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건강하시고 휴가 멋지게 보내십시오
나 딱걸렸어 206회부터
일주일 정도 쉽니다
건강상 이유는 아니고 개인사정에 의한 휴간이며
이런 이유로 205회분은 다소 길게 썼습니다
그동안 편히 계시기 바랍니다
불루보트
205
그러지마 안 돼!
우아영이 청량고추처럼 알싸하게 쏘았다.
“제가 진압경찰이에요? 최류탄은 여기서 왜 나와요?”
“달밤에 보니까 꼭 최류탄 같네? 그럼 뭐야?”
도치씨의 투박한 그러나 퇴박이나 투정은 아닌 말에 옳지! 이 때다 하고 높이 들었던 캔음료를 도치씨의 어깨너머 바다를 향해 휙 던지며 우아영이 소리쳤다.
“최루탄 아니고 수류탄이다!”
우아영이 던진 캔은 공교롭게도 도치씨의 예비입질 받고 있던 캐미라이트를 정통으로 맞히며 첨버덩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도치씨도 잽싸게 갯바위에 납작 엎드리며 소리쳤다.
“수류탄이다. 엎드려!”
우아영이 깔깔깔 웃었다.
여기, 우아영 자기 말고 누가 또 있다고 엎드리라는 건가? 수류탄은 또 뭔 수류탄? 조금만 더 큰 캔음료였다면 ‘원자탄이다!’ 라 부르짖었겠다 싶어 우아영은 머리가 젖혀지도록 웃었다.
도치씨는 군복무하면서 얻은 수류탄에 대한 홀릭멘탈mentalholic이 있었다. 마지막 유격훈련에서 돌아온 날 밤 내무반에서 상병이 수류탄으로 자살해버린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부터였다. 군수사관들에 의해 밝혀진 동기는 제대를 며칠 앞두고 애인의 결혼소식을 완충하지 못한 좌절과 충격 때문이었다.
몇 주후 도치씨는 제대했지만 상병의 죽음을 한동안 잊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 기억 때문에 납작 엎드린 도치씨는 우아영이 던진 캔이 수류탄이 아니고 알루미늄캔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해졌다. 캐미라이트 옆에 동동 떠있는 캔과 우아영의 웃음소리가 도치씨를 헤까닥 뒤집어버렸다.
이번엔 진짜 화난 목소리였다.
“너? 뭐하는 짓이야?”
“보면 몰라요? 캔 버렸잖아요?”
도치씨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휴, 이걸? 너 진짜 성질 못됐다. 하필 그걸 거기다 던지냐? 사람 놀래게?”
“그럼 어떡해요? 발소리도내지 말라며요? 그럼 던지는 수밖에 더 있어요? 깡통을 씹어 먹어요?”
도치씨는 눈알을 비틀며 우아영을 째려봤다.
“너 참 못됐다!”
“그래 못된 거 이제 알았어요? 알았으니 좋겠네?”
“아니 너 정말?”
기가 넘쳐 주먹을 불끈 쥔 도치씨를 무시하고 우아영은 스프링처럼 튕기듯 일어나 열댓 발자국 떨어진 자신의 낚시자리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갯바위화의 징소리를 의도적으로 째깍째깍 울렸다.
우아영을 낚아채기 위해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도치씨가 걸어가는 우아영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야! 거기 못서? 저게 진짜?”
도치씨가 팔팔 뛰었다.
도치씨야 발광하거나 말거나 유연자작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우아영은 갯바위에 일자로 들어 누워버렸다.
우아영은 씩씩대는 도치씨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으나 무시하고 와르르 쏟아질 듯 빤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별빛이었다. 어쩌다 보는 도시의 별들을 싸구려 큐빅에 비한다면 갯바위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천연다이몬드 같았다.
우아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가 내 찌르기전법에 안당하고 베겨? 내 작전은 완전 성공이야. 지금 속에서 불똥 튀겠지? 배알이 꼴려 팔팔 뛸 거야. 호호호. 역시 내 찌르기는 일품이야. 까불면 앞으로 돌리기전법도 구사할거야!”
일방적인 게임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우아영은 도치씨가 저렇게까지 발광할 줄 몰랐다. 속이 후련했다. 통쾌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전략에 성공했는데도 우아영의 가슴은 어딘가 텅빈듯했다. 꼭 98% 수분이 빠져 나간 소나무처럼 앙상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심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꼭 첫사랑에 실연했을 때의 심정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 살자 맹렬히 쫒아 다니던 한동네 살던 그놈이 대학에 진학한 첫 방학 때 어떤 여자를 대동하고 약속한 커피숍에 나타났다.
우아영이 먼저 물었다.
“누구야?”
“응. 인사해. 내 클래스메이트야. 우리 동네 홈스테이 왔어. 이쁘지?”
그 순간 우아영은 지금 같은 허탈감에 빠졌다.
“그런데 네 애인이 보면 어쩌려구 그렇게 간 크냐?”
“내가 뭔 애인 있다고 그래?”
“너! 내가 애인이라며? 2년을 꼬빡 쫒아 다녔잖아?”
첫사랑 그놈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안절부절 했고. 그놈의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우아영의 앞에 놓인 물 컵을 들어 그놈 얼굴에 확 끼얹고 달아나버렸다.
그런데 별일이었다. 그렇게 귀찮던 놈이 우아영의 청춘이 지나가면 갈수록 첫사랑이었던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확신했다.
“정일이는 내 첫사랑이 맞았어. 못이기는 체 정일이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일걸. 공연히 여자 자존심 세운다고 버튕겼던 건 내 잘못이었어. 있을 때 사랑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우아영은 후회했다.
