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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아침에
2023.1.25
며칠 전 부터 강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급강하하고 항공편이 결항되어
설연휴를 마친 귀성객과 여행객들이 발이 묶이고
농산물 출하도 되지않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습니다.
마늘출하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제주에 와서
이토록 많은 눈이 내린 백설의 광경을 처음 보았기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산책을 했습니다.
거의 발목까지 덮히는 눈을 처음으로 발자국을 내며
밭 사이로 난 길을 돌아다녔습니다.
조금 동쪽하늘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어두운 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려고 밟고 다니면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습니다.
원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어릴 때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었습니다.
60년 만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나다
2023.4.14
며칠 전(4월 10일)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하신 신부님이신
초등학교 선생님의 8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동창대표 4명이 직접 참석하여 만남을 가졌지만
나는 사정이 여의치 못해 참석치 못한 아쉬움이 많았지요.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신학원 졸업생들과 2박 3일 제주를 방문하는데
시간이 되면 한 번 만나 차라도 하며 이야기를 하자는 말씀과 함께~
그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이틀 째인 14일 오후 3시까지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묵고계신 이시돌 피정의 집에 전화해서
숙박하고 계신 신학원 졸업생 중에 예약하신 분의 전번을 받았습니다.
신부님과 직접 통하하여 저녁식사가 예정된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찍 서둘러 출발하여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지요.
기다리는 동안 옛날 4학년 시절을 다시 되새김질 하면서~~
오늘 몸이 불편한 아내와 내일 부활2주 제대꽃꽂이 꽃을 사러 시내에 다녀왔지요.
꽃을 사고나서 동문시장에 잠시 들리자 하여 들렸는데
아내가 신부님 선물용과 일행들이 먹을 오메기떡을 샀습니다.
신부님 만나면 드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나는 용돈 좀 드리고 집에 열려있는 하귤을 드리려고 했는데
선물이 풍성해졌습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자 신부님이 타신 차가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시는 신부님을 발견하고 다가가 인사를 하자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축하 동영상에서 보셨기에 그렇겠지요.
신부님과 손을 맞잡자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만나자 마자 저에게 주실 책을 들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하루'라는 책입니다.
8순 기념으로 사제생활 하시면서 쓰신 성서영성강의 글 모음입니다.
신부님의 삶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안쪽에서 신부님이 친필로 쓴 글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이름을 몰라 저보고 적어넣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음식점 들어가기 전에 앞에서 신부님과 사진을 찍고
예약된 테이블로 가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신학원 졸업생 모임 회장님이 내 자리를 신부님 바로 앞에
앉도록 배려해 주셔서 신부님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바로 제 소개를 하시고 나서
저에게 한 마디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일행들은 어떻게 60년 전 일을 기억하느냐며 놀라워했고
1년 가르친 선생님과의 만남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술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차를 운전해야 하기도 하고
신부님도 술을 자제하고 계셔서 음료수로 대신했습니다.
2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은 고향이 용인(서리) 이라고 합니다.
본적은 용인이지만 성장하기는 수원에서 했다는 이야기~
사범학교시절 공부를 잘 해 시험을 쳐서 서울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지만
사범학교 성적이 좋아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고
교편경력이 몇 년되면 바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 때 어느 신부님의 권유로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동창들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으로 계시던 때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보고싶고 궁금한 동창인지, 선배인지 확실치 않지만
적동부근에 살던 친구 집을 방문하시고는 가족모두가 건강상태가 좋지않았는데
특히 그 친구(이름을 기억 못하심)가 위태로워 자전거에 태워서
30킬로가 넘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 몇 번을 넘어지면서
수원도립병원에 갔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도착해 보호자가 20세도 안된 청년이라 사유를 물어보아
학교선생이라며 그 학생가정에 대해 말하자
치료비도 받지않고 학생 영양관리하라며 돈도 주었답니다.
선생님이 떠난신 후 그 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해 하셨습니다.
신부님에게 용돈을 드리자 무척 고마워하시며
식사자리에서 봉투를 보이시며 자랑하셨는데
그 모습이 동심으로 돌아가신듯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거의 자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저는 먼저 일어났고
일행중 대표자에게 가지고 간 하귤과 오메기떡을 건네면서
보관방법 등을 설명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오메기떡을 드시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최고의 오메기떡을 주셔서 하나씩 먹으면서
감사인사를 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집에 도착해 잘 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신부님께 잘 도착했다는 전언을 했으며
신부님은 사진도 잘 나왔다고 흐뭇해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주님과 함께 한 기쁜 날이었습니다.
선생님 아니 신부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저희와 함께 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딸 생일날 단상
2023.4.19
오늘은 무남독녀 딸 유나의 생일이다.
정기적인 검진을 하고 딸 생일을 함께 축하해준다던 아내가
검사 후 곧바로 입원을 했다.
어제 검사 후 폐렴이 있어 응급실에서 하룻 밤을 지낸 후
오늘 간호병동으로 입원을 한 것이다.
딸의 생일을 챙기기는 커녕 두 돌이 안된 딸도 사위에게 맡기고
엄마의 입원 등 수속하며 분주하게 보내서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다.
그래도 생일 축하금을 조금 보냈더니 엄마 병원비에 보탠다고 한다.
나도 서울에 올라가 딸과 교대로 병 간호를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간호병동은 환자를 돌보아주는 분이 있고
면회나 환자방문이 금지되어있어 제주에 머물며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딸이 엄마 배속에 있을 즈음인 1982년
회사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때가 기억난다.
그땐 책상배열이 입사서열 순으로
가장 신입이 맨 첫째 줄, 그리고 맨 뒤에는
과장, 부장이 앉았지요. 즉 앞 사람의 뒷통수를 보는 격이지요.
관리자가 자리를 비우면 우리 신참들은 일하다가
뒤돌아 앉아서 마주보며 수다를 떨며 졸음을 쫒기도 했는데
이른 봄 어느 날, 출산을 앞둔 3명이 수다를 떨었지요.
