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이기는 사나이들’
따뜻한 남쪽 나라라 했던가? 따뜻하다 못해 찌는 듯한 더위는 광양항의 바다를 더욱이 타오르게 한다. 8월의 어느 날, 이 더위를 내려주는 하늘을 향해 당당하고도 아름다운 반항을 펼치고 있는 전남의 새내기 두 선수를 만나고 왔다.
2005 청소년대표팀으로 이름을 알렸던 백승민(20, 전남), 2005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몸 담았던 장동혁(23, 전남). 이들을 만난 기자는 유쾌한 수다와 함께 인터뷰의 시작을 열었다. 간단하지만 속이 알찬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지난 8일의 이야기를 함께한다.
20대에는 객관식 답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객관식 답안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끊임없이 새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멋진 나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앳된 얼굴, 풋풋함이라는 싱그러움이 가득 느껴진 이들에게 숨겨진 야심과 포부는 주어진 새하얀 종이가 부족할 만큼 너무나 크게 자라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 어긋난 마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진실이다.
프로필 릴레이
2005년 막강한 멤버들이 포진한 청소년대표팀의 재간둥이 미드필더 백승민(이하 백). 본인 스스로 키가 작다며 체격조건에 대해 귀여운 볼멘소리를 하지만 또한 장점을 발견하고 연구해,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청년.
연세대학교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프로에 입단한 그는 짧은 대학교 생활이 아쉽지 않았냐는 기자의 말에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답을 전했다.
(백) “서운해요. 프로행을 결정할 때는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입단해서 프로생활 하다보니까 많이 그리워요. 프로 생활도 좋지만 다른 동기들처럼 그 생활을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섭섭하죠. 단순히 놀고 싶단 생각보단 친구들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전화를 자주해요. 그래도 프로 입단해서 좋은 점이 더 많으니까요. 하나를 선택하면 또 하나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잖아요. 아직 재학중이예요. 포기는 아니네요. 나중에 지금 하지 못한 대학생활 꼭 해야죠.”
3전 3패, 다시 한번 생각해도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한 2005년 8월. 터키 이즈미르의 추억. 2005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승선했던 중원의 파이터 장동혁(이하 장).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고 돌아온 그.
그러나 좌절이라는 이름을 단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미소 속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찾는다. 명지대학교에서 4년의 대학생활을 꽉 채우고 프로에 입단한 장동혁은 낱낱이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장) “4년 동안 많이 놀았죠. 승민이처럼 착하지 않았어요. 화려한 조명들이 가득한 밤 문화도 즐겨봤고, 감독 선생님 몰래 선배들이랑 족발이랑 술사서 마시기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시콜콜 했던 이야기들이 웃기기도 한데요, 다시 또 돌아보면 잊지 못할 말들이 많이 오고 갔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선․후배들끼리 가족처럼 웃고 떠들고.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시기가 대학생활이었긴 하지만 또 다시 일어나게 해준 것도 그때인 것 같아요.”
2005년, 지구를 두드리다
그들의 2005년은 어느 해 보다 바쁜 하루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년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백승민은 더욱이 바쁜 일정 속에 새해를 맞이했다.
ⓒ2006 서영창
(백) “대학생활 내내 대회만 주구장창 나간 것 같아요. 새해가 되자마자 훈련 때문에 해외 에 나갔고, 돌아와서 수원컵, 부산컵, 세계대회, 동아대회, 연고전 까지. 대회만 계속 나갔던 것 같아요. 대학 생활의 시작을 대회로 참가로 했어요. 마무리도 어떻게 보면 대회로 마감을 했네요.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지만 남는 것들이 많았으니까요. 후회하진 않아요.”
