매(遊戲三昧) 정신을 가르치고(一心不亂), 부부간의 언행을 항상 조심하고, 꾸중이 잘못되었더라도 아이들 편에 서지 말며, 가족 간의 방을 서로 공개하고, 부모의 거처에 항상 교양서적을 비치하고, 일기일회(一期一會) 정신을 기르라는 50조의 교훈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자녀 양육과 교육은 기본적인 살림살이와 함께 어머니의 역할로 여겨져 왔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존경하여 자신의 당호를 ‘사임’이라 짓고 자식을 잘 기르리라 다짐하여 마침내 조선의 대학자 율곡을 비롯하여 당대의 예술가 딸과 아들을 키워냈다. 1800년 사주당(師朱堂) 이씨(李氏)는 최초의 임산부 태교법 교습서라 할 《태교신기》를 통해, 스승이 10년 가르쳐도 어미가 열 달 뱃속에서 잘 가르침만 못하고, 어미가 뱃속에서 열 달을 가르침이 부부가 하룻밤 교합할 때 바른 마음가짐만 못하다고 하여, 임신하기 전 부모의 마음가짐과 어머니의 태중 열 달 동안 어머니의 태교가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윤회하는 네 과정(四有說)에서 태아가 모태에 수태되는 순간(生有)부터 주체적 존재로 파악한다.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임신을 위해서는 어머니 몸의 시기가 맞아야 하고, 부모가 화합해 사랑을 나누고, 건달바가 있어야 한다. 자녀는 나를 교화시키기 위해 나에게 태어난 원생(願生)의 보살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불교의 자녀관은 ‘공(空)’ 사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아사상에 입각한 부모의 자녀관으로서, 부모 입장에서 무아사상을 체득하면 자녀도 조건에 의해 구성된 개체로서 그 본바탕에서 내 자식이라는 특별한 애착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잡아함경에 의하면, 비록 자손이 수천 있어도 인연의 화합으로 생겨나 영원히 서로 갈려 떠나가니, 무한한 세상에 윤회하는 사람의 그 부모의 수에는 미치지 못하리니, 일체중생은 과거세에 반드시 나의 부모, 형제, 처자, 친족이었다고 생각하라 한다. 윤회적 관점에서 자녀는 ‘부모-자녀 관계’를 넘어선 ‘모든 중생과 동일체’로서 파악된다. 어린 자식이라 해도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고 ‘주체적이고 독립된 존재’로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존재이다.
곽영권이 지은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을 풀어 쓴 그림책이다. 《부모은중경》은 자식을 낳아서 길러주시는 부모님의 은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부분, 애써 기른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하는 부분, 부모의 은혜를 갚는 방법에 관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3분에는 회임하여 이슬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첫 달을 지나, 태중에서 아기가 성장하는 것을 월별로 가르치며, 10개월 만에 효순한 자식인지 오역의 자식인지에 따라 해산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보여준다. 또한 제4분에서는 아기를 열 달간 배고, 해산하고, 자식을 위해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 먹이며, 마른자리는 아기에게 내어주고 스스로는 젖은 자리로 나아가며…… 어머니 사랑은 수명이 다하도록 그칠 줄 모른다. 《육방예경》에서는 부모란 자녀에게 사랑이 골수에 스며들도록 해 주어야 하며, 자녀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지만,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집착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 불교 경전에 나타난 가정교육
부처님은 가정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단위로서 중요함을 설하셨다. 《무량수경》 《우바새계경》 《범망경》 등 경전에서 부처님은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 자녀가 부모님을 경순하는 방법, 부부간의 바른 행위 등 가정에서 일상생활 중 지켜야 할 지침과 함께 자녀에게 사회인 일반으로서의 덕을 가르치라 하셨다. 《육방예경》에 따르면 가정과 사회를 여법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4가지 버려야 할 것 즉 두려워해 억지로 엎드리고, 번지르르한 말, 공경하고 순종하는 척하기와 악한 벗을 버려야 한다. 또한 4가지 가까이할 것이 있으니, 허물을 그치게 하고, 사랑하고 가엾이 여길 줄 알고, 사람을 이롭게 하며, 함께 일하기를 가까이하여야 한다. 가정은 공동체 사회로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딸들은 가정을 구성하는 객체이니, 가정을 구성하는 객체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이치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서 도반이 되며 가족은 수행공동체이다.
