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박힌 생선가시를 빼준 작가, 구효서
인터뷰어 - 우승미(소설가)
소설가 구효서를 만나러 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필자는 그의 케케묵은 팬이다. 1993년, 대학 1학년이었을 때, 소설이란 문고판 세계명작 시리즈와 타계한 지 30년이 지난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던, 순수하고 고상한 세계의 껍질을 막 벗기 시작했을 때, ‘젊은 작가’ 구효서는 필자에게 처방전을 주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등이 후끈거리며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증상에 대한 것이었다.
원인 :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혔기 때문.
처방 : 글을 쓸 것.
그 후부터 그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노을은 다시 뜨는가』와 『늪을 건너는 법』,『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라디오 라디오』, 『도라지꽃 누님』 외의 무수한 작품집과 장편소설과 산문집을 거쳐 최근의 『나가사키 파파』까지.
그러는 동안 그가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마디」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는 것과 한국일보문학상·허균문학상·이효석문학상·한무숙문학상·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필자와 작가가 태어난 날이 같다는 것도. 틈틈이 강연회도 쫓아다니고, 최근의 대산문학상 시상식에선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음, 쓰고 보니 좀 스토커스럽다.
아니다. 발걸음이 가벼운 건 약속 시간에 늦었기 때문이다. 초스피드로 움직여도 최소한 2분 이상 늦을 것 같다. 에휴. 이 불치병, 늑장 증후군.
뜬금없이 고구려 벽화?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미아리의 전통찻집. 먼저 도착한 작가 구효서는 한쪽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늦은 것이 민망해 일부러 헐레벌떡 허둥지둥 들어서는데도, 벽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고요하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박력이 넘치며 활달하기로 유명한 고구려 벽화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이국이 되어버린 나라에 원본을 두고 있는 사본이어서인지, 벽화를 두르고 있는 액자 때문인지, 그림이 왠지 뜬금없어 보였다.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보기 위해서 북한에 갔다지요.”
“?”
“작곡가 윤이상 씨 말입니다.”
“???”
의미심장하게 던지는 작가의 말머리를 알아먹지 못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대뜸, 뜬금없이, 준비해간 인터뷰의 첫 질문을 던져버렸다. 서두도 맥락도 없이.
인터넷 연재 - 연애편지 같은 짜릿함
우승미 인터넷으로 소설을 연재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지요? 1998년 하이텔 문학관에 장편소설 『벅구』를 연재하셨는데요, 11년 만에 인터넷에 연재를 하게 된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구효서 연재 자체를 선호하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가 연재를 하는 것은 대부분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겠지요. 연재는 가차없습니다. 그것이 작가를 구속하지요. 한편으론 연재의 가차없음 때문에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연재를 앞두고 무척 기쁘고 설렙니다. 그만큼 두려움도 있고요.
우승미 두려움이라면 독자의 반응과 관련된 것인지요?
구효서 그 부분이라면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웃음)
우승미 마치 모든 댓글이 악플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이미 어느 정도 악플에 단련되신 건가요? (웃음)
구효서 제 기사의 댓글이라든지 독자 반응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달린 댓글은 읽어보곤 하죠. 박지성이나 마이클 잭슨 같은. 소설 쪽에는 상당히 건전한(?)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웃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크죠. 독자와 소통하는 것에 소원했던 편인데, 이번엔 좀 해보려고 합니다.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자세로요.
나우누리의 조PD를 배신하고, 통신사를 하이텔로 바꾼 것은 순전히 하이텔문학관 때문이었다. 매일, 감질나게, 조금씩 올라오는 소설을 읽는 것에 완전히 중독되었다. 순진하게도, 작가가 매일 꼭 그만큼의 분량만 써내는 줄 알았다. 댓글도 꼼꼼하게 챙겨 읽는 줄 알았다.
약간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하루 분량의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은 연애편지를 받는 것처럼 짜릿하기까지 했다.
세 겹의 이야기 - 이를테면 페스트리 소설
우승미 이번에 연재할 소설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구효서 소설은 재일교포 2세인 한 남자의 자살로 시작하게 될 겁니다. 그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는가? 남자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이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소설의 주요 얼개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을 낱낱이 이해하는 것은 실상 불가능하죠. 그러나 소설이 끝날 때쯤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우승미 재일교포 2세라면 소설의 배경이 일본인가요?
