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꽃신 / 박선숙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후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시려고 커피와 에크타르트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무심코 던진 시선에 한 할아버지가 보였어요. 키오스크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서 계셨습니다. 회색빛 모자를 쓰고 회색 잠바를 입으신 자그마한 분이십니다. 순간 너무나 놀랐습니다. 내 눈을 의심해야 했지요.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분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어요. 가까이 다가가니 음식을 주문하는 중이었습니다. 원하는 메뉴가 보이지 않는다고 도움을 청하십니다. 찾고 있던 메뉴는 다음 페이지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거였어요. 정성을 다해 원하는 식사 메뉴를 주문해 드렸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런 주문 잘 못해.”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하고 헤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무척 후회했어요. 왜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차를 돌려 다시 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을 달래주려 나타나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광고하고 싶었어요. “이런 분을 찾습니다.”라고.
어릴 적 장이 서는 날이면 아버지를 하루 종일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침에 떠나신 아버지는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이 되어야 돌아오셨습니다. 당신도 농사일에서 잠시 벗어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을 거예요. 주막에서 막걸리도 한 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날은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하셔서 기분 좋아 돌아오십니다. 나와 동생들은 궁금해 했어요. 오늘은 자전거 뒤에 무엇을 싣고 오셨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설날 앞 장날에 다녀오시면 네 남매 설빔을 사오셨습니다. 따뜻한 잠바, 빨간 내복, 장갑, 귀마개, 털신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잠잘 때 머리맡에 두고 설날을 손꼽았습니다. 딸 하나인 제게는 예쁜 꽃신을 안겨 주시곤 했습니다. 첫째 딸이라 더 귀여워해주셨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표현하자면 딸 바보셨지요. 동네 어르신들은 서울 아이처럼 옷을 입고 머리도 짧게 자르곤 했던 아이로 기억하시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서울 모 초등학교와 결연結緣을 맺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저를 학교 대표로 데리고 가셨나봅니다.
당신이 떠나시던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절을 하며 아버지를 기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이방인 같았어요. 며칠 동안 마치 지인의 일에 참여한 사람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묵묵히 장례 절차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말없이 웃고 계시는 당신을 바라본 게 다입니다. 당신이 떠나셨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요.
화장터 가족실에 앉아 당신이 재가 되는 시간을 기다릴 때였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당신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더 이상 모습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현실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나요. 눈물샘은 논바닥처럼 마르고 갈라졌습니다. 여린 마음 살에 새겨진 슬픔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비틀거렸습니다. 세상에 의미는 다 사라져 갔습니다. 앞으로 그 어느 곳에서 당신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흐르는 시간에 작은 조각배처럼 그저 떠밀리어 갑니다. 너무 멀리 가신 길 남극일까요. 북극입니까. 단 한 번 일지라도 뵈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싶습니다. 한동안 세상엔 온통 당신만 그려져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와 조용히 생각하니 당신과의 이별은 눈물이 아니라 따뜻한 미소였습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사랑이라 여깁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편안한 표정을 지으셨지요. 평소처럼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시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을 한순간 한 페이지에 다 담아놓으셨습니다.
다시 다가갈 수 없지만 아버지 당신은 제 속에 언제까지나 머무실 집을 지어주셨습니다. 마음속 깊이 화인火印 된 영애永愛. 이 세상 끝까지 가도 지워질 수 없는 가볍지 아니한 바위 같은 온정溫情을 남기고 가셨지요. 다 주어도 모자라서 언제나 다스한 손을 내밀어주신 분. 그 마음 가슴속에 오래 채워 두렵니다.
짊어지고 가야 할 남아있는 생生의 길 바라봅니다. 삶을 찬미(Amor fati)하기 위해 죽음을 기억(Memento Mori)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뜻을 헤아리며 깊고 넓은 생生에 힘을 내어 닻을 달고 노를 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 뒤에 고운 신 달고 달려오시던 아버지. 그 먼 길 마다않는 마음 하나, 당신의 이름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꽃신은 온 생生 화로火爐가 되어줍니다. 거친 비바람 눈보라 맞서는 방패로 서주시고 사랑과 희망을 동이어 주시는 따스한 빛과 같은 분이십니다.
늘 평안하소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준 분!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