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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 「詩의 溫度」] ⑫ 시에는 소리가 있다
―벌레[蟲]가 나인가 기와[瓦]가 나인가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
아무런 재주도 없고 기술도 없구나
뱃속에는 불기운 활활 타올라
세상 사람과 크게 다르구나
사람들이 백이(伯夷)는 탐욕스러웠다고 말하면
내 분노하여 빠득빠득 이(齒)를 가네
사람들이 영균(靈均 : 굴원·屈原)은 간사했다고 말하면
내 화가 나 눈초리가 찢어지네
가령 내게 입이 백 개가 있다고 해도
어찌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가?
하늘을 우러러 말을 하니 하늘이 흘겨보고
몸을 구부려 땅을 바라보니 땅도 눈곱 꼈네
산에 오르려고 하자 산도 어리석고
물에 다가가려 하자 물도 어리석네
어이! 아아! 아아!
허허 허허 한탄하며
광대뼈와 뺨과 이마는 주름지고 눈썹은 찌푸리고
간과 폐와 지라는 애태우고 졸여졌네
백이가 탐욕스러웠다 하든 영균이 간사했다고 하든
그대에게 무슨 상관인가!
술이나 마시고 취하면 그뿐이고
책이나 보며 잠을 이룰 뿐이네
한탄하누나! 잠들면 차라리 깨지 않고
저 벌레와 기와로 돌아가려네
蟲也瓦也吾(충야와야오) 苦無才與技(고무재여기)
腹有氣烘烘(복유기홍홍) 大與人殊異(대여인수이)
人謂伯夷貪(인위백이탐) 吾怒切吾齒(오노절오치)
人謂靈均詐(인위영균사) 吾嗔裂吾眥(오진렬오자)
假吾有百喙(가오유백훼) 奈人無一耳(나인무일이)
仰語天天睜(앙어천천정) 俯視地地眵(부시지지치)
欲登山山獃(욕등산산애) 欲臨水水癡(욕림수수치)
咄嗚呼嗚呼(돌오호오호) 唉噓唏噓唏(애허희허희)
顴頰顙皺皴(권협상추준) 肝肺脾熬煎(간폐비오전)
夷與均貪詐(이여균탐사) 於汝何干焉(어여하간언)
姑飮酒謀醉(고음주모취) 因看書引眠(인간서인면)
于于而無訛(우우이무와) 還他蟲瓦然(환타충와연)
―『아정유고 2(雅亭遺稿二)』 이덕무(李德懋, 1741~1793)
*伯夷(백이, 중국 고대 상(商)나라 말~주(周)나라 초)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周)나라 초기의 전설적인 형제성인(兄弟聖人)으로 장유(長幼)를 나타낸다. 백이(伯夷)는 중국 이름이 윤(允)이고, 자는 공신(公信)이다. 본래는 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 출신이다. 고주국은 중국 하북성 노용현(盧龍懸)과 조양현(朝陽懸) 일대에 있었던 나라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諸侯國)의 왕자였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다가 끝내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떠났다. 그 무렵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멸하여 주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首陽山)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어먹고 지내다가 굶어죽었다. 유가(儒家)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淸節之士)로 크게 높였다. 『맹자(孟子)』에 ‘백이와 숙제는 성인 중에서 맑은 분(夷齊聖之淸者·이제성지청자)’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성계(李成桂)가 고려(高麗)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울 때,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닌 선비들이 산으로 들어거거나 조선(朝鮮)에 협력하지 않으면서 백이와 숙제의 시를 지으며 외롭게 살다 생을 마친 전범이 된 인물들이다.
*屈原(굴원, 기원전 343~277?) :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충신이며 시인이다. 자(字)는 영균(靈均), 원(原)이며, 이름은 평(平)이다. 왕족 출신으로 회왕(懷王)의 좌도(左徒)가 되어 내정과 외교에 우수한 능력을 발휘했으나 다른 신하들의 미움을 받았으며, 경양왕(頃襄王) 때 대부(大夫)의 참언으로 영도에서 추방된 뒤 초(楚)나라와 경양왕(頃襄王)을 걱정하며 동정호(洞庭湖) 근처를 방랑하다가 멱라수(汨罗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단오절(端午節)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생겼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고 말한다. 많이 읽으라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라는 말이고, 많이 쓰라는 것은 어휘력과 문장력을 훈련하라는 뜻이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은 구상력과 구성력을 연마하라는 말이다. 만약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다비평(多批評)’을 언급하고 싶다. 많이 비평하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되 단순하게 읽지 않고 비평할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좋은 음식이라도 단순히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어서 제대로 소화해야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치처럼 말이다.