일반적으로 불교 승가의 출가와 독신생활에 대해 반(反)가정적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불자들의 삶의 목표가 진리에 눈을 뜨고 본래의 참자아를 실현하는 것일진대 가정은 바로 진리의 실천장, 즉 하나의 승가여야 한다.” 《초전법륜경》에 의하면 출가자가 해야 할 수행은 ‘쾌락’과 ‘고행’이라는 두 가지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다. 이 중도의 내용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구체화된 팔정도를 가리킨다. 수행자가 중도를 실천해야 하는 까닭은 고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이 수행 방법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어 정업 정명은 계(戒)에, 정정진 정념 정정은 정(定)에, 정견 정사는 혜(慧)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재가 신도는 이러한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그것 이외에 일상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불교에도 효 사상이 있음을 강조하며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전인 《옥야경》 《우배새계경》 《십선업도경》 《사십이장경》 등이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불승인이천모설법경》 《육방예경》 《불설부모은난보경》 《불설효자경》 《불설섬자경》 《대방경보은경》 《대승본생심지관경》 등도 불교에 담긴 효 사상을 부각시켜 왔다.
《우바새계경》 〈수계품〉에 이르기를, “선남자여, 재가 보살이 만약 우바새계를 받고자 하면 먼저 마땅히 차례로 동방과 남방과 서방과 북방과 하방과 상방에 공양하여야 하느니라. 동방이란 것은 곧 부모이니, 만약 사람이 부모에게 의복 · 음식ㆍ침구 · 탕약 · 방사(房舍) · 재보로 공양하고 공경, 예배, 존중, 찬탄하면 이 사람은 곧 능히 동방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시가라월에게도 여일하게 6방을 향하여 절하라는 뜻을 설명하셨다.
한편, 이와 동일한 구조가 부모 측면에서도 거듭된다. 초기 경전에 속하는 《선생경(善生經)》을 보면,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다섯 가지 기본적인 책임이 있으니 악을 듣거나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착하고 바른 길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하고, 사랑이 사무쳐 내면화되도록 해야 하고, 바른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보살펴야 하며, 필요한 물품을 제때 제공해야 한다. 《육방예경》에서도 부처님은 부모들에게 다섯 가지 일로써 자식들을 사랑하라 설하시고, 《불설시가라월육방계경》에서도 다섯 가지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중아함경에서는 네 가지 섭사(四攝法)를 들어 부모의 역할을 설하셨다. 은혜를 베풀고(報施攝), 정다운 말(愛語攝)을 하며. 이로운 행동(利行攝)을 취하고, 이로움을 같이하는(同事攝) 것이다. ‘보시’와 ‘이행’은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이며, ‘애어’는 자녀를 칭찬하는 긍정적인 양육법과 통하며, ‘동사’는 자녀의 상황에 따라 감정이입, 공감 등 정서적으로 포용하며 적절한 방법으로 이끌어가는 자녀양육법이다. 2012년 국제선센터에서 명상을 통한 가족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도법사 수미 런던에 의하면, 자녀교육은 그 자체로 불교적 수행이다. 수행은 기도뿐 아니라, 마음챙김 명상 수행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정확하게 인지해 지혜와 자비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서 출발한다. 모든 교육은 자녀들이 선택하게 하고 절대 강요해선 안 되며, 현재 씨를 뿌리고 먼 미래에 자녀들이 스스로 꽃피우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4) 불교 가정의 아동교육
오늘날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지나치게 빠르고 요구도 다양해서 이해하고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성장하듯이, 변화와 변혁의 물결을 따라야 하는 이 시대의 부모들도 새롭게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대해 배우면서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녀교육이란 아이를 통해서 부모 역시 성장하는 시간이며, 부모 역할의 한계를 알고 자비와 지혜와 용기를 가진 인간으로 변신하는 멋진 과정이어야 한다. 