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다
서정주-(1915.5.18~2000.12.24)-
귀 기우려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무언의 해심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아- 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처
둥그란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우에
네 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 우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해설-
우리의 꿈을 저 바다 너머에서
남성 화자의 힘이 넘쳐나는 시,
‘웅혼한 기백의 정서’와 ‘진취적 기상의 정서’를
노래한 시는 우리 문학사에서 흔치 않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은
조국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
이국땅으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줄줄이 이주한다.
징용과 징병, 식량 공출과 창씨개명 강요
특히 이 시가 씌어진 1938년은 어떤 해인가.
일본 육군성에서 조선에 지원병제도 실시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조선육군지원병령이 공포되었고
조선교육령이 개정 공포되었다.
평양의 숭의학교와 숭실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표하였고
학교근로보국대 창설을 지시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본적인 권리를
전부 박탈당하는 암담한 시대를 맞게 된다.
한반도 전부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가 돼가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쓴 시다.
40년대에 들어서서
미당은 「송정오장 송가」 등의 친일시 외에도
「최체부의 군속 지망」 같은 소설도 쓰는 등 친일행위를 했는데
때아니게 조국애가 발동해 이런 시를 썼겠는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서정주가 이 시를 쓴 1938년경에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지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 믿고싶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멋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노 선생님,,,,,,
늘 ~~
화이팅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