허지만 세월도가고 그놈도 가버렸는데 이제 와서 어쩌냐? 죽은 놈이 다시 살아와? 세상에 그런 기적은 없다. 이제 썩어서 흙이 되어버렸을 텐데 생각하면 뭐하나?
세월이가고 남는 건 후회지만, 첫사랑이가고 남는 건 아쉬움뿐이었다. 그 아쉬움 속에서 만난 사람이 도치씨다.
우아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도치씨를 골탕 먹인 것이 잘한 짓인지 명확하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티타늄대도 부러뜨리고 잡은 고기도 놓치게 했다. 어느 메기낚시꾼이야기도 생각났다. 메기를 못 잡은 놈은 나쁜 놈이지만 다잡은 메기를 놓친 놈은 더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고기 놓치고 낚싯대까지 부러뜨려 먹은 년은 죽일 년 아닐까?
허지만 그것이 정당한 변명은 아니었다.
우아영이 도치씨를 골탕 먹이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사랑 정일이 그놈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미련이라도 아주 지독한 미련이었다. 남녀관계에서는 미련이 곧 복수로 변질되니까 그게 문제였다. 미련이 복수로 변질되면 염산을 뿌리거나, 찌르고 토막 내고 별 지랄 다 떨잖아?
그나마 그 정도에서 도치씨 골탕 먹이기를 중단한 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우아영은 또 길고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도치씨가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속이 문드러졌다. 아무래도 지나쳤다고 후회했다.
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이유 불문 미웠다.
실은 누가 누구를 상하게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우아영은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건 분명 도치씨라고 지목했다.
마음이 조금 갈아 앉았다.
눈을 감았다.
국립방사능검역소에서 벌세우던 도치씨의 카리스마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멀쩡한 도치씨를 후쿠시마방사능 오염자라고 신고해서 벌을 서긴 했지만 싫지 않았다. 칼칼한 도치씨가 그때부터 무조건 좋았다.
우아영은 가슴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이름으로 반문했다.
도치씨를 사랑하는가?
그건 아니다. 단호하게 아니다.
그럼 뭐야?
좋아하는 거지. 그냥 좋은 거지.
왜 구태여 사랑을 회자回刺돌려말하기하나?
사랑하는 데는 조건이 필수지만 좋아하는 데는 조건이 무조건無條件이잖아? 구질구질한 계약서도 필요 없고, 임대차기간도 필요 없는 완전 프리 프리미엄이잖아. 그래서 좋아하는 거지. 부담도 없고. 요새 부담 가는 사랑하는 것들 있어?
웃기군.
좋아한다면서 도치씨를 저토록 미쳐 발광하게 만들어?
도치오빠 저 놈이 오늘은 날 냉冷하게 대했거든. 낚싯대가 뭐길래? 티타늄이 뭐길래? 내가 진짜 화난 건 그런 물질적인 건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끼리 물질이 대수야?
그럼 정일이 그놈 미련 때문이지?
개 같은 소리 그만해. 정일이 그놈 보다는 도치오빠가 백번 나은데. 아니 천배는 낫다. 한 가지, 딱 한 가지 유부남이라서 그렇지.
눈을 감고 스스로 자문자답에 취해 있을 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밤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졌다.
보지 않아도 대뜸 알 수 있었다.
“아영아.”
우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신파감정에 취해서가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완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유전적으로 전수받은 여자들의 공통심리가 우아영에게 또 작동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 마음은 갈대 같다고 했다. 아니 탤런트기질이다. 특히 우아영처럼 엔터테인먼트 출신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변덕이다. 연기에 능한 사람들이니까.
연기란 게 한마디로 뭔 줄 모르지?
연기란 변덕이야. 이랬다 저랬다. 이처럼 저처럼.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거다. 왜? 틀렸냐?
도치씨의 풀죽은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영아!”
“!”
“미안해. 성질내서!”
“!”
“내가 지나쳤다. 마음 풀어.”
도치씨의 말을 듣는 순간 우아영의 눈에서 진짜 눈물이 딱 한 방울 빼꼼 솟았다. 한 방울의 눈물은 우아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달빛에 반사됐다. 그리고 목이 메었다. 허지만 도치씨는 우아영의 눈물은 발견하지 못했다. 쥐눈이콩알만한 우아영의 눈물을 발견할 만큼 달빛이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영아!”
“조뇽하라며 왜 부떠요?”
목이 잠겨 비틀어진 우아영의 비음에 도치씨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갯바위에 그냥 눕더니 금방 감기 들었구나? 목소리가 왜 그래?”
우아영은 감기라는 도치씨의 말에 더 쭈그러든 비음으로 대꾸했다.
“흐으으응. 괜딴아. 냅뚸!”
“괜찮긴? 목소리가 깨진 나팔소리 같은데.”
“괜딴때도.”
그 순간 우아영은 금속성지퍼소리를 들었다.
“찌이익!”
놀란 우아영이 눈을 번쩍 떴다.
도치씨가 자신의 가슴을 가로질러 전봇대처럼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낚시복의 바지지퍼를 주루룩 내리고 있었다.
우아영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왜 그래? 도치오빠.”
“가만있어봐!”
도치씨의 육중한 명령이 우아영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고, 우아영은 재갈물린 경주마처럼 갯바위에서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우아영이 갯바위에서 일어나기 전에 도치씨가 다른 한 손으로 우아영을 제자리에 찍어 눕혔다.
우아영이 방금 똥 눈 강아지처럼 두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지마. 안 돼! 싫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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