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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쿄 전자판의 ‘세이쿄 기프트’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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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信仰體驗)〉
연골무형성증과 투쟁 장애인 야구에서 분투
2023년 3월 5일
맹세를 가슴에 품고 무슨 일이든 전력투구
일본신체장애인야구연맹 이사도
【효고현 미나미아와지시(兵庫県 南あわじ市)】
오카모토 유지(岡本裕次, 40세, 현청년부장) 씨는 후생노동성(厚生勞働省)의 지정난치병인 ‘연골무형성증(軟骨無形成症)’과 싸우면서, 장애인 야구팀의 선수 겸 대표로서 분투하고 있다.
거듭된 시련이 고난에 지지 않는 마음을 키워 오카모토 씨를 강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 학회활동(學會活動)에 힘쓰는 것. 매일 그 기쁨을 되새기고 있다.
(1월 25일자 게재)
■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
장애인야구를 한 지 24년이 되었다. 키는 144cm. 작은 몸으로 배트를 날카롭게 휘두르며 3루수로 수비에서는 타구를 민첩하게 처리한다.
장애인의 플레이 스타일은 다양하다.
외팔 선수는 공을 잡자 솜씨 좋게 글로브를 벗고 순식간에 다시 쥐고 던진다. 지팡이를 힘차게 밀어내고 1루로 전력 질주하는 외다리 선수도 있다.
선수들은 각자의 핸디캡과 함께 살면서 팀 메이트와 서로 지지하며 경기에 임한다.
매년 전국대회와 4년에 한 번씩 세계대회가 있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수준 높은 플레이와 플레이의 다양함에 놀란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렇기에 경기에 승리했을 때는 더더욱. 기쁨은 한층 더 최고조에 오릅니다!”
오카모토 씨는 현(県) 서부의 타츠노시(たつの市)를 거점으로 한 사회인 팀 ‘아르카디아(Arcadia, 이상향)’에 소속되어 있다. 특별지원학교의 OB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장애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야구’가 모토다. 미나미아와지시에서 타츠노시의 연습장까지 차로 편도 2시간이 걸려 다니고 있다.
8년 전, 팀 대표에 취임했다. 대회의 운영과 멤버의 연락, 입단자 모집 등에 힘쓴다. 연령대도 넓어 팀에는 60대의 현역 선수도 있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을 유념하며 팀을 지탱해 왔다.
또 ‘일본장애인야구연맹’의 이사도 맡아 전국대회의 운영이나 회의로 다른 현에 가는 일도. 너무 바쁘기도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도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청년기의 맹세가 있었다.
■ 4년 반의 입원생활 ■
생후 얼마 되지 않아 ‘연골무형성증’ 진단을 받았다. 머리가 크고 손발이 짧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다리 변형이 진행되어 양다리에 장구(裝具, 보조기구)를 차고 통학했다. 달리기는 항상 꼴찌. 수영장에서는 자신만 발이 닿지 않아 동급생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일도.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망설인 끝에 뼈연장 수술을 결정했다.
뼈를 절단하고 고정기(固定器)를 장착하는 대수술. 1일 1mm 페이스로 늘려간다. 수년간에 걸친 입원이 수반된다고 한다.
오카모토 씨는 극심한 통증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던 일도 종종 있었다.
마음이 환해지는 것은 주말, 반드시 아버지 구니오(国雄, 70세, 장년부원) 씨가 아와지시마(淡路島)에서 오사카의 병원까지 페리를 갈아타고 차로 맞이하러 온 일.
집에 돌아오자, 불단 앞에 “유지가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오기를”이라고, 할머니와 어머니 키요미(きよみ, 70세, 여성부원) 씨의 간절한 소원이 기원 항목에 있었다.
가족의 기원과 애정을 버팀목으로 오카모토(岡本) 씨는 수술과 힘든 재활을 견뎌냈다.
입원 생활은 합계 4년 반에 이르렀지만, 예정보다 1년 이상 일찍 퇴원. 키를 20cm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진학한 양호(養護)학교(현 특별지원학교 고등부)에서 야구부에 들어갔다.
계기가 되어 준 것은 기숙사의 같은 방 선배. 하지(下肢)마비로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 포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정상인보다 배의 노력을 계속하는 선배의 모습에 오카모토 씨는 이끌려 “나도”라며 야구공을 쫓았다.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도 생겼다. 친구는 항상 야구부 연습을 교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심장병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어. 야구를 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남들에 비해 비굴해져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친구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넋을 잃고 견딜 수 없었지만 열심히 기원하는 가운데 맹세했다.
“친우의 몫까지, 오늘이라는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자.”
■ 풋워크가 가볍다 ■
현지(現地)인 아와지시마로 돌아와, 대기업 전기메이커에 취직. “이제부터 부모님께 보답하는 인생을”이라며 결의에 불탔다.
마음에 새긴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지침(指針)이 있다.
“보은(報恩)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열어가는 인간혁명(人間革命)의 도전이다.”
오카모토 씨는 “남자부 선배들은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동지로서, 계속 활동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게 기뻐서.”라고. 학회활동(學會活動)에 힘쓰고 불법대화(佛法對話)에 도전했다.
야구 시합 후에 창가반(創價班) 임무를 위해 달려간 일도.
또, 자유그룹(신체에 장애가 있는 벗의 모임)의 활동에도 참가. 자신의 장애 경험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며 사회복지법인의 친목회에서 체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과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발의 저림이 심해지면서 ‘요부척추관협착증(腰部脊椎管狹窄症)’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입원해서 수술 받기로.
의사로부터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가능성도”라고 들었지만, 많은 동지로부터 “괜찮아!” “절대승리!” 등의 격려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루빨리 퇴원해 모두와 학회활동을 하고 싶다.”라며 재활에 힘써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상승아와지시마현(常勝淡路島県)의 청년부장에 임명됐다. 지난 11월 ‘SOKA유스페스타’에서는 여성부를 비롯해 모두의 의견을 잘 듣고 준비를 진행했다.
‘회합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빛을 비추고 싶다며 멤버들의 2030년까지의 목표를 사전에 모은 동영상 기획으로 호평도 받았다.
“저렇게 풋워크(발놀림)가 가벼운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맡아주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라고 주위의 신뢰는 두텁다.
일과 학회활동, 장애인 야구 등 충실한 매일.
그런 아들의 모습에 양친(兩親)은 “지금은 우리가 유지로부터 희망(希望)의 신심(信心)을 배우고 있습니다.”라며 미소 짓는다.
[간사이지사(關西支社)]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좋은체험담을 접할수있게해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