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악)2026년 8월 17일(월)묵상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랑)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별로 생각을 안하고 살고,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죽고 난 뒤에 지은 죄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심판이 있다면..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으면 손해볼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고 막 살았는데 지옥이 있다면 죽고 난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하나님이 없어서 못 만난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못 만난 것일 뿐입니다.
성경에서는 지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얘기하고 있을까요?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일렀습니다.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저 지렁이를 욕심 내서 나 못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비웃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리고 와 봐, 그러면 믿을게."
이런 사람들은 끝내 하늘 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후회해도 죽음 이후에는 이미 늦습니다.
불신에서 싹튼 교만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어느 날 설교를 하면서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단 5초만 지옥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존 웨슬레도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지옥을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이야기를 하면 싫어합니다. 지옥은 사람들이 죄짓지 말라고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끔찍한 지옥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사랑이 있지만 동시에 공의가 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우주를 공의롭게 다스리는 재판관이십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사랑만 있고 공의가 없으시다면 이웃집 마음씨 좋은 복덕방 할아버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 지은 자를 반드시 심판하시고 벌을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관한 경고를 무시합니다.
“설마 그런 곳이 있겠어?” “설마 없겠지” “죽으면 끝이니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죽고 난 뒤에 지옥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부인하든 부인하지 않든 지옥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을 피해야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는 순간 천국과 지옥, 천국과 음부로 갑니다.
유황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음부는 영원한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과 죽음의 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지옥은 인간을 위해 만드신 곳이 아닙니다. 원래 마귀와 그 졸개들을 위하여 예비한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마귀의 꼬임에 빠져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짓게 되어 지옥 불에 들어갈 운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지옥에 대한 경고가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며 지옥에 간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하여 생생히 경고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지옥을 절대 피해야 할 장소, 두렵고 고통스런 곳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옥.. 유쾌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알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지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경고하고 있을까요?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목사님은 지옥 설교를 하시다가, "여러분의 손가락을 불에다 대고 있어 보라. 잠시 동안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온 몸이 불에 들어가 죽지도 않고 영원히 있을 것을 생각해 보라." 고 했습니다.
✔지옥은 탈출구가 없는 곳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문 입구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하는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지옥에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고통만 계속되는 곳입니다.
[계시록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무저갱’이란 바닥이 없는 구덩이,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영생은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의 영생은 영원한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이 실제로 있는 곳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이 섞여 지내는 곳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흉악범, 살인자, 행음자, 우상 숭배자, 등 모든 종류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뒤범벅이 되어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계시록 21: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나 그 어떤 죄인이라도 지옥에 안 가는 길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우리들에게 요한1서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요일 5:13)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전화기)기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곳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하소서!
노아 한사람의 순종을 통해 온 가족이 구원받은 것처럼, 지금 이순간부터 더욱 간절하게 우리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영혼들의 마음에 찾아와 주시어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고, 강퍅하진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여 지옥의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요약>
측량하는 사람이 성전에 이르러 문 벽과 문 통로, 성소, 지성소, 성전 벽, 골방, 서쪽 건물과 성전의 너비, 내전 전면의 나무 제단 등을 측량합니다. 내전과 외전의 문마다 각기 접는 두 문짝이 있고,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거룩해야 합니다 에스겔 41장 1~11절,
1 그리고 그는 나를 성소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그가 문기둥을 쟀는데 그 두께가 이쪽이 6규빗, 저쪽이 6규빗이었다.
2 문 입구는 너비가 10규빗이었고 문 양쪽 벽은 이쪽이 5규빗, 저쪽이 5규빗이었다. 그는 성소도 쟀는데 그 길이는 40규빗, 너비는 20규빗이었다.
3 그리고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문기둥을 쟀는데 2규빗이었고, 입구는 높이가 6규빗, 너비가 7규빗이었다.
4 그리고 그가 성소를 가로질러서 쟀더니 그 길이가 20규빗, 너비가 20규빗이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이곳은 지극히 거룩한 곳이다.”