대학교 4학년. 1학년이었던 지난 3년 전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프로라는 무대를 밟기 위한 준비로 축구를 시작했던, 8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야 했던 2005년. 자칫 프로의 두려움이 나약함으로 자리할 수 있을 그때의 마음에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아홉 글자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장)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3경기 모두 지고 왔는데 무엇이 좋겠어요. 세계의 벽이라는 말을 똑똑히 겪고 왔던 지난해인 것 같아요. 속상하죠. 준비해서 갔는데...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 이 말을 들으면 약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상대는 강했으니까요. 우리처럼 학생들이 아니라 자국 프로리그에서 잘나가는 선수들이었어요. 터키의 한 선수는 리그에서 뛰고 있는 유명한 공격수였어요. 카베즈라고. 제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도 아쉬워요. 체력적인 면부터 기술적인 면까지 두루두루 많이 느끼고 왔어요. 가장 많이 느꼈던 건 기술적인 부분과 게임 운영 부분이에요. 창의적이라는 말을 감출 수가 없었거든요. 많이 노력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백)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유니버시아드는 뛰지 못했어요. 하지만 다른 세계대회는 작년에 많이 참가했었어요. 해볼 만한 경기도 있었지만 하기 힘든 경기도 많았어요. 세계대회에서 치렀던 나이지리아 같은 경우는 해볼 만한 경기가 아니었던 가장 좋은 예죠. 힘이나 신체조건이 가장 많이 느낀 것 같아요. 개인적인 플레이 부분에서도 가장 많이 느꼈어요. 프로 오기 전에 전초전을 세계무대에서 했다고 생각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들조차도 과감히 다시 재활용해 지금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 보고, 고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꾸준한 노력의 결과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침인사로 만나던 백승민과 장동혁
(백)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시절에는 아침에 인사만 했어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는 두 선수는 토닥토닥 애교스런 장난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작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아닌 프로에 입단해 친해졌다고 한다.
같은 대표팀 선수이면서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로만 만났다는 이 두 사람. 어딘가 모르게 참 엉뚱하다. 두 사람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반가워하려 애써 모른 척 했던 것일까?
(장) “아침에 밥 먹고 운동하러 갈 때 서로 만나서 ‘안녕하세요.’ 밖에 안했어요. 거의 서로 말이 오고 갔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프로 와서 친해졌죠. 신인들 중에 안면이 있는 선수는 승민이였으니까요.”
(백) “운동하고 밥 먹고 또 각자 방으로 돌아가니까, 정말 만나서 뭐 이야기하고 그런 게 없었어요. 아무래도 형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말하는 기회가 적었죠. 프로 와서 제 또래가 정말 없었거든요. 그래도 작년에 형 본 적 있고 그렇다고 말 건네기 편했어요. 지금은 장난도 치고 지내요. 형이 많이 이해해주고 도와줘요.”
무한상상, 슛돌이 되기 프로젝트
남들 보다 늦은 출발.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기에 그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축구선수라는 길을 택했다. 중학교 2학년, 축구선수의 길에 들어선 장동혁.
ⓒ2006 서영창
(장) “늦은 출발이었죠. 제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모여서 볼 차면서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친구 아버님이 보고 당시 김해중학교 코치선생님께 테스트를 받게 하셨어요. 그래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좋았어요. 하고 싶은 축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고 순조로웠어요. 이래저래 축구할 수 있는 주변의 환경이 아니었는데 좋은 기회에 뽑히게 되어서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축구였으니까요.”
아람단에 가입하고 학원에 수강신청을 했지만 손해 보는 일도 마다않고 축구화를 신겠다던 귀여운 슛돌이. 그 슛돌이가 바로 백승민이다. 육상선수는 아니었지만 육상대회에 참가해 축구선수들 훈련하는 운동장에서 자연스레 축구선수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진지함이 묻어난다.
“아람단에 가입을 했어요. 거기 옷도 비싸잖아요. 옷도 다 사고, 학원도 다닌다고 끊어뒀었거든요. 도에서 하는 육상대회 연습 때문에 그냥 선수도 아닌데 연습하러 갔다가 축구를 하게 됐어요. 거기가 축구부 훈련장이었거든요. 부모님이 엄청 반대하셨어요. 아람단, 학원 둘 다 빼먹고 축구하러 가니까 아버지가 아무데도 못 가게 하셨어요. 그냥 집에 있으니까 아버지가 갑자기 저를 데리고 축구화 매장을 가시더니, ‘너 축구할래?’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하면서 아버지가 사주시는 운동화 넙죽 받았죠.”
