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내 생활
나는 용채가 부족해
서울 중곡동에 큰 집을 팔고 하남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은 노후가 되면 집에 널찍한 뜰이 있어 꽃을 키우고 채소를 가꾸며 산다는데
난 그런 집을 버리고 작은 집을 택한 것이다.
물론 늘 큰 집만 살다 작은 집으로 옮기니 답답하다.
그런데 집의 위치는 내 노후 살기엔 완전 제일이다.
우선 취미활동 할 수 있는 하남 시청, 주민센타, 복지관이 집에서 5분 거리다.
다이소 홈프러스도 집 옆이라 생활이 편리하다.
집 근처에 개천이 있어 늘 오가며 물 나무 풀꽃을 본다.
내 생활 일정은 일주일에 3번⸴ 젊은이 틈에서 요가를 하지만 자주 빠진다.
피아노는 일주일에 한 번, 진도가 안 나가 아직도 바이엘이다.
매일 매일 딩동딩동 정도다.
그래도 새파란 선생님이 피아노 만지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때로는 점 100원인 고돌이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갖는다.
도서관은 시청 안에 있기에 간간이 들려 책 냄새만 맡는다.
이제는 읽고 싶어도 체력이 달려 책 몇 페이지 정도 넘긴다.
젊은 시절 어영부영 보낸 세월이 가슴 저리도록 후회가 된다.
내 자리는 덕풍천을 마주하고 있어 윤슬을 보며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창문을 두드리며 같이 놀잔다.
토요일 일요일은 세상 없어도
30분 정도 걸리는 미사리강을 찾거나 검단산 자락을 밟는다.
아침 일찍 검푸르게 우거진 숲속을 걸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에 지친 육신을 씻어준다.
푸름 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혼탁한 잡생각이 사라지고
순수가 되살아나 나의 맨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큰 나무 밑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눈은 하늘과 숲길 맞닿은 곳을 더듬는다.
하늘에서 방금 만든 공기를 계속 숲으로 무더기 무더기 쏟아낸다.
구불구불 굽어진 나무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고풍의 미를 보여준다.
나는 머리가 개운해 간단한 수필집을 편다.
책장을 넘긴다.
숲에 앉아 책을 대하니 안빈낙도 생활이 이런 것인지 생각한다.
나는 커피를 즐긴다.
집에 커피가 있지만 집 옆에 있는 작은 카페를 찾는다.
까페에 가면 향이 좋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젊은 사장과 짧게나마 인사 정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된다.
커피 향 속에 마음을 담그고 창밖에 작은 정원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근사하게 생각되어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물론 돈이 든다.
경노당 노인들이 알면 나보고 미친 할매라 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외롭게 사는 내가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고
또한 작은 집에 사는 보상으로 이 정도 돈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나이 먹은 것이 무슨 죄인지 나는 사장에게 말한다.
“혹시 할머니가 이 집에 자주 드나들면 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하니
사장은 걱정 마시고 매일 아무 때나 오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커피향을 즐기며 책을 보고 계시면 너무 멋있다고,
젊은이에게 오히려 귀감이 될 것이라 한다.
우와! 내가 이런 말을 듣다니
그 말이 정말이건 아니건 간에 기분이 좋다.
손님이 커피집으로 들어온다.
얼굴이 까맣다. 자주 보는 얼굴이다.
나랑 같은 층에 살기에 서로 눈에 익다.
나는 용기를 내어 how are you 했더니 까만 여인이 환하게 웃는다.
Where are you from 했더니 남아공 아프리카에서 왔단다.
23살이다.
여인의 얼굴은 그렇지만 나이가 예뻐 You are a beatuful 했더니
여인은 탱큐 탱큐를 연발하며 나에게 커피를 준다.
싫다고 해도 준다. 나도 탱큐.
둘 다 언어가 짧아 대화는 못 해도 서로의 기분은 안다.
덕분에 외국 여자한테
커피를 얻어 마시니 나는 별안간 근사한 할머니가 된다.
커피 향이 유난히 향기롭다.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하다.
자식이 있어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만의 생활을
이렇게 충실하게 산다면 난 정말 근사한 할머니가 될 것 이다.
첫댓글 낭만 선배님
정말 온전한 내 생활
혼자여도 누군가와 함께하듯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일상
커피숍 나들이
선배님과 잘 어울리십니다
주위 모든 여건이
선배님께는 맞춤형
너무 좋아보입니다
지금처럼 늘 행복하세요.
근사한 할머니 맞습니다
저에 인생 롤모델이신 선배님
사랑합니나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아름다운글 읽는 제마음도 행복합니다 ~ 건강하셔서 오래토록 즐겁게 잘지내시길 바랍니다
더 바랄 게 없이 버킷리스트 다 이루신 것으로 보이는 생활 하고 계신 듯 합니다
즐감했습니다.
사는게 별거있나요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면 잘 사는거고 행복한 삶이죠.
멋쟁이 선배님 홧팅! ! !
선배님 나이들면 큰집은 관리 하기 힘드신데 잘하셨어요
늘 선배님 처럼 멋지고 아름 다운 생각으로 세상을 살면 그이상 행복이 없지요
선배님 지금처럼 오래 오래 건강 하시고
행복만 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