이덕무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인이 될 수 있었던 힘 역시 비평에서 나왔다. 특히 이덕무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예리하게 비평하면서 자신의 시와 문장을 개척해나갔다. 종탑(鐘塔·鐘閣) 북쪽에서 엮은 작은 선집이라는 뜻의 『종북소선(鐘北小選)』이 대표적인 이덕무의 박지원 비평집이다. 여기에서 이덕무는 “글에는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글에는 소리가 있는가. 어질고 현명한 옛사람인 이윤(李潤)과 주공(周公)이 한 말을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 그 목소리가 매우 정성스러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내쫓긴 주(周)나라 백기(白起)와 홀로 남겨진 제(濟)나라 기량(杞梁)의 아내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글을 보면 그 목소리가 매우 간절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시에 담긴 이덕무의 목소리는 어떻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 ‘절규(絶叫)’ 다. 이덕무의 절절한 부르짖음과 피맺힌 울부짖음이 귀에 들린다. 이렇게 18세기의 작자인 이덕무와 21세기의 독자는 공감하고 교감한다. 시가 주는 공감과 교감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초월한다.
*『종북소선(鐘北小選)』 : 이덕무가 박지원의 글 10편에 대해 평점(評點)을 붙인 책이다. 『종북소선』은 방비(旁批), 말비(末批), 미비(眉批)라는 세 종류의 비평형식을 통해 평어를 전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비(眉批)라고 말할 수 있다. 『종북소선』의 미비는 그 모두가 각각 독자적인 한 편(篇)의 예술산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동아시아 평점비평사에서 이런 성격의 미비는 그 유례(類例)를 찾을 수 없다. 이 점에서 이덕무는 동아시아 비평사에서 놀라운 `창안`을 이룩했다고 할 만하다.
●연암집 제7권 별집 종북소선(鍾北小選) (참고자료)
우부초서(愚夫艸序) : 유언호(兪彦鎬)의 문집인《연석(燕石)》에 박지원(朴趾源)이 써 준 서문인 연석서(燕石序)와 거의 같은 글이다. 연석서의 말미에 을미년(1775, 영조 51) 12월에 지었다고 밝혔다.
邇言皆爾雅也.今閭閻之間,指癤謂麗,喚醋爲甘.幼女聞里媼賣甘,意其蜜也,倚母肩染指甞之.
점잖지 않은 상말도 알고 보면 모두가 고상한 말이다. 예를 들어 지금 여염(閭閻)에서는 부스럼을 가리켜 ‘곤데〔麗〕’라 하고 식초를 ‘단 것〔甘〕’이라고 한다. 어린 계집애가 마을의 할멈이 단 것을 판다는 말을 듣자 그것이 꿀이라 생각하고, 어머니 어깨에 매달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부스럼을… 하고 : 원문은 ‘지절위려(指癤爲麗)’로, 홍기문(洪起文) 선생은 서울 방언에서 부스럼을 ‘곤데’라고 하는 것은 곪았다는 의미인 ‘곪은 데’요 곱다는 의미인 ‘고운 데’가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지절위려(指癤爲麗)’의 그릇된 해석은 연암의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하였다. 홍기문의 「박연암(朴燕巖)의 예술(藝術)과 사상(思想)」(조선일보, 1937. 7. 29) 참고.
矉曰酸也.云胡作甘.母無以應.
얼굴을 찡그리며, “에이, 시다. 어째서 단 것이라고 하는 거야?”하니, 그 어미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吾惕然曰:是禮也.夫禮緣人情,問梅者齒㳄,故醋之未和也.猶諱其酸,况人之所嫌,有甚於癤之醜乎.
나는 이 말을 듣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禮)라는 것이로구나. 무릇 예라는 것은 인정(人情)에서 연유된 것이다. 매실(梅實)이란 말만 들어도 저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러므로 식초를 음식에 치기 전에는 오히려 그것이 시다고 말하기를 꺼린다. 하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부스럼보다 더 더럽게 여기는 것에 있어서랴.”
於是作士小典以自警.凡聱裒重聽,不號聾而曰:不樂囁唼.矇瞖失明,不號瞽而曰:不省瑕纇.噤瘖嗄𧦠,不號啞而曰:不屑雌黃.
이에 《사소전(士小典)》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무릇 귀가 먹어 들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귀머거리’라 부르지 않고 ‘소곤대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며, 눈이 흐려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남의 흠집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며, 혀가 굳고 목소리가 막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벙어리’라 부르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 《사소전(士小典)》 : 연암이 연석서를 쓴 영조 51년 12월에 이덕무는 사전(士典) 등 3편으로 구성된 《사소절(士小節)》 8책을 완성하였다. 《사소전》은 이 《사소절》과 같거나 유사한 책이 아닌가 한다.
釣背曲胸曰:不喜便佞.附癭懸瘤曰:不失重厚.
또 ‘등이 굽고 가슴이 튀어나온 사람〔구배곡흉(鉤背曲胸):곱사등이〕’을 가리켜 ‘아첨하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며, 혹이 달린 사람을 가리켜 ‘중후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至於騈枝跛躄,雖病於形,而無害於德,猶思迂諱,嫌其直斥.况所謂愚者,小人之德而不移之性乎.天下之僇辱,莫加乎此.
