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재조명 8
성철대종사의 포교관 “법당 가서 삼천배 올려라. 그라면 만나주꼬마.” 성철스님의 ‘친견조건’은 대한민국 사람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일화다. 이런 스님을 두고 오만한 괴짜스님이라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가 무슨 청와대나 되느냐’, ‘절에도 인의 장막이 있느냐’는 등 방문객들의 항의도 잇따랐다. 스님은 그러나 “(삼천배의) 근본은 나(성철스님)를 찾지 말고 부처님을 찾으란 의미”라고 못박았다. 부처님을 정말로 뵈려면 참회의 방편으로 삼천배는 해야한다는 설명이다. “부처님께 절하는 것은 기도인데 내가 이익을 주지 못하는 대신 기도를 통해 이익을 얻으라는 뜻이제. 절할때는 그냥 하는 게 아이고 자기가 아닌 남을 위해 하라 이 말이다. 남 위해 삼천배 하면 그 사람도 심중에 큰 변화가 온다 아이가. 그리되믄 그 뒤부턴 절하지 말라 해도 절을 하게 되고 남 돕는 생활을 하게 된데이. 내가 뭣이 도도하고 잘났다고 날 보려면 삼천배 하라카겠나? 허허…”〈1982년 1월1일자 중앙일보 법정스님과 대담 中〉
부처님 사랑 일깨운 ‘3천배 친견’
절은 불공하는 곳이 아니다. 불공을 가르치는 곳이 절이다. 앉아 있는 부처(불상)만 부처고 밖의 부처(중생)는 부처가 아니란 말인가. 불좌에 앉아 있는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부처라는 것을 말해준다. 삼천배를 마치고 스님 앞에 앉으면 늘상 듣는 법문이다.
스님은 ‘삼천배 포교전략’을 통해 참회와 자기환기의 수행법을 일깨워줬다. 인간에겐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 있는 법. 스님은 그런 생명과 능력을 지닌 자아를 개발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라고 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경남 통영 안정사 윗 산자락에 초가삼간의 토굴(천제굴)을 지어 수행하던 스님은, 이 때부터 40여년간 ‘삼천배 포교정책’을 폈다.
스님은 평상시 “젊은 불자들이 새로운 불교, 대중 불교, 인간의 종교를 창조하는 데 역군이 될 것”이라며 청년포교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1965년 대학생불교연합단체인 대불련의 구도(求道)부 젊은이들이 8시간만에 삼천배를 마치고 당시 성철스님이 주석했던 문경 김용사를 찾았을 때도 이틀간 스무시간에 걸쳐 주옥같은 법문을 설했던 스님이다. 서울대 재학생으로 당시 김용사 구도정진에 참여했던 본지 이진두 논설위원은 “큰스님 아래서 화두를 받고 정진한 이후에 3명이 출가했다”며 “고된 정진속에서 맛본 환희심을 지금도 잊을 수없다”고 말한다. “그 날 큰스님은 새벽에 떠나려는 대학생 일행을 불러모아 화두를 일러주고 참선공부를 하라는 간절한 당부를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일주문 밖 멀리까지 배웅한 것도 모자라 바위 위에 걸터앉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셨어요.” 그 시절 스님을 시봉했던 상좌 원택스님의 회고다.
청년포교에 남다른 애정
대불련 젊은이 찾아오면
언제나 주옥같은 법문
어린이엔 가없는 사랑
‘천진불 유희 삼매’에 빠져
삼천배에 기력이 떨어져 잠시 낮잠이라도 청하면 “낮에 자는 제자는 썩은 나무토막”이라며 불호령을 내는 스님이지만, 스님도 한량없이 관대하게 대하는 유일한 상대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다. “어린이는 내 친구라. 그애들은 거짓을 모른다 아이가. 그래 어떤 때는 어린애들이 오면 춤도 추게 하고 노래도 부르게 한데이. 그게 바로 천진불의 유희삼매(遊戱三昧) 아니겠나…” 이처럼 스님의 포교는 특별하거나 어렵지 않다. 있는 그대로 여기고 자신을 바로 보며 남을 위하면서 살라는 경책들이다. 백중기도 중 신도들이 새참으로 먹다 버린 수박 찌꺼기에서 벌건 수박속살을 발견하고, “기도하지 말고 싹 다 가든지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은 수박을 다시 꺼내 먹든지 하라”며 대호통을 친 ‘사건’도 백련암에 알려진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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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성철스님은 어린이를 유달리 좋아했다. 명성여고생들에 둘러싸여 앉아있는 성철스님. | 1981년 정월 초하루, 해인사 향봉스님은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전국 주요 사찰에 계엄군이 투입된 ‘10.27 법난’으로 종단 안팎이 어수선하던 그 시절 향봉스님은 “갈수록 중노릇이 어렵다”며 성철스님에게 법문을 청했다. 이 날 스님이 설한 ‘중노릇’의 진면목엔 스님의 포교관이 뚜렷하게 명시돼 있다. “예전의 부처님 말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어떤 도적놈이(云何賊入) 나의 가사 장삼을 빌려 입고(假我衣服) 부처님을 묘하게 팔아(裨販如來) 자꾸 여러 가지로 죄만 짓는다(造種種業)’고… 삭발염의 하고 가사 장삼 입고 도(道)를 깨달아 광도중생(廣度衆生)할 생각은 아니하고 세속적 명예나 재색(財色)에 눈이 어두워 판단력을 잃고 사는 승려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으니, 진정 통탄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처음 입산할 뜻을 굳히고 다질 때의 초발심으로, 정각에 이르는 그날까지 청빈과 인욕으로 자기 극복의 정진력을 키워라. 널리 부처님의 바른 법을 펴고 길잃은 중생들의 이정표가 되겠다는 각오를 날이 갈수록 새로이 다져야 한다 이 말이다.”
-성철스님이 제안한 ‘法師’제도 1981.12.21 불교신문에 게재
불심 깊은 재가자에 교육
법사 양성… 포교일선에
〈법사제 관련 글 전문〉 불교가 사회 저변에 확대되기 위해서는 불교가 대중화돼야 한다. 그래야 불교가 사회적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하자면 포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비구승니만 갖고는 안된다. 기독교의 목사들처럼 결혼을 하면서도 평생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불법을 사회에 펴고자 하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법사제도를 통해서 양성하여 포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법사양성은 일차적으로 승가대학에서 가르쳐 배출하고 나중에는 법사 양성을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법사라 해도 지식만 가르치면 안되고 이들도 신심과 원력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법사는 오계 및 보살계만 받고 비구승을 보좌하여 포교와 교화를 담당한다. 기본사찰의 주지승은 될 수 없고 포교당의 관리는 맡길 수 없다. 비구승으로 있다가 법사가 되고자 할 경우에는 환계법을 실시하여 법사자격이 있는 자는 법사가 된다. 대학생불교연합회 출신 등 일반 대학 졸업자가 법사가 되고자 할 때는 법사자격고시를 합격하면 1년 수련을 거쳐 법사가 된다. 타종단의 승려(대처승)가 본 종단의 법사가 되고자 할 때는 그 자격심사를 거쳐서 법사로 인정한다.
스님은 참고로 1979년 집계한 가톨릭과 기독교 교세를 비교했다. 성직자 수는 신부 4300명, 목사 2만7000명, 성당 2300개 교회 2만1000개, 천주교 신자 110만명 개신교 신자 600만명.
다음은 ‘성철대종사의 사회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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