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군태수에 봉해진 주유는 남군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을 손권에게 전달했다. 주유의 상소는 노숙이 가지고 갔다. 손권은 노숙을 보고 힐난조로 물었다.
“공이 지난날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었는데 유비는 도통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소.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오?”
노숙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서천을 차지하면 반환한다고 문서에 적혀 있습니다.”
“말이 서천을 차지한다는 거지, 유비는 군사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있소! 우리가 다 늙어 꼬부랑 할아범이 되어야 일이 끝나겠소?”
“제가 형주를 다녀오겠습니다.”
노숙은 시간을 지체치 않고 형주로 건너갔다. 현덕은 노숙의 방문 소식을 듣고 공명과 상의했다.
“노숙이 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조조가 형주 목사로 주공을 순순히 인정해 준 것에는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내다보던 중이었습니다. 주유가 남군 태수가 되었으니 강릉을 내놓으라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오와 우리를 이간질시킨 다음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것이 조조의 속셈일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노숙이 형주 이야기를 꺼낼 것이 틀림없으니, 주공께서는 그저 슬피 우시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그 뒷일은 다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현덕은 이렇게 공명과 입을 맞춘 후 노숙을 불러들였다. 현덕이 노숙에게 자리를 권하자 노숙이 사양하며 말했다.
“유황숙께서는 주공의 매제시니 제게도 주인이신 셈입니다. 제가 어찌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현덕이 웃으며 말했다.
“자경은 옛 친구가 아니겠소? 너무 사양하지 마시오.”
노숙은 현덕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 앉았다. 현덕은 귀한 차를 내어 노숙을 대접했다. 차를 마신 후 노숙이 말했다.
“저는 주공의 명을 받아 형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왔습니다. 유황숙께서 형주를 빌리신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반환하지 않고 계십니다. 이제 양쪽 집안이 사돈까지 맺었으니 어서 돌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덕은 노숙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노숙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우시는 겁니까?”
그러나 현덕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계속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노숙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병풍 뒤에서 공명이 나타났다.
“병풍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자경(=노숙)은 우리 주공께서 왜 이다지도 슬피 우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다뇨? 당초에 우리 주공께서 형주를 빌릴 때 서촉을 얻게 되면 돌려준다고 하셨습니다. 기억나시죠? 하지만 서촉의 주인인 익주목 유장(劉璋)은 사실 주공의 동생뻘로 다같이 한실의 골육이니 만약 주공이 군사를 일으켜 촉을 친다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촉을 취하지 못하고 형주를 돌려준다면 어디에 몸을 둘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돌려주지 않으면 처가(妻家) 보기는 또 얼마나 민망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려 해도 일이 이렇게 꼬여있으니 저절로 눈물이 나시는 겁니다.”
공명이 설명을 하는 동안 현덕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노숙이 현덕을 위로하며 말했다.
“유황숙,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공명과 제가 잘 의논해 보겠습니다.”
공명이 때를 놓칠세라 말을 받았다.
“자경 공은 번거롭다 마시고 오후를 뵈면 우리 주공이 이렇게 고뇌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로써 형주 반환 시기를 연기시켜 주십시오.”
노숙은 난처해져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주공께서 따르지 못 하겠다 하면 어찌 해야 할까요?”
“오후께서는 주공과 처남매부지간인데 어찌 못 한다고 하겠습니까? 자경 공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공명은 끝까지 노숙의 책임으로 일을 몰아갔다. 노숙은 너그러운 사람이었기에 현덕 앞에서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또한 노숙은 현실적으로 형주를 현덕에게 맡겨놓고 조조와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이 뼈 속 깊이 박혀 있었기에 공명의 말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다.
현덕과 공명은 노숙에게 절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주연을 베푼 뒤에 노숙이 배에 오르는 것까지 몸소 전송을 했다. 노숙은 경구로 돌아가지 않고 먼저 시상에 들렀다. 주유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주유는 노숙이 현덕에게 다녀온 이야기를 하자 발을 구르며 말했다.
“자경, 또 제갈량의 계략에 넘어갔군. 유비가 유표에게 빌붙어 있을 때도 형주를 삼킬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서천에 있는 유장이 무슨 문제가 되겠나? 이렇게 끌려다니다간 자네도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네.”
“그럼 어쩌라는 말인가?”
“나한테 제갈량도 속일 수 있는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 자네가 다시 한번 형주에 다녀와야겠는 걸.”
“그 계책이 뭔가?”
“주공을 뵈러 가지말고 다시 형주로 가서 유비를 만나 이렇게 설명을 하게. 손, 유 양가가 이미 혼인으로 맺어져 한 집안이 되었으니 유비가 서천을 취하는 것이 껄끄럽다면 내가 군사를 이끌고 가 서천을 얻어주겠노라고 말이야. 그리고 서천은 결혼 선물로 내가 바치도록 할테니 형주를 동오에 돌려달라고 하게.”
