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바다와 나란히 걷는 겨울 미식 1번지
▶속동 전망대 데크길
서해랑길 63코스 ‘천북 포구~궁리항’
겨울 여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미식기행이다. 특히 서해안 겨울바다로 향하는 식도락 여행은 별미에 대한 기대 속에 운치 있는 여정을 담보해줘서 더 즐겁다. 포구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황홀경 속에 침잠의 시간을 더 할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특히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고 있는 충남 보령, 홍성 등 천수만 일원은 겨울철 싱싱한 굴, 새조개, 간재미 등 별미가 한 가득이다.
마침 서해안을 아우르는 1800km 서해랑길, 그 중 보령 천북 굴단지에서 남당항을 거쳐 궁리포구로 이어지는 63코스(11.2km)는 겨울 미식 1번지로도 통하는 곳이다. 그 뿐인가. 호수처럼 잔잔한 천수만과 나란히 걷는 호젓한 해변길에서 ‘멍때리기’는 일상탈출의 해방감을 맛보게 해준다.
▶천북 자연산 굴은 뻘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씨알이 작고 쫄깃 짭조름하다. 포구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을 나가 굴을 채취해온다.
▶새의 부리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새조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겨울바다가 통째로 담긴 굴 미식의 성지
천북 굴단지(장은리 포구)
서해랑길 63코스의 출발지는 국내 굴 미식의 대명사격으로 통하는 천북 굴단지에서 부터 시작한다. 보령 오천항을 거쳐 오는 서해랑길 62코스가 장은포구 솔밭길에 다다라 천북 굴단지와 만나게 된다. 이곳은 고소한 굴구이 냄새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곳이다.
천수만 일원은 서해안 최대의 굴 산지로 굴이 제 맛을 내기 시작하는 12월을 기점으로 겨우내 미식가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천북면 장은리 굴 마을은 포구에 80여 곳의 굴 전문점이 늘어서 있는데 겨우내 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굴 구이는 벌건 화롯불에 달아올라 입을 살짝 벌릴 때 까먹는 맛이 일품이다. 짭쪼름 쫄깃한 게 굴 한 점에 싱싱한 겨울 바다가 통째로 담긴 듯하다. 딱딱 소리 내며 익어 가는 굴 구이 화로 주변에 앉아 나누는 정담도 여유롭다. 발품을 판 흡족한 대가다.
천북굴이 유명한 것은 천수만의 미네랄을 듬뿍 먹고 자란 자연산 뻘굴 덕분이다. 장은리 등 천수만 일원은 서해로 향하는 지천이 많다. 이는 해수와 담수가 고루 섞인 뻘이 발달해 굴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미네랄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다 보니 맛 또한 좋다. 특히 뻘에서 자라 일조량이 많은 것도 천북굴을 최고의 별미로 만들어 주는 요소다.
뻘굴은 물때를 맞춰 배를 타고 20여 분을 나가면 광활한 뻘에 마치 하나의 커다란 꽃밭을 연상케 하는 자생지에서 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천북굴은 주로 장은리 포구 앞바다에서 채취한 자연산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기 침체와 인건비 상승으로 온전히 자연산으로만 충당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길러낸 양식 굴도 함께 통용하고 있다.
굴단지에서 만난 천북수산 박상원 사장이 푸념한다. “코로나 땜시 죽겄시유. 손님이 예전만 못헌디다가 인건비는 올렀으니께…”. 그나마 2022년은 출발이 좋다. 새해 첫날, 코로나19 발생 이후 처음으로 내방객이 코로나19 이전 만큼 회복됐다고 했다.
서해바다 낭만 속에 불멍과 별미 요리를
홍성방조제~남당항
길은 천북 굴단지를 나서 홍성방조제를 지난다. 갯바람이 상큼하다. 방조제 주변이 바람독이어서 풍력발전기를 세워 뒀지만 움직임이 시원치 않다. 방조제 도중 만나는 수룡항포구부터는 홍성군 서부면이다. 포구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전망대는 낙조 감상과 자동차에서 잠을 자고 머무르는 ‘차박’의 명소로도 통한다. 서해랑길 63코스는 곳곳에 캠핑장을 갖추고 있어 서해바다의 낭만 속에 불멍과 별미 요리를 즐기는 캠핑족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서해랑길 63코스는 꽃섬을 지나 남당까지 그야말로 호젓한 해안길이 이어진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며 나를 채근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다. 천북 장은포구에서 1시간 20여 분 남짓, 근동에서 제일 번화한 홍성 남당항에 도착한다. 겨울철 남당항은 가을 대하의 빈자리를 새조개가 대신한다. 현대식 횟집타운 마당에는 새조개 석상도 우뚝 서있다.