내가 제일 먼저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임신이 되어
나보다 늦게 결혼한 2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농담으로 내가 아들을 낳으면 '성인' ,
딸을 낳으면 '내리'라고 짓겠다고 하자(지성인, 지내리)
부자집 귀공자같이 생긴 빈**씨가
나를보고 지화자나 지겨워로 짓는 것이 좋겠다고 공격,
나는 네가 아이를 낳으면 (빈)대떡 이라고 지으라며 반격했지요..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안동출신의 권**씨가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웃길래
너는 아이 이름을 (권)태기라고 지으라고 말하며 즐겁게 웃던 생각이 납니다.
결국 나는 4월 19일 딸을 ,
빈씨는 5월 16일 아들,
권씨는 6월초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부활대축일을 지내고 다시 시작한 성경쓰기와 함께
3개월 동안 방치하였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었습니다.
나는 어떤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는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기분전환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입원으로 착잡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달래기위해
열심히 밭에 나가 일도 하고 성경을 쓰면서
아침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보냅니다.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2023.4.30
4월 18일 6개월 마다 하는 정기적인 검진을 하고
딸 생일을 함께 축하해준다던 아내가
검사 후 곧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검사 후 폐렴이 있어 응급실에서 하룻 밤을 지낸 후
딸 생일날 일반병실이 없어 간호병동으로 입원을 한 것입니다.
딸의 생일을 챙기기는 커녕 두 돌이 안된 딸도 사위에게 맡기고
엄마의 입원 등 수속하며 분주하게 보내서 고맙고 미안한 생각입니다.
그래도 생일 축하금을 조금 보냈더니 엄마 병원비에 보탠다고 합니다.
나도 서울에 올라가 딸과 교대로 병 간호를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간호병동은 환자를 돌보아주는 분이 있고
면회나 환자방문이 금지되어있어 제주에 머물며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시는 많은 분들이 기도로 격려해 주셨지요.
아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안부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다는~~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아내와 전화로는 통화할 수가 없어 카톡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어제 딸과의 통화에서 제주도의 자연풍광을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오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와서
정원과 텃밭의 사진을 찍어서 보냈습니다.
같이 있을 때 느껴보지 못한 그리움이 묻어 납니다.
그리고 짧지만 모든 것을 함축한 대답을 받았지요.
어제(4.27)까지만 해도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해 잡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잘 잡히지를 않고 또 다른 바이러스들이 침투해
언제까지 입원할 지 불투명하다는 의료진의 말에
5월 6일 성모의 밤 행사가 있어 준비도 해야하기에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건강이 우선이니 밥 잘 먹고
이 기회에 건강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라고 했습니다.
성모의 밤 행사는 다른 분과 함께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그런데 다음 날 주치의가 오셔서 피검사와 기타 검사결과를 보고는
이틀 후 4월 29일(토) 퇴원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루 사이에 확연히 다른 환자의 상태 판단에 대해
의아해 하면서도 한 편 주님의 도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공동체 반모임
2023.4.27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11.2)
모든 성인은 의로운 삶을 사셨기에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정화를 위한 연옥 영혼들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지상교회가 기도를 바칩니다.
위령의 날에 교회묘지, 공원묘지, 성직자 묘지 등에서
세 번 위령 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위령의 날에 드리는 세대의 미사 중에서 사제는
한 대를 개인적인 지향으로,
또 한 대를 죽은 이를 위해,
나머지 한 대를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합니다.
이 세 대의 미사전례 주제는 ’죽은 자를 위한 청원’입니다.
이 주제의 배경에는 ’죽음의 엄숙한 현실’, ’육신의 부활’,’
그리스도의 심판’, 그리고 ’영원한 생명’ 등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주제가 깔려 있습니다.
특히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여
정성껏 기도하는 교우들에게는
연옥 영혼에게 양도될 수 있는
전대사(죄의 잠벌을 모두 사면함)가 주어집니다.
서양에서는 위령의 날에 한국인의 추석 성묘나 시제처럼
대거 묘지방문을 나섭니다.
이 세상과 죽음 후에 맞는 세상은 다르지만
서로 기도로 통교하는 것이지요.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습은
구약시대에도 있었고(마카베오 2서 12,45),
초기교회 때 미사성제를 드린 예(2세기 Tertullian)도 있으며,
13세기에는 로마에서 전례에 반영되었습니다.
위령의 날은 998년 클뤼니(Cluny)수도원의 오딜로(Odilo)원장이
산하 수도원에 한 해 한번 이날을 지내도록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는 피렌체공의회(1437)에서 확정하였고,
종교개혁 이후에도 트리엔트공의회(1563)에서 다시 밝혔습니다.
금년에는 성당 공동 묘지 벌초작업과 미사를 같은 날 했습니다.
묘지는 신창성당에서, 야외미사 광장과 제대는 고산성당에서
오전 7시부터 나누어서 벌초작업을 하고,
11시부터 위령미사를 거행했습니다.
매년 벌초작업과 미사에 참여하시는 교우들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네 분 신부님께서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돌아가시지 말고
한분도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기를 기원하기도 하고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 Hodie mihi, Cras tibi ) 라고 하시며
항상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생각하며
오늘을 열심히 기도하며 충실히 살라고도 하셨습니다.
또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도 하셨습니다.
금년에는 바람이 불지 않고 맑은 날씨로 야외제대를 차리는데
별 애로사항이 없어 이 또한 은총이었습니다.
벌초와 미사에 참여해주신
신창성당, 고산성당 교우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주교구 2회 신앙체험 수기 수상
카톡선교
2023.11.20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입상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국내 성지 순례 중이라 참석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금년에는 아내와 함께 나눔의 시간 및 시상식에 갔다 왔습니다.
입상자 시상에 이어 사랑상을 받으신 자매님의 신앙생활 체험발표를 들었습니다.
이어 주교님 말씀과 담당사제 말씀을 듣고 회장인사도 있었습니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근처식당에서 친교 및 나눔의 시간을 했지요.
나눔시간도 모자라 평협(평신도 사도직 협회)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분의 임원들과 찻집으로 옮겨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되었습니다.