불교 아동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부처님의 인격을 닮아 지혜와 자비를 갖춘 바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어린이는 본래 부처님의 성품인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성인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1995년 대한불교진흥원은 현대 가정교육의 방향에 대해 제언한 바 있다. 26년 전에 제시된 불교적 가정교육 제언은 2022년 현재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가정교육은 첫째 3N(new, now, network)으로 대표되는 신세대의 사고형식을 수용하여, 붓다의 설법 방식의 하나인 전의법적(轉意法的) 교육 즉 새로운 것만 추구하고 현재만을 중시하며 항상 타자와 연결 속에 존재하며 이를 질적으로 심화시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어린 자녀에 대해 불성(佛性)을 지닌 주체적 인격으로서, 즉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지혜인, 존엄한 인격적 주체인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창조해나갈 수 있는 자유인으로 존중해야 한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조화로운 삶의 성취를 가르치는 중도(中道) 교육 즉 모든 차원을 포함하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신체, 넓은 학식과 밝은 지혜, 부드러운 인품, 순결, 정직, 바른말, 인욕, 보시, 경건한 종교성 등의 품성을 지닌 이상적 삶의 모델이 되는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넷째 자녀들과 상호문답하고 반문하고 설명하며 대화를 통해 상대 마음을 변화시키는 회심(回心)의 카운슬링 교육 형태를 취해야 한다. 다섯째 다른 이를 섭수(攝受), 사섭법(布施, 愛語, 利行 同事)을 행하여 자비로 친애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때로는 엄한 질책과 차가운 경책을 포함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절복(折伏)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해야 한다. 불교의 기본 교리,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근거한 자녀교육에의 제언으로서, 30년 전 교육적 지향과 실천 덕목이 오늘에 새롭다. 오래된 미래의 방향제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이런 현대 가정교육의 실제 모습들을 살펴보자. 남매를 키우는 청주의 한 불자는 가족법회를 봉행하며, 온 가족의 명상 시간을 통해 자녀들의 예절교육과 마음공부를 시키고 있다. 서로를 아빠부처님, 엄마부처님, 딸부처님, 아들부처님이라고 호칭하며 불교를 생활화하고 있다. 가정의 화합을 다지는 또 다른 방법인 가족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그동안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고 격려하며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모임이다. 가족회의는 가족 간의 화합은 물론 자녀에게 말하기 듣기, 규칙 준수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덕목을 배우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즉 오계, 생명을 죽이지 말고(不殺生),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말고(不偸盜), 사음하지 말고(사미오계: 不邪婬, 신도오계: 不姦淫), 진실되지 않은 거짓말을 하지 말며(不妄語),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는 계를 실천해 보여야 한다. 잡아함경 《거죄경(擧罪經)》에 이르듯이, 자녀의 잘못에 대해 훈육할 때는 들추려는 죄가 진실이어야 하고 때에 맞아야 하며 이치로 요약하고 부드럽고 연하여 추하거나 까다롭지 않게,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어서 화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201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인성교육에서 종교의 역할을 주도해 왔다. STOP 마음공부 프로그램에 따라 멈추기-생각하기-실행하기-반조하기(Stop-Think-Act-Review)의 과정을 거치며 마음을 돌아보고, 심심(心心)풀이-M3 프로그램으로 단전주명상(Meta-Mind Danjeon Meditation)-메타마음알기(Meta-Mind Diary)-아자차공부(Meta-Mind Mindful-ness) 단계를 통해 인성교육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편 《법화경》에서는 아버지 역할을 담은 다양한 비유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삼거화택(三車火宅)’ 비유에서 부처님은 불붙은 집(三界)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삼독(三毒)에 물든 중생들을 삼승(성문 연각 보살)을 방편으로 5근 5력 7각지 8정도 선정 해탈 삼매 등을 갖추도록 교화하여 최상의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주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장자궁자’ 비유는 삼거화택의 비유로 일불승의 뜻을 깨달은 4대 제자(수보리, 가전연, 가섭, 목건련)들이 삼고(三苦)로 인한 생사번뇌 속에서 소승법에 머물렀음을 깨닫고, 부처의 자리가 본래의 자기임을 확신하며 법왕의 보배가 저절로 주어져 불자로서 얻어야 할 것을 다 얻었노라고 밝히는 이야기이다.