“서천은 험고한 곳이라 쉽게 얻을 수가 없어. 모처럼 낸 계략이지만 이건 실행할 수가 없네.”
노숙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자 주유는 그만 웃어버렸다.
“자넨 정말 군자야. 내가 서천을 얻는다면 그걸 왜 남에게 주겠나? 나는 그저 서천을 치겠다는 명분이 필요한 것뿐이야. 진짜로는 유비가 방심한 틈에 형주를 공략할 거야. 동오의 군사는 형주를 지나야 서천으로 갈 수 있으니 우리는 형주의 저들이 군비와 군량을 얼마나 비축했는지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이고, 유비가 성을 나와 우리 군사들을 위로하는 틈을 노려 그자를 죽여버리면 형주를 탈환할 수 있지. 이렇게 되면 내 원한을 풀고, 자네의 화를 제거하게 되는 걸세.”
노숙이 생각하기에 주유의 계책이 매우 그럴 듯 했다. 전면전이 되지 않고 형주를 되찾을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현덕을 암살해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마다할 계책이 아니었다. 노숙은 그 길로 형주로 다시 갔다.
노숙이 다시 왔다는 소리를 듣고 현덕이 공명을 불러 그 내막을 물었다.
“벌써 다시 온 걸로 보아 경구에 가 오후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아마 시상에 가서 주유의 어떤 계책을 들고 온 모양입니다. 노자경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주공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십시오.”
현덕이 알았다고 대답하고 노숙을 불러들였다. 노숙이 들어와 현덕과 공명에게 인사를 올리고 말했다.
“제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주공께서는 유황숙의 높으신 덕을 칭찬하시고 장수들과 논의를 깊이 하셨습니다. 드디어 유황숙 대신 군사를 일으켜 서천을 얻어드리자는 결론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형주를 동오에 돌려주십시오. 서천은 동오가 드리는 지참금이 될 것입니다. 다만 군사들이 지나갈 때 군량을 조금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후의 호의는 정말 보기 드문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현덕도 손을 모아 감사를 올리며 말했다.
“이게 다 자경 공이 애를 써준 덕분입니다.”
“동오의 군사들이 도착하면 바로 달려나가 노고에 감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유의 말대로 공명이 속아넘어갔다고 생각한 노숙은 속으로 기뻐했다. 환영연이 끝나자 바로 시상으로 돌아갔다.
노숙이 떠나자 현덕이 어두운 얼굴로 공명에게 물었다.
“노숙의 말을 어찌 보십니까?”
공명은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주랑이 죽을 날이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이런 뻔히 보이는 계책에 속을 사람이 어린아이들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어쩔 생각입니까?”
“이것은 가도멸괵(假道滅虢)의 계책입니다. 서천을 치겠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형주를 공격할 생각입니다. 주공이 동오의 군사들을 위로하러 나가면 체포, 살해한 뒤에 방심하고 있던 성을 함락시키겠다는 것이 주유의 생각이죠.”
가도멸괵의 고사는 춘추 시대에 생겨난 것이다. 진헌공(晉獻公)은 괵나라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괵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우(虞)나라를 지나가야 했다. 진헌공은 신하 순식(筍息)의 계략을 받아들여 우공(虞公)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이때 우공의 신하 궁지기(宮之寄)는 “괵과 우리나라는 입술과 이와 같은 사이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것입니다. 만일 괵이 멸망당하면 우리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절대 길을 빌려줘서는 안 됩니다.”라며 말렸다. 바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진헌공은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면서 불시에 우나라를 쳐서 우공을 사로잡았다.
“주공은 마음 놓고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맹호를 잡으려면 활을 준비하고, 별어(鼈魚)를 낚으려면 향기로운 미끼를 준비하는 법입니다. 주유가 군사를 이끌고 오면 십중팔구 기력을 잃고 죽게 될 것입니다.”
공명은 조운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공명이 말한 별어는 상상의 동물이다. 머리에는 뿔이 하나 나고 다리는 네 개로 도롱뇽을 닮았는데 사람을 태우고 천하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등과 배에는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가시가 있어 적과 싸울 때는 무기로 이용했으며 바다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 큰 풍랑이 일었다고 전해진다.
노숙은 시상에 도착해서 주유에게 계책이 잘 먹혀들어갔다고 전했다. 주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내 계책이 성공하겠군!”
주유는 노숙을 손권에게 보내 계책을 전달하게 하고 정보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이때 주유는 금창이 많이 회복되어 움직일만 했기 때문에 직접 군사를 이끌었다. 감녕에게는 선봉을 맡기고 자신이 서성, 정봉을 거느리고 중군에 위치한 다음 능통과 여몽에게 후군을 맡겼다. 수륙 5만군이 형주로 움직였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감사드립니다.
매번 기대가 됩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