주일 저녁 약간 피곤했지만 유익한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용수공소 2023년 사업 결산 보고
2023.12.7
용수공소 2023년 사업결산보고 및 친교시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총회장을 포함 30명이 참석
공소 운영에 대한 대화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용수공소 친교시간
2024년 6월
용수공소 2024년 친교시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두분 수녀님, 총회장님을 포함 40명이 함께 하셨습니다.
매월 소공동체 모임을 갖고 있지만
1반과 2반으로 나누어져 있어
함께 모이기는 쉽지 않기에 작년 12월에 함께 한 후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것입니다.
새로운 분들과 오래간만에 보는 형제 . 자매님들과 저녁을 먹으며
공소 공동체 모두가 하나되는 친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민구의 임종
(24.6.16)
한 달 전부터 민구가 밥도 남기고 산책 시에 숨을 헉헉 거린다.
이제 8살이 넘어 기력이 딸리는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3주 전부터는 밥도 먹지않고 앉아만 있고 짖지도 않으며
산책도 볼일만 보고는 들어오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림에 있는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니 심장사상충이란다.
약을 6일치, 그리고 또 6일치를 지어다가 소고기와 생선
그리고 북어국을 끓여서 약과 함께 먹였다.
차차 기력을 찾더니 조금씩 걸음걸이도 빨라지고 짖기도 했다.
증세를 말하고 다시 10일치 약을 지어와서 먹이는데
3일 전부터 아예 밥을 먹지 않고 물만 먹고는 누워있다.
기운이 없어 이곳 저곳 옮겨다니며 늘 업드려 있다.
약도 1일치만 남아있어 내일(월) 병원을 방문하려고 하고는
씨마늘 작업을 하면서 수시로 민구를 보니
신음소리는 내지 않지만 복수가 많이 차고 괴로워하는 듯하다.
5시경 마늘작업을 마치면서 다시 민구를 보러갔는데
나무 밑에 누워있었다.
민구를 불러도 대답이 없어 가까이 가 보니
약간 입을 벌리고 누워있는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고
파리 몇 마리가 날아다녀 민구를 만져보니 이미 숨져있었다.
민구를 키우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2016년 어느 날, 아내가 제주시 5일 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장을 보면서 이리저리 둘러 보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 5마리를 팔려고 가지고 나와
한 마리도 팔지 못하고 계셨는데 거저 1마리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제일 똘똘하지 못하고 한 쪽에 혼자 있던 놈을
5,000원을 주고 사온 것이다.
이름은 짱구, 친구가 있었기에 구자 돌림으로 민구로 지었다.
민속5일장에서 사온 것이란 뜻으로.
사실 나의 족보이름은 봉구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구자 돌림 4형제가 있었던 것이다.
2018년 12월, 20년간 키운 짱구와의 사별
2021년 3월, 18년간 함께 했던 친구와의 사별
제주에 이사온 다음 해인
2016년 봄부터 2024.6까지 8년간 함께 한 민구와의 사별
그러고 보니 3년마다 사별을 한 셈이다.
집안에 들어와 샤워하고 저녁을 먹자
민구와의 추억이 생각나며 슬픔이 밀려온다.
항상 이별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겪을 때마다 같은 감정이다.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 밤은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소주 한 잔 하고
친구와 함께한 삶을 회상하며 정리해 본다.
하느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주님 민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성경필사의 은총
2024.9.21
가장 힘든 광야시기인 1997년 12월 ~ 1999년 4월 서울 문정동에서부터
삼성동 아파트 입주 때까지 첫번째 썼지만 완필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 주님과 함께 시련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했다.
2000년 통신성서 연수회에서 남편을 잃고 방황하던 70대 자매님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좌절과 외로움을 극복했는데
당시까지 7번을 필사했다는 말을 듣고 동기부여가 되었다.
10년 후인 2009년 여주에서 필사를 완필했고
2019년 제주에서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10년 주기로 필사를 하게 된 것도
우연이라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라는 하느님의 뜻인 것 같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2019년 1월 ~2019년 11월 제주에서 완필을 했다.
제주생활 5년 차 영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고
아내의 건강문제, 딸 아이의 난임(결혼 8년) 문제 등 어려움을 느꼈다.
이 때도 성서와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고 귀한 손녀를 얻게 되었다.
2023.3.11 부터 바로 4번째 성경쓰기를 시작했다.
목표는 금년 11월 말까지 신약 완필이다.
이번에는 신약성경부터 시작하기로 해서 마태오 복음부터 썼다.
눈이 침침해서 글자가 어른거리지만 손가락은 아직 힘이 있어
더 늦기 전에 하느님의 사랑의 편지를 읽고 쓰기로 한 것이다.
대자가 방문해서 성경쓰려고 받쳐놓은 책받침대를 유심히 보고는
자신들도 사용하고 싶어 집에 가서 만들어 사진을 보내왔다.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고 하자,
대자 자매님이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해서
좀 더 작게 다시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커서 좋다고 하자 선물로 주어서 성경을 올려놓으니
안정감이 있고 너무 좋았다.
이번 필사는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4년 만에 다시 주님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라는 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있어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필사를 한지 3개월 후 왼쪽 손목 골절상을 당했다.
한 여름에 깁스를 하고 문진으로 필사지를 눌러가며
오른손으로 필사를 했다.
그리고 집안에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쉬지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필사를 했다.
2023년 말에 신약완필을 하고 축복장을 받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순간은 마음이 평화로웠다.
금년에도 구약을 계속 필사하여 10월 말 완필하려고 했지만
진도가 빨라 9월20일 경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추석에 손녀가 온다고 하여
오기 전에 끝마치려고 낮에도 밤에도 필사하여
9월 5일에 4번째 성경필사를 완필하고 제본을 마쳤다.
이제는 눈도 침침하고 손도 부드럽지 않아
글씨를 쓰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성경을 넘기는데도 손가락이 건조해 책장을
여러 번 시도한 후 넘기곤 했다.
