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樓欄에의 기억 / 송재학
땅의 이름은 누란이다. 사막 가운데 세월을 거쳐온 강물 흐르고 검은 부리 새들이 종일 탑을 쪼으며 호수는 꿈 같은 푸른 비단을 펼쳤다 사람들은 양을 몰거나 모래소금을 찾고 은고기를 잡았다 아이는 서쪽의 파미르 고원에 널린 노을 바라보며, 이윽고 늙은이는 굽은 등 펴고 모래에 묻힌다 오랜 바람 짧은 노래는 그 땅의 물이나 소금이다 지는 노을 검은 거울 품으며 여인은 죽어도 지아비의 머리칼에 드러눕는다 죽음은 전쟁과 일식으로도 오지만 누란에서 죽음은 노래가 되는 것, 혹은 독풀을 머금고 사치한 비단을 두를 때 자신은 누란의 운명에 보태진다는 가열함이 있다 지금 모래무덤 파면 누란은 호박瑚珀이나 옛 노래 몇 절로 고여 있다 사람들이 선선?善 땅으로 옮긴 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땅이란 뜻에 누란의 슬픔이 있다. 그 땅의 이름은 누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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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송재학의 첫 시집 <얼음시집>에 나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정밀한 이미지와 단단한 시어들이 정교하게 얽혀 있어, 때로는 독해가 어렵기도 한, 그러나 약간의 난해함을 벗기고 나면 그 아래 극채색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그런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핵심은 '노래'이다. 강물이 흐르고, 새가 탑을 쪼고, 호수가 펼쳐지는 것은 환각인데, 그 빈 아름다움의 배경이 바로 노래이다. 노래는 물이나 소금, 죽어가는 여인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 그 노래를 통해서만 누란의 사막에 오래 머문 존재들이 풀려나온다.
누란에서 모래와 바람에 묻혀 죽는 것들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노래가 되는 것" 이어서, 우리가 "지금 모래무덤 파면 누란은 호박이나 옛 노래 몇 절로 고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돌아갈 존재들을 모래에 묻고, 바람으로 노래를 들려주는 사막의 슬픔, 시인은 시간이 잠재우는 그 슬픔의 덩이를, 지금 독자들에게 넌짓 밀어내고 있다.
/ 정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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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