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강명석 (lennonej)
번호 100
조회수 1069
작성일 2002-07-02 오후 2:21:30
박정현의 이번 앨범 'Op.4'는 개인적으로 매우 리뷰하기 어려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앨범 자체의 내용물뿐만 아니라 '박정현'이라는 이름을 규정해온 그녀의 음악적인 특징이 너무나 뚜렷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앨범에 대한 느낌이 전혀 달라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정현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R&B이고, 이번 앨범은 R&B라곤 단 한곡도 없다. 그나마 지난 앨범에서는 그녀가 직접 작곡한 'Better now'나 'You mean everything to me'같은 곡들이 'R&B 보컬리스트'로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버터필'나는 곡들이 한곡도 없다. 심지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Puff'같은 곡 하나를 빼면 곡에 영어가사조차 없을 정도다. 물론 영어가사가 없는 것이 꼭 음악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음반에는 꼭 영어가사나 영어로 된 후렴구로 된 곡들이 몇곡씩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그녀의 감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급스런 톤을 가진 R&B 보컬리스트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기에 그런 부분이 없는 이번 앨범은 더욱더 그 변화가 눈에 띌 수 밖에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R&B 보컬의 변신은 유죄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은 '입장정리'를 하기에는 매우 쉬운 앨범이 될 수도 있다. 박정현의 R&B곡, 혹은 R&B 보컬리스트로서의 느낌을 살려낸 팝 트랙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정석원과 함께 만든 일련의 발라드곡들, 특히 'Plastic Flower(상사병)'이나 '꿈에'처럼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곡들이 참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늘 똑같은걸 하면 중간밖에 못한다."는 그녀의 변신에 대한 입장을 수긍하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좋게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시도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렇게 시도를 한 앨범이 과연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그 결과를 통해 박정현이 '무엇'을 담아내려 했으며, 그것이 과연 얼마나 성공, 혹은 실패 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박정현이라는 가수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와 새로운 스타일 사이의 입장차이에 그칠 것이고, 그 입장에 따라 이 앨범에 대한 의견은 계속 평행선을 그을 것이고, 이는 결국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서만 동의를 얻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현 앨범을 좋다/싫다로 평가할 수 있는 그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기본적으로 박정현이 '변했다'고 하는 부분부터 생각해보자. 박정현은 분명히 변했다. 그럼 어떻게 변한 것인가? 정석원과 만났기 때문에 본격적인 '한국식 블록버스터 발라드'를 해서?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그건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그건 박정현의 앨범을, 아니 뮤직비디오라도 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정석원이라는 프로듀서를 불러들여서 박정현이 시도한 궁극적인 변화가 과연 무엇이었고, 그것이 그녀의 어떤 감성과 생각을 표현하려 했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서 듣는 사람에게 좋다/싫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정석원이 들어왔으니 변하는건 당연한 사실이다. 변하지 않으려면 1,2집처럼 윤종신-하림-김형석-지누등의 라인업을 짰거나, 3집처럼 유희열-하림-이규호-지누중심의 라인업을 짜든가 했을 것이다. 대체 왜 박정현은 정석원을 택하게 되었는가.
무엇이 변했나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박정현의 이전의 앨범과 현재의 앨범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찾아보아야 한다. 만약 장르만 바뀐채 박정현의 특징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프로듀서 하나를 영입한 것에 그칠 것이고, 정석원이라는 프로듀서를 기용함으로서 근본적인 무엇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결과물에 상관없이 그것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고, 그에 따라 무엇인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현은 정말 무엇인가가 변화했는가? 이에 대해서 필자의 생각은 '매우 분명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이 음악적인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부분이겠지만, 박정현은 이번 앨범을 통해 분명히 자신이 의도하는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변화시켰고, 그것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녀의 목소리의 변화이다.
박정현을 규정지어왔던 것은 R&B이고, 그녀의 R&B라는 것은 결국 그녀의 창법에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것이다. 장르상으로는 같은 R&B라해도 '나의 하루'와 '몽중인'과같은 곡들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잇는 공통점은 바로 그녀의 보컬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보컬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급스러운' 톤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는 흑인처럼 두껍고 풍부한 보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본적으로는 얇은 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음과 바이브레이션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소리보다는 고음에서조차 고급스럽게 잔잔히 퍼질 수 있는 음색을 통해 R&B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음악적인 이미지를 소화했고, 특히 고음에서의 능숙한 애드립은 한국에서 대중이 좋아하는 R&B 보컬이 가져야할 특징을 가장 정확하게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의 'Intro'를 들어보라. 그녀가 '제대로된 R&B 보컬'임을 증명하는 이 짧은 트랙에서, 그녀는 영어로 가사를 처리하면서 곡의 도입부의 저음파트에서도 비음과 보컬의 떨림을 사용해 고급스러운 '흑인에 가까운' 보컬의 느낌을 전달하고, 역시 고급스럽게 넓게 퍼지는 코러스가 등장하면 그때에는 여음구를 통해 다양한 애드립과 고음처리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가창력과 기교를 선보이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한껏 파워풀한 고음을 들려준 뒤 다시 첫 부분과 똑같은 저음파트를 통해 자신의 고급스러운 보컬 톤을 과시한다. 이는 박정현이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가장 간단하게,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적어도 3집까지의 박정현의 보컬은 곡에 따라 어느정도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1,2집 앨범에 윤종신과 박용준외에 김홍순같은 흑인음악의 프로페셔널이나 그녀의 보컬에 고급스러운 느낌을 코디해줄 수 있는 지누/조원선, 그리고 흑인음악과 한국의 대중적인 취향을 잘 소화시킬 수 있는 김형석, 신재홍등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음악으로 소화시켜줄 수 있는 사람을 모아놓은 것이니 말이다.
made by lena park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감성이 꼭 이런 R&B적인 곡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가 2집에서 직접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이젠 돌려줄께'나 'ordinary'같은 곡들은 오히려 R&B적인 감성과는 거리가 먼 곡들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하는 '이젠 돌려줄께'는 '여전히 예쁘겠지...'같은 부분에서 조금씩 애드립을 쓰는 박정현의 창법만 아니라면 매우 간결한 팝 발라드이고, 'ordinary'는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만으로 사운드를 이끌고 나가면서 고음 파트는 비교적 자제하면서 낮게 깔리는 멜로디에서 자신의 바이브레이션이나 애드립을 R&B적인 기교보다는 오히려 멜로디에 따라 더욱 우울하게 변해가는 곡의 분위기를 이끌기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자신의 보컬은 앞의 곡들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보컬로 R&B를 하지 않고 보다 어둡고 간결한 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
하면서 자신의 또다른 면모를 선보였던 것이다.
이는 3집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을 드러낸다. 3집 'naturally'에서 그녀는 기존의 작곡가들중 김형석과 윤종신대신 유희열 이규호등을 각 곡의 프로듀서로 초빙하고, 지난 앨범의 작곡가들중 MGR의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팝 발라드와 댄스의 비중을 더욱 크게 늘린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분명히 담긴 음악의 스타일은 R&B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보컬은 여전히 R&B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매우 스케일이 큰 클래시컬한 발라드곡 '아무말도 아무것도...'를 '끝까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파워풀한 가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그녀의 R&B적인 창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곡에서 자신의 음색을 바꾸지 못하고 그녀의 보컬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곡은 멜로디와 사운드의 방향과 상관없이, 즉 웅장한 클래시컬 발라드가 가진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녀의 바이브레이션과 R&B적인 애드립이 곡을 채우면서 곡이 묘한 부조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쭉쭉 올라가면서 곡의 스케일을 감당하는 그녀의 보컬은 이 곡의 매력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편곡상으로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잔잔하게 시작되면서 이후 이어질 곡의 거대한 스케일에 대한 극적인 변화의 차이를 더욱 느끼게 해줘야할 전반부에서도 '준비조차못했던..'같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신의 '고급스러운' 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곡의 멜로디가 원래 가지고 있는 호소력이나 절절한 슬픔보다는 R&B보컬이 부른 발라드로 작용하도록 곡을 이끌면서 곡의 의도된 느낌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6분이라는 긴 시간은 차치하고서라도(이 부분은 라디오 에디트로 줄이면 된다), 편곡에 들어간 정성(이 부분은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일단 이정도의 현악세션을 외국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바르는'데다가 거의 모든 작업을 외국에서 처리하는 곡은 기본적으로 제작비만도 엄청나게 '깨지는' 수준이라는걸 말하고 싶다)이나 앨범의 첫곡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타이틀곡은 고급스러운 코러스로 곡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상대적으로 간결한 사운드구성으로 박정현이 그 여백사이에 보다 더 쉽게 그녀의 R&B 보컬 기교를 사용할 수 있었던, 그녀의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던 'You mean everyting to me'였다는 점은 이 앨범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지만, 정작 박정현 본인이 변하지 않으면서 사운드적인 퀄리티는 더 뛰어나지만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음악들로 채워진 것이 이 앨범이었던 것이다.
이는 박정현 본인이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두곡, '거짓말처럼'과 'Better now'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거짓말처럼'의 멜로디구성은 R&B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녀가 작곡한 멜로디라인은 '너의 목소리 떠오르면 애써 감춰가면... 거짓말처럼 난 그렇게 난 잊었다고 세상에 말해 왔었지만'같은 후렴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 R&B특유의 리듬감과 멜로디자체에서 R&B적인 보컬 기교를 사용할 수 있는 뚜렷하게 굴곡있는 멜로디라인대신 정박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멜로디를 보여주고 있고, 이를 박정현이 'R&B적인 보컬'로 소화하면서 이 곡을 R&B 곡으로 들리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후렴구를 함께 부르는 코러스가 이를 확인시켜주는데, 박정현과는 정반대로 맑고 깨끗한 톤을 가진 여성 코러스가 이 후렴구를 같이 부르면 이 곡은 전혀 다른 곡이 된다.
