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번째 편지 -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눈다는 것
"부하 직원으로 직언을 잘하는 사람과 상사의 뜻을 잘 헤아리는 사람 중에 누가 회사에 도움이 될까요?"
지난주 수요일 직원 20명의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제가 30년 사업을 해보니 처음에는 편하게 제 뜻을 잘 이해해 주고 충성스러운 임직원이 편하고 좋았는데 세월이 흘러보니 저에게 직언을 하는 임직원이 결국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 뜻을 잘 헤아려 주는 임직원이 당연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 임직원에게는 제가 긴장을 하지 않게 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 주고 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직언을 하는 임직원은 제가 만만하지 않아 그에게 이야기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제 판단이 옳은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어 섣부른 결정을 하는 것을 방지하게 됩니다."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만하지 않은 부하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하게 되면 타성에 젖습니다. 그러나 부하가 만만하지 않으면 조심하고 숙고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월요편지를 쓰면 세 사람의 검증을 거쳐 발송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는 아내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여행을 떠나 오늘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제 비서입니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월요편지의 내용에 문젯거리가 없는지 살핍니다. 오늘 이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김 과장은 오늘 자 월요편지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과장이 의문을 제기하면 이용훈 부대표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오늘은 부대표도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발송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제 뜻을 접었습니다. 제가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것은 서두에 이야기한 직언을 하는 임직원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직언을 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윗사람들은 임직원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들의 속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하여도 월요편지 체크 시스템처럼 공식적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상사의 눈치를 보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회사에서 상사는 임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임직원들은 상사와 격의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사가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무리해서 밉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양해원 상무와 단둘이 저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단둘이 식사하는 것은 양 상무 입사 후 처음이었습니다. 저도 왜 그동안 이런 기회를 만들지 않았는지 의아할 따름이었습니다.
평범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한 시간이 흘러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양 상무가 제 눈치를 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냅니다.
"대표님,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저는 약간 긴장하였지만 이내 표정을 편하게 하고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하라고 자락을 깔아 주었습니다.
"대표님이 직원들을 각 사이트 별로 돌아가면서 식사하실 때 대표님이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AI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말씀하셔서 다소 아쉽다는 반응입니다. 각자 사이트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물어 주시고 이야기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양 상무의 표정을 보니 제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그저 그날 제가 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하였을 뿐인데 직원들은 달리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저의 나쁜 악습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습관 말입니다.
늘 조심하지만 잘 해결되지 않는 오래된 악습입니다.
예전에 썼던 월요편지(2008년 10월 27일)에 있는 내용입니다.
"뉴욕의 한 출판업자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한 데일 카네기는 그곳에서 저명한 식물학자를 만나 이국의 식물과 새로운 식물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 그리고 실내 정원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카네기는 그 학자에게 자신이 가꾸던 실내 정원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파티가 끝난 후 그 식물학자는 주최자인 출판업자에게 ‘데일 카네기 씨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재미있고 유창한 달변가였습니다. 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군요.’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데일 카네기는 의아했습니다. 사실 그는 그날 질문 몇 개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잘 알고 월요편지에 인용까지 하고도 그 반대로 행동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임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5.27.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