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을 때, 뭔가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이 영화, 무지무지 기대했다고"라고 운을 꺼냈다. 그리고 나선 "전작이 어쩌고 저쩌고, 감독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그 친구 쏘아붙이는 말이, 그럼 그 "전작을 보고서 기대를 하는 모양이군?"라는 것이었다. 물론 보지 않았고, 신문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주워담으며 나불댔던 나는 금방 머쓱해져 할 말을 잃었다가, 다시 "그야 저번은 네개의 시선이었다가, 이제는 다섯개의 시선이니까..."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며 대화의 흐름을 유야무야시켜버렸다.
사실 인권위에서 주선하여 제작한 인권영화의 두번째인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처음으로보는 인권영화였고 사실 인권에 대한 투철한 신념보다는 누가 감독을 맡았네, 영화의 이런 부분이 압권이라네 식의 "산만한 호기심"이 주된 동기로 작용하여 영화관으로 몸을 이끌고 오게 되었다.
영화 보는 태도 역시 처음에는 그야말로 철저히 영화를 "소비"하겠다는 자세였다. 땅콩오징어와 실론티로 중무장하여 영화관을 들어선 점은 이 영화를 사유하기 이전에 향유하겠다는 나의 기본자세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보기 불편한 영화였다. 인간의 몸짓과 행동을 하나의 향유의 대상으로 소비할 때, 나는 오히려 그 자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망각한다고나 할까?
첫째 기억에 남는 영화는 정신지체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결코 그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동정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그 아이의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욕망"을 날것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그러한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의 분노 또한 그대로 드러난다. 이점은 나를 무척 불편하게 만들었다. 타자를 소외시키고 배척하는 기본 전략이란 그의 욕망을 거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데에 애초에 그를 욕망의 주체로 보는 시각을 폐기하는 기본전략이 전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당혹감이 정신지체아 주변의 "정상인" 등장인물들에게도 리얼하게 나타난다.
둘째 기억에 남는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남자니까 아시잖아오."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주먹이 운다라는 영화를 보고, 자기도취적 마쵸이즘에 빠지지 않고서도 어떻게 남성의 모습을 이렇게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류승완 감독 자신의 폭력적 남성상에 대한 자아성찰이 근본적으로 갖추어졌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아도취적 남성이 술집에서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근로자, 저학력자,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취중에 늘어놓으면서 점점 그와 함께 했던 친구들이 떠나간다는 설정이다. 마지막에 혼자 남은 그가 취해 널부러져 있는 취객에게 혼잣말을 하며 끝에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라면서 응석을 부리고 그만 쓰러지는데 사실 그 취객은 머리 짧은 여성이었다는 설정은 일종의 각성제이다. 타인에게 "가는데까지" 폭력을 가하고 스스로에게 또는 어떤 동일성에게 위로를 구하지만, 그러한 동일성 자체가 허구였다는 일종의 철학적 주제마저 물씬 풍기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는 단연 기대했던 영화, "장진"감독의 작품이었다. 제목을 까먹었지만, 감독 특유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말장난과 등장인물간 대화의 엇박자가 묘한 장진스러운 색채를 감돌게 한다. 내용은 대략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붙잡혀 지하 고문실에서 심문을 당한다는 매우 비장한 설정인듯 싶지만, 기존의 학생운동 신화를 교묘하게 비틀어, 학생쪽을 오히려 방어의식으로 똘똘뭉친 자아로, 그리고 고문하는 쪽을 시간외 수당때문에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소심한 가장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이 각종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끝에 서로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장면에서는, 오늘날 "비정규직"문제가 교묘하게 패러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진감독의 작품을 어찌 몇마디 말로 그 재미를 고스란히 전달하랴, 어떻게는 이 부분만은 꼭 보는게 좋다는 추천만을 남긴다. 진짜 많이 웃었다.
나머지 영화는 애석하게도 그다지 기억이 남지 못했다. 처음의 정신지체장애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잘 모르는 감독이 만든 작품은 그다지 다가오지 못했다고나 할까. 조금은 머리를 식히면서 시간이나 때운 작품이어서 아쉽다. 연작물의 한계일까. 한껏 긴장하고 집중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다가 맥이 풀리는 느낌이어서 조금 아쉽다.
다음 인권영화는 "여섯개의 시선"이 될려나? 라는 바보스러운 의문을 안고 극장을 떠났을 때 드는 생각이란, 타자를 향유하지 않고 그저 관조하지만도 않으며 동시에 그들과 어떤 윤리적 관계속으로 "참여"하는 것이 인권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주제의식이 전영화를 관통한다는 것이었다. 여섯개의 시선이든 일곱개의 시선이든 그러한 주제의식이 변치 않기를 기대하며, 인권위에서 마련한 인권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으로 옮아간다. 과연 매체를 편승하여 인권의식의 자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인권위의 기획은 성공할 것인가?
요즘 인권위 나름대로 위기다. 인권만 보면 화를 내는 어르신 덕분에 인권위가 초헌법적 기구라느니, 해체해야한다느니 하는 말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렇게 휘둘리는 것을 보면 나는 그러한 기구와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된 어떤 가치"에 대한 "보존"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나저나 속깊으신 분들 영화계에 많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여섯개의 시선인줄 알았네요..
여섯개의 시선도 있어요~
설마!?
여섯개의 시선이 있었단 걸 모르셨다니 ㅋ
다섯개의시선보다 앞서나온 영화지요^^
젠장, 날 속였구나!!!!!(누가?)
개인적으로 여섯개의 시선이 훨 재밌었어요 -
전 여균동 감독꺼 보고 토하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우엑 >.<
저 인사동에서 여균동감독님과 마주쳤어요.ㅎ 저를 좀 쳐다보시던데.제가 여균동감독님 스타일인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