이 곡이 R&B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작곡한 멜로디외에도 곡의 전반부에서 진한톤으로 애드립을 가득 채워넣고, 곡 전체를 R&B적인 보컬로 소화하는 박정현 때문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멜로디적인 감성과 표현할 수 있는 보컬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또한 '아무말도, 아무것도...'의 편곡과 이 곡의 편곡, 그리고 두 곡에서 박정현의 보컬을 비교해보면 전자가 복잡한대신 박정현의 R&B적인 보컬은 상대적으로 줄었고, 반대로 후자는 매우 간결한 리듬 프로그래밍을 쓰는대신 사운드의 여백속에 그녀의 보컬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곡으로 꾸며졌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그녀의 보컬을 드러내면 드러낼려고 할수록 곡의 사운드는 정말 '할 일'이 별로 없게 되는 것이고, 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발휘할수록 그녀가 부를 수 있는 곡의 스타일은 점점 한정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노래잘부르는 박정현'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녀의 기교와 진한 톤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곡이 되어야하고, 그것은 결국 박정현은 늘 보컬'만'내세울 수 있는 곡을 부르게 되는 일이 반복될 수 밖에 없게 될수도 있는 것이다. 편곡이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보컬의 가능성을 살리기보다 보컬을 절제시킨다면 이는 둘중의 하나는 분명히 바뀔 필요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한 'Better now'는 그녀의 흑인음악에 대한 감성역시 R&B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가 'Better now'에서 들려주는 멜로디라인은 R&B보다는 오히려 가스펠에 가깝다. 다만 흑인음악적인 성향을 띄고 있고 혼세션을 많이 사용하면서 '거짓말처럼'에 비해서는 보다 많은 사운드가 첨가되어있지만 그 혼세션이 멜로디를 따라가면서 곡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배경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고, 건반과 베이스역시 멜로디를 충실히 따라가는등 사운드보다는 보컬이 곡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을만큼 사운드에 충분한 여백이 있어 박정현의 R&B적인 보컬이 십분 발휘되면서 R&B적인 느낌이 베어나오는 곡이 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곡들이 이 앨범에서 가장 쉽고 편하게 대중이 접근할 수 있고, 적어도 그녀가 그 보컬을 그대로 유지하는한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의 곡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현의 3집 앨범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두가지 사례이다. 공들여만든 첫 번째 트랙대신 박정현의 기존 이미지에 어울리는 'You mean
everything to me'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은 결국 박정현과 그녀의 기획사에서도 대중이 원하는 박정현의 음악이 결국 보다 듣기 편하고 고급스러운 R&B성향이 들어있는 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실제로 박정현을 '잘 팔리게' 만든 것은 그녀의 1집에서 들려준 기막힌 R&B 보컬과, 그 보컬을 이끌어내는 곡들때문아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R&B와는 다른 자기 감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국내의 내노라하는 유명 프로듀서들과 앨범에 대한 상당한 투자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중에 대중성을 위한 어느정도의 절충과, 그당시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었던 그녀의 타고난 R&B적인 보컬을 그 곡들과 섞는 것에서 드러난 보컬 디렉팅의 문제는 이 앨범을 좋은 보컬과 좋은 뮤지션이 만나도 그 결과물이 매번 좋을수만은 없음을 보여준, 그러면서도 아주 대중성을 포기하지는 못한, 박정현의 '야심'이 뚜렷하게도 드러나지 못한 묘한('퀄리티'는 좋은데 전체적인 결과물은 좋다고 확신있게 말하기 힘든 앨범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앨범으로 만든 것이다.
정석원과 만나다
그렇다면 박정현이 그 다음앨범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둘중 하나가 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든가, 아니면 안되도 되게하는 정신으로 3집의 방향성을 밀어붙이면서 자기 목소리까지 새로 디렉팅을 하든가 말이다. 그리고 박정현은 여기서 후자를 선택했고, 그 방법의 하나로 정석원을 프로듀서로 선택했다. 이는 적어도 프로듀서를 뒀다는 것 만으로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현은 지금까지 '놀랍게도' 단 한번도 앨범 전체의 프로듀서를 둔적이 없고, 각 곡마다 자신과 프로듀서가 서로 상의하면서 앨범을 만드는 형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각곡의 편곡자들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그러다보니 그녀의 보컬은 결국 앨범 전체의 방향에 어울리는 보컬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컬을 그대로 내는 경향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박정현이 그저그런 보컬리스트라면 곡마다 프로듀서의 주문에 휘둘렸겠지만, 박정현정도로 '타고난' 보컬리스트라면 앨범 전체의 컨셉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프로듀서가 아닐바에야 박정현이 '현재' 가지고 있는 보컬을 더 잘 이끌어낼 수 있는쪽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가 될 수 밖에 없다.
박정현이라는 보컬리스트의 대중적/음악적 메리트가 국내에서는 아무도 흉내내지못할 R&B 보컬이었으니 그걸 살려주는쪽이 좋지 않은가. 실제로도 박정현의 기획사에서는 R&B라곤 한곡도 없는 이 앨범에서마저도 'R&B의 여제'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녀가 R&B보컬리스트임을 내세우고 있고, 이는 작년부터 R&B가 한국에서 가장 확실한 대중성을 가진 장르가 된 상황에서 수익을 바라는 기획사가 취할 수 있는 그나마 최대한의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바뀐 박정현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R&B 박정현'을 홍보하는 것이 훨씬 대중에게 쉽게 먹힐 수 있으니 말이다(물론 그만큼 앨범의 '실체'와 박정현의 기존 이미지에 대한 괴리를 크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앨범 전체를 통괄하는 프로듀서는 그동안 각 곡마다 다른 프로듀서와 보컬에 대해 얘기해야했던 박정현에게 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보컬을 찾고, 그것을 앨범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정석원은 그점에 있어서만큼015B시절의 음악들이 증명하듯 매우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가희의 앨범과 이승환의 새앨범 'Egg'의 'Waiting for payback time'에서 보컬의 특성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사운드적인 시도에 집중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이에 대해서는 이승환 앨범리뷰 참고), 이가희의 앨범은 이가희가 완성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스튜디오에서 가이드 보컬(최종적으로 곡을 녹음할 가수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일단 녹음을 위해 고용하는 보컬)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않을까 싶을만큼 소녀라는 것을 제외하면 보컬에서 어떤 독특한 색을 찾기 힘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보컬로서 정석원의 사운드적인 시도를 더욱 많이 가능케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Waiting for payback time'의 경우는 이승환의 'The War In Life'의 히든트랙 '새대가리'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Egg'에서 'I hate it'과 더불어 이승환이 자신의 보컬보다는 사운드적 시도에서 집중했다고 볼 수 있는 곡이라는 것, 그리고 이승환과 정석원이 가장 절친하고 오래된 친구라는 점에서 '새대가리'처럼 한곡을 정석원에게 '내어준' 의미도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즉, 정석원이 이가희의 앨범을 통해 공식적으로 복귀한 이후 그는 정상적으로 '보컬리스트'라 부를만한 뮤지션과 보컬리스트-프로듀서의 관계로 일한 경우가 없는 셈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쉰 정석원의 보컬디렉팅능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이 앨범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즉, 그녀는 3집에서 보여준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드디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프로듀서를 찾았고, 동시에 그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목소리에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앨범이 그녀의 전작과 달리 유독 전체 프로듀싱과 보컬 프로듀싱을 따로 나누고 있고, 각 곡마다 그녀와 정석원, 그리고 곡의 작곡가가 함께 그녀의 보컬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해야할 것이다.
목소리
물론 여기까지는 일단의 결과만을 놓고본 '추론'이라고 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앨범의 내용물이 어찌 되느냐, 즉 박정현의 보컬이 어떤 변화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음악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느냐하는 것일 것이다. 이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녀의 자작곡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녀가 직접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곡이라면 그녀가 하고자했던 의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가 작곡한 곡은 바로 다름아닌 'Puff'다. 그냥 작곡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곡은 박정현이 '유일'하게 프로듀싱을 하고 있는 곡이다. 그만큼 박정현의 의도가 더욱 잘 드러나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고, 박정현은 이곡을 예상외로 정석원이 만들었다고 해야 믿을 수 있는 이펙트와 사운드 변화로 가득한 곡으로 만들었다.
이건 의외다.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 곡은 정석원이 만들었다고 해야 고개가 끄떡여질정도로 그의 최근작들중 '새대가리'나 'Wating for the payback time'이 연상될만큼 최대한 박정현의 보컬을 이펙터로 가리고, 변조하고 있는 곡이다. 그런데 만들기는 박정현이 만들었고, 편곡은 정석원이 아니라 국내에서 발라드 뮤지션과 가장 음악적으로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테크노 뮤지션 세인트 바이너리(Saint Binary)가 했다. 그만큼 정석원은 한발짝 물러나고 박정현이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곡이라는 얘긴데, 그럼 박정현은 아예 자기 보컬을 '포기'하고 사운드의 퀄리티에만 정성을 쏟기로 한 것일까?
이 곡이 박정현의 보컬을 이펙터로 가렸다는 것만을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될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곡을 다시한번 확인해보자. 이 곡의 중심은 의외로 박정현의 '목소리'다. 박정현의 보컬은 이펙터를 쓰지 않은 보컬과 이펙터를 쓴 후렴구의 보컬 외에도 앨범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녀의 보컬은 'Puff...'로 시작되는 곡의 전반부에서 조금더 울림을 강조해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그 보컬의 끝 부분을 조금씩 반복시킨 뒤 이펙터를 사용해 원래 보컬에서 줄 수 없었던 날카롭고 기괴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고, 간주에서는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날카롭고 높은 음색을 사용해 지금까지 '고급스러운 R&B보컬'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외에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펙터로 가리건 말건, 결국 곡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는 것은 박정현의 보컬인 것이다. 특히 곡 후반부의 이펙트 걸린 보컬이 부르는 후렴구와 그 위에 박정현의 기존 보컬과 전혀 다르게 매우 가볍고 날카롭게 코러스를 하는 박정현의 또다른 보컬의 대비는 이 곡이 가진 기괴하고 공격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이끌어나가면서 곡을 마무리한다.
즉, 이 곡은 박정현의 보컬을 '묻은' 곡이 아니라 오히려 박정현의 보컬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그녀가 이런 분위기의 '노래'(!)도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곡이다. 이펙터로 보컬을 가렸을 때 그녀의 보컬이 가진 '원래' 색깔은 상당부분 사라지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서 그녀가 가진 또다른 날카로운 보컬의 느낌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Wating for payback time'에서 이펙터를 사용한 이승환의 보컬과 이 곡에서 박정현의 보컬을 비교해보라. 이펙터를 사용한다고 보컬의 개성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괜히 실력없는 편곡자들이 보코더나 디스토션 이펙터 남발했다가 욕먹는게 아니다). 이 곡을 통해 박정현은 이 앨범의 지향점, 즉 R&B라는 장르를 벗어난 자신의 보컬이 얼마나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고, 동시에 그 보컬에 어울리는 음악은 이전의 것들과 또다른 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주려한 것이다(그 완성도는 뒤에서 별개로 논의해야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 곡에서 박정현의 보컬은 어떤 기교없이 자신의 보컬을 진성 그대로 내고 있다. 비음이나 바이브레이션, 혹은 곡 중간에 '당연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그녀의 애드립역시 없다. 그녀는 자신을 고급스럽게 치장해주는 R&B적인 창법, 특히 기교를 통해 곡 전체를 지배하곤 했던 그녀의 넓게 울려퍼지는 보컬을 제거하면서 자신이 새롭고 다양한 정서들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한 듯 싶다.