새조개는 겨울철 서해안의 귀한 미식거리로 통하는데 겨울다운 추위가 닥칠수록 작황이 더 좋다. 12월부터 3월초까지 천수만 연안에서 형망(끌망) 조업이 이어진다. 새조개는 살집이 크면서도 부드러워 통째로 물에 데쳐 먹거나 구워 먹는데 입 안 가득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새조개를 수북이 쏟아놓고 껍질 까기에 여념이 없던 신일수산 사장님이 말한다. “씨알 좀 봐유. 이만하면 됐지 뭘. 올겨울은 작황이 그런대로 좋아유~” 흡족한 표정이다.
남당항 마당에 세워진 홍보탑에는 지난가을 열렸던 온라인 대하축제 입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절 축제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다. 하지만 이제 해가 바뀐 상황에서 철지난 입간판이란 어색할 따름이다.
남당항에서는 괜찮은 연계 관광코스가 있다.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죽도다. 이곳은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자연 친화적 섬이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고 갯벌체험을 할수 있는 데다 물이 빠지면 주변 부속섬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어 매력 있다.
▶풍차공원
▶천북포구 둘레길을 내려서면 서해랑길 63코스가 시작된다.
▶겨울 바다로 떠나는 별미여행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감은 있지만 낭만이 흐르는 여정을 담보해준다. 특히 서해안의 황금어장 천수만은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와 별미까지 맛볼 수 있어 근사한 겨울날의 추억을 꾸릴 수 있다.
‘멍 때리기’에 제격인 호수처럼 잔잔한 해안선
어사항~궁리포구
남당항을 지나면 작은 포구 어사항이다. 이곳에서도 새조개 맛을 볼 수가 있다. 포구의 노을 전망대는 온전히 바다와 교감하기에 좋은 곳이다.
느릿하게 20여 분 발길을 옮기면 이국적인 풍차모형물을 만난다. 서해랑길 63코스의 주요 기념촬영 포인트다. 풍차를 중심으로 작은 해변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호수처럼 잔잔하고 유려한 해안선이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멍 때리기에도 괜찮을 곳이다. 때마침 누군가 벤치에 놓아 둔 작은 눈사람은 사진 모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해안가의 캠핑장을 지나 30여 분 북상하면 속동전망대다. 호젓한 솔숲 데크길과 어우러진 해변이 운치 있다. 이곳 또한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인데 낙조 명소로도 권할만하다. 주변에는 갯벌체험관 등도 갖추고 있다.
속동전망대에서 해변을 따라 20여 분. 아담하고 소박한 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서해랑길 63코스의 종착지 궁리포구다. 물론 거꾸로 63코스의 출발지로 삼아도 좋을 곳이다. 쉬엄쉬엄 3~4시간, 반나절 코스로 딱 좋은 길이다.
한편 궁리포구는 마을 지형이 활처럼 생겨 궁리(弓里)라는 이름을 얻었다. 덕분에 멀리 천수만 A지구 방조제도 눈에 들어온다. 궁리는 낙조의 명소로 통하는 곳이다. 짧은 겨울 하루를 달려 온 해는 바다 건너 안면도 솔숲으로 사라진다. 포구에는 조류탐사과학관, 수산물웰빙체험관 등의 볼거리와 횟집,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열기, 박대, 우럭, 물메기 등 천수만의 생선들이 포구의 정취를 더한다. 판매도 하고 있어 산지 별미를 구할 수 있다.
궁리는 서해랑길 64코스의 출발점으로 천수만방조제를 건너면 간월암~창리포구로 이어진다.
여행메모
가는 길
승용차
*천북 장은리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IC~광천면 소재지~이정표 따라 장은리
*홍성 궁리포구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태안(안면) 방면~ 이정표 따라 궁리
대중교통
보령 천북
*버스 750번 버스(홍주여객)/ 광천 버스터미널~천북 장은리(1시간 소요)
*택시 광천시외버스터미널~천북 장은리(25분소요, 대략 2만 5000원)
홍성 궁리포구
*버스 270번 버스/ 홍성종합터미널~보령해양경찰서 궁리출장소 하리 정류장(1시간 30분소요)
*택시 홍성종합터미널~보령해양경찰서 궁리출장소(30분소요, 대략 3만 1700원)
궁리포구~천북 장은리(택시 15분소요, 대략 2만 5000원)
뭘 먹을까?
*굴구이 천북 굴단지에서는 한 광주리(4만 원)면 넷이서 실컷 구워 먹을 수 있다. 2인 2만 5000원. 달래양념장을 곁들인 굴밥(1만 2000원), 굴·조개칼국수(7000원) 등도 맛 볼 수 있다.
*새조개 샤브 남당항 전문 식당에서는 새조개 1kg(19~20마리/ 2인)을 7만 원에 맛볼 수 있다(단순 구입은 6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