"돌아보니 모두가 은총이었네" 하는 말과 같이
성경을 필사하는 동안 나에게는 주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은 매일 매일 나의 양혼의 양식이기에
이제는 펜으로 필사대신 컴퓨터 자판으로 필사하기로 했다.
용수 1,2반 9월 소공동체 모임
24-09-26
오늘 용수 1반과 2반이 같은 날 소공동체 모임을 했다.
매월 모임을 갖고 복음나누기, 이웃 사랑나누기를 하고 있지만
오늘 처음으로 사진을 올린다.
2반 모임에는 루시아 수녀님도 참석하셨다.
▼ 2반 소공동체 모임
고진옥 안나 자매님댁
▼ 1반 소공동체 모임
고봉선 발비나 자매님댁
아내와 함께하는 병상일기
2024. 12.11
어제(12.10) 아내가 퇴원 후 1주일 만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전날 딸이 내려와 도와주었기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아내도 병원을 다녀온 후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나날입니다.
30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유아원에 다니는 손녀와 함께
여러 번 딸이 병원에 와서 간병을 했습니다.
다행히 후반 2주 동안은 1인실로 옮겼기에
가족이 함께 숙식을 했습니다.
병원생활이 불편했을 손녀가 재롱을 피우며
할머니의 기분을 북돋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앙병원이 너무 좋다면서~
불편한 병원 생활이었지만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제주공항 관제탑을
이스라엘 공항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가족이 성지순례와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으로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생활하며
우리의 신앙을 다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능동의 힘이 없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때
비로서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퇴원을 한 후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의료진들이 멀리 있기에 무슨 일이 있을까
밤 낮으로 여러가지 건강체크를 하면서
식욕을 돋우기 위해 나름 식단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나의 혈압이 너무 높아
가까운 병원에 가니 많은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다며
15일치 고혈압약을 처방해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주일 동안 다행히 큰 이상이 없어
어제 병원에 다녀 온 것입니다.
퇴원하자 마자 아내는 귤을 지인과 친척에게 보내자고 했습니다.
매년 했던 일이지만 금년에는 특히
자신을 위해서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은인들에게
특히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를 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친척, 수녀님들, 대자.대녀들, 그밖에 고마운 분들께
택배를 발송했습니다.
며칠 전 부터 경황이 없을 텐데 귤을 보내주어 고맙다며
바울리나 건강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그런 소식을 듣고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매일의 생활을 아내와 함께 집에서 보내야하기에
주일에만 가까이 있는 김대건신부님 표착지 성당에서
나 혼자 미사를 다녀옵니다.
본당에 못 간지도 40일이 되어
본당에서 맡고 있는 독서단장, 해설단장 직을 내려놓고 싶어
전례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년 1월까지만이라도
계속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직접 봉사는 하지 못하더라도
분과 사목계획서 작성, 월별 봉사자 명단 작성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만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단조롭고 불안한 생활이지만
내일일은 내일에 맡기고
임마누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오늘 하루 이 순간을 순명하고 겸손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점차 제 마음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아내도 병원을 다녀온 후 나아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밤낮 없이 애쓰는 의료진들의 수고에 대해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기에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겠지요.
죽음 아니 영원한 생명이 있는 주님의 집 본향을 향해
하루 하루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살 것을 다집해봅니다.
기도의 힘
24.12.12
아내의 갑작스런 병원생활로
걱정과 좌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상태를 지인들에게 알려
기도 부탁을 하고 싶었습니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아내의 소식을 알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폰으로 개별적으로 부탁하는 것은 번거롭고 자세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당 카페에 글을 작성하고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아내의 상태에 대해 아시고는
친척, 수녀님들, 본당 교우들, 대자.대녀,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기도하시겠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계시지만
특별히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도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몇 번의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도 다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의 은총이었음을 확신합니다.
기도해 주시고 지금도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립니다.
그동안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의 카톡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빠빠 알현할 때
우리 은인들 강복해달라고 직접 청하고 편지도 드렸습니다
바울라자매님 스테파노형제님 위해 많이 기도합니다
저희 창립과정에서
결코 잊을수 없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 꼭 기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새출발
2024.12.13
어제 기도의 힘을 작성하면서
전화상으로 말씀해 주신 수녀님의 말씀에 공감되었습니다.
그 수녀님의 아버지가 위암 판정으로 투병하실 때
어머니가 간병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편 간병을 하다 당신도 암에 걸려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후 3년을 더 사셨다고 합니다.
환자를 돌봄도 중요하지만 돌보는 사람의 건강도 중요하다며
저에 대한 건강도 신경쓰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내가 건강해야 아내를 돌볼 수 있고
가족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겠지요.
투병생활을 하는 아내도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기에
내가 건강관리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울리나에게 힘을 줄 수 있겠지요.
요즈음은 잠자리에 들면서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으며 참을 청합니다.
<믿음의 3가지 기둥>이라는 김웅열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나의 건강관리를 위해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해안도로로 향했습니다.
제주에 처음 입도한 후 매일 1시간씩 걷던 길인데
정말 오래간만에 걷습니다.
주위는 아직 깜깜하고 바다도 희미하게 흰파도만 보이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손에 묵주를 쥐고 기도하면서~
걷다보니 김대건 신부님 상이 보여 잠깐 멈춰 사진을 찍고
계속 걸어서 1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걷고 나니 마음도 상쾌하고 식욕도 일어났습니다.
오늘 들은 김웅열 신부님 강론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면
믿음의 3가지 기둥을 붙들고 살자는 것입니다.
1. 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2. 주님은 나의 이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3. 주님은 나의 앞길을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 3가지 기둥을 붙들고 살면
'야훼이레' 즉 주님께서 나의 앞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위의 말씀은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나의 의지에 반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야훼이레' 를 확실히 믿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아내에게 준 선물
2024.12.15
아내가 퇴원한 후 주로 침대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성실하게 달란트를 활용하며
주님의 도구로 살아왔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조금 쉬면서 앞날을 예비하라고 준 시간이므로
오로지 건강관리에만 힘쓰며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무슨 위안을 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대꽃꽂이 봉사를 해 온 것을 생각하고
그동안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선물로 주기로 했습니다.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프린트해서 제본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글을 써서 선물로 줬습니다.