그리고 이런 'Puff'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보컬에 대한 의지가 사실이라면, 그녀가 정석원을 고른 것은 적어도 그 '선택'에 있어서만큼은 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석원특유의 복잡한 사운드 메이킹을 기반으로한 큰 스케일의 곡들은 그녀가 표현하고 싶은 다양한 보컬을 실험하기에는 매우 잘 어울리는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환의 3집 'MY STORY'의 '사랑에 관한 충고'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이런 정석원의 곡들은 단순하게 얘기하면 반복적인 멜로디 구성과 다양한 사운드, 그리고 사운드의 변화에 따라 같은 멜로디더라도 전혀 다르게 소화될 수 있는 보컬의 사용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박정현이 자신의 보컬, 즉 R&B라는 특성을 제거하고 나오는 그녀의 또다른 보컬이 가진 성격을 끝에서 끝까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매우 잔잔하고 어두운 감성부터 그녀의 곡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었던 폭발적이고 공격적인 보컬까지를 '한곡'에 처리할 수 있다면, 대중이 뭐라하건간에 그녀는 그녀스스로 '보컬 프로듀싱'을 따로한 보람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석원의 또다른 블록버스터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Plastic Flower(상사병)'은 우선 박정현의 보컬이 가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설정해주는 것 같은 곡이다. 우선 이 곡을 이야기하기위해서는 정석원의 곡 스타일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정석원을 싫어하다못해 '저주'한적까지 있고('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은 필자가 얼마나 정석원을 싫어하는지 알 것이다. 물론 그때는 매우 철이 없어서 그렇게 쓴거긴 하지만), 여전히 싫어하며, 이가희의 앨범은 퀄리티는 최고지만 앨범이 퀄리티만 가지고 되는건 절대로 아니라는걸 새삼스럽게 깨닫게해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석원 특유의 복잡한 사운드메이킹에 기반을 둔 '서커스'에 가까운 발라드가 사운드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곡 스타일의 곡을 부르는 가수는 무조건 그 스타일에 파묻힌다는 것은 닥차일드의 업템포 스타일을 브랜디와 마이클잭슨이 불렀다고 해서 그게 닥차일드 음악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오류다. 그건 프로듀서의 스타일이고, 그걸 자기 곡으로 소화하느냐는 결국 보컬리스트의 문제다. 이가희의 곡은 그렇다치고, 정석원의 이런 스타일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관한 충고'을 들으면서 이 곡이 이승환의 개성이 철저히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박정현도 마찬가지다. 박정현이 자기 스타일로 부르고, 프로듀서와의 상의하에 자기에 맞는 사운드를 이끌어내면 그것은 박정현의 곡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논리적인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Plastic Flower'와 그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이가희의 '밀'에서 보여지는 차이점이다. 우선 이가희의 '밀'은 보컬리스트가 거의 가이드 보컬이라고 해야할만큼 특징없는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보컬이었고, 이는 상대적으로 정석원의 사운드 메이킹이 보다 강하고 현란하게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이곡은 보컬을 매개체로 사운드의 연결을 매우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건반이나 리듬프로그래밍의 사운드는 매우 선명하게, 그리고 각각 곡의 전반부와 중-후반부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이 사운드외에도 각각의 사운드는 보컬만큼이나 매우 뚜렷하게 믹싱되어 있다. 그만큼 사운드를 듣는 재미가 있고, 이가희의 보컬은 그 다양한 사운드안에서 곡을 연결시켜주는 진짜 '가이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밀'은 이가희가 그녀의 한계로 인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곡의 웅장함을 사운드로 모두 메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대 안보이게 되면...'에서 박진감넘치는 리듬프로그래밍이 삽입되는 동시에 전반부부터 등장하던 코러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사운드는 이가희의 여린 보컬과는 반대로 곡을 점점 거대하게 키우고, 결국 곡의 마지막에서는 이승환의 보컬을 등장시키면서 곡의 스케일을 최대한 웅장하고 거대하게 만들면서 곡을 마무리한다. 정석원의 의도야 어떻건, 이 곡에서 이가희의 보컬은 곡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자 곡의 웅장함을 대비시켜주는 또 하나의 '악기'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럼 박정현의 'Plastic Flower'도 그런가? 일단 이 곡의 전체적인 사운드 톤은 '밀'과 다르게 선명한 사운드대신 어느정도 울림을 사용하고 있고, 동시에 전체적으로 소리가 작게 깔려있다. '꿈에'에서의 건반도 마찬가지지만, 이 곡에서 사용된 건반연주와 '밀'에서의 건반연주, 그리고 이 곡에 사용된 여러 리듬프로그래밍과 '밀'에서의 리듬프로그래밍을 비교해보라. 이곡에서의 사운드가 보다 작게, 그리고 현악세션을 빼면 더 멀리서 울려퍼지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이는 특히 곡의 중반에 등장하는 강렬한 리듬프로그래밍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나는데, 이 리듬프로그래밍은 '밀'처럼 복잡한 구성에 다양한 톤의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말그대로 강하게 정박으로 한번씩 쳐주는 리듬프로그래밍을 가지고 있고, 박정현의 보컬이 등장하면서는 볼륨이 줄어들면서(박정현의 보컬이 등장하는 첫부분에서는 보다 건조한 다른 톤의 리듬프로그래밍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박정현의 보컬밑에 깔려 보컬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에서 만약 강렬한 파워와 큰 스케일을 전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운드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렇게 정박으로 쳐주는 강렬한 리듬프로그래밍에 맞춰 멜로디를 소화하는, 다른 사운드들에 비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된 박정현의 보컬인 것이다. 즉, 이 곡에서 궁극적인 완성도, 그리고 정석원이 바라는 '복잡다단하고 거대하며 파워풀하기까지한' 곡을 완결지을 책임은 결국 박정현의 목소리에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이 곡이 '밀'과 달리 단 한부분도 코러스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코러스로 하여금 곡의 스케일을 키운다든가하는 시도를 안한다는 점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곡의 스케일과 분위기는 전적으로 박정현의 보컬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현은 이 곡에서 어떤 보컬을 선택했는가. 만약 곡에 어울리는 파워를 갖춘 보컬'만'을 원했다면 박정현은 오히려 '아무말도 아무것도...'같은 넓게 울리는 보컬에서 R&B적인 기교를 뺀 '파워만빵'의 보컬로 이 곡에 도전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현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진성 보컬을 최대한 드러낸 보컬이었다. 바이브레이션과 같은 창법은 최대한 줄이고, 자신의 보컬이 원래 가진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컬이 가진 그녀의 보컬은 고급스러운 색채가 사라진대신 보다 생생하고, 보다 어두운 색깔을 띄고 있다. '포기하냐 놀려대네 / 나 자신도 정말 몰랐어 이런일 내게 생길 것이라곤...'에서의 보컬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녀의 보컬은 그녀를 둘러싼 R&B적인 느낌을 걷어내자 보다 잔잔하고, 고음에서 보다 엷고 조금씩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보컬을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보컬이 그대로 고음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여자 있진 않을까...'에서부터 그녀의 보컬은 더욱더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중간중간 '그 상처가...'처럼 음정을 내리는 부부분에서는 그 날카로움과 대비되어 마치 한숨짓듯, 좀더 포장되고 듣기좋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힘조절에 따라 사람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목소리로 변화한다. 즉, 이 곡은 박정현이 오랫동안 표현해왔던 보컬적인 특징을 배제하고 자신의 진짜 목소리만으로 끝에서 끝까지의 요소를 모두 가진 곡을 소화하려한 곡인 것이다.
마치 다양한 이펙터를 사용할 수 있는 일렉트릭 기타를 이펙터를 모두 제거하고 원래 악기가 가지고 있는 톤만을 가지고 연주한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만큼 화려하고 다양한 음색은 못내지만 그만큼 조절에 따라 저음에서는 보다 잔잔하고 어두운 느낌을, 고음에서는 좀더 얇고 날카로운 느낌을 낼수도 있다. 진성의 잔잔함속에 들어있는 우울함과 파워풀한 고음에서 나타나는 공격성이나 얇은 보컬이 표현하는 애절함은 이 앨범에서 박정현이 일관되게 표현하는 보컬의 스타일이고, 이 앨범의 각각의 곡들은 과연 이것을 어떻게 곡속에 소화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과 완성도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다시 'Plastic Flower'로 돌아와보자. 이 곡은 '좋은' 곡인가? 우선 정석원이 만들어낸 사운드를 살펴보자. 정석원은 이번에도 반복적인 구성을 가진 멜로디에 전혀 다른 사운드들을 입혀놓아 처음과 끝을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어내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잔잔한 리듬 프로그래밍부터 건반, 현악세션으로 이어지는 사운드의 구성뒤에 갑자기 웅장하게 변화하는 간주의 사운드와 강하면서도 차갑게 느껴지는 리듬프로그래밍의 사용으로부터 곡의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곡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사용되는 리듬 프로그래밍과 현악세션(후반부는 스트링 머신을 사용한 것이긴 하지만)이라는 사운드적인 동일성을 통해 곡에 일관성을 지니며, 후반부에서는 그것을 한데 합쳐놓으면서 곡의 박진감을 극대화시키는 그의 사운드메이킹은 정말 인정안할 수 없을만큼 훌륭하다. 또한 곡의 스케일을 키워놓은 뒤에도 자신만만하게 디스토션 기타로 헤비한 리프를 연주토록 하면서 곡의 역동적인 느낌과 웅장한 스케일을 한번더 증폭시키는 그의 감각역시 대단하다.
또한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 이 곡역시 '밀'에 필적하는 최고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데, 다양한 톤을 가진 리듬프로그래밍과 건반, 현악세션(그것도 고음파트와 저음파트, 그리고 스트링 머신의 각자 다른 톤들을 말이다)과 디스토션 기타등을 한 곡안에 무리없이 조율하고, 거기에 리듬프로그래밍이 주도하는 공격적인 사운드속에서도 '다른 여자 있진않을까..'에서부터 등장하는 베이스리듬으로 곡의 리듬감과 안정성을 유지해가는 그의 능력은 사운드에 대한 감각이나 지식, 그리고 실제 응용면에서도 최고수준이다. 심지어 디스토션 기타의 질감은 오히려 일반 국내 록그룹의 그것보다 더 헤비하게 잘 잡혀있다고 해야할 지경이니(물론 곡 전체를 그렇게 꾸며야하는 록밴드의 기타녹음과 일부분의 녹음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아무리 요즘 스튜디오의 프로듀서들이 록밴드보다 더 록적인 사운드를 잘잡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참 감탄할만한 수준이다.
특히 곡의 두 번째 간주에서 지금까지 곡을 이끌던 거의 모든 사운드들을 한꺼번에 몰아넣으면서 거기에 디스토션 기타까지 첨가한 뒤 디스토션 기타리프와 기타솔로를 연결시키면서 함께 현악세션을 조율하여 그것만으로도 곡의 후렴구가 담고 있던 멜로디의 웅장한 스케일을 단번에 끝까지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곧바로 순간적으로 사운드를 없앤 뒤 스피커 좌우를 때리는 이펙터로 새로운 임팩트를 가한 뒤 보컬을 등장시켜 사운드에 흘러간 곡의 주도권을 다시 박정현의 보컬로 넘기는 부분은 이 사람이 정말 감각에 '노가다'를 마다하지 않는 집요함까지 갖췄음을 증명한다. 글로 정리하니까 이렇게 몇줄로 얘기가 되는 것이지 현악세션으로 멜로디를 이끌면서 거기에 디스토션 기타리프와 리듬프로그래밍으로 곡의 박진감을 부여하고, 거기서 다시 기타솔로로 곡의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넘긴다는 것은 그만큼 사운드의 톤과 믹싱뿐만 아니라 멜로디를 다른 사운드에 맞게 조절하고, 동시에 그 멜로디의 리듬을 다양한 방법으로 쪼개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모르긴 몰라도 정말 이부분 만들 때 정석원은 거의 피가 말랐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 어쩌면 이런 스타일의 정석원의 곡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이 곡은 다양한 사운드로 곡의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대신 매우 제한된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다. 전반부에 제시된 후렴구의 멜로디는 이후 사운드가 바뀌는 와중에도 계속 반복된다. 그만큼 이 곡이 완결되는 곡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운드가 필요하거나, 웅장한 곡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새로운 멜로디나 편곡으로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운드가 마지막에 들어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곡은 끝없이 같은 멜로디를 확장해나가는 곡만이 될 수 밖에 없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과연 이 곡을 듣고 듣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란 무엇인가.
