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인생 바위 같은 하나님(시109:21-31)
갈등
1. 해가 질 무렵 들판을 걸어가 본 적 있으십니까? 처음에는 해가 따뜻하게 비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 모습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집니다. 처음에는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어느새 길게 늘어져 내 몸보다 더 커 보입니다. 해가 더 기울면 그 그림자는 점점 흐릿해지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 순간“오늘 하루도 끝나가는구나.”확인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있습니다. 내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은 순간. 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순간. 사람들 속에서 나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은 순간. 오늘 시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23절,“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시인은,“나는 가난하고. 궁핍하고. 중심이 상했다”고 노래했습니다. 시인이 돈이 없어 가난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속이 무너졌습니다. 겉으로는 살아 있었지만, 속은 부서져 있었습니다. 시인은“나는 지는 그림자 같습니다.”“나는 메뚜기처럼 쫓겨납니다.”노래했어요. 시인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붙잡고 싶어도 붙잡히지 않는 삶. 서 있고 싶어도 밀려나는 존재. 중심이 없이 흔들리는 상태. 그는 자기 삶의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24절,“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그의 무릎은 쇠약해졌고, 몸은 야위어졌습니다.
2. 마음도 몸도 무너졌습니다. 사람이 정말 힘들면 기도할 힘도 없어집니다. 일어설 힘도 없고. 그냥 주저앉고 싶습니다. 시인은 스스로 버틸 힘조차 없었습니다. 25절,“나는 또 그들의 비방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사람이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인생이 비참해지는 순간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무너질 때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수군거립니다. 비웃어요. 판단합니다. 고개를 흔듭니다.“저 사람 왜 저래.”나는 힘이 없어서 무너져 있는데, 사람들은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구경합니다.
이때 시인이 하나님게께 물었습니다.“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데. 내 마음도 몸도 다 무너졌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요? 이건 단순한 고통의 문제가 아닙니다.“하나님은 정말 내 편이신가?”이 질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경험이 있는 분 계십니까? 마음이 무너지고.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버틸 힘조차 없을 때. 속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 분.“하나님 정말 제 편 맞습니까?”
갈등 심화
3.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26절,“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있고. 몸은 쇠약하고. 마음은 무너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기도합니다. 기도를 안 할 때는 그냥 체념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면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더 깊은 갈등이 올라와요. 27절,“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이 노래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인의 속마음이 있습니다.“하나님,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십니까?”
이 노래는 신앙이 없는 사람의 질문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부딪히는 질문입니다. 기도했는데 변화가 없을 때. 부르짖었는데 침묵이 계속될 때. 하나님이 계신 것 같은데, 너무 멀게 느껴질 때.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하나님,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십니까?”28절,“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향해 저주하고 있어요.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나는 기도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더 당당하지?”“내가 하나님 붙드는데, 왜 나는 더 작아지지?”“왜 악인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
4. 기도를 시작했는데 세상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하나님은 정말 내 편이신가?”이 질문은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동시에 진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건 알겠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런데“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가?”이게 문제입니다. 시인은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어요. 기도는 하고 있지만. 확신은 아직 아닙니다.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은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기도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기다려 보셨습니까? 그 기다림 속에서 이 질문이 올라온 적 없습니까?“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하나님이 정말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신가?”“정말 내 편이 맞으신가?”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그대로입니다. 내 상태도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시인이‘붙드는 것’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실마리
5. 그림자는 아무리 길어져도. 아무리 커 보여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이미 다른 곳에 있습니다. 시인은“나는 석양 그림자 같다.”고 노래했습니다.“나는 붙잡히지 않는 존재.”라는 말이에요. “나는 점점 사라지고.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그림자 같은 인생의 특징은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노래입니다. 내 마음도 내 상황도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흔들립니다. 어제 나를 인정하던 사람이 오늘은 나를 외면합니다. 붙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입니다. 시인의 노래를 보면 이“그림자”와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위”입니다. 바위는 어떻습니까? 움직이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떠나도 그대로입니다. 그림자는 빛이 기울면 사라집니다. 바위는 어둠이 와도 그대로 있습니다. 시인의 노래를 들을 때“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나요?”사라지는 그림자를 붙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바위를 붙들고 있는가요? 시인은 자기의 상태를 노래했어요.“나는 흔들립니다. 사라집니다. 무너집니다.”그의 기도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6. 이 노래는“나는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위이십니다.”시편에 바위-반석이신 하나님 노래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반석이란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내용으로는 보입니다. 시인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그대로입니다. 내 마음도 여전히 흔들립니다. 다만 그가 붙드는 대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바위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는 분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그림자를 붙들고 있을까요? 왜 여전히 사람의 말에 흔들리고. 상황에 흔들리고, 내 감정에 흔들릴까요? 시인의 싸움이 더 깊어집니다. 이 싸움이 오늘 우리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은 서 있는 자리가 계속 바뀝니다. 햇빛의 방향이 바뀌면 그림자의 위치도 바뀝니다. 조금 전까지는 오른쪽에 있던 것이 어느 순간 왼쪽으로 옮겨가고.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보였다가 사라져요. 그림자는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그림자 위에 서 있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 위에 서 보려고 하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 위에 서 보려고 하고. 내 감정이 괜찮은 날 위에 서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계속 흔들립니다. 어제 괜찮았던 마음이 오늘은 무너지고. 어제 나를 알아주던 사람이 오늘은 나를 외면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왜 나는 이렇게 계속 흔들리지?”
7. 이때 시인의 노래 속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알게 하소서.”이건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건 서 있는 자리를 바꾸는 기도입니다. 이전까지 시인은 자기 상태 위에 서 있었어요. 무너진 마음 위에. 흔들리는 상황 위에. 사람들의 시선 위에. 시인은 이제 이렇게 노래합니다.“나는 거기에 서지 않겠습니다.”시인은 새로운 자리를 선택합니다.“주의 인자하심 위에 서겠습니다.”인자하심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나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문제가 해결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시인의 발걸음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상황이 더 크게 느껴질까요? 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릴까요? 왜 기도하면서도 불안할까요? 이게 지금 시인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인자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옮겨 서지 못했습니다. 한 발은 바위 위에, 한 발은 여전히 그림자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흔들립니다. 우리도 혹시 그렇지 않습니까?
복음 제시
8. 오늘 본문을 노래한 시인의 탄식은 예수님에게서 완전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으셨고. 조롱을 당하셨고. 버림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어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우리를 살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의 오른편에 서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흔들립니다. 그림자처럼 연약합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내가 붙드는 분은 변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고백합니다.“주님이 내 편이십니다.”“그리스도께서 가장 어두운 자리까지 내려오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히13:5,“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기대
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흔들리고. 사라질 것 같고. 사람들 때문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분명히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가장 약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편에 서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림자로 끝나지 않아요. 하나님을 붙드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서게 됩니다.
상황이 당장 바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그대로여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입니다. 그림자 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서는 순간. 우리의 고백은 바뀌게 됩니다.“주님이 내 편이십니다.”그림자 같은 인생이라도, 바위 되신 하나님을 붙들면 다시 서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