나의 사랑 바울리나에게 !
아내 바울리나는 2010년 전례꽃꽂이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경기도 여주에서 서울 강남 가톨릭 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전례꽃꽂이를 배우러 매주 다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 되었군요.
그때는 매일미사 드리던 수녀원 꽃꽂이를 했지요.
2010년에 이미 제주에,
그것도 김대건 신부님 표착지인 용수리에 살고 싶어서
마음은 제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 상본을 기도상에 놓고 항상 기도했고
일반과정 졸업 꽃꽂이 주제도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였지요.
2015년 제주에 이사와서도
매주 서울 서강대학교로 꽃꽂이를 배우러 다닌지 2년,
폐질환이 있음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계속 수업과 꽃꽂이를 계속하였고
드디어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수업이 재개되어
2021년 최고 지도자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주님께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꽃꽂이 봉사를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바울리나는 꿋꿋이 이겨내고
제대 앞에서 죽는 영광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봉사에 충실했고,
꽃 봉헌금이 부족할 때는 가족들이 보태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제대 꽃꽂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주님께 봉헌한 작품들을 모아
조그만한 기념책자를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감사를 전합니다.
2024.12
영원한 친구 지학남 스테파노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아내의 기쁨인 용수리
24.12.17
오늘 아침식사 후 한 달 만에 대중목욕탕에 갔습니다.
탕에서 묵주기도 2단을 하면서 성찰하듯이 때를 불리고
고해하면서 죄를 씻듯이 묵은 때를 밀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해안도로로 오면서
새벽운동 때 보지못한 바다풍경을 몇 장의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그토록 살고싶어 했던 용수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여주에 살 때부터 김대건 신부님 표착지인 용수리에 살것을 소망하며
기쁨에 넘친 생활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막상 용수리에 이사와서는 여러가지로 분주한 생활을 하고
본당이 신창성당이기에 소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 병원을 다녀온 후 다시 용수리 생각이 난 것입니다.
앞으로는 아내도 용수리 성지에 더욱 관심을 갖을 것입니다.
용수성지에 도착해서 아내를 위해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제대에 안치된 김대건 신부님 유해앞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야외에 설치된 성모상 앞에서도 기도를 바쳤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타고 오시던 라파엘호가 난파와 침몰의 위험에서
기도했던 기적의 패에 새겨진 성모님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바다를 즐겨바라보던 포인트로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 자주 바다를 바라보던 곳입니다.
나도 그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내가 된 듯이~
오후에는 당산봉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새벽에 운동하는 것 보다 햇살이 있을 때 하는 것이
덜 춥고 풍경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에는 묵주를 들고 중간중간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제봐도 탁트인 바다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줍니다.
특히 차귀도의 모습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지만
아름답습니다. 특히 일몰풍경이.
가톨릭에서는 향주삼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신덕, 망덕, 애덕을 말합니다.
이를 기초덕 또는 대신덕이라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용어는 추상적인 단어로 마음에 잘 와닿지 않습니다.
신덕(믿음)의 알맹이는 순명이라고 합니다.
순명은 나의 이성과 합리적인 경향과는 부딪칩니다.
순명은 하느님, 교회, 내 양심의 소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순명했을 때의 결과는 '야훼이레' 즉 주님께서 선하게 예비하십니다.
믿음(순명)의 조상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명하여
외아들까지 바치려고 하신 아브라함이지요.
또 성모님 또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하고
순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성부께 순종하신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도 계십니다.
망덕(소망)은 기쁨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한도 끝도 없이 목마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영적인 기쁨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무조건 베푸는 사람에게 옵니다.
무조건 주면 하느님께서 기쁨이라는 선물로 채워주십니다.
애덕(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
예를 들어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고
수양아들로 삼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십자가에 달려서도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 신자로서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가족의 힘
24. 12.18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힘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손녀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자식이 딸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손녀도 결혼한 후 8년 만에 얻은 귀한 손녀입니다.
오랫동안 간절한 기도끝에 얻었기에
아내는 늘 손녀생각을 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몇 번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 마다
병원을 찾아와 재롱을 떨며 할머니를 위로한 모습에
기운을 내고 이겨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수시로 서울집과 제주병원을 오간 딸과
집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직장을 다니고
딸 혼자 제주에 있을 땐 손녀를 돌본 사위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경황이 없어서 그런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야 단출한 가족이지만 모두가 협력한 결과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매일 손녀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아내는 힘을 얻습니다.
12월 24일 제주에 온다는 말을 듣고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며 손녀도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기간은
4살 까지가 전부라고 하지요.
갓난아기 때 웃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이 즐거워하고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고 이것저것 호기심으로 묻고
재미있고 관심있는 말은 '한번 더' '한번 더' 해달라고 조릅니다.
손녀 요안나가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가끔은 고집을 부리며 애를 먹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쁨을 주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말합니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
가족이 없다면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
안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과 애정과 격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겠지.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든든합니다.
전지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지켜봐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기뻐할 수 있고
이겨내리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아내와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부부의 정을 뒤늦게 나누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몇 편으로
나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행복
있잖아,
지금 내가 아주 행복하다는 걸
너는 모르지?
지금도 네가 나를 보고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지나가면
난 행복하다.
지금도 내가 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어서
난 참 행복하다.
이런 걸
너는 모르지?
아끼지 마세요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희년을 맞이하며
2024.12.20
2025년은 희년에 해당되는 해다.
희년의 시작은 교황님께서
성베드로 대성당 입구의 성문을 여는 예식과 함께 시작된다.
이 성문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라고 말씀하였는데, 그때 그 문을 상징한다.
이 성문은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가 희년 때만 열린다.
2025년 희년의 구체적인 시작은 2024년 12월 24일로,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 성문을 여실 것이다.