물론 퀄리티는 '죽인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이나 '극단적인 변화'는 곡에서 들려주고자하는 기본적인 감성에 바탕이 된 것이지 그 자체로는 '호감'은 줄 수 있어도 '감동'은 주기 힘들다. 물론 웅장함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한된 멜로디의 반복만으로 이루어진 곡을 바탕으로한 곡에서 사운드가 주는 감동이란 한계가 있다. 결국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고...'같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절절함이나 파워풀한 보컬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가 될텐데, 그것만으로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 곡의 단조로운(?) 사운드 배치다. 물론 이건 말이 안되는 얘기이다. 이만큼 다양하게 사운드를 썼는데 단조롭다고 한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단조로움이란 정석원이 이 곡에서 보여주는 음악적인 특징에 비추어보았을 때 생기는 단조로움이다. 반복적인 후렴구의 멜로디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 곡의 사운드는 계속 스케일을 확장하고 곡을 클라이막스에서 마무리하려면 계속 사운드를 덧붙여 나가면서 곡을 꾸며야한다.
하지만 이 곡은 두 번째 간주의 디스토션 기타리프와 기타솔로 이후에는 새로운 사운드없이 박정현의 보컬을 그 사운드에 입혀 진행되다가 그대로 기타리프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두 번째 간주까지 계속 새로운 사운드가 하나씩 입혀지면서 박진감을 이끌었던 것과 달리 이 부분은 앞의 부분을 한번더 반복하면서 곡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물론 다른 멜로디가 있어서 이런 사운드속에서 곡의 분위기를 멜로디로 하강시킨다든가 더 폭발시킨다든가 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후반부의 멜로디라인은 계속 뻗어나가는 후렴구의 멜로디를 그대로 반복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이 곡의 흐름은 두 번째 간주에서 멈추어버린다. 특히 두 번째 간주가 디스토션 기타리프에 이어 기타솔로로 지금까지 쌓여온 곡의 긴장감을 한꺼번에 폭발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만한 기타솔로가 있었다면 그 뒷부분에는 그것을 정리하건 더 폭발시키건간에 뭔가 확실한 마무리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진정한 이곡의 '약점'은 바로 박정현의 보컬이다. 사실 이 곡은 잘 계획된 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솔로가 이어지고 나서, 이펙트로 분위기를 잡아준 뒤 박정현의 보컬이 앞에서 들려준 보컬보다 더욱 파워풀하게, 그리고 더 높은 음을 소화할 수 있었다면(물론 이게 좀 말이 안될수도 있다는 얘기는 알지만 곡 자체가 그리 짜여져서 하는 말이다) 이 곡은 정말로 '대단한' 곡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현의 보컬은 첫 번째 간주가 등장한 뒤에 부른 보컬 이상의 파워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남는 것은 사운드의 변화뿐이고, 사운드의 변화가 멈추는 순간 곡은 더 이상의 큰 스케일나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코러스라도 사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곡은 박정현의 보컬 하나에 의지하는 '진검승부'였으니 어쩔 수 없다. 또한 박정현의 이런 보컬에 맞춘 사운드였기 때문에 이가희의 앨범에 비해서 정석원이 사운드의 운신의 폭이 적어진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꿈보다는 현실적인
그리고 이런 곡의 단점들과 박정현의 자신의 보컬에 대한 도전은 '꿈에'에서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완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이 타이틀 곡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한다. 사운드 메이킹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이 곡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방송 시설에서 얼마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낼지도 의문이고, 오히려 대중에게 먹힐만한 곡은 이 곡의 다음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박정현 자신이 추구하고자한 바를 대중에게 전달하겠다는 음악적인 욕심이 반영된 것 같다고 해야할까(가능하면 이런곡은 앨범을 사서 듣던가, 아니면 아예 듣지 않는게 낫다. 아니라면 최소한 mp3나 TV에서 듣고서 남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는게 예의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건 이 곡은 'Plastic Flower'보다는 대중적으로 무난(?)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 곡은 'Plastic Flower'와 달리 박정현의 보컬에 곡의 스케일을 모두 맡기지 않고 곡의 후반부터 코러스를 등장시키면서 보다 무난하게 곡의 스케일을 키워나간다. 이가희의 '밀'이 그랬듯 웅장한 코러스가 등장하면서 메인 보컬로만은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다만 이가희의 보컬과 코러스와의 관계는 서로 대칭에 가까운, 이가희에게 아예 없는 것을 코러스가 만들어준 것이라면 이 곡은 박정현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을 코러스가 '보완'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박정현이 이 곡에서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보컬 톤을 여러개로 바꾼다는 점이다. 이 곡에서 박정현은 자신의 발성을 조금씩 바꾸면서 톤을 조정함으로서 보다 넓은 음역대와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한다. 처음 등장하는 잔잔한 보컬은 R&B스타일이라는 '이펙터'를 푼 진성을 그대로 쓴 것이라면 '이건 꿈인걸 알지만...'에서는 보다 목에 힘을 주면서 보다 파워풀하고 넓게 퍼지는 보컬을 사용한 것이고, 다시 '날 안아주네요... / 혹시 이게 꿈이라면..'부분은 보다 보컬을 얇게한채로 가녀린 느낌을 주다가 '계속 나를 안아주세요..'에서 다시 'Plastic Flower'에 들려준 진성보컬로 고음의 멜로디를 소화하며, '대답해줘요'에서는 순간적으로 가성을 쓰면서 얇게 보컬을 낸 뒤 그 뒤에 순간적으로 다시 파워풀한 보컬로 돌아서면서 둘간의 차이에서 보다 극단적인 분위기 변화를 이끌어낸다.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 이제 울께요 또다시 보내긴 싫은데 보이지 않아요..'뒤의 보컬은 마치 여자가 그로울링 보컬을 시도한 것처럼 최대한 힘을 실어 'Plastic Flower'에서 가장 파워풀했던 부분의 보컬 이상의 힘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니 이 곡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톤에 맞춰 곡을 어색하지 않게 연결하는 정석원의 사운드 메이킹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컬 톤에 맞춰 서커스하듯 마구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톤의 보컬이 있는만큼 그것을 일관성있게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까닭인지 이 곡에서는 건반이 상당히 중요한 악기로 등장한다. 'Plastic Flower'가 다양한 악기와 질감의 사운드들을 가지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바꿨다면, 이 곡은 비교적 정해진 악기들을 가지고 보컬의 톤과 멜로디의 흐름이 바뀔때마다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이를테면 잔잔한 부분에서는 곡의 흐름을 건반으로 이어간다. 곡의 도입부부터 곡의 멜로디를 잔잔하게 연주하던 건반은 보컬과 매치되면서 곡의 흐름을 조용히 이끌다가 '이건 꿈인걸 알지만..'부분에서는 좀더 건반의 터치를 강하게 하고, 동시에 좀더 선명하게 사운드를 부각시키면서 보컬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 안아주네요..'에서는 다시 앞부분의 사운드가 반복되면서 건반역시 잔잔하게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으로 돌아가고, 이는 후반부에도 다시 사용된다.
또한 '혹시 이게 꿈이란걸...'로 시작되는 후렴구에서는 건반과 베이스, 디스토션 기타와 코러스등을 계속 사용하면서 전반부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는 일관성을 가지는 사운드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 후렴구 뒤에 연결되는 '대답해줘요'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곡은 사운드가 곡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로, 그것도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는 다양한 박정현의 보컬 멜로디라인이 곡을 이끌기에 'Plastic Flower'만큼 복잡다단한 사운드를 쓰기 보다는 그 변화의 이음새를 잘 연결시키고, 곡을 일관되게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스토션 기타정도를 제외하면 곡의 사운드를 모두 여성 코러스나 건반, 베이스, 조금더 울림을 강조한 드럼등 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가진 사운드들로 구성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않고 이 곡에서마저 'Plastic Flower'처럼 다양한 사운드를 구사했다면 이 곡은 멜로디에 따라 전혀 다른곡들이 여러개 섞여버리는 이상한 곡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박정현과 정석원이 어느정도 의견조율을 하면서 곡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곡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느냐가 아니라 그 사운드를 가지고 어떤 구성을 보여주느냐는 것이다. 각각의 멜로디에 따라 사운드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던 이 곡은 '날 안아주네요..'부터 박정현의 보컬이 오버더빙되다가 '혹시 이게 꿈이란걸...'에서 오버더빙된 보컬이 더 크게 따라붙으면서 곡의 흐름을 잇고, 거기서부터 코러스가 등장하고 계속 이어지면서 곡을 연결해나가며, 다시 기타솔로후 이 코러스가 멜로디를 바꾸며 잔잔하게 분위기를 전환시킨 '바보같이 즐거워만 하는 날보며...'에 등장, 멜로디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곡에 변화를 주고, 이어지는 '날 안아주네요..'에서 박정현의 보컬과 함께 그 스케일을 키우면서 곡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물론 곡을 클라이막스로 이끌어나가는 단서를 마련한다. 사운드는 단순하지만 구성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멜로디와 사운드의 요소를 좀더 짜임새있게 조직하면서 극에서 극까지 이어지는 곡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들으면 분명히 한곡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곡이 완성된 것이고, 그만큼 'Plastic Flower'의 여러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의 시작은 박정현이 자신의 진성보컬뿐만 아니라 그녀의 R&B 보컬이 아닌, 예민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는 여러 보컬톤을 사용하면서 보다 다양한 멜로디와 느낌을 소화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결국 곡의 방향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그녀의 목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앞의 곡에서는 달리 코러스를 사용한 것, 즉 그녀 자신만의 보컬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음악적인 요소를 쓰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서 보다 음악적인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서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보컬이 만들어내는 정서가 과연 무엇인지 보다 '극단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과연 이전까지의 박정현의 곡들중에서 이만큼 극단적으로 잔잔한 슬픔과 거칠고 파워풀한 절규가 함께 나타나는 곡이 있었는가. 'Plastic Flower'가 그녀의 원래 보컬이 가진 한계를 시험한 곡이라면, 이 곡은 거기에 좀더 자신의 테크닉을 사용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폭을 표현한 셈이다. 그리고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지금까지 고급스러운 R&B 보컬에 가려져 있던 박정현 개인의 '절절한' 슬픔과 고급스러움을 포기한대신 얻게 된 고음부에서의 보다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호소력이다. 이전의 박정현이 무슨 곡을 부르건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제에 두었다면, 이 두곡에서 들려주는 박정현의 보컬은 개인의 어둡고 슬픈감정,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강렬한 호소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대중에게는 너무 부담스럽거나 생소한 것일수도 있지만, 박정현은 이제 '잘만든 R&B 악기'가 아니라 '박정현 본인'의 감성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박정현의 보컬에 대한 성과이지 곡 전체의 완성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이 곡에서 정석원은 할만큼 했다고 본다. 문제는 박정현의 보컬이다. 톤을 조금씩 바꾸면서 보다 다양한 멜로디라인을 소화한 것은 'Plastic Flower'보다는 음악적인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보다 안전한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톤이 바뀌면서 톤이 바뀔때마다 생기는 약간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석원이 자연스럽게 사운드를 연결시켜줘도 곡의 중심이 되는 박정현의 보컬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박정현은 이 부분에서 완벽하게 곡의 흐름을 제어하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잔잔한 멜로디 뒤에 '계속 / 나를 안아주세요'처럼 순식간에 곡의 분위기를 바꾸는 부분에서 박정현은 '계속'부분에서 제대로 가사를 처리하지 못하고 너무 급하게 '나를 안아주세요'로 넘어간다. '계속'부분이 좀더 잔잔하고 여유있게 지나가면서 '나를 안아주세요'의 멜로디로 넘어갔다면 이 곡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또한 곡의 후반부에 웅장한 코러스와 함께 '또다시 보내긴 싫은데..'부터 이어지는 파워풀한 보컬은 박정현으로 봐서는 거의 맥시멈한 것이지만 곡을 뒤덮는 사운드의 웅장함에 맞설 정도는 아니다.