구효서 일본에서 시작하지요. 이 남자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소외당해야 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건너간 독일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조국이 없는 사람에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란 그만큼 절실할 수밖에 없지요. 순수한 그리움이 아닙니다. 조국을 그리워하도록 강요당하는 거죠. 게다가 그 조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버렸어요. 남북한 어디에서도 그는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혹독한 고통을 당합니다.
우승미 디아스포라군요.
구효서 디아스포랍니다. 디아스포라가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할까요. 이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무관심하지 않았는가, 무관심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가, 그 이유는 정당한가. 이런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됐습니다. 작가들마저도 이 문제에 관해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언뜻 곁가지로 다루어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지요. 어떤 이유 때문이든 타인을 배척하고 소외하고 무시한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승미 전작인『나가사키 파파』가 떠오릅니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민족의 문제, 소수 민족에 대한 소외와 배척을 통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경계 짓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나가사키 파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될까요?
구효서 사실 제가 나가사키에 가게 된 건 『나가사키 파파』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가사키라는 곳이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였습니다. 수많은 도공과 악공들, 조선인들을 붙잡아 가두었던 곳이지요. 그곳에 있다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노예상인에게 팔려간 조선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이탈리아 남부를 거쳐서 독일로 간 조선인의 후손이 음악가가 되고, 그 음악가의 행적을 재일교포 2세인 남자가 추적하게 됩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나가사키에 간 것인데, 『나가사키 파파』가 먼저 저를 찾아 온 겁니다. 이를테면, 『나가사키 파파』는 앞으로 작업하게 될 소설의 워밍업이었지요. (웃음)
우승미 『나가사키 파파』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워밍업이었다니, 이번 소설이 무척 기대됩니다. 『나가사키 파파』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구효서 한 사람이 가운데에 있다면 그 사람의 왼쪽에는 예술이 있고, 오른쪽에는 조국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사회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 경계 자체를 지우는 겁니다. 조국이라는 개념을 달리하고 싶은 거지요. 앞으로의 조국, 미래지향적인 조국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예술이 아닐까요. 그에게는 그것이 곧 조국인 것입니다.
우승미 정리해보면 이 소설은 크게 세 층으로 이루어진 셈이네요. 자살한 첫사랑의 행적을 쫓는 일본인 여자의 이야기가 현재 층이고, 재일교포 2세의 삶이 과거의 층, 남자가 쫓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 이야기가 더 먼 과거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간적 배경도 남한과 북한, 일본에서 독일까지 스케일이 방대합니다. 짧은 분량으로 일일연재를 해야 하는 인터넷 매체로 풀기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구효서 시간의 폭이 길고, 공간도 그만큼 넓은데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재가 결정되기 이전부터 짧은 단락으로 경쾌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인터넷 연재에 상당히 부합하는(?) 형식인 셈이지요. (웃음)
뒤늦게 고구려벽화
흠, 눈치 없는 필자는 이제야 조금 눈치를 챘다. 이 소설의 모델이 된 인물이 누구인지. 작가가 왜 사신도로 말머리를 열었는지.
작곡가 윤이상에게 북한은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조국의 한쪽이 아니라, 사신도가 있는 조국이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씩씩한 기상을 담은 그림이 아니라 민족의 혼을 담은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국이 되어버려 갈 수 없는 나라에 원본이 있어서인지, 미아리의 전통찻집에서 사본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어서인지, 다시 보니, 그림에 담겨있는 씩씩하고 용맹한 기상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독자에게
구효서 소설을 쓰면 쓸수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세상 모든 일을 글로 쓸 수는 없고, 내가 가진 느낌이나 생각을 모두 글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그걸 다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동안 참 많은 말을 했습니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해도, 잘난 체해도 용서받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적은 말로도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를 새롭게 발견해보고 싶습니다.
애정 깊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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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미 : 197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빛이 스며든 자리」가 당선되었고, 장편소설 <날아라, 잡상인>으로 2009년 제33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