5분 동안 숨어 다니면서 뛰었답니다
이제 막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던진 두 선수. 8개월의 프로생활 보단 익숙했던 지난날 학창시절의 추억이 다분히 많이 떠오를 것이다. 이 여름을 날려버릴 웃음 나는 에피소드가 없냐는 질문에 조용히 침묵에 잠긴 두 선수 중 장동혁 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대하시라 핵폭탄급 에피소드!
(장) “고등학교 때 기억이 나네요. 무학기 예선전이었을 거예요. 전력상으로 저희 학교한테 안 되는 팀이었어요. 계속 저희가 밀고 있는데 갑자기 골을 먹은 거예요. 후반에 계속 밀어붙이다가 중반쯤에 동점골을 넣었어요. 1 : 1이니까 빨리 공 빼와서 또 시작해야 하잖아요. 공 가지러 골대 안에 들어갔죠. 공을 줍고 일어서는데 골네트에 머리가 낀 거예요. 그물이 쳐져 있었나 봐요. 뭐 특별히 한 것도 없고 그냥 구부려서 공 주웠을 뿐인데 낀 거예요. 당시에 텔레비전 중계는 안했는데, 관중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 5분 숨어 다녔어요. 공 패스도 안받고, 그냥 진짜 태클도 안하고 숨어 다녔어요. (웃음)”
이를 잇는 백승민 선수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백) “저는…… 없는 것 같아요. 문안하게 지금까지 경기를 해 와서, 특별한 건 없어요. 죄송해요. 썰렁해졌죠?”
“아!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에피소드네요. 직접 뛰지 않고 퇴장당하고, 신문에 크게 났어요. 제가 유니버시아드 대표 최종 엔트리까지 들었는데 부상당해서 못 갔잖아요. 출국 전날 대체 선수가 왔어요. 그 선수가 근데 첫 경기에 퇴장을 당했어요. 근데 신문에 ‘백승민 퇴장’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기자 분들이 잘 못 아신 거예요. 당연히 저라고 생각 하셨나 봐요. 그래서 경기 안 뛰고 퇴장도 당하고 신문에도 나는 아주 신기한 일이었어요. (웃음)”
중원의 지배자가 되리라
두 선수 모두 중원을 든든히 책임지는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다. 모두 공격과 수비에서 탁월한 실력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특히 백승민은 공격의 물꼬를 터주는 플레이로, 태클맨이라는 별명답게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고 다시 전남의 플레이를 열어주는 장동혁.
서로의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두 사람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팀에 대한 정과 서로의 플레이를 지원한다고 한다.
(장) “경기하는 스타일이 비슷해요. 저도 태클 많이 하고 파이터적인 면이 많거든요. 승민이도 강한 압박 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아요. 청소년 대표팀 출신답게 나이답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줘요.”
(백) “칭찬하는 분위기인가요? 형 좋게 말해줘서 고마워요!(웃음)”
“형은 정말 편해요. 아까 한 말처럼 서로 경기하는 스타일 비슷해요. 둘 다 많이 뛰죠. 그래서 그런지 잘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아요. 상대 압박을 하는 경우에도 서로 스타일을 확실히 아니까 바로 와서 도와주고 그래요.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지난 5월, 전남이라는 이름을 달고 광양구장을 달리던 두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인선수들로 구성된 전남의 선수명단은 풋풋하다 못해 ‘과연’이라는 물음이 드리워질 만큼 아찔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상대팀 대구를 압박해가는 전남의 신인들은 당찬 포부를 그라운드 위에 그대로 펼쳐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플레이를 담던 중 카메라 앵글에 잡혀 있던 선수들을 하나 둘 밀어내는 한 청년을 보았다. No 37. 바로 장동혁이었다. ‘태클맨’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장) “프로 와서 얻은 별명이에요. 태클맨. 학창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많이 걱정하세요. 강하게 하는 것은 좋은데 장점이자 단점이니 조심하라고 하세요. 괜히 경고 먹으면 장점에서 바로 단점이 되는 거니까요. 저도 조심하려고 하는데 스타일은 감출 수가 없나 봐요.”