5 그러고 나서 그는 성전 벽을 쟀다. 그것은 6규빗이었고 성전의 주위에 둘러 있는 각 쪽방은 너비가 4규빗이었다.
6 쪽방들은 세 층이었는데 한 방 위에 다른 방이 있는 형태로 한 층에 30개씩 있었다. 성전 주위에 받침대가 놓여 있어 그 쪽방들은 거기에 고정돼 있었고 성전 벽에 고정돼 있지는 않았다.
7 성전 벽에 고정돼 방을 지지하고 있는 받침대가 계단처럼 놓여 있었으므로 층이 올라갈수록 쪽방들은 넓어졌다. 그러므로 아래층에서 중간층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감에 따라 그 구조물의 넓이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8 내가 보니 성전 둘레에 받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쪽방의 기초로서 높이가 막대기 하나, 곧 6규빗이었다.
9 쪽방 바깥벽은 두께가 5규빗이었다. 성전의 쪽방 바깥으로는 빈터가 있었는데
10 방들 사이는 성전 주위로 삼면이 다 폭이 20규빗이 됐다.
11 그 쪽방들의 출입문은 다 뜰을 향해 있었는데 하나는 북쪽 방향을 향하고 하나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둘러 있는 뜰의 폭은 5규빗이었다.
- 에스겔은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차례로 측량합니다. 성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거룩한 공간이 나타나고, 가장 깊은 곳에는 지성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단순히 사람이 사용하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공간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거룩함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생활을 예배드리는 시간이나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거룩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관계와 선택, 일상의 작은 행동까지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세워져 갑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오늘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바꾸어야 할 생각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세워지는 삶 에스겔 41장 12~26절
12 서쪽 방향 성전 뜰 맞은편에 서 있는 건물은 너비가 70규빗이었고 그 건물 사면의 벽은 두께가 5규빗이며 그 길이는 90규빗이었다.
13 그리고 그는 성전을 쟀는데 길이는 100규빗이었고 서쪽 뜰은 그 건물과 벽까지 다 해서 길이가 100규빗이었다.
14 성전의 정면을 포함해서 동쪽 성전 뜰의 너비는 100규빗이었다.
15 그러고 나서 그는 뜰 뒤의 맞은편에 있는 건물의 길이를 쟀는데 그 양쪽 쪽방들을 포함해서 100규빗이었다. 이는 안쪽 성소와 뜰의 현관
16 문턱과 좁은 창문들을 포함한 것이다. 문턱 안에 세 층에 둘러 있는 쪽방은 땅에서 창문까지 나무판자를 댔고 창문들은 이미 가려져 있었다.
17 입구 위의 공간과 안쪽 성소까지, 바깥 그리고 성소의 안팎 주위에 둘러서 쳐진 벽도 그렇게 돼 있었다.
18 판자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고 종려나무는 그룹과 그룹 사이에 있었다. 그룹은 각각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19 한쪽에는 종려나무를 향한 인간의 얼굴, 다른 쪽에는 종려나무를 향한 젊은 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 모양은 성전 전체를 둘러가며 새겨져 있었다.
20 바닥에서부터 입구 위쪽 부분까지 그룹과 종려나무가 성소 벽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21 성전의 문기둥은 네모나게 생겼고 성소의 정면도 그렇게 생겼다.
22 나무로 된 제단은 높이가 3규빗, 길이가 2규빗이고 모서리와 길이와 옆면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 앞에 있는 탁자다.”
23 성전과 성소에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24 문마다 두 개의 문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두 개의 돌쩌귀가 달린 문짝들이었다. 이 문도 두 짝, 저 문도 두 짝이었다.
25 성전 문에도 벽에 새겨진 것 같은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고 성전 현관 밖의 정면에는 나무로 만든 디딤판이 있었다.
26 현관 양쪽에는 좁은 창틀이 있었고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 성전의 쪽방에도, 디딤판 위에도 그렇게 돼 있었다.