이건 박정현의 보컬 톤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수도 있는데, 원래 곡의 흐름대로였다면 박정현의 '거대한' 보컬이 터지면서 모든걸 '압도'해버렸어야겠지만 박정현의 보컬은 후반부의 그 마지막 여음구에서 고음에 어느정도 거친 보컬은 사용해도 곡을 꽉 채울 수 있을만큼 넓게 울려퍼지는 힘을 가지진 못한다. 물론 정석원은 이 곡에서 'Plastic Flower'와는 다르게 박정현의 보컬에 조금씩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사운드를 조정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박정현의 '목'에서 나오는 원래 목소리이니 이 부분은 박정현이 앞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야할 숙제일 듯 싶다. 만약 이 부분이 조금만 더 파워풀하게 나왔다면 이 곡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잔잔한 도입부 멜로디의 반복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면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곡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다 확실히 보여주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보컬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박정현이라는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런 곡의 이미지를 이미 8년전에 완벽에 가깝게 소화한 인물이 국내에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역시 정석원이 프로듀싱했던 이승환의 'Human' 앨범에서의 '천일동안'이다. 그 곡이야말로 '끝에서 끝'을 보여주고 있고,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도 지금 들어도 신기할정도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놀라운 편곡에 코러스없이 이승환의 보컬로 그 사운드와 맞서지 않았는가. 또한 그 곡역시 후렴구의 멜로디를 계속 반복하는 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반복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곡이었다. 물론 '천일동안'과 지금 박정현 앨범에서 보여지는 이 곡은 작법도 다르고 이승환과 박정현의 보컬 디렉팅도 다른 관점, 즉 끝에서 끝으로 가는 곡의 스케일을 어떤 보컬로 선택하느냐와 한 보컬리스트의 다양한 톤과 음역대를 어떻게 한곡안에 끌어넣느냐의 관점에 따라 바뀐 듯 싶지만 어쨌건 결과물에서 나타나는 보컬의 완성도는 그 복잡한 편곡을 가지고서도 대중적인 인기까지 가져왔을만큼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던 '천일동안'이 앞서지 않나 싶다('천일동안'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부연설명은 조만간 할 수 있게도 될 것 같다). 다만 이런 부분에 상관없이 곡의 스케일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코러스의 완성도는 작년 연말부터 나온 앨범중 개인적으로 No.2라고 하고 싶을만큼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 안할 수 없다(No.1은... 알아서 상상해보기 바란다. 사실 너무 뻔하다).
또한 음악외적인 이야기지만, 이 곡, 그리고 이 앨범 전체에 나타나는 멜로디의 변화, 혹은 보컬 톤의 변화를 '귀'로 쫓아가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앨범 부클릿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앨범의 부클릿은 재미있게도 가사를 황금색과 파란색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 색깔변화에 따라 멜로디도 정확하게(보컬톤의 변화는 조금 다르다) 변화한다. 멜로디에 따라 곡의 사운드가 변화하고, 박정현의 보컬도 그에 따라 자주 변하곤하는 앨범의 성격을 간단하지만 잘 잡아낸 구성이라고 해야할까. 메이저 음반사라고 해서 사진만 많이 찍고 아무 생각없이 부클릿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Testing
이렇게 '퀄리티 극상, 완성도 중상'의 두 독특한 발라드곡을 지나면 앨범은 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곡속에 박정현의 보컬을 대입시키기 시작한다. 세 번째 곡 'Someone'부터 이 앨범은 댄스한곡-발라드 두곡-댄스한곡-발라드한곡-댄스는 아니지만 조금 빠르기는한 한곡- 발라드 두곡 - 댄스한곡 - 발라드한곡 - 이상한(;;)한곡 식으로 가면서 나름대로 앨범의 적절한 안배를 하고 있는데, 중요한건 곡의 스타일이 각자 다 조금씩 다르고, 반대로 박정현의 보컬은 상당한 일관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곡의 완성도는 정석원/박정현뿐만 아니라 각 곡의 작곡/편곡자가 얼마나 정석원/박정현이 합의한 보컬스타일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내느냐에 상당히 좌우된다.
그럼 'Someone'을 보자. 'Someone'은 정석원이 아닌 다른 작곡자가 만든 곡인데, 우선 지금까지 박정현의 앨범에서 보이던 댄스곡들과 달리 보다 본격적인 비트중심의 더블스텝을 사용한 곡을 만들고 있다. 요즘 이런 사운드의 사용은 그동안 댄스곡에도 자주 사용됐던 현악세션이나 신디사이저를 배제하고 다양한 톤과 비트를 가진 리듬프로그래밍의 사용을 통해 곡을 채우면서 보다 다양하고 짜임새있는 리듬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데, 그만큼 리듬을 만드는데 자신이 없다면 안하니만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요즘 국내에서도 점점 유행하고 있으니 비슷한 스타일을 듣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윗티의 'I'll be there'나 플라이투더 스카이의 '5 Minute'를 들어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쉽게 알 수 있을듯).
그리고 그점에서 'Someone'은 나름대로 좋은 부분들을 갖추고 있는 곡이다. 일단 박정현에게 이런 사운드를 입혔다는 점에서도 신선하지만, 베이스와 마치 디제잉을 하는것처럼 만들어낸 빠른 비트의 리듬프로그래밍이 함께 섞이며 곡을 채우면서도 안정된 톤으로 곡을 고급스럽게 이끌어가고, 첫 후렴구에서 박정현의 보컬에 이펙트를 건 소리를 메인보컬 밑에 깔면서 보다 가벼운 리듬감을 이끄는 부분도 좋다. 특히 곡 중반의 후렴구에서 갑자기 디스토션 기타리프를 사용하면서 곡의 리듬감을 보다 강렬하게 이끌어내는 사운드의 사용은 독특하다. 어지간해서는 기계로 찍어낸 드럼과 베이스톤으로 고급스럽게 곡을 몰고가는 이런 스타일의 곡에서 날카롭고 헤비한 기타리프를 사용함으로서 반복적인 멜로디속에서 확실하게 곡의 악센트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게 정석원의 최종 선택인지 아니면 편곡을 한 이동현의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꽤나 기발한 발상이라고 해야할까. 아마 이 곡 이후로 비슷하게 따라할 사람들이 꽤 될듯도 싶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완벽한 '댄스곡'으로서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박정현의 보컬 프로듀싱의 문제인데, 박정현은 이전의 댄스곡처럼 곡을 고급스럽고 신나게 부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의 정서에 맞춰 부르고 있다. 그녀의 보컬은 매우 잔잔하게, 힘을 뺀채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비트가 빠르고 경쾌하게 치고 들어온다해도 '그대 처음 만났을때엔...'처럼 조용하고 조금은 느릿하다 싶을정도로 곡을 소화하는 박정현의 보컬에서는 그 느낌을 완전히 살릴 수 없다. '기억하나요..'같은 후렴구에서도 박정현의 보컬은 힘을 넣어 부르면서 곡의 리듬에 강세를 주기보다는 멜로디가 가진 서정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분명히 댄스곡인데도 상당히 우울하고 잔잔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심지어 곡 중간중간에는 '그저 좋은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는데)'처럼 갑자기 보컬을 더 작고 우울한 분위기로 처리기도 하니 곡이 신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박정현이 곡에 자신의 보컬에 맞추기보다는 앞의 두곡에서도 드러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보컬이 이렇게 나갈때에는 사운드가 보다 보컬의 분위기에 맞춰주든가, 아니면 보컬의 우울함을 덮을 정도로 확실히 댄스비트를 강하게 넣어줘야 했다. 실제로 이 곡의 사운드는 곡 전반부에서 나타나듯 1절이 시작되면서 일반적인 리듬 프로그래밍 위에 가볍고 엷은 정박의 건반 연주를 반복시키면서 보컬의 잔잔한 분위기를 보충하지만, 워낙 다른 사운드 톤이 두꺼운데다가 비트있게 곡이 나아가다보니 그렇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또한 반대로 '기억하나요...'같은 후렴구에서는 기존의 드럼이나 베이스톤위에 그 리듬을 따라 보다 강하게 이펙트를 입히는데, 이역시 차라리 더 강한 톤으로 집어넣으면서 그 사운드를 강조했으면 후렴구가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을 듯 싶다. 시도도 좋고 사운드나 보컬도 각자 따져보면 이상없는데 합쳐놓고보니 뭔가 어색한 또 하나의 경우라고 해야할까.
반대로 '사랑이 올까요'는 박정현에게서 비교적 '무난한' 보컬을 이끌어내면서 이 곡을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흡인력을 가진 곡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 곡을 작곡한 이현정은 '은근슬쩍' 여러 히트곡을 만들면서(장나라의 '고백'이나 휘성의 '안되나요'가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대중적인 감각을 잘 알고 있고, 박정현의 앨범에도 3집을 제외한 모든 앨범에 참여하는데서 알 수 있듯 박정현의 스타일을 어느정도 잘 이해하면서 곡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작곡자인데, 이 곡에서도 박정현의 '현재'의 장점을 잘 살리는 멜로디라인을 만들어서 박정현의 특징과 대중적인 매력을 동시에 잘 잡고 있다.
이 곡의 멜로디라인의 특징은 '사랑이 올까요 / 또 오게 될까요..'의 후렴구가 반복되는 구성이지만 멜로디의 전후에 여음구를 넣을 수 있을만큼 곡의 전개에 어느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후렴구의 멜로디앞에도 '우린 약속했었죠 사는동안 서로밖에 없기를 눈으로만 말해도 다 알았잖아요 그런 그대가 내 곁에 없네요'같은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평이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마다 꼭 한두음씩 음정을 높이면서 곡에 포인트를 주고, 동시에 보컬의 고음처리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어 후렴구앞의 멜로디도 어느정도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고, 이는 후렴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서 결국 후반부로가면 갈수록 여음구를 소화하는 보컬과 맞물려 멜로디를 매우 고음의 상태에서 소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그대신 그만큼 보컬의 순간적인 고음처리와 후반부의 고음파트를 소화하는 보컬의 능력이 중요한데, 그런건 박정현의 전문이다. 이 곡에서 박정현은 약간은 진하다 싶을 정도로 색깔이 있었던 보컬대신 정말 그녀의 보컬이 맞을까 싶을정도로 '예쁘고 깨끗하게' 곡을 소화하면서, 그 톤안에서 능수능란하게 고음파트를 소화하며 곡을 매끄럽게 소화하고 있다. 앞의 곡들이 박정현이 추구하고자하는 보컬의 스타일과 편곡의 만남에서 조금씩 불일치를 이루거나 박정현의 보컬이 그녀의 생각만큼 완벽하게 곡을 소화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이 곡은 평이한 전개를 가지고 있지만 보컬만큼은 거의 완벽하게 곡을 소화하고 있다. 이렇게 예쁜 톤에서 이만큼 강렬한 후반부를 이끌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애드립도 쓸 수 있는 보컬은 한국에서 그다지 많지 않을 듯 싶고, 박정현은 이 곡에서 자신의 보컬이 가진 재능의 '일부'를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런 멜로디진행은 어찌보면 요즘 R&B 창법을 '부분적'으로 익히는 수많은 소녀 보컬들이 한번씩 불러볼만한, 그리고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삑사리'없이 부르기만 한다면 다들 웬만큼 먹힐수 있는 구성이긴 하지만 중요한건 박정현만큼 깨끗하고 안정되게 이런 곡을 소화하기란, 게다가 그만큼 파워풀하게 고음을 소화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도 고급스럽고 두꺼운 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던 그녀가 이정도로 얇고 깨끗한 보컬을 뽑아내게 됐다는 점은 이 앨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상관없이 그녀의 표현폭을 앞으로 더욱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 곡은 매우 간단한 사운드로 이루어진 까닭에(사실 멜로디를 편안하게 따라가는 건반이나 후렴구에서 곡을 채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신디사이저의 사용을 보면 딱 '대중이 편안하게 들을만한 곡'을 노리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의 곡들과 달리 사운드를 듣는 재미는 덜한 것이 사실이고 사운드의 퀄리티를 따진다면 앞의 곡들과 비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편곡을 맡은 황성제는 이 곡의 포인트가 어디가 될지 정확히 알고 그 부분에 최대한 곡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복되는 멜로디속에서 박정현의 보컬이 폭발하기전에 코러스를 깔면서 곡의 스케일을 미리 키우면서 박정현이 보다 자연스럽게 폭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동시에 박정현의 보컬만으로 이끌던 곡에 변화를 주면서 듣는 사람이 보다 쉽게 곡의 하이라이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매우 대중적인 스타일에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그것을 보다 좋게 다듬는 솜씨는 보컬이나 편곡자나 모두 빼어난 곡이라고 해야할까.