지난해 5월, 기자는 백승민, 그를 부산에서 만났었다. 청소년 대표팀 선수로 뛰던 그.
작은 체격이지만 그라운드를 뒤흔드는 플레이로 주목받던 선수. 기억속의 백승민은 항상 그렇게 존재했다.
꼬박 1년이 지난 5월, 그를 다시 광양에서 만난다. 여전한 모습, 여전한 플레이. 변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장점을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 그것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백) “뛰는 양이 많아요. 측면에서도 뛰고, 가운데서도 뛰고. 많이 뛰어요. 주변에서 돌파력이 좋다는 말들을 많이 하세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질적으로 상대선수가 하나 붙은 상태에서 돌파를 하는 건 잘 못해요. 다만 사람 뒤로 볼을 띄워서 볼을 살리고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아니에요. 키가 작아요. 제가 생각해도 작아요. 그런데 싫진 않아요. 여기서 조금 더 컸으면 더 좋은 플레이어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모습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가 뭐래도 밥이 보약
중원의 지배자로 군림하기 위해 하루도 빼먹지 않는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선수들의 든든한 친구 갖가지 약. 남다른 체력 관리 비법을 묻자 두 선수 모두 약이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뱀, 장어, 밥 많이 먹게 하는 한약, 인삼…… 약 이야기에 신이 난 두 선수. 기대했던 체력비법은 약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야했다.
(백) “뱀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효과를 정말 봤어요. 먹고 다음날 경기를 뛰었는데 다르더라고요. 요즘은 뱀이 별로 없어서 그냥 밥 많이 먹게 하는 한약 먹고 있어요. 뭐니 뭐니 해도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밥 많이 먹게 하는 약 먹고, 밥 많이 먹으면 말 그대로 보약이지 않을까요? 갑자기 중학교 때 약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한데서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인삼 씹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부산에서 뛰고 있는 (이)강진이랑 같이 다녔는데 지하철에서 인삼 먹으니까 뭐하는 거냐면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잔뿌리 몇 개 떼어주면서 먹으라고 줬던 기억이 나요. (웃음)”
(장) “운동은 꾸준히 하죠. 웨이트도 하고, 규칙적으로 훈련하니까요. 남다른 비법은 없어요. 수능 만점 받은 학생 같은 대답이지만 정말 다른 것은 없어요. 밥 잘 챙겨먹고 그래요. 제가 입이 짧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운동 안하면 살이 빠져요. 꾸준하게 운동 하는 게 몸 유지하는데 좋은 것 같아요. 운동하고 나면 배고프니까 밥 많이 먹잖아요.”
약 이야기를 마무리 짓던 중 나온 두 선수의 약 이야기 결정적 한방!
(백) “저희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남들처럼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관리해요’ 라는 말은 좀 그렇고요, 다들 약을 많이 먹어요. 제 친구 중엔 약신(神)이라고 있었어요. 약 가방을 챙겨 다녔거든요. 정로한부터 시작해서 청심환까지 다 있었어요.”
(장) “너네도 그런 애 있었나? 나 대학교 때 어떤 애는 도망가는데도 약 싸서 도망가더라.(웃음)”
신인이 바라본 K-리그의 현주소
진지한 이야기들부터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이야기를 오고가던 중 어느덧 인터뷰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지금의 소감. 약 이야기에 즐거운 수다를 즐기던 그들은 어느새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만족과 불만족이 아니라, 애정 어린 한마디로 답변을 건넨 장동혁의 답은 이러했다.