우리 가족도 아기예수님과 함께 다가오는 희년을 맞아
희망을 갖는 순례자의 길인 주님의 길을
끈기있게 걸어갈 것을 다짐해 본다.
2025년 희년을 위해 발표된 칙서의 이름은
『스페스 논 콘훈디트 Spes non confundit』다.
번역하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가 된다.
이 문장은 바오로 사도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했던 말씀이다.(로마 5,5)
'희망'은 우리가 순례자로서 품고 있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년의 로고를 보면
'희망의 순례자들'이란 표어가 갖는 의미를 잘 헤아릴 수 있다.
로고를 보면, 먼저 인류를 형상화한 네 사람이 서로를 껴안고 있다.
연대와 형제애를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이 붙잡고 있는 아랫부분은 닻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닻은 그리스도의 현존과 희망을 상징한다.
우리네 인생은 흔히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그 인생의 바다를 그분의 현존과 그분을 향한 희망 안에서
그리고 형제자매들과의 연대 안에서 순례의 항해를 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순례자다.
우리는 나그네나 방랑자가 아니다.
방랑과 순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둘 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공통되지만,
방랑은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것이다.
한편 순례는 목적지가 분명하기에 그 목저지를 향한 방향도 뚜렷하다.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또 하나는 죽음의 길인데, 둘은 크게 다릅니다.
생명의 길은 이렇습니다.
첫째, 여러분을 지으신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둘째, 여러분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여러분이 당하길 원치 않거든 남에게도 하지 마십시오."
(디다케 1,1-2)
우리는 결국 한 길밖에 갈 수 없다.
생명의 길을 가거나 죽음의 길을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허망한 생으로 끝나버리는 죽음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그런데 주님을 모르는 이들, 신앙이 없는 이들은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걸어가는 확실한 '그 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을 걸을 때 중요한 것은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해서 옮겨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인간은 안주 하고픈 욕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많다.
나도 2017년 산티아고길을 걸었다.
보통 하루에 25~30킬로를 걷는다.
이렇게 일주일을 걷고 나면 몸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
그동안 굳게 세웠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적인 질문이 올라온다.
이제라도 당장 중단할까, 별의별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돌아갈까 말까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커다란 팻말에 "그대 왜 걷는가?" 란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극심한 무력감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순례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한다.
'그 길'을 걷는 순례자인 우리가 만약 걸음을 멈추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퇴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따르면,
"하느님을 향해 나가지 않는다면 곧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뒷걸음질은 한 걸음 퇴보로 끝나지 않는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한 번 두 번 빼먹고 나면
어느새 아예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사에 두 번 빠진 것은 단순히 한 번 빠진 것의 두 배가 아니다.
그동안 미사에 참석하면서 붙었던 열정을 죽이는 것이다.
인내는 언제나 열정을 능가한다.
열정은 항상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열정은 고난과 박해 앞에서 쉽게 쭈그러진다.
인내는 다르다.
인내는 우리가 끝까지 우리의 갈 길을 가게 만드는 동력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그런데 인내할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에게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 송봉모 신부님 글 인용 -
아기 예수님의 선물
24.12.24
위령성월 시작과 함께 투병생활을 하며
바울리나가 간절히 기다리던 성체를 54일만에 모셨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조금씩 호흡기능이 좋아지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아기 예수님이 오시면서 미사참례와 성체를 모시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성탄절인 오늘 손녀가족과 함께 기쁜성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족도 아기예수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신부님 미사 강론에서 예로니모 성인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성서를 모르면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다" 라고 하신 예로니모 성인이
어느 날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도자로 돈은 별로 없지만 누가 봉헌한 돈이 좀 있다고 하면서
그거라도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기예수님은 나는 필요없으니 꼭 주고 싶으면
그 돈을 가난한 이웃에게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꼭 예수님께 선물을 하고 싶다고 간청하자
아기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대가 정말로 내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선물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다.
그대의 모든 죄와 욕망을 나에게 다오.
내가 가장 기뻐하는 선물은 바로 그것이란다.
그대의 죄와 욕망만큼 내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선물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나와 우리 가족의 모든 죄와 욕망을
예수님께 드리고 임마누엘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미사 후에는 성지에서 마련한 선물도 받았습니다.
제대 구유앞에서 요안나와 함께 사진도 찍고
화창한 날씨에 성당앞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점심에는 코다리 찜을 사가지고 와서
가족이 함께 맛있는 식사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회를 사위가 떠와서
나도 오래간만에 소주도 한 잔 했습니다.
매년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맞이했지만
올해는 특별히 기쁘고 의미있는 성탄절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이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앞길을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잎마늘 작업
2025.1.23
오늘부터 풀마농(잎마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8년간 1월부터 2달 간 새해피정겸 잎마늘 작업을 했지만
금년에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마늘은 거의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한 밭입니다.
아내의 병원 입원한 후로 밭을 가꾸지 않은 결과입니다.
아래 사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 [天壤之差] 입니다.
아내와 한 몸처럼 계속 생활해야 할 것 같아서
농사도 다른 분에게 부탁하려고 생각해서
금년은 수확을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농사를 지었다는 실적을 농협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직불금 수령(연 130만원)과 양도소득세 감면의 증거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분들의 시선도 의식했습니다.
농사꾼의 아들로서 작년까지는 밭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농사도 잘 짓는다는 칭찬도 들었는데
밭도 관리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격지심도 들었습니다.
또한 마늘에게도 미안했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악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수확도 하지 않고 버린다면 마늘이 너무 슬퍼할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밭에 풀을 뽑으면서
몇 상지가 되든 작업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작업대도 대충 흙이 튀지 않은 정도로만 갖추고
첫날 1상자를 작업하여 출하했습니다.
나에게 잎마늘 작업은 피정과 같습니다.
혼자서 작업을 하다보니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지만 앞으로의 일도 생각합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보니
또 나의 지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라디오를 청취하기도 하고 신부님들 강론도 듣습니다.