또한 ‘양의양약’ 비유에서는 빛 · 맛 · 향이 구비된 양약이란 인연, 정진, 계정혜를 나타내며, 무명의 병에 걸려 참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으로 일승묘법을 열어 보이는, 즉 부처의 세 성품(法身 報身 應身)으로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의 영원한 수명 인격 가치, 그리고 한량없는 활동과 무변한 공덕을 비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처는 아버지의 모습을 빌려 자녀들에게 3승방편 일승진실을 인식하게 하여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적합한 다양한 교육 방법을 통해 누구나 참된 깨달음을 얻어 밝고 바르며 자유로운 이상적 인간이란 교육의 궁극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림책과 같은 아동문학은 유아와 아동의 성장에 좋은 양식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가 인생의 진실과 미를 문학적 감동과 그림으로 엮어 보여준다. 최근에는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이 편찬 구독될 만큼 그림책에 담긴 문학성과 심미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림책 중 불교를 다루고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글 작가와 그림작가들이 유아를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사상을 담아 펼쳐 보이고자 노력한 작품들은 오래도록 감동을 전하며, 불법의 수승함을 듣고 읽고 느끼고 실천하는 모범을 제시하기도 한다.
《오세암》에는 정채봉 작가의 주옥같은 시어로 맑은 불성을 밝히는 과정이 그림과 함께 펼쳐지고, 그림 속 주인공과 배경을 이루는 사랑스러운 그림들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오세암》 속 다섯 살 어린 주인공의 동심(童心)은 이념이나 관념에 치우치지 않은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자연의 시선으로서, 정채봉 작가가 생전에 지향하던 ‘신성한 진리’와 ‘해맑은 정서’가 복합된 순수성으로 대변되는 아동관이며, 불교의 관음사상에 기초하여 형상화한 수행자의 언어이기도 하다. 어린아이와 같은 맑고 진실한 마음의 신앙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인간)과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관세음보살 또는 부처님)의 수직적이면서도, 다섯 살 어린 불자가 일심으로 기도하여 부처를 이루는 수평적 관계를 성취해 보여주고 있다.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담긴 시어와 그림들 역시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 깊은 세계를 열어 보여준다. 스님들이 호미 한 자국에 씨앗 세 알 심고, 쓰던 바가지를 솔뿌리로 꿰매 쓰고, 붓에 맹물 찍어 묵판에 글씨 연습하고, 벌레가 밟혀도 죽지 말라고 엉성한 짚신 신고, 목숨 가진 모든 것에게 축복 있으라 염불하는 등등, 스님들의 불교적 삶의 인식과 태도를 톤 맑은 회화와 운율 깊은 시구로 어린 친구들을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인간과 환경의 공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태전환교육 및 시민성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 등 공동체 교육 강화라는 추진 방향과 정확하게 함께 가는 작품성이 유아들의 사고와 경험 속에 작은 계기로 자리 잡으리라 기대된다.