일상으로의 초대
그리고 'Someone'과 '사랑이 올까요'에서 보여준 각각의 장점들은 보다 '업그레이드'되어 '생활의 발견'에서 일종의 '완성'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이 곡과 '미장원에서'를 최고로 꼽고 싶은데, 물론 실험성이나 사운드의 퀄리티에서는 'Plastic Flower'나 '꿈에'를 능가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박정현/정석원이 서로 너무 오버하지도, 절제하지도 않으면서 둘이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들과 더불어 박정현의 보컬이 가지고 있는 어떤 독특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에서 박정현이 쓰는 보컬 톤은 '사랑이 올까요'와는 또 다르다. '사랑이 올까요'에서 박정현은 정말 예쁘고 깨끗한 톤으로 일관했다면 이 곡은 거기에 'Some one'에서 보여준 보컬의 색깔을 약간 집어넣고, 거기에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보컬에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을 집어넣어 보컬이 다른 곡들에 비해 좀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R&B 보컬 스타일에 조금 물을 타서 엷게 만든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상당히 얇고 예쁜 톤과 더불어 그녀의 R&B적인 보컬이 함께 공존하는 스타일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곡의 멜로디라인을 소화하는데 두가지 스타일로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저음파트에서는 고급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전보다는 더 가녀리게, 좀더 애절한 성격을 전달할 수 있고, 고음파트에서는 그 엷은 보컬톤이 그대로 올라가면서 엷고 높은 고음이 가지는 보다 강한 슬픔, 혹은 R&B보컬의 고급스러움을 포기하는대신 얻을 수 있는 보컬 개인의 '감정'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갖게 되는 호소력이다.
그렇다면 정석원은 이런 그녀의 보컬을 어떻게 조율했는가. 일단 멜로디라인을 보자. 그의 멜로디라인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올까요'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훨씬더 조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보통의 곡들은 곡의 매력이 후렴구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 곡은 후렴구를 제외한 각 절의 멜로디라인부터 보다 화려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박정현의 보컬 디렉팅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오랜만에 혼자 집에 앉아 슬픈 노래 들을때마(다) / 모두 내 얘기 같고 / 평소에 있는지도 몰랐던 책장속의 얇은 시집들 왜 그리 와닿는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들을때마다'에서 '다'부분에서 조금 바이브레이션을 주면서 빠른 멜로디안에서 조금 악센트를 주고, 다시 '와닿는지'에서 끝을 올리면서 확실하게 곡의 멜로디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멜로디라인은 곡의 리듬프로그래밍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크게 한박치고 잘게 진행되는 박자를 응용해서 '없다는게 외로워'에서나 '왜 그리 와닿는지'에서는 리듬 프로그래밍의 흐름에 따라 갑자기 리듬을 빠르게 가져가면서 자연스럽게 피치를 올릴수 있도록 한다. 그만큼 멜로디 자체에 이미 어느정도 사운드적인 면이 계산되어 있고, 만드는 과정에서 보컬의 역량을 잘 끌어내도록 조율했다고 해야할까.
또한 이 곡의 사운드메이킹은 보컬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곡에 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불어넣어 곡의 대중적인 측면을 이끌어낸다. 이를테면 곡의 보컬 멜로디를 변환시킨 가벼운 신디사이저 연주를 곡의 도입부부터 곡 곳곳에 깔면서 멜로디가 가진 느낌을 좀다 가볍고 산뜻하게 포장해주기도 하고, 간주에서는 박정현의 보컬 애드립이 등장하는 부분에 함께 깔리면서 곡의 분위기를 너무 박정현의 R&B적인 애드립으로 빠지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이 곡의 훌륭한 점은 이런 지엽적인 사운드 구성이 아니라 전체적인 편곡에 있다. '사랑이 올까요'의 그것에 비해 보다 잘게 나눠놓아 멜로디의 순간적인 변화를 더욱 강조한 리듬 프로그래밍은 박정현의 보컬과 맞물려 R&B가 아니면서도 이 곡을 좀더 고급스럽게 느껴지도록 하고, '맛있는 집을 알았는데...'부터 등장하는 여성 코러스는 곡 전반을 풍성하게 채우면서 박정현의 보컬이 이 곡에서의 톤이 낼 수 있는 음역대 이상으로 오버페이스하는 것을 막고 대신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곡의 분위기는 충분히 고급스러운 팝이 될 수 있건만, 이 곡은 곡의 중반에서 예상을 깨는 진행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리듬프로그래밍과 여성 보컬로 이루어진 곡의 구성을 코러스와 스트링 머신으로 하나씩 채우면서 풍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고, 여기서 다시 '사랑이 올까요'처럼 보컬의 기량에 후렴구를 맡겨서 곧바로 클라이막스로 들어간다고 해도 크게 나쁠건 없다. 하지만 정석원은 이 곡에서 박정현으로하여금 한번 후렴구의 보컬을 최대한으로 이끌도록 한 뒤, 거기에 남성 보컬을 통해 남성의 입장을 얘기하고, 거기에 다시 박정현의 애드립을 깔면서 곡 분위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시키고, 동시에 또한번의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어서 앞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색소폰 연주와 그에 맞춰 갑자기 강하게 치고 나오는 여성 코러스를 통해 부드럽게 쭉 이어지던 멜로디를 한번 차단하고 강한 리듬으로 곡의 집중력을 다시한번 높인다. 그러면서 이 곡의 멜로디라인은 다시한번 음정을 높여 박정현으로 하여금 오버하거나 R&B 보컬을 쓰지 않게 하면서도 색소폰 연주로 하여금 또한번의 절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할만큼 한' 곡에서 그것을 깨는 또다른 편곡으로 곡의 빈 부분을 남김없이 채워버렸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이렇게 진하고 고급스러운 색소폰 솔로가 등장하면서 박정현이 다시 앞부분과 음정의 차이없이 반복해부르는 후렴구는 색소폰과 대비되면서 다시한번 그녀의 얇은 고음보컬이 가진 애절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정말 고급스럽고 듣기좋은 팝과 박정현 개인의 정서, 그리고 새로운 박정현의 보컬이라는 부분을 모두 해결한 곡이라고 해야할까. 정석원은 'Plastic Flower'나 '꿈에'같은 곡에서는 여전히 더 개발할 여지가 있지만, 이런 팝음악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일가를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곡에서 보여준 잔잔한 도입부, 절정으로올라가는 후렴구, 그리고 다시 예상을 깨고 또다른 절정을 보여주는 곡의 전개는 '미장원에서'에서도 한번 더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는 정석원과 박정현이 결합해 만든 또 하나의 스타일로 남게 될 듯 싶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곡의 가사 전달력이다. 개인적인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곡부터 '미운 오리' - '미장원에서' - '여자친구 참 예쁘네'로 이어지는 곡들은 이 앨범안에서도 특히 가사전달이 잘 됐는데, 이는 우선 이 곡들의 가사가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보다 독특하게 다가온다는 점, 그리고 남성 보컬의 등장이 곡의 흐름에 '스토리'를 부여하면서 가사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한다는 점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사의 내용을 아는 것은 음악적인 완성도와는 상관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듣는 사람은 보컬의 멜로디라인을 제일 먼저 듣고, 가사의 내용을 잘 알고 있을수록 곡에 공감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 앨범의 흡인력을 높이는데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런 가사전달은 다음곡 '미운 오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미운오리'는 아예 처음에 프롤로그식으로 '그땐 많이 울곤했었지 못난 내가 너무 미워서 하루빨리 자라나 어른이 되길 기다렸는데'라며 어린시절 '미운오리' 취급을 받았던 여성이 본격적인 곡의 시작과 함께 '백조'가 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연극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런 스토리가 있는 가사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후로 확실하게 국내 음악계에 자리잡은 형식이지만, 가사와 더불어 사운드의 진행을 맞춘 것이나 가사의 내용을 마치 '아이러브스쿨'같은 곳을 통해(물론 요즘은 '아이러브스쿨'에서 다 다른 곳으로 옮겼겠지만) 만난 동창생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뤄 좀더 가사의 내용이 귀에 잘 와닿는다. 듣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그게 만만찮은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이 마냥 훌륭한 곡이 될 수는 없다. 다른 부분은 다 놔두고라도 댄스곡을 지향한 이곡에서 처음부터 '두비두비 두바바'하는 식으로 여음구를 넣는 박정현의 보컬은 하나도 신나지 않다. 뭐 음정 박자의 문제가 아니라 박정현의 보컬이 이런 댄스를 소화할만큼 신나지 않고 조금 우울하게, R&B적인 스타일의 보컬을 최대한 빼고서 자기 목소리 그대로 잔잔하게 곡을 이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우울하게 만든 '그땐 많이 울곤 했었지..'에서의 보컬과 크게 다를바없는 보컬을 곡 전체에 사용하니 곡의 느낌이 잘 살아날리 없다. 아무래도 박정현이 요즘 이런 곡을 소화할만큼 신나지는 못한가보다. 리듬 프로그래밍 자체는 마치 브라스처럼 사용하는 신디사이저나 경쾌한 건반연주와 함께 매우 리드미컬하게 진행되고, 심지어 간주에서는 정말 오리가 우는듯한 소리도 집어넣는데 박정현의 보컬은 이와 상관없이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며 곡을 이끌어가니 곡의 느낌이 제대로 나올수는 없다. '오! 오늘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꾸나..'같은 부분에서 박정현의 보컬은 신나게 놀기보다는 백조가 된 여성이 어렸을때는 멸시했으면서 지금에는 달라붙는 친구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겉으로 놀아보자고 얘기하는 것에 가깝다. 차라리 곡에서는 남성 코러스와 함께 밝은 분위기로 처리된 '말괄량이 삐삐 같다고, 손가락질하던..'부분에서 나타나는 그 씁쓸함을 곡 전체적인 분위기로 잡아서 좀더 냉소적이고 우울한 느낌으로 사운드를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미장원에서 눈물흘릴 때
