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관 외
조혜경
요양병원은 요양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한번 다녀와 보면 안다
요양병원에서 떠난
엄마를 보러
추모관에 간다
좀 잘해 줄걸
기왕 헤어질 거 그럴 걸
닫힌 문밖에서는
바람도 말을 한다
수리 맡긴 보스턴백이 오늘 중 도착할 거라는
문자가 왔다
다시 살아난 가문처럼 끄떡없이
가방도 다시 살아 돌아오는
시월 어느 날
내장산 곱하기 덕유산
설안산 나누기 오대산
사칙연산을 한다
하얀 빨래가 휘날리는 학교에서
어린 시절이 하얘졌다
랜덤이란
죽음이 좋아하는 패턴
「화양연화」에서 넥타이를 골랐으면 좋겠어
장만옥*말고, 엄마가
똑같은 넥타이를 두 개 사서
하나는 이 남자에게 또 하나는 저 남자에게
준다면
재밌을 텐데
「요양연화」에서 살다
떠나간
세상의 엄마들을 보러
가족들이 모이는 곳
* 「화양연화」는 홍콩 왕가위 감독 영화. 장만옥이 여주인공이었다.
고잔
지하철이 집 아래로 지나간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흔들렸다 허공에 산다
동생은 백화점 알바 중, 설거지할 때 가끔 흥얼거린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이다음에 또 만나요! 백화점 클로징 송
우리는 함께 흥얼거린다
노래 사이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시간이면 아버지는 밖에서도 흔들린다
목화꽃 만발한 이불 덮고 앉아
나비를 센다
엄마가 셀 때마다 나비는 어딘가로 날아갔고
그럴 때면 우린 보았다
오래 소식 없던 사람들이 둘러앉아 웃는
지붕만 남은 집을
우리는 이불 속에서 무릎을 부딪치며
실없이 웃었다 집이 흔들린다
꽃잎이 파르르 떨리는 이불
나비가 날개를 털어내는
허공에 사는 일은 어쩜,
엄마! 이거 보여?
응, 반쯤
엄마의 녹내장에 담긴
잘린 장롱, 잘린 유리창
치매 앓는 엄마와 바싹 마른 딸들이
20분에 한 대 오는 지하철 4호선처럼
오래된 잔에 담겨 흔들린다
찌그러진 아침 해와 녹다 만 달이 떠도
웃으면 그만이었다
—시집 『장만옥 말고 엄마가』 2026.8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
기차역에서 만나 커피를 들고 와
시간은 쉽게 식고 우리들은 지루해지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에 대해 이야기 하자
눈과 파도에 대해
바나나는 탁자 위에서 진지하고
우리는 다리가 없지
잘 지내고 있니?
식은 커피 아래 가라앉는 설탕처럼
우리는 섞일 수 없어
반짝, 날개라는 말이 사전에서 사라진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갈매기가 뒤뚱거리며 길거리의 팝콘을 먹고 있어
뒷짐을 지고 인사동을 성수동을
바나나는 매끄러워 껍질 밖의 일에 대해
커피를 쏟아도 우린 웃지 않지
반점이 나타난 바나나 앞에서
향기가 왜 슬플까?
아무 말 하지 말자
우는 여자의 속눈썹과 아름다운
驛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에곤 실레의 회화 작품.
—시집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 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