(장) “아직은 관중들이 만족할 만한 경기를 보여주진 못한 것 같아요. 언론에서 그런 말 했었잖아요. 무슨 태권도 축구하느냐는 말. 싸우려고만 하고 기술적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말이요. 선수들은 직접적으로 뛰면서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데 아직 관중들을 사로잡을 만큼은 아닌가 봐요. 저희가 더 노력할 것이고 또 노력하고 있어요.”
(백) “관중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몇몇 타 구단들에 비해서 다른 구단들은 그렇게 많은 관중들이 오지 않는 것 같아요. 경기력 부분에서는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처음 제가 입단 했을 때 뭐 별거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장난이 아닌 거예요. 정신이 없더라고요. 제가 첫 게임 뛰었을 때 10분 뛰고 나왔거든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첫 경기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잘 하는 선수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들이 말하는 축구는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이름으로 그라운드 위에 선 장동혁과 백승민.
프로선수로서의 축구생활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지난 9년의 땀과 눈물은 지금의 그들의 출발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 이른 선택을 하고, 그 길에서 후회라는 한 숨도 쉬어 보았지만 그들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들이 말하는 축구는, 축구 뿐 아니라 축구 속의 다른 세상을 그리는 것임을 알게 한다.
(백) “제 인생에 끝나지 않은 공부가 축구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공부. 쓰디쓴 좌절도 맛보고, 축구 하나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이렇게 숙소생활을 하는 것도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용인 FC에서 허정무 감독님께 축구 배웠던 것들, 중학교 시절 축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게 해준 감독님의 잊지 못할 이야기들. 모두 제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지도예요. 이런 지도를 가지게 된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잖아요. 인생을 배워가요.”
(장) “제 스타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축구는 전쟁인 것 같아요. 전투적인 거, 싸우는 거. 파이터 적인 것. 그거에 매력을 느끼는 게 축구이고, 그걸 하고 싶어요. 정말 한번 휴가 나와 있어도 밖에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면 축구이야기 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제가 아는 게 축구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 때 부상 때문에 집에 가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냥 다른 생활이 좋아서 축구가 하기 싫었거든요. 그때 다시 손 내밀어 주시고 잡아주신 감독님께 감사해요. 이렇게 즐거운 축구, 제 인생에서 없어선 안 될 제 일을 만들어주셨잖아요. 일단은 저보단 팀을 먼저 생각하는 축구를 지금은 펼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와도 같다. 태어나 내린 뿌리, 차곡차곡 자라온 그 시절의 내가 좋아했던 것들, 행복했던 기억. 잊어선 안 될 나의 좋은 모습, 나쁜 모습. 그리고 좌절하고 지쳤을 때 나를 지켜주었던 사람들. 이따금 지칠 때 ‘그 시절 속의 나’를 만나러 나의 나무를 찾았을 때, 좋은 추억들과 답답한 그 날의 명답을 얻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아름드리나무를 만들어가는 백승민과 장동혁 선수가 되길 바래본다.
(장) “언제나 응원해주는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고 경기장을 찾아주신 관중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라운드의 멋진 선수가 되겠습니다. 저보다는 팀을 생각하는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경기장 많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세요.”
(백) “어리다고만 느꼈던 제가 프로선수라는 이름을 달기까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그 보답 앞으로 후기리그 남은 경기 많이 뛸 수 있도록 노력해서 팀에게 보탬이 되고 더 나아가서 저 스스로의 계획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K-리그 명예기자 이솔희
첫댓글 근데 이완선수 아직전남에있는거 맞죠?
NE~~``
얼마전에여자친구랑 시내에 밥먹으러갓었는데 그때바로옆자리에 박재홍선수하고 백승민선수하고 장동혁선수하고 한선수 아무튼 네선수가밥먹는데 양이....-_-;;; 박재홍선수는 저번에 pc방에서도 마주친적이잇어서 이번에그냥인상쓰고 처다봣는데 끝까지처다보시더라는...-_-;; 그래서나갈때인상한번더쓰고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