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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서양사 30년 전쟁과 구스타프 아돌프의 신화 (2)
mr.snow 추천 1 조회 771 18.11.04 07:07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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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1.04 10:32

    첫댓글 흑흑 나의 구스타프짱은 이렇지 않다능..

  • 18.11.04 11:55

  • 18.11.04 17:27

    학생님의 글과는 상반된 견해군요. 잘봤습니닿

  • 18.11.04 19:15

    학생님글을 재미있게 봤었지만, 항상 의문점이 있었죠.
    아니 현대에서도 몇만명이 붙는 전장에서 상황판단에 따라 병력을 움직이는게 정말 힘든일인데 저 당시에 정말 병력운용을 저렇게 할 수 있었나?
    특히 카라콜과 관련해서는 저런식으로 싸우면 절대적으로 사거리가 길고 안정적으로 화승총을 사용할수 있는 보병대열이 절대적으로 유리할건데 제게 가능했었나 하는 의문점이었죠.

  • 18.11.04 19:42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비교적 최근의 사학 논의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18.11.04 22:11

    구스타프의 허와실을 보고 갑니다

  • 18.11.05 10:29

    1. 가죽포라는 것을 써보긴 했는데, 후대에 별로 쓴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닥 효율이 좋지는 않았던 게 아닌지... 브라이덴펠트 전투에서 화력의 우세라는게 실상은 이 가죽포의 숫자를 포함한 것이라고 해서 생각만큼 화력에 우위를 잡았다고 보긴 어려운 거 같네요..

    2. 생각해보면 "움직이는 삼각보루"라는게 결론은 중앙에 창병을 두고 주변에 화승총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16~17세기의 전술 시스템이네요..-_-;; 모양은 좀 다르지만 테르시오의 유연성을 설명해 주셨으니 황제군도 필요하다면 비슷한 진형을 구사했을 것이고..

    3. 30년 전쟁에 들어서 기존의 테르시오 모델들은 전체적으로 연대 구성 인원을 줄이고 총병을 늘렸다..고

  • 18.11.05 10:32

    들었는데.. 큰 맥락에서 결국 대부분의 장군들은 시대적 흐름에 충실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요..


    4. 호른 원수는 후에 뇌르틀링겐에서 유연성이 부족한 전술지휘(반복된 돌격..;;;)을 하다가 전투를 말아먹었는데.. 전장에서 항상 유연하고 냉정하게 최선을 수를 찾아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거 같습니다. 하기사 스포츠 시합에서도 감독이 멘탈 나가서 허둥대다가 완전 말리고 개털리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 거 보면;;;;;; 수 많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전장에서는 훨신 이런 압박감이 더하겠지요..

  • 작성자 18.11.05 21:00

    @델카이저 30년 전쟁 들어서서 갑자기 변화가 되었다기보다는, 당시 군 편제 자체가 국가 막론하고 상당히 유동적이었습니다. 전장 환경도 제각각인데다가 회전보다는 소규모 전투를 치러야 할 일이 훨씬 많으니까요.

    사실 구스타프도 뤼첸에서는 꽤나 삽질한데다가, 브라이텐펠트의 패장인 틸리도 결코 무능한 장군은 아니었죠. 전투 한두개만 보고서 이 사람은 불세출의 명장이니, 이 사람은 답없는 졸장이니 하는 시각이 사실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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