두 달 가까이 작업을 하기에 평상시 할 수 없는
한 달 이상의 피정을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금년에는 기간이 짧아 마늘 피정의 효과는 별로 없지만
대신 새로운 신부님의 동영상을 발견하고는
총 29편 중에서 매일 한 편씩 시청하며 피정합니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소확행 신앙이야기’로
시와 음악 그리고 그림이 곁들여진 체험담을 통해
성경말씀은 물론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영상을 발견하게 된 것도
아내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받은 은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앞날을 선하게 예비하신다는 것을
다신 한 번 깨닫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에 입단하다
2025. 2. 26
제주에서 10여 년의 길고 긴 휴가 아닌 휴가를 끝내고
2025년 2월 12일 다시 성모님 군단의 단원이 되었습니다.
서울 병원진료를 마치고 내려온 바울리나도
2월 26일 같은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다시 재 입단한 과정도
성모님의 전구와 주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울리나의 갑작스런 병원 입원과 함께
회복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영세를 받고 성모님 군단에 입단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성모님의 군단에 입단하다
2000년 5월
1980년 세례를 받고, 8년 후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신앙생활은 겨우 주일만 지키는 생활을 하다
회사생활의 어려움과 함께 내 삶에 시련이 닥쳤습니다.
1년 정도 힘들게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온 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나의 신앙의 멘토인 조도밍고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끈질긴 형제의 권유로 6개월 만에 항복하고
레지오에 입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모님 군단의 일원으로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특히 성가복지병원에서 매주 토요일 병원봉사한 것이
나의 어려웠던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봉사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봉사를 통해 주님에게서 받는 은총이 훨씬 크다는 것이지요.
사도들의 모후Pr. 서기를 4년 하고나서
꾸리아 부단장을 하다가 여주로 이사했습니다.
여주에 가니 역사가 오래된 평화의 모후Pr.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어
문의해 보니 4간부 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1년 반 동안 레지오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전리에 정착해 매일 새벽미사를 참례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고 주민들과도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가진 평화의 모후Pr. 이
간부할 단원이 없어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재창단을 위해서 우리 부부가 간부로 참여하기로 하고
2007년 3월 7일, 9명의 단원으로 재창단을 했습니다.
이후 북여주 성당이 여주성당에서 분가하게 되어
2008년 7월 6일 북여주성당에 Cu.를 창단하게 되었고
초대 꾸리아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창립당시 5개 Pr. 행동단원 40명이
2010년에는 8개 Pr. 행동단원 59명으로 성장했습니다.
드디어 2025년 2월 12일 샛별Pr. 에 입단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룬 것이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샛별도 해체되기 일보 직전 현 단장이신 마리아 단장께서
2000차가 다 된 샛별이 해체되는 것이 안타까워 단원을 모집하여
겨우 4간부를 채워 2014년 11월 2000차 주회를 했습니다.
오늘(2월26일) 아내도 입단하여 7명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런 일로 인해 다시 레지오에 입단한 것입니다.
처음 레지오를 대하는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쉬지않고 성실하게
레지오 단원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아침기도와 묵주기도를 드리며
신앙생활이 나태해진 대자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오랫동안 쉬고있는 베드로 형제를 찾아 볼 예정입니다.
주보와 생활성서 송봉모 신부님의 책을 가지고~
민태원의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라고 했듯이
나에게도 "성모님의 군단"이라는 말이
그동안 잔잔하던 내 마음을 고동치게 합니다.
청춘의 피는아니지만
성모님의 힘으로 다시 시작하자!!
2025년 사순시기 실천계획
2025.3.7
재의 수요일에 본당에서 사순시기 실천표를 받았습니다.
또한 새로오신 신부님께서 발행하신 십자가의 길도
전 교우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매일 실천할 항목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실천표를
부활때 제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집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실천표대로 실천하면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부활을 준비할 것 같았습니다.
레지오 재 입단한지도 한 달이 안된 상태에서
성모님께 활동보고 할 거리도 많아 부활선물을 미리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잎마늘 출하를 오늘(3월 7일) 끝내고
내가 따로 실천할 것을 정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잎마늘 마지막 출하를 했습니다.
운송하시는 기사님들께 조그마한 감사의 선물과 함께~
아래 두 사진을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마늘 작업이 목표가 아니고 검질(잡초)을 맬 목적으로
시간나는 대로 마늘 작업을 해 16상자를 출하했습니다.
경매가 120만원 정도로 운송비와 농협 수수료를 제하고
아내 통장에 들어온 돈은 100만원이 조금 안 됩니다.
토지 소유자가 아내기 때문에 일은 내가 하지만
수입은 주인인 아내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나는 착한 머슴이라고 하지요~ㅎㅎ
밭에 남아 있는 마늘은 내년 농사를 위한 씨마늘입니다.
중간에 빈 공간에는 참깨를 뿌릴 계획입니다.
오늘 아내 바울리나와 2개월 만에 병원에 갔습니다.
주치의(심장내과 과장) 선생님은 몸이 많이 좋아졌다며 기뻐했습니다.
얼마 전 서울 성모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처방전을 전달하고
겹치는 약은 제외하고 처방해 주셔서 약을 구입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입맛이 없다는 바울리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했을 때
아귀찜이 먹고 싶다해서 사다 주었는데 잘 먹었습니다.
그래서 내일 사순 1주일 제대꽃꽂이 할 꽃을 사고
아귀찜집에 들러서 포장해 집으로 가지고 와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남은 것은 저녁에 먹기로 했지요.
이런 것이 포장의 묘미지요.
일주일 전에 종합 검진한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집에 오는 길에 한림에 있는 병원에 들렀습니다.
검진 때 대장에서 용종 7개를 제거했기 때문이지요.
다른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고
용종 조직 검사도 이상이 없다고 했지요.
단 용종이 잘 생기는 편이기 때문에
2년 마다 종합검진을 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말과 함께~~
7년 전에 목표로 세웠던 3가지를 매년 사순시기마다
노력했지만 3가지를 모두 달성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체중감량과 욱하는 성질 내지 않기였지요.
금년에는 독한 마음으로 재 도전합니다.