심지어 네 발가락이나 여섯 손가락, 절름발이나 앉은뱅이처럼 비록 육체는 병신이지만 덕(德)에는 해가 될 것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도 오히려 둘러대어 말할 것을 생각하고 곧바로 지적하여 말하는 것을 꺼린다. 하물며 이른바 ‘어리석다〔愚〕’고 하는 말은 소인(小人)의 덕이요, 변화될 수도 없는 성품임에 있어서랴. 천하에 치욕스러움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以汝京之聰明慧智,乃據其愚而不恥自號何也.
그런데 여경 유언호(汝京 兪彦鎬) 같은 총명과 예지를 갖춘 사람이 그 어리석음을 자처하고 스스로 ‘우부(愚夫)’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은 웬일인가?
及讀其燕石集,其所以觸忌諱犯嫌怒者多矣.
그의 문집인 《연석(燕石)》을 읽어 보았더니 기휘(忌諱)에 저촉되고 혐노(嫌怒)를 범한 것이 퍽이나 많았다.
掇挹乎百家,牢籠乎萬物,得其情狀.若燃犀而畵鼎,其變化於渺微者,若卵之始毛而蜩之將翼也.雲膚石髓,可推爬也.虫鬚花蘂,可計數也.
백가(百家)의 장점을 포용하고 만물(萬物)을 다 감싸 안아 그 정상(情狀)을 터득한 것이 마치 무소뿔에 불을 붙여 비추어 보고 구정(九鼎)에다 그림을 그려 넣은 것과 같았으며, 그 미묘한 데에서 변화하는 것은 알에서 털이 돋기 시작하고 매미의 날개가 돋아나려는 것과 같아서, 운기(雲氣)와 돌고드름까지도 만져 볼 수 있으며 벌레의 촉수와 꽃술까지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같았으며 : 진(晉) 나라 사람인 온교(溫嶠)가 무소뿔을 태워 물속을 비추어 보았더니 괴물들이 모조리 정체를 드러냈다는 전설이 있다. 《異苑 卷7》 하(夏) 나라 때에는 구정(九鼎)에다 온갖 사물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백성들이 괴물들을 익히 알아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3년(宣公3年)》 두 가지 비유 모두 사물에 대한 통찰이 비범한 경우를 뜻한다.
其所指斥者,奚特聾瞽瘖啞,而其所怨怒,亦奚特醋之酸乎.觸人怒猶諱之,况造化之所忌乎.
따라서 직설적으로 지적하여 말하는 것이 어찌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라 부르는 정도뿐이겠으며, 원망과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이 또한 어찌 식초의 신맛에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뿐이겠는가. 사람의 노여움을 범하는 것도 오히려 피해야 하거늘 하물며 조물주가 꺼리는 바이겠는가.
夫爲斯之懼焉。則聰明慧智之反而自諱之不暇也。世之人無亦指染而齒㳄也夫。噫。
무릇 이러한 것을 두려워한다면, 총명(聰明)과 혜지(慧智)와는 반대로 행동하여 자신을 숨기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또한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게 한다거나 입에서 군침이 돌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아! (번역 : 신호열 김명호)
―『아정유고 2(雅亭遺稿 二)』 이덕무(李德懋, 1741~1793)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 편역 <한정주>역, 출판사: 다산초당, 출간일: 2020.02.17.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영조 17년에 태어나 정조 17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 자는 懋官(무관), 호는 炯庵(형암)·雅亭(아정)·靑莊館(청장관)·嬰處(영처)·東方一士(동방일사)·信天翁(신천옹) 등이다. 서얼(庶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가학(家學)과 독서(讀書)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흔히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看書癡)’로 잘 알려졌으나, 지독한 독서 편력만큼이나 시에 대한 열정과 문장 실력, 탐구 정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다. 아이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을 중시한 독창적인 글쓰기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진경을 담아낸 수많은 진경 시와 산문, 동아시아 삼국 시문을 다룬 문예비평서 『청비록(淸脾錄)』, 18세기 일본 사회 제도와 문화를 심층 연구한 『청령국지(蜻蛉國志)』, 조선 고유의 풍속을 정리한 백과사전적 연구서 『앙엽기(盎葉記)』, 그 밖에 『사소절(士小節)』, 「열상방언(冽上方言)」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특히 개성을 강조한 자유로운 문장은 멀리 중국에서까지 인정받았으며,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이후 국왕 정조가 열었던 시 경연에서도 여러 번 장원을 차지했다. 1792년 이덕무와 박지원을 위시한 개성적인 문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정을 휩쓴 문체반정에 휘말렸음에도, 사후 국가적 차원에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간행될 만큼 대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아들 이광규가 편집한 전집으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사회적 틀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문장론과 철학, 초지일관 소신을 지킨 강직한 삶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朴趾源), 『연암집(燕巖集)』, 〈형암행장(炯菴行狀)〉 중에서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이덕무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 편역: 한정주(역사평론가), 다산초당, 2020.02.7.》, 《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