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로의 시간여행
소산 정 석 채
백제!
새벽을 여는 밝음의 빛으로 온조대왕이 나라를 개국한 이래로 한반도 중서부지역에서 찬란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660년 의자왕대에 외세의 의하여 백제가 멸망한 후 부소산성 낙화암에 꽃이 피고 지기를 몇 해이던가.
백제중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웅진성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한 성왕의 큰 뜻이 6대왕 123년간으로 700년 사직이 다한 곳, 우리는 오늘 잃어버린 백제국의 옛 서울 부여를 찾아가자.
필자는 부여를 탐방하는 관광열차의 길벗이 되어 자원봉사자로서 탐방객들과 함께 백제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서울을 기점으로 하여 부여를 찾는 코스는 버스, 기차, 자가용 등 이용할 때 달라지겠으나 오늘은 관광열차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사비성을 탐방해 보자.
이른 아침 서울역을 출발하면 당일 오전 10시 반이면 부여에 도착할 수 있다. 오늘의 여정은 서울에서 대천을 경유, 부여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 무렵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하고 해물탕에 소주 곁들여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여행이 된다.
물론 서울역에서 논산역으로 도착하면 지금 안내하는 방향의 반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천역에 내리면 여행사의 관광버스를 타고 외산, 구룡, 규암을 거쳐 백제교를 지나 부소산성에 이르게 된다. 바로 부소산성 아래 주차장에서 하차 하고 사적 제5호인 부소산성에 정문으로 오르면 사비문 입구에서 안내자로부터 잠시 동안 부여에서의 일정을 듣고 나면 날아갈 듯 지어 올린 사비문이 탐방객을 반긴다.
사비문을 지나면 넓적한 바위돌과 깨끗하게 깔린 마사토 길을 따라 오르고 넓은 마당이 앞에 있으며 백제말기의 삼충신 성충, 흥수, 계백장군을 모신 삼충사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일제가 그들의 국조신(國祖神)을 모시기 위한 사당을 짓기 위해 터를 만들어 놓았던 곳으로 일제의 폐망과 함께 공사가 중단된 곳이기도 하다. 1955년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백제말기의 삼충신의 충절을 기리는 삼충제를 지낸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3대문화제라고 말하는 백제문화제가 태동된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당정문 삼문에서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 하여 동쪽문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서쪽문으로 나오게 되며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평소에는 열지 않고 제사 때 위패나 신주를 모실 때 여는 문 이다.
사당의 건물이 시멘트로 지어진 것이 아쉽지만 백제식 건축을 설명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하항식 건물인데 용마루의 치미며, 삼충신에 대한 충절을 설명하고 바로 사당 뒷편으로 오르게 되는데 숨이 좀 찬듯하면 탐방객과 함께 걷고 있는 잘 다듬어진 토성이 앞을 막고 동서로 펼쳐져 있다.
토성을 따라 반월루로 향하면서 이산성의 형태는 퇴미식과 포곡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곳은 백제시대 산성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는 곳으로 산에 정상을 시루번 바르둣 성벽을 두른 퇴뫼식과 산의 계곡을 포함하여 성을쌓은 포곡식의 두가지 축성 양식을 다 갖추어 있으며 성을 쌓는방법은 판축기법이라 하여 흙을 판과 기둥사이에 시루찌듯 켜켜로 쌓아 만든 토성이라고 설명해 주며 토성을 따라 백제속으로 걸어가 본다.
또한 이곳에서는 백제시대 산성에서는 처음으로 치(雉)를 발견한 곳이어서 외적을 관망하고 수성하기에 좋은 산성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잘 다듬어진 토성을 따라 오르면 부여읍내의 전경을 한눈에 잘 볼 수 있는 반월루가 나오는데 경치를 조망하기 위해 조선시대 관아누각의 건물형식으로 지어진 팔작지붕에 건물이 나타난다.
최근에 지어졌다 해도 백마강의 경치며 시가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목조건축양식의 아를다움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좋은 곳이다.
다시 북쪽으로 길을 바꾸어 20분쯤 오르면 내리막 길에 백마강이 보이고 부소산성에서도 가장 경관이 수려한 낙화암이 나온다. 노송과 어울린 백화정이 아름답게 반기고 안내판 돌에 새긴 춘원 이광수선생의 시도 읽을 만하다.
“사자수 내린 물이 석양에 비칠 때 버들꽃 날리는 곳 낙화암이라오 모른는 아이 피리 불건만 뜻있는 나그네 애를 끓나니“라고 쓴 춘원선생의 시비도 읽어보면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곳을 찾으면 누구나 의자왕과 삼천궁녀를 연상하게 되고 주지육림으로 풍악만 울리다 백제는 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잘못된 역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이제는 역사를 재조명해 보는 안목을 넓혀 중국 동북부에서부터 일본열도에 이르기까지를 지배영역으로 하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나라였다고 자신있게 설명한다. 백화정에 올라 동북쪽의 천정대쪽을 바라보는 경치는 유홍준선생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쓰여진 것처럼 부소산성에서도 가이 제일경관이라 할 것이다.
또한 달이라도 뜬 날 밤 백화정에 올라 젖대 소리 벗 삼아 백제회고가라도 부른다면 더없는 정경은 아닐까?
