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3신]천추千秋, 청사靑史를 아시지요?
‘근현대사 자료’ 콜렉터 선배께
최근에도 200여년 전부터 오늘날까지의 ‘각종 자료’ 모으시기에 여념이 없겠지요? 수집가蒐集家를 뜻하는 콜렉터collector가 직업職業인 선배를 처음 뵌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당시 짧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분이 있기에 ‘각종 역사의 퍼즐 맞추기’를 비롯해 지나간 시대의 문화, 생활, 예술 등을 재현 再現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쓴 기사의 제목이 아마도 <취미趣味가 특기特技로, 그 특기特技가 생업生業으로>였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지칠 줄 모르게 마련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전문가가 되면, 그 일이 결국 돈도 되고, 직업도 된다는 말은 선배의 사례로 봐도 진리일 것입니다. KBS ‘TV진품명품’의 근현대사 자료 감정위원으로 활약하는 선배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해박한 지식보다 콜렉터의 열정熱情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저런 취미가, 저런 특기가, 저런 열정이 있을까’자문自問을 해보게 됩니다.
엊그제 여주즙을 구해달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당糖이 그리 심하지는 않겠지요? 아무쪼록 평강하시기 바랍니다. 선배는 “나는 장사꾼”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막말로 뜻깊은 일 하면서 돈도 벌면 좋겠지요. 흐흐. 처음으로 쓰는 편지입니다. 여주즙을 보내드리며, 또 어제 『조선왕조실록』(김찬곤 지음, 사계절 2019년 발간) 개론서를 읽고난 후 선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선배는 역사歷史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단군檀君일 수도 있겠고, 신라 고려 조선 등 옛나라 이름이나 사서史書를 떠올리겠지요. 저는 ‘천추千秋와 청사靑史’라는 두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까닭은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역사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 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천년이 흐른 뒤 ‘전두환의 광주 헬기학살’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요? 저는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1천년까지 갈 것도 없이 10년 후, 아니 100년 후이면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겠지만 말입니다.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턱없이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선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실록’이야기를 몇 차례 나누어 들려드리려는 이유입니다. 조선은 어찌 됐든 500여년을 존속할만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실록’이라는 정사서正史書 때문입니다. 500년 역사를 글로 고스란히 남겨놓았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는 엄청난 기록물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종” 27대 임금의 묘호廟號를 줄여 노래처럼 만든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고 외우기도 했지요. 임금이 붕어崩御하면 후대 임금이 ‘실록청’이라는 임시관청을 설치, 선대 임금의 실록을 4∼5년에 걸쳐 만들게 합니다. 임금의 언행을 비롯한 왕실정치의 ‘모든 것’을 담았으며, 백성들의 삶과 자연현상까지도 기록했습니다.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1392∼1863) 동안의 국가 공식기록인 이 실록은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893권 888책(책冊과 권卷의 개념은 오늘날과 다릅니다. 권은 장章capter으로 1책 속에 보통 2∼4권이 들어있습니다), 총 글자수 5300여만자. 엄청나지 않나요? 불행히도 모두 한자漢字여서 대다수 ‘한문문맹자’들은 전혀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함께 1966년부터 국역國譯에 착수, 26년만인 1993년 완역하여 총 413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말의 70여%가 한자어漢字語잖아요. 그때 완역한 실록은 거개가 한자어여서 오늘날 우리가 읽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아예 사전에도 없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국역자들은 마지막 한문세대라 할 수 있어 그렇게 번역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2012년부터 새로 국역을 하고 있는데, 현재 번역률이 20%입니다. 지금의 번역요원과 예산으로는 완역까지 30년은 걸린다는군요. 말이 되나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우리보다 10년 빠른 1983년에 완역하여 새빨간 표지의 『리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360여권을 펴냈구요. 우리와 같은 성격의 사회과학원 소속의 「고전연구소」에서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의 주도하여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때 김일성의 특명으로 창경궁에 있는 『실록』 1질을 가져갔거든요. 당시 북한에서 내린 모든 공문 머리 부분에 “실록을 확보하라”를 문구가 써있는 것을 실제로 봤습니다. 김일성도 『실록』이 국보國寶인 줄은 알았는가 봐요. 게다가 그들이 표준말이라고 하는 ‘문화어’로 번역했다니, 당시에는 문화적 저력이 우리보다 나았던 모양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거시기하지만, 실록의 완역으로 인하여, 우리는 조선 472년 ‘역사의 전모全貌’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때 인기 드라마였던 신봉승의 「왕비열전」도 실록을 읽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숱한 사극이나 역사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실록』이야말로 ‘컨텐츠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한류韓類열풍의 원조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TV 드라마 「대장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엔 190여개 회원국에서 모두 방영되었다하니 말입니다.
물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있습니다만, 두 실록은 1935년 일본 총독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던 왕실관청 ‘이왕직李王職’에서 편찬한 관계로 왜곡 등이 심하여 국가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사서史書입니다. 두 실록도 번역은 되어 있습니다. 사실, 실록에 대한 총론만 해도 끝도 없습니다. 자꾸 너무 길어지기에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습니다. 실록은 무엇무엇을 자료로 누가 작성했으며, 사초史草가 무엇이고(가장家藏사초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못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사관史官이나 주서注書라는 벼슬아치의 위상이나 자세가 어땠는지(사관들의 ‘사신史臣 왈曰’ ‘논왈論曰’ 등의 사론史論 이야기만 묶어도 한 권으로 부족합니다)에 대해선 다음 편지에 서술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글도 장황하면 싫게 마련이니까요. 웹속에 얼마나 좋은 글들이 많은지 잘 아시죠? 카톡에만도 좋은 글들이 넘쳐 둥둥둥 떠다니건만, 실제 머리 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지 않나요? 말과 글의 홍수, 어쩌면 ‘공해公害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겠지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성어는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자못 큽니다. 하여 다음을 기약하며, 선배님의 건승을 빌며 줄입니다. 날이 많이 찹니다. 건강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월 18일
임실에서 후배 절합니다
첫댓글 그많은 얘기를 늘어놓으려면
방대한 자료가 필요할터인데
머릿속에 다 넣고 다니는 친구가 대단하다.
요즘 중고등하교도 비대면 수업이라 선생님들 강의 준비하느라 미치것다고 하소연하는데
누애똥구녕친구 모셔다 인터넷 강의 시키면 기통차게 잘할텐데
교육부에서는 뭐하고 계시는지 답답하다.
세계기록유산 강의하는 우천이 정말 멋드러지게 강의도 잘하드라.
꼭 들어야될 강의라서 고리타분한 역사를 싫어하는 나지만 세계 기록유산은 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