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딥시크'(DeepSeek)가 내놓은 AI 모델 ‘딥시크 R1’의 쇼크가 예상보다 거세다. 오픈AI인 챗GPT로 전세계 AI계를 석권하려던 미국은 60여년전 '스푸트니크'의 악몽을 되새기고 있다. 스푸트니크는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발사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우주항공 분야에서 멀찍이 앞서 간다고 생각했던 미국에게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는 너무나 큰 충격(스푸트니크 쇼크)이었다.
그로부터 70년을 2년 9개월쯤 앞두고 딥시크가 미국을 강타했다. 딥시크가 고성능 반도체 칩을 사용하지 않고 저비용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가상의 적국인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제한해왔던 미국 정부도, AI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던 미국의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들도 쇼크에 빠졌다. 'AI 독점이 깨졌다'는 IT업계의 평가는 미국에게 가장 큰 충격이다.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엔비디아(Nvidia)는 물론, 챗GPT 개발자와 협력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중심으로 한 IT관련 회사들의 주가는 떨어졌고, 오픈AI는 자사 데이터를 딥시크가 도용(盜用)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갓 취임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딥시크의 성공이 미국 산업에 경종을 울렸다"고 경고했으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더욱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모두 미국이 받은 충격을 반영하는 현상이자 목소리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사진출처:트럼프 페이스북
◇"중등교육 시스템이 승패 갈랐다"
미국의 수출 통제로 고성능 반도체 칩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중국은 어떻게 '딥시크 쇼크'를 만들어 냈을까? 미국에 '스푸트니크 쇼크'를 던진 소련(러시아)의 IT 개발자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브콘닥테(VK)와 인기 비밀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잇달아 개발한 파벨 두로프는 딥시크 쇼크의 원천을 중등교육에서 찾았다.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두로프는 29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딥시크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어떻게 이처럼 빨리 미국을 따라잡았는지 놀랐다"면서 경쟁이 치열한 중국 중등교육 시스템을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중국의 알고리즘 창의력 향상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며 "중국 학생들은 오랫동안 국제 대회에서 수학과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다른 국가 학생들보다 앞서 왔다"고 지적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사진출처:인스타그램
그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중등교육 시스템은 서방 국가들보다 우월하다. 중국은 학생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지만, 서방은 학생들의 성적및 등급 공개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억제한다. 학생들을 압력이나 조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뛰어난 학생들의 사기와 성취욕을 떨어뜨린다. 승리와 패배는 동전의 양면인데, 패자를 제거하면 승자도 함께 사라진다"고 썼다. 나아가 미국식 중등교육 시스템의 급진적인 개혁을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서방은 점점 커지는 중국의 기술 지배력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그는 "중국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IT개발자들이)큰 성공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된다"며 "중국이 과거 소련의 교육 모델에서 학생들간의 치열한 경쟁 원칙을 차용한 게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중국의 IT개발자들은 고성능 칩의 부족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알고리즘 최적화를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는 주장이다. 딥시크는 앞서 모두에게 자료를 개방하는 메타(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의 '라마'와 같은 오픈소스 시스템을 기반으로 AI모델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 측은 이같은 주장을 믿지 않는다. 미국 MS의 보안 전문가들은 지난해 가을에 포착된 오픈AI의 API(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데이터 유출을 딥시크 측의 데이터 도용으로 의심하고 있다. 오픈AI는 AI서비스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 API를 판매하고 있는데, 일부 이용자가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데이터를 빼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오픈AI가 자사 API의 중국 판매(접속및 사용)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딥시크가 해외 사용자로 둔갑해 데이터를 빼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오픈AI는 29일 딥시크가 자사 데이터를 훔쳐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픈AI도 초기에 다른 회사의 지적 재산(데이터)을 불법적으로 사용했다는 비난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다.
◇챗GPT의 킬러 '딥시크'
많은 전문가들은 딥시크를 '챗GPT 킬러'로 부르기 시작했다. 챗GPT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대체로 수행할 수 있지만, 거의 무료이며, 유료서비스도 훨씬 싸다. 또 모든 소스를 오픈해(오픈 소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가성비도 뛰어나다. 딥시크는 최신 모델 하나를 개발(교육)하는 데 560만 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챗GPT는 최소한 수억 달러가 든다. AI 모델 훈련에도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 칩이 쓰였다. 비슷한 성능의 AI 모델 개발에 고성능의 최첨단 칩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고성능 칩의 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추락한 근본 이유다.
딥시크의 성능에 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딥시크의 AI모델이 챗GPT에 비해 덜 심층적이고 정보 소스 검색에서 유연성이 떨어지며, 기능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딥시크가 창의적인 작업에 더 잘 대처하고, 다양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는 반박도 있다.
분명한 것은, 딥시크의 출현은 AI시장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다. 저비용으로도 챗GPT에 뒤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접근법을 처음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딥시크로 용기를 얻은 AI개발자들이 속속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경우, 글로벌 AI 환경은 달라지고, 획기적인 기술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AI모델 경쟁은 주로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5000억 달러 규모의 대형AI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Stargate)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오픈AI는 소프트뱅크(SoftBank)와 오라클(Oracle) 등과도 협력할 계획이다. 나아가 미국 전역의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차세대 AI를 지원하기 위한 물리적, 가상 인프라'를 구축할 작정이다.
중국의 움직임도 미국 못지 않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세계적인 중국 IT 기업인 알리바바(Alibaba)는 새로운 모델인 Qwen2.5-Max를 선보였다. 알리바바 측은 이 모델이 챗GPT와 딥시크보다 우수하며, 잠재적인 경쟁자인 Arena-Hard, LiveBench, LiveCodeBench 및 GPQA-Diamond 보다 기능이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이미 인터넷에서 사용가능하다고도 했다.
AI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인류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나는 우려도 나온다. 오픈AI의 보안 전문가 출신 스티븐 애들러(Stephen Adler)는 "AI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며 "인간을 넘어서는 일반 인공 지능(AGI)을 개발하려고 시도함으로써 큰 위험을 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