- 성전의 내부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제단과 문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성전은 아무렇게나 세워진 공간이 아닙니다. 모든 구조가 정해진 질서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안에서 질서를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많은 일에 둘러싸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주십니다. 신앙의 회복은 단순히 열심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계실 때 우리의 시간과 관계, 물질과 재능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정돈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무너진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질서에 따라 다시 아름답게 세워 가십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위해 오늘 가장 먼저 정돈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
묵상에세이
☑️우리가 교회다
어느새 우리는 ‘비대면’(untact)이라는 단어와 친숙해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비대면 사회에서 인격적 교제가 축소되었고, 사람들은 미디어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유익이 있다면, 성도들이 ‘본질’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일정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만을 신앙이라 여겼다면, 이제는 그 허물을 벗어 버리라는 권면을 받게 된 것이다. 교회에 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존 해블릭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결코 장소가 아니며, 성도인 사람이다. 교회는 결코 양의 우리가 아니라, 양 자체다. 교회는 결코 거룩한 건물이 아니며, 믿음의 모임이다. 기도하는 성도 바로 당신이 교회지, 당신이 기도하는 그 장소가 교회는 아니다. 성도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다.”
예배당 안의 어느 장소에 자신의 몸이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인 사람에게는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해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세상 속에 소금과 빛으로 침투하는 데 있다.
♧ 한 절 묵상
41장 22절 | 하나님은 우리를 친밀한 교제로 초대하십니다. 지성소 앞에 놓인 것은 화려한 금제단이 아닌 소박한 나무 제단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제물을 태우는 곳이 아닌, 함께 먹고 마시는 ‘여호와의 앞의 상(table)’이라 부르십니다. 이는 회복된 성전의 본질이 희생 제사를 넘어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친밀한 식탁 교제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루를 여는 우리의 기도는 의무적인 보고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마주 앉아 나누는 즐겁고 깊은 대화의 향연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저를 깨끗하게 씻으시고 친히 만나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소 휘장을 찢으셔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식탁에서 주님과 먹고 마시는 기쁨을 풍성히 누리게 하소서.
에스겔은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차례로 살펴보며 그 구조와 크기를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성전의 벽과 문, 내부 장식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고, 성전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제단과 여러 문과 기둥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모습은 회복된 성전이 무질서하게 세워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세워진 공간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것은 단순히 무너진 외형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과 삶의 질서까지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실 때 우리의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소중한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에스겔 41장 18절
성전 안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반복해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임재를 떠올리게 하고, 종려나무는 생명과 승리, 풍성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회복된 성전의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룩함과 생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의 삶에는 거룩함이 드러나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주변을 살리는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거룩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우리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내 삶이 무너지고 흐트러져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세워 가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다시 내어 드립시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삶, 거룩함과 생명의 열매가 나타나는 삶으로 우리를 빚어 가실 것입니다.
2026년 8월 일 오늘의 말씀 명언 에스겔 41장 1~26절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삶이다. - 엔드루 머리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 - A. W. 토저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 존 웨슬리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두려움이 설 자리가 없다. - 코리 텐 붐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 프란시스 쉐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빌리 그레이엄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는 어디든 거룩한 장소가 된다. - 토마스 아 캠피스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듯, 우리의 삶 가장 깊은 중심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 삶을 노래하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 … 그 성전을 측량하니” (1, 1:3)
에스겔은 천사의 인도를 따라 성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통로는 좁아지고 마침내 지성소에 이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휘장을 찢으시고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길이 열렸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은혜는 거룩함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함을 향해 살아갈 힘을 줍니다.
좁은 곳을 지나려면 몸에 걸친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듯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내 안에 붙들고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욕심과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 세상에 대한 집착입니다. 모두 가지고 주님께 가까이 가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제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반면 성전 곁방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집니다. 이 모습은 제게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좁아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삶은 오히려 넓어집니다. 욕심을 내려놓을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나를 주장하지 않을수록 다른 사람을 품을 여유가 생깁니다. 버리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것이 은혜의 길입니다.