백제는 결코 의자왕의 방탕이나 삼천궁녀의 치마폭에 쌓여 망한 나약한 나라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꽃 떨어진 바위에서 슬픈 역사를 반추하다보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오고 부소산성길 중 가을단풍이 제일 멋있어 보이는 길을 내려가면 고란사가 바위아래 수줍게 나타난다.
고란초와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효종소리 삼라만상을 깨우고 새벽종소리에 깬 잠이 들지 못하여 낙화암 두견이 피토하듯 우는 밤이면 삼천궁녀 원혼을 달래는 불당에 목탁소리가 깬 잠을 재우는 곳이다. 약수를 마시고 바위틈에 고란초를 찾아보고 백마강 유람선에 몸을 싣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하면서 “백마강 탄식”의 지난 유행가를 불러본다.
사비성시대 사신을 맞이하고 경치가 수려하여 임금과 신하들이 뱃놀이를 즐겨하였다는 북포가 들어오고 황포돗대의 정취는 사라졌어도 기계음이 둔탁한 유람선이 주변 경치에 동화되어 “백마강”노래 소리 흥겹게 떠나 당나라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전설이 구전해오는 조룡대를 지나면 낙화암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삼천궁녀의 단심을 말해주는 듯 “낙화암(落花巖)”은 유람선을 어서오라 손짓하는데 꽃 떨어진 바위에 슬픈 역사를 모르는 듯 무심하게 구드래로 내려간다.
이곳 구드래는 백제시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해준 관문으로 사적 명승지로 지정될 만큼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은 흙을 돋우고 제방을 쌓아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가꾸어 조각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어 새로운 명소로 부각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세계의 유명조각가들이 모여 조각심포지움을 열고 작가의 예술혼을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이렇게 돌아보면 오전 일정을 마치게 되고 인근 식당에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백마강의 별미인 장어구이와 매운탕 돌솥밥 등으로 다양하게 점심을 먹을 수도 있고 도시락이면 공원 내에 앉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구드래 조각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로 다시 시내로 들어가면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어 가는 시원이라고 말하는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 오충석탑과
백제불교의 참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을 보고 부여박물관에 도착하면 선사시대부터 근래에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까지 백제문화의 전반적인 유물을 보게 된다.
다시 버스에 올라 논산방면으로 10분정도 달리면 능산리 고분군이 나오는데 인근에 나성의 동문지와 함께 나성의 성터를 볼 수 있으며 백제조각예술의 걸작품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사리감이 출토된 건물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모형전시관에서는 적석총에서부터 옹관묘, 돌방무덤 등 옛날무덤의 변천은 물론 묘제형식을 볼 수 있어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에는 박물관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잘 다듬어진 솔길을 따라 오르면 지금은 철문으로 닫혀 있어 볼 수 없지만 청룡, 백호, 주작, 현무등의 무덤벽화를 볼 수 있는 묘가 있고 5기의 가묘가 들어서 있다. 지난 제46회 백제문화제 때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참으로 뚯 깊은 제사의식이 올려졌다.
이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과 태자융 고관대신을 비롯한 많은 백성들과 함께 당의 포로 신세가 되어 끌려가 그해에 명을 다한 의자왕과 그의 아들융의 혼백을 안치하고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다.
내려오는 길 백제시대 삼산인 오산을 바라보면 잘 가꾸어진 갈대숲이 길손을 아쉬운 듯 전송한다. 버스로 다시 부여읍내를 지나고 오던 길로 다시 대천역으로 향하면서 마지막 탐방지 외산 무량사를 찾아본다.
이곳 무량사는 만수산의 4계절이 특히 아름답지만 조선후기 다포계 건물로는 보기 드문 중층건물이 당당하게 위용을 자랑하는 보물 제356호 무량사 극락전이 탐방객을 반긴다.
이곳은 어느 곳보다 볼 것이 많아서 극락전 앞의 오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매월당 김시습의 자화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량사는 일주문을 지나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당간지주를 보고 사천왕상이 험상굿게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면 만수산 봉우리와 조화를 이룬 극락전 용마루가 위용을 자랑한다. 봄이면 생동하는 경치가 여름이면 만수산의 녹음이 가을이면 단풍이 겨울에는 살포시 내려앉은 흰눈이 아름다운 극락전과 조화를 이루는 곳이니 사시사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그 어느 곳보다 설명할 것이 많아 석탑과 석등 부도등 석조물이며 목조건축의 아름다움, 무량사의 사계, 매월당 김시습의 절의정신 등을 설명하면 어느덧 해는 만수산 자락에 걸린다.
이렇게 백제로의 시간여행이 끝이 나면 대천 앞바다의 낙조를 큰 가슴에 안고 낙지와 꽃게탕으로 소주를 반주삼아 백제로의 시간여행에서 남아 있는 아름다운 영상을 가슴에 담아 들고 여정의 피로를 풀어가며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으면 더 할 나위 없는 추억의 여행이 될 것입니다.
자! 떠나보시지요. 백제로의 시간여행을....
작가약력:1991년 백수문학수필부문 신인상수상 등단
농촌문학최우수상기념 산문집 “부여로 가는 시간여행”발간
(현) 한국문인협회부여지부 사무국장
(현): 부여군청 의회사무과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