하지만 앨범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그 다음곡 '미장원에서'는 '미운오리'에서의 보컬 프로듀싱에 대한 아쉬움을 한번에 날려버린다. 이 곡은 '꿈에'같은 곡보다 오히려 더 '천일동안'같은 곡과 비교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되는데, 처음에는 잔잔하게 시작되어 결국 폭발하는 구성이나 꽉 짜인 편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곡에서는 박정현의 보컬이 곡을 확실히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곡에서 박정현의 보컬은 저음파트에서의 기름기를 뺀 애잔한 보컬과 고음파트에서의 보다 얇고 폭발적인 보컬로 나뉘어지고, 정석원은 이를 매우 효과적인 멜로디의 사용으로 그녀의 보컬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런 곡에서 중요한 부분은 곡의 극과극, 즉 가장 잔잔한 부분과 가장 폭발적인 부분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그것이 어떤 감성을 전달하느냐가 중요한데, 정석원은 그 해결의 실마리를 우선 가사에서 찾고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서 과거를 잊으려고 하는여자가 점점 그속의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홀로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과정을 담은 가사를 그대로 멜로디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선 박정현의 진성보컬을 사용한 부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는 여성의 마음을 전달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약간의 전반부에 이어 곧바로 후렴구를 반복하고 다시 2절, 후렴구 반복으로 넘어가겠지만 이 곡의 멜로디라인은 우선 전반부의 멜로디라인을 한번 더 반복시킨 뒤, 거기서 후렴구 멜로디인 '나 이제 머릴 자르며..'부분에 가기전에 다시 브릿지 멜로디인 '세상엔 내가 아무리 진실로 기도를 해도...'를 사용하면서 거기서 음정을 높이면서 후렴구로 곡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 후렴구는 계속 멜로디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악센트를 주면서 곡을 조금 가속시켰던 브릿지의 멜로디와 달리 '..자르며'부분에서 음정을 낮추면서 보컬의 감정을 절제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가사는 '나 이제 머릴 자르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지만 주위의 친구들에겐 유행에 맞춘 내 새모습 어떠냐며 자랑해야겠죠'가 나오면서 멜로디의 느낌은 그대로 슬픔을 안으로 억제하려는 가사의 느낌과 일치하면서 보다 강하게 곡의 감성을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편곡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부분으로, 곡의 도입부에서는 피아노연주로 잔잔하게 분위기를 이끌고, 다시 반복되는 1절 멜로디에서는 조금씩 현악세션을 동원하면서 스케일을 키운 뒤 '세상엔 내가 아무리 진실로 기도를 해도..'에서는 그 현악세션을 키우면서 보컬에 살짝 리버브를 걸어 곡을 점점키워나가던 사운드가 '나 이제 머릴 자르며..'에서는 현악세션을 조금 뒤로 물리면서 어쿠스틱 기타로 다시 잔잔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겐 두가지 삶이 있죠..'에서부터 박정현의 보컬은 보다 얇게, 그리고 보다 고음파트로 옮겨가기 시작하고, 곡의 후렴구는 드디어 현악세션이 본격적으로 앞에 나서면서 멜로디를 억제하지 않고 '..어떻게야 하나요'에서 처음으로 곡을 폭발시키면서 단번에 기타솔로로 넘어가며 곡을 클라이막스로 끌고 간다. 그만큼 이 곡은 계속 절제를 하다가 한번에 곡을 클라이막스로 넘기기 때문에 계속되는 후렴구의 반복으로 박정현의 보컬이 처음부터 무리하면서 음정을 높이기보다는 기타솔로 이후의 부분부터 음정을 높여가면서 보다 안정되게 보컬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처음부터 곡을 절제시키지 않고 계속 후렴구를 반복시키면서 음정을 높이는 식이었다면 이 곡은 'Plastic Flower'처럼 결국 박정현의 보컬이 한계를 못 이기고 거기서 멈춰버리는 곡이 되었겠지만, 처음의 후렴구에 이르기까지 계속 보컬을 절제시키면서 이끌어가기에 박정현이 이후 나오는 멜로디를 보다 여유를 가지고 소화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전반부의 절제로부터 후반부의 폭발이라는 대비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게 됐다. 잔잔하게 깔린 절제된 아픔뒤에 오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은 바로 'Plastic Flower'나 '꿈에'처럼 극단적인 보컬이 사용된 곡들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또한 이 곡은 클라이막스의 편곡이 '은근히 빡센'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뭐 베이스와 스트링 머신, 드럼, 일렉기타등을 섞는 구성이야 이런 큰 스케일의 곡구성에서 흔히(?)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거기에 은근슬쩍 색소폰에 곡의 마지막에 보컬의 슬픔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다 장엄한 무엇으로 정화시키는듯한 색소폰까지 쓰면서 곡을 완벽한 대곡으로 만드는 구성은 국내 팝 발라드의 편곡자들중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생각된다. 역시 말로 하거나 글로쓰는게 쉽지, 저 사운드 다 조율하려면 노가다도 그런 생 노가다가 없을거다. 다들 넓게 퍼지는 사운드에 스트링 머신까지 사용하면서 곡을 채우는데 거기에 저런 코러스까지 쓴다는건 정말 듣는사람 할말없게 만든다.
그다음곡 '여자친구 참 예쁘네'역시 이런 스토리를 가진 가사에 보다 슬픈 정서를 결합한 댄스곡같은 발라드(?)곡. 분명히 리듬 자체는 단순하고 빠른편에 속하지만 중요한건 그 리듬을 만들어내는 악기의 사용이다. 어쿠스틱 기타에 베이스를 사용하면서 리듬을 '찍는'대신 연속된 음으로 연주하면서 잔잔하게 연주하고, 거기에 후렴구에는 신디사이저로 보컬 멜로디를 다시 연주하다보니 보다 멜로디가 강조되면서 곡의 멜로디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박정현이 앞의 댄스곡에서 곡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보컬을 들려준 것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 박정현의 상태에 보다 어울리는 선택이었던 듯 싶다.
그래서 이 곡은 편곡보다는 박정현의 보컬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적인데, 마치 '미장원에서'에서 들려준 잔잔한 보컬을 곡 전체에 확대시키고 후반부의 보컬은 조금 사용하여 '신나는 리듬이 있는 우울한 곡'으로 만든 듯 하다고 해야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성급했던..'같은 후렴구에서도 박정현의 보컬은 약간의 떨림을 가지면서 발랄함보다는 우울함을 앞세우고, '..이젠 너무 늦었지'같은 부분의 멜로디는 한창 곡의 페이스를 상승시키다가 갑자기 음정을 낮추면서 곡의 힘을 빼버린다. 특히 '다시 니가 나를 좋아하도록..'같은 부분에서는 부드러운 코러스가 잠시 첨가되면서 곡의 부드럽고 우울한 느낌을 강조한다. 이러다보니 사운드는 어쿠스틱 기타에서 리듬프로그래밍으로, 또 디스토션 기타리프로 변환되지만 이것들은 곡의 리듬감을 부각시킨다기보다는 그 리듬의 반복성과 빠른 리듬이 곡의 멜로디가 너무 고음파트로 올라가서 오래 끈다거나 하는 것을 막고, 동시에 리듬은 신나는 듯 하지만 정작 부르는 사람은 슬픈, 그런 의도된 아이러니를 잘 표현한 듯 싶다. 다만 이러다보니 곡이 쭉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있는대신 뚜렷한 악센트를 찾기 힘들다는 점은 아쉽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 앨범의 빠른곡들 중에는 가장 잘 만들어진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빠른곡중에 유일하게 박정현의 보컬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그 다음곡 '게으름뱅이'는 '생활의 발견'을 박정현의 또다른 보컬톤으로 소화한듯한 곡. 리듬프로그래밍의 사용을 기반으로한 좀더 빠르고 각 절마다 음정의 변화가 있는 멜로디라인의 사용이나 '생활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그리고 남녀로 나뉘어진 코러스의 적극적인 사용, 그리고 곡의 후렴구를 갑자기 폭발시키는 후반부의 구성은 '생활의 발견'과 유사하다. 또한 '생활의 발견'이 남성의 보컬뒤에 색소폰을 사용했다면 이 곡은 남성 보컬은 등장하지 않아도 '그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에서부터 색소폰 연주가 등장하면서 '생활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한번 절정을 맞이한 곡을 한번 더 다른 방법으로 폭발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이 '생활의 발견'처럼 좋은 곡이 되지는 못한다. 우선 생활의 발견이 남성 보컬의 등장으로 한번 예상밖의 임팩트를 준 뒤에 색소폰과 그 스타일이 바뀌는 여성 코러스로 곡의 뚜렷한 전환을 이뤄냈다면 이 곡은 박정현의 강한 보컬뒤에 그대로 색소폰을 이어붙이는데다가 곡의 앞부분에서 색소폰이 이미 등장해 곡의 전환이 신선하지 못하고, 코러스역시 다양하게 쓰이기보다는 곡의 멜로디를 뒷받침하면서 곡을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곡은 보컬 프로듀싱이 '생활의 발견'에 못미친다. '생활의 발견'이 조금더 얇은
보컬로 곡을 처음부터 진행시키면서 멜로디 중간중간 삽입된 고음들을 손쉽게 처리하고, 그뒤에 더욱 가늘지만 고음파트를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은 간주 뒤에 이어지면서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끈 것과 달리 '게으름뱅이'는 보다 진하고 저음파트에서 유리한 박정현의 원래 보컬을 사용해 곡을 이끌고 나가다가 어떠한 변화에 대한 예고도 없이 '그 셀수 없이 많은 추억을.. 그 고백을..'뒤에 등장하는 여음구에서 곧바로 톤을 바꿔 버려서 보컬이 폭발한다기보다는 고음을 일부러 내기 위해서, 마치 곡을 클라이막스로 이끌기 위해서 일부러 삽입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박정현의 보다 진한, 그러나 기름기는 뺀 이 저음보컬을 계속 사용하면 곡의 잔잔한 슬픔과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을 통해 좀더 강한 호소력을 이어갈 수 있어서 좋지만, 그렇다고해도 그것을 매끄럽게 곡의 클라이막스로 연결시킬때는 보다 세심한 구성이 필요하지 않았었나 싶다. 또한 충분한 변화없이 곧바로 음정을 바꿔서 '그냥 내게 돌아오면 돼'에서 '부지런한 그댄벌써..'로 넘어가는 구성은 중간에 그 변화를 잇기 위해 잠깐 이펙트를 삽입하기는 하지만 두 멜로디간의 차이를 매끄럽게 연결하는데는 부족했던 듯 싶고, 리듬프로그래밍 사이사이에 들어간 물방울 튀기는듯한 사운드는 요즘 유행을 따른 듯 하지만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진다. 이러니저러니해도(심지어 개인적으로는 매우 미워하기까지해도) 정석원이 괜히 정석원은 아니라는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곡.
