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한테서 한글을 배웠고
한자도 몇자 배웠다. 이름과 주소 정도였다.
이웃에 사는 친구는 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을 떼었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그를 보면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른밥'이라고 놀리기도 하였다.
글자뿐만 아니라 주산도 배웠다. 그 덕분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험지 점수 매길 때
불려가서 합산과 평균점수를 계산해서 불러드리기도 하였다.
또 정초가 되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에 토정비결을 보러 왔는데 아버지가 책을 보고
생년월일과 시를 물어 숫자를 더하고 뺄때 나를 불러 주산으로 계산을 시켰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전국 주산대회도 있고 기능등급도 있었다.
상고로 진학한 친구들은 주산 1급 자격증이 있어야 은행에 응시할 자격이 되는 것 같았다.
주산 1급 정도면 암산도 상당히 빨랐다. 머릿속에 주산을 그려놓고 부르는 숫자를 주산 알로 입력했다.
요즘도 주산 학원이 문을 닫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주산이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계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독일제 계산자를 구입하여
계산자 사용법을 배웠다. 그리 정밀한 계산은 아니지만 소숫점 두 세 자리까진 유효한 것 같았다.
전자계산기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대학 다닐 때부터 들었으나 보지는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갔다가 제대를 하고 배를 타고 나갔을 때 기관실에서는 자그만한 기계식 계산기를 쓰고 있었다.
손잡이를 앞으로 돌렸다가 뒤로 돌렸다가 하는 방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 휴대용 카시오 전자계산기가 선 보였다.
벙커링회사에서 2기사에게 선물로 하나씩 올려 주었다. 각 탱크마다 테이블을 보고 온도와 비중을 고려하여
수급량을 계산해야 했으므로 계산기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 뒤 싱가폴에 가서선원들이 많이 가는 피플스 파크 전자제품 파는 곳에 가서 일제 카시오 fx-140 10 digit를
당시 20불인가 30불을 주고 샀다. 공학계산을 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기능이 탑재돼 있어 지금까지 사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1976년에 샀으니 45년이 다 돼 간다.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수퍼컴퓨터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전까지는 중국이 수퍼컴에서 1위를 차지하자 미국이 곧 추월하였다.
일본도 상위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쓸데없는 곳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뿌리면서도 정작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수퍼컴 예산에는 인색하여 수퍼컴 반열에는 명함도 못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이게 나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