아내가 퇴원 후 많이 회복되어
미사참례도 하고 레지오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건강상태도 이상이 없어 다행입니다.
위 사진 중 오른 쪽 아래가 사순시기 달성해야 할 3가지 목표입니다.
♥ 위그림 성작위 성체 그림은
매일 미사를 참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초저녁 잠 때문에 새벽미사(월,목)만 참례했는데
레지오에 가입하고부터 저녁미사(화,수,금)도 참례하겠습니다.
♥ 가운데 OOK은 '욱'의 영어발음입니다.
저는 욱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고해시마다 목록에 늘 올라갑니다.
어떤 신부님은 그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마라고 하시면서
잘못을 하면 그때마다 상댕방에게 용서를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격은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는다면서~~
아마도 그 신부님도 저와 같은 성격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순기간 동안 또 노력을 해 봐야지요.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나으니까요.
우리 본당 신부님께서 제안하는 15초 운동을 활용하렵니다.
특히 3번 소리치기전에 3초 숨을 고르면서~~
♥ 오른 쪽 65 숫자는 체중을 65킬로로 감량하자는 것입니다.
7년 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항목입니다.
그래서 좀더 가능한 목표치인 68킬로로 변경하였습니다.
참고로 현재 체중은 71~72킬로 입니다.
이제 마늘작업도 끝났고 건강체크도 끝났습니다.
매일의 실천표를 매일 체크하고 실시하며
대자들도 챙기고 딸 가정과 우리 부부의 성화를 위해서
희망차고 기쁜 부활을 맞기위해 힘차게 나아가렵니다.
울뜨레아를 마치고
(2025.4.6)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지 25년이 된 후
정말 오랜만에 울뜨레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꾸르실리스따 동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25년 전 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회합순서나 노래도 잘 기억나지않고 서툴렀지만
꾸르실리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5월에 3명의 자매님들이 교육에 참가하십니다.
신부님께서 직접 빨랑까 샘플을 가지고 오셔서
작성요령까지 설명하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셨기에
그림솜씨가 없는 저에겐 큰 부담이지만 최선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아내가 갑작스레 병원에 한 달 입원하고 난 후
좀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자고 부부가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레지오에 재입단을 하고, 쁘레또리움 단원이 되자고 했지요.
그리고 울뜨레아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2000년 11월16일 서울에서 꾸르실료를 수료했으니 벌써 25년차 입니다.
당시에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본당에서 추천을 받았을 때 곧바로 '예' 하고 응답했습니다.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기때문입니다.
교육분과장과 구역장을 하고 있을 때라,
본당및 구역피정을 계획하고 당연히 나도 참여했습니다.
타 본당 피정도 찾아다닐 정도였고, ME도 다녀왔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3박 4일이라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월차, 연차를 사용하여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회사도 중요했지만 하느님을 더 앞자리에 둔 시절입니다.
그 당시에 신앙이 한층 자라고 성숙해진듯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을 나누던 나의 갈릴래아인 셈이지요.
여주에 있을 때는 모임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지만
제주에 와서는 2022년 서부지구 울뜨레아에 참여하고
이번이 두 번째 참석한 것입니다.
울뜨레아 회합을 마치고 집에와서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
뜨겁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만났던 교육당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출발 전부터 비밀에 부쳐서 전혀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웃지못한 해프닝도 많았고, 의외의 일에 놀라기도 했고
감동으로 눈물 콧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교육이 끝나면 세상일보다 제일 먼저 예수님을 첫 자리에
늘 모시고 생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교육을 마치고
선서를 하고 실천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끝나는 날, '뛰어라' 에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체험담을 발표하고
응원나온 본당식구들과 한 몸이 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수줍어서 대중앞에 서는 것을 주저했던 사람들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무대로 뛰어 올랐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상태이기에 용기가 났던 것입니다.
본당에서는 매월 울뜨레아 모임을 갖고
매주 월요일 새벽미사 후 팀모임도 했습니다.
본당에서 여러가지 봉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런 법칙(?) 일 정도로
꾸르실리스타들의 역할이 대단했고, 한편으론 시기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작성한 실천표를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며
제자들에게 "기억하라" 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우리의 신앙여정에서도 기억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매 미사에 참례해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내가 직접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중에서도 꾸르실료 체험은 주님의 사랑을 느꼈던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그 열기는 식었지만 늘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에
울뜨레아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교육이 있을 때마다 현장에 응원하러가서
내가 교육받던 때를 기억하렵니다.
그래서 다시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울뜨레아(Ultreya) !
전진 !
쁘레또리움 단원이 되다.
25.4.16
4월 9일 레지오 회합을 마치고 단장님이
아내에게 쁘레또리움 단원이 되어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본당에 쁘레또리움 단원이 한 명 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고 토요일 빼고 매일미사를 하기 때문이지요.
토요일만 미사가 자신이 없었고(제대꽃꽂이 봉사) 건강도 문제였기에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집에와서 쁘레또리움 단원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함이 관면된다는 말에
나도 쁘레또리움 단원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에게도 힘이 될 것 같았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부부가 함께 노력하면 더 좋을 것 같았지요.
여주에서 2막 인생을 보낼 때
매일 수도원 미사를 다녔기에 쁘레또리움 단원이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기도단체 들도 살았기에
평화의 모후 Pr. 에는 쁘레또리움, 아듀또리움 단원도 많았습니다.
얼마전 레지오에 재입단한 후 잔잔하던 내 마음이 고동치듯이
쁘레또리움 단원이 될 결심하고 나니 다시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청춘의 피는 아니지만 성모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늘 가슴이 뛰는 삶을 살것을 다짐합니다.
성주간이 시작되는 바로 전날
소성무일도 아침기도, 뗏세라(묵주기도 5단)를 바쳤습니다.
오늘 제대꽃꽂이 때문에 미사참례(11시 성지)는 어렵지만
이제부터 새 출발입니다.
첫댓글
아름다운 인생 한 페이지
참 오랜만입니다
세잎 클러버 님
제주도 덥겠지요
건강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