다시 그 정석원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별하러 가는 길'은 '미장원에서'를 보다 압축적으로 만든듯한, 박정현의 보컬이 가진 양 극단의 감성을 단번에 보여주고 끝내는 듯한 곡이다. 실제로 이 곡은 정석원이 직접 편곡한 곡들중에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편곡의 구성보다는 짧은 시간안에 극에서 극으로 가는 보컬을 들려주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테크닉적인 면은 '미장원에서'처럼 다양함은 없지만 박정현의 보컬이 가진 특성을 보다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해야할까. 실제로 이 곡은 그룹 아시아의 'The Smile Has Left Your Eyes'라는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박정현의 보컬을 잘 뽑아낼 수 있는 곡을 선택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곡의 멜로디는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뚜렷한 후렴구, 그리고 반복이다. '그럴지도 몰라..'로 시작되는 후렴구는 '미장원에서'처럼 한번 절제한다든가 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점점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가듯 점점더 높고 강한 멜로디, 그리고 보다 거대한 스케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맑은 건반과 약한 리듬 프로그래밍으로 시작된 곡이 '조금도 겁내지 않겠어..'부터 코러스와 신디사이저가 첨가 되면서 곡의 스케일을 키우기 시작하고, 후렴구의 '죽지않을거야..'의 멜로디는 반대로 매우 잔잔하게, 이후의 폭발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또 한걸음..'부터는 곧바로 보다 강한 리듬프로그래밍과 디스토션 기타등이 첨가되고, '첫번째 다짐부터가..'에서는 잠시 사운드를 몇 개 빼긴 하지만 리듬프로그래밍은 그대로 이어가고, 다시 거기에 코러스를 붙여나가면서 계속 곡의 힘을 이어간 뒤 곧바로 '그럴지도몰라... 떠나지마'의 하이라이트로 이어가면서 곡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곡이 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박정현의 비명에 가까운 여음구의 소화는 이 앨범 전체에서도 가장 공격적이고 파워풀하다. 그리고 이는 박정현이 다른 톤을 쓰기보다는 약간 엷게 만든 보컬 톤에서 그대로 쭉 올라가면서 구성되기에 그 감정의 절절함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곡은 그렇게 보컬의 폭발성과 박정현의 '새로운' 보컬이 가진 매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대신 곡 전체의 완성도는 일정부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미장원에서'처럼 짜임새있는 곡의 구성보다는 곡의 스케일과 보컬의 파워를 키우는데 주력하다보니 후렴구의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고, 고음에서의 가장 파워풀한 보컬은 들을 수 있어도 '미장원에서'에서 처럼 그 파워풀한 보컬전에 기본적으로 깔려야할, 그것을 이끌어내는 애잔한 슬픔을 느낄 여유가 별로 없다. 보컬 프로듀싱이 잘될수록 곡의 완성도도 좋아지는 경향이 있는 이 앨범에서 보컬 프로듀싱과 음악의 완성도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중 하나라고 해야할까.
그 다음곡 '떨쳐'는 박정현의 앨범에서 윤종신과 더불어 유일하게 개근(?)하고 있는 MGR의 곡. '나의 어머니'와 'Puff'로 앨범이 마무리되기전 다시한번 곡의 분위기를 띄우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의 댄스곡들이 박정현의 보컬과 사운드가 따로 놀거나, '여자친구 참 예쁘네'처럼 박정현의 보컬 스타일은 그대로 두고 곡의 사운드를 보다 우울한 느낌이 나오도록 만든 것과 달리 '떨쳐'는 사운드에 박정현의 보컬을 사운드의 경쾌하고 빠른 느낌에 어느정도 맞추도록 하면서 무난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정현의 보컬은 여전히 저음파트를 잔잔하게, 약간의 떨림을 사용해 부르면서 완벽한 댄스곡의 분위기를 내지는 않지만 '내겐 눈물 보여도 되 / 두손 향해 하늘을 뻗어...'같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보컬에 매우 힘을 주면서 다른 곡에 비해 보다 파워풀하게 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후렴구의 느낌만큼은 확실히 박정현식 댄스라고 할만하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 곡은 곡 구성 자체가 좀 '재미'가 없는 곡인데, 우선 훅을 전후로 계속 반복하면서 그 사이에 멜로디를 넣다보니 구성적으로 단순하고, 사운드역시 상당히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물론 댄스곡이라는 것이 심플하게 신나는 느낌만 만들어내도 성공이지만 앞의 빠른 곡들이 보여준 완성도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또한 기본적으로 우울함과 슬픔의 폭발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이 앨범에서 이 곡은 유난히 튀고, 특히 중간에 삽입된 여성 코러스는
이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비해 너무 '경박'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다음곡이자 앨범을 실질적으로 마무리하는('Puff'는 앨범전체에서 너무 이질적인, 마치 보너스트랙같은 곡이니) '나의 어머니'는 박정현이 적은 생각들을 정석원이 가사로 썼다는 것. 실제로 이 앨범은 'Puff'를 제외하면 박정현이 쓴 곡이 한곡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발견'이나 '미장원에서'처럼 연애하고 헤어지는 20대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하는 곡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은 뚜렷하게 정해진 앨범 프로듀서와 가수와의 대화를 통해 나오는 부분인 듯 싶다.
하지만 이 곡의 가사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해서 '이해'는 가도 '감동'은 못할 가사였는데, 박정현 개인의 어머니에 대한 가사라기보다는 모든 부모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만한 평이하다면 평이할 가사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머니'를 '아버지'로 바꾸고 '남자친구'를 여자친구로 바꿔서 남자가 부르는 '나의 아버지'로 곡을 바꾼다해도 이 곡의 가사에 세상의 아버지들이 해당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부모를 싫어하다가 다시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에 대한 보편성은 획득하고 있지만 반대로 박정현 개인의 느낌은 많이 죽은 듯 하다고 해야할까.
또한 곡에 있어서 이 곡은 앨범의 마무리를 하는 곡답게 정교하고 복잡한 사운드를 강조하기 보다는 곡의 중반까지는 베이스와 리듬프로그래밍을 통해 곡을 이끌고 가면서 박정현의 보컬이 보다 부각되도록 하고 있다. 보다 소박하고 잔잔한 보컬에서 후반부의 코러스의 사용으로 그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곡인데, 이는 확실히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곡으로 정석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곡은 너무 '정석'을 따라서 밋밋한 느낌을 주는 곡인데, 이렇게 '나의'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때는, 특히 그것이 앨범의 마지막곡이라면 이렇게 고급스러운 코러스나 현악세션을 동원해서 곡을 이끌어가기 보다는 차라리 좀 절제가 안되더라도 박정현의 보컬에 모든걸 맡겨보는게 어땠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음도 틀릴 수 있고, 박정현이 부르다가 울수도 있겠지만, '어머니'에 대해 '감동'을 일으키는 노래라면 그쪽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정석원이나 박정현이나 모두 퀄리티를 중요시 여기는 듯 하니 그러기란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자신에 맞는 또다른 목소리를 찾고, 보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려한 이 앨범에서 프로듀싱에 상관없이 절제되지 않은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퀄리티로 따져도 반복적인 멜로디와 간단한 사운드에 코러스정도로 악센트를 주는 곡구성은 앞의 그것에 비해 부족해보이고 말이다.
마지막곡 'Puff'는 앞에서 잠시 설명했듯 박정현의 다양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곡. 물론 세인트 바이너리가 만든 다양한 리듬프로그래밍, 특히 정석원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후반부의 강렬한 리듬프로그래밍과 박정현의 보컬에 대해 쓴 이펙터의 다양한 사용도 주목할만하지만 역시 이 곡에서 중요한 것은 박정현이 이렇게 다양한 보컬을 가지고 '고급스러운 R&B'뿐만 아니라 이런 거칠고 조금은 기괴할수도 있는 분위기를 낸다는 것일 듯 싶다.
그런점에서 이 곡의 보컬 프로듀싱은 매우 잘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펙터를 쓰건 원래 보컬에 울림을 주건 박정현의 보컬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주는데다가 그 보컬들마다 각자의 느낌이 있어 곡 전체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곡 자체의 완성도로 이어지는 법은 아니다. 박정현이 자신의 보컬만으로 곡을 이끌어가려한 탓인지 이 곡은 다양한 보컬의 쓰임새와 달리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적인 구성과 편곡에 있어서도 후반부의 코러스와 등장하는 강렬한 리듬프로그래밍정도를 빼고는 같은 멜로디와 같은 이펙터를 사용해 그 부분이 나오기전까지 듣는 사람을 조금 지루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곡의 스타일로 과연 무엇을 이끌어내려한 것이냐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보컬에 다양한 분위기를 내세우려고 했다면 이 곡은 어느정도 성공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듣는 사람의 어떤 감성과 그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그런 보컬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이 곡이 과연 어떤 느낌을 전달하느냐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박정현이 이런 느낌들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크게 마음에 와닿는게 없다. 차라리 신비하거나 괴기스럽거나하는 한 부분을 보다 중점적으로 파고 들어서 '온전한' 곡의 형태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곡은 꼭 박정현의 보컬로 만든 여러 샘플들을 편곡자가 잘 이어붙이고 조금 변화를 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컬 프로듀싱과 곡의 완성도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곡.
여자 이승환의 탄생 ?
이 앨범을 들으면서 생각이 난 것은 이승환의 4집 앨범 'Human'이었다. 실제로 박정현은 이승환과 몇가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각각 R&B와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가 강했다가 3집부터 변화의 준비를 시작해 4집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그렇고, 또 4집의 프로듀서가 모두 정석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승환이 그러했듯 박정현역시 극과극을 오가는 보컬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처리하는 그 방법에 있었다. 이승환이 '천일동안'같은 곡들부터 '너의 나라'같은 곡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에 맞춘 보컬을 찾아나가면서 대중에게 발라드를 벗어난 다양한 장르의 시도, 그리고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과시하면서 대중적/음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면, 박정현의 이번 앨범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기 보다는 그녀의 기본적인 보컬안에서 보컬을 세밀하게 바꾸면서 그것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음으로서 'Plastic Flower'나 '꿈에'외에는 대중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혹은 변화와 음악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갔다는 평가를 얻기 어렵게 만든 듯 싶다. 오히려 R&B를 안하고 '평범한' 발라드를 했다고 싫어할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또한 박정현이 시도한 변화라는 부분은 분명히 일정이상 성공했지만 그것을 앨범안에 담아낸 완성도는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정석원하고 같이해서 좋거나 나쁘거나, R&B를 버려서 좋거나 나쁘거나한게 아니라, 그렇게 변신을 시도해서 만든 음악의 내용물이 'Best'에서 'Not Good'까지 다양하게 오가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그래서 이 앨범은 '무식하게' 말하자면 R&B를 안해서 이상하게 되버린 앨범이라고 참 '쉽게' 말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듣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사람에게나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럼 박정현은 R&B만 하다가 죽으라는건가? 물론 본인이 그러고 싶다면 상관없겠지만 전혀 다른 음악을 했는데 R&B를 안해서 별로라는 말은 뮤지션보고 2년동안 헛짓했다는 얘기하고 똑같다. 그럼 박정현은 자기 R&B 보컬이 좋은줄 몰라서 그 보컬들을 다 제거하고 새로운 보컬을 찾았겠는가.
만약 이 앨범을 정말 돈주고 사서 신경써서 듣고서 이 앨범이 싫다면 R&B가 아니기 때문에 싫은 것이 아니라 앨범에 담긴 그 새로운 음악자체가 자신의 주체적인 음악적 판단과 감성에 따라 싫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에 싫은 것이고, 좋다면 정석원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앨범의 내용물이 자신의 음악적인 판단에 따라 좋다고 결론났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앨범을 안사는게 낫고, 다른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득할 생각은 아예 포기하는 것이 낫다. 앨범에 나타난 최종적인 결과물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단지 외형적인 몇가지 요소들로 음악이 결정난다면 그건 음악에 대한 무시나 다름없다.
중요한건 음악에 대한 단정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앨범을 만든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앨범을 들으면서 그 음악을 공유한 사람간의 소통이며, 그것을 통해 더욱 좋은 음악을 만들고 들을 수 있도록 서로가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일 것이다. 그런점에서 단정하기 쉬운 '외양'과 좀처럼 말하기 불분명한 세밀하고 조심스러운 '내용물'을 가지고 있는 박정현의 이번 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외적인 의미를 많이 가지게 되는 작품이 될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