신앙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어제 기도했다고 오늘의 기도가 필요 없는 것도 아니며, 오래 믿었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주님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를 내려놓고, 말씀 한 구절에 순종하고, 한 사람을 더 품는 작은 걸음들이 쌓여 믿음은 깊어집니다.
오늘도 익숙한 신앙에 머물지 않고, 저를 가볍게 하시는 것은 내려놓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
에스겔 41장 1–26절 말씀 요약
1–4절: 성소와 지성소
측량하는 사람이 에스겔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성소와 그 입구를 측량합니다. 이어 가장 안쪽 방인 지성소를 측량하며 “이는 지성소니라”고 말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5–7절: 성전 벽과 골방들
성전 벽의 두께와 성전 둘레에 붙어 있는 골방들이 측량됩니다. 골방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층마다 30개씩 있었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치밀한 계획과 질서 속에 세워졌음을 보여 줍니다.
8–11절: 성전 기초와 골방 출입구
성전 둘레에는 높은 기초가 있었고 골방과 성전 사이에는 일정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골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북쪽과 남쪽에 각각 있었으며, 성전 내부의 거룩함을 보호하도록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12–15절: 성전 서쪽 건물과 전체 측량
성전 뒤편 서쪽에는 별도의 큰 건물이 있었고, 그 크기와 벽의 두께까지 정확하게 측량되었습니다. 성전과 뜰, 주변 건물이 모두 일정한 기준에 따라 조성된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질서를 나타냅니다.
16–20절: 성전 내부의 장식
성전 내부는 창문과 나무 판벽으로 꾸며졌으며, 그룹과 종려나무 모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각 그룹에게는 사람의 얼굴과 젊은 사자의 얼굴이 있어 양쪽 종려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종려나무는 생명과 승리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21–22절: 나무 제단
성소의 문기둥은 네모졌고, 지성소 앞에는 나무로 만든 제단 모양의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것을 “여호와 앞의 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상징합니다.
23–26절: 성소와 지성소의 문
성소와 지성소에는 각각 두 짝으로 된 문이 있었고, 문에도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전 현관 양쪽에는 닫힌 창문과 종려나무 장식이 있었으며, 성전 전체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생명으로 충만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첫째,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성전의 중심에 지성소가 있듯이 우리 삶의 중심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거룩함과 질서를 원하십니다.
성전의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측량된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도 말씀의 기준에 따라 정돈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의 핵심입니다.
‘여호와 앞의 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교제하기 원하심을 보여 줍니다.
넷째,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새 소망을 주십니다.
성전을 잃은 백성에게 새 성전의 환상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무너진 인생도 다시 세우십니다.
삶의 적용 방법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십니다.
마음속의 교만과 욕심, 미움과 불평을 회개하고 정결함을 구합니다.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준비합니다.
가정과 일터의 생활을 점검하여 무질서한 습관을 하나씩 바로잡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을 믿고 맡은 일을 성실히 감당합니다.
말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에게 생명과 평안을 전합니다.
3)
성전의 현관을 측량한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 구석 구석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성소의 모든 것을 보여주심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소와 지성소의 모든 부분을 측량해서 알려주십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만 들어가도록 허락된 곳으로
말로만 들었을 뿐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곳인데
에스겔을 통해 세세하게 보여주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직접 나가게 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 우리 역시 삶의 모든 영역을
숨김없이 공개하고 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소의 내부와 각종 골방,
심지어 부속건물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손님이 와도 거실에서 차를 대접하고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안방까지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공간인 지성소와 골방까지 남김없이 보여주시는데
그런 모습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꾸밈없는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이지요.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더 넓게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자기 성전을 회복하라
포로생활이 계속되면서 예배를 목말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성전 재건의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성전은 공간적으로 지상 어딘가에 세워진 건물일 수도 있지만
영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해야 하는 곳이 바로 영적인 성전,
곧 우리들의 마음이며 삶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성전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처소를 구석구석까지 보여 주실 만큼 우리를 친밀한 대상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마음의 성전을 회복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