《신기한 목탁소리》는 목판화 그림으로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불교적 정서를 다정한 표정으로 전해주는 그림책이다. 욕심 없이 묵묵히 목탁을 깎으며 기쁨을 얻는 늙은 스님의 모습은 채도 낮은 목판화의 터치로 무르익은 인생에 대한 삶의 자세와 지혜를 들려준다. 목탁은 목어(木魚)가 변형된 불구로, 앞부분의 긴 입과 입 옆의 둥근 두 눈으로 물고기 형태를 상징한다. 1939년생의 노작가 한승원이 목탁 깎는 노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아주 짧은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멀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어린 손자 독자들에게 작가 자신이 오랜 세월 궁구해온 삶의 철학을 느리고 조용하지만 맑고 향기롭게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김성희 그림작가가 나무에 새긴 목판화의 돋을새김과 오목새김의 명징한 명암의 대비 또한 글의 간결함과 어우러져 자연 속 사찰의 그윽함과 불법 세계를 구현해내며, 목판화조차 목탁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3. 나가는 말
이상 바람직한 가정교육을 위한 불교의 지혜와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디지털 소프트웨어와 AI 가상현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생활 속에 성큼 들어선 2022년 현재,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와 초저출산 여파는 가정의 존립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으로 나의 존재가 가능함을 알고, 어머니의 잉태 시기부터 태내 기간 열 달 동안의 어머니의 헌신, 세상에 난 후 아버지 어머니의 양육과 깨우침으로 나 개인의 자성(自性)을 밝혀야 한다. 또한 우리라는 사회적 존재로서 불성(佛性)을 법등 삼아 자리이타를 실천하며, 부모는 자녀를 불법으로 인도하고, 자녀는 부모를 정등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함을 목적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지혜가 바탕이 된 바람직한 가정교육이라면 〈우리도 부처님같이〉라는 찬불가처럼 아버지부처님, 어머니부처님, 아들부처님, 딸부처님을 섬기며, 부처님의 자비 실현과 지혜 성취를 발원하며,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일상화하고 정진해야 한다.
가정교육의 불교적 지혜로는 우선 지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팔정도, 육바라밀, 오계, 자리이타, 사섭법 등 불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기본 개념과 중도, 중관, 공관, 화두 등 불교 교리에 익숙해지도록 부모의 불교 공부 자세가 확립되어야 한다. 실천적 측면에서는 가정의 분위기를 불교문화에 익숙하도록 조성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의식주와 연계하여 가사 장삼 같은 법복과 목탁, 법고, 목어, 범종, 운판, 염주 등 법구, 발우공양과 사찰음식, 불상, 탑, 사찰 구조, 자연친화적 생태학적 생활양식 등에 관심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 불교문화적 요소를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불교적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으로는 문답법, 비유법 등 부처님의 다양한 방편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부모 교육프로그램이나 아동/청소년 교육프로그램에서 실시하는 명상법, 마음챙김, 카운슬링, 찬불가, 노력 봉사 등 몸으로 직접 체험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경전 내용을 직접적 소재로 구성한 동화 등 아동문학 작품은 물론, 어린 독자들을 위해 불교적 요소나 소재가 깃든 다양하고 수준 높은 그림책 또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발굴되고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바람직한 가정교육은 건강한 가정으로부터 가능하겠으므로, 청소년들의 자아존중감과 가정 경제 수준, 그리고 가정 교과의 흥미도가 높을수록 가족 건강성이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도 있겠다.48 가족 가치관 형성, 가정 내 성 역할,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과 결혼관 및 출산관, 가정에서의 남성성, 여성성, 혼자 사는 사람, 편부 편모 가정, 조부모 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가정 형태를 기초로 자녀관과 가족 간의 유대관계 등에 대해서도 바른 인식을 형성하도록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기법의 교육 자료들49)을 구성하여 제공할 필요를 함께 고민하고 가족 및 가정의 가치를 새롭게 형성할 노력이 필요하겠다. ■
정대련 cdryun@dongduk.ac.kr
이화여대 교육학과, 동 대학원 졸업(교육철학 전공, 문학박사).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OMEP(세계유아교육협회) 한국위원회 회장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한국 전래동화의 윤리학적 탐구(박사학위 논문)〉 외 다수와, 저서로 《외할머니의 육아법》 《동화로 여는 유아의 논리 논술》 외 다수가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한국보육진흥원 종합평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