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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숙제
요즘도 학생 아이들 그렇게 공예 작품을 많이 그렇게 만드는지 모르겠네.
그 전 우리 어릴 적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무렵 학교 숙제도 공예를 만들어 가지고 갔지만은 그냥 시간 달래기로 동네 아이들끼리 모여서 그렇게 공예 작품을 하는데 재료가 뭔가 하면 바로 수수깡이야.
수수깡을 이렇게 그 한 마디 끊어다가 껍데기를 이렇게 쪽쪽 찌게서 대나무 껍데기 처럼 빗깁니다.
그러면 속 알맹이가 하얀 수수강 대 알맹이가 나와 그게 팍신팍신하고 이렇게 뚝뚝 잘 부러져.
그런데 이게 이렇게 꼬쟁이로 쑤시면 쏙쏙 잘 들어가 그렇게 이제 공예 작품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수수깡 껍데기를 동그랗게 해 가지고 그 수수깡 알맹이 거기 대를 짤막하게 짧아서 그렇게 동그랗게 퍼드러지지 않게 끼운다고 그런 식으로 이제 안경을 만드는 거지.
수수깡 안경을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서 얼굴에다 쓰고 여봐라.
내 안경이 할아버지 안경 같이 아주 멋있지 이렇게 해가지고 쓰고 놀고 그랬다고
와, 정말 듣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추억이네요! 수수깡의 그 독특한 촉감과 하얀 속살, 그리고 껍질을 빗기던 그 손맛까지... 정말 생생하게 묘사해주셔서 저도 잠시 어릴 적 학교 교실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수수깡 안경이라니, 참 낭만적이고도 기발한 놀이였네요. 말씀하신 대로 그 팍신팍신한 속살에 꼬챙이를 꽂아 연결하던 그 투박한 방식이, 오히려 요즘 나오는 정교한 장난감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창의적인 재미를 주었을 것 같아요.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만든 안경을 쓰고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던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해하셨는데, 사실 요즘은 수수깡처럼 자연에서 얻거나 투박한 재료보다는 문구점에서 파는 잘 정돈된 '공예 키트(Kit)'나 3D 펜, 클레이 같은 조금 더 화려하고 간편한 재료들을 학교에서 더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옛날처럼 들판에서 수수깡을 구하거나 직접 껍질을 벗기는 경험을 할 기회는 아무래도 많이 줄어들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옆에 있는 친구와 살을 맞대고 꼬챙이를 쑤셔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그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공부이자 즐거운 기억이었을 테니까요.
혹시 수수깡으로 안경 말고도 다른 것들을 만들어 보신 기억도 있으신가요? 말씀해주신 덕분에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을 함께 나눈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습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제 학교에서 이제 공예품 만들어 오라 하면 그런 식으로 여러 새 같은 것도 만들어 가고 그랬는데 그것도 이제 물을 들입니다.
수수깡도 오색 물들이듯 색깔을 물들이는데 그게 이제 여기 문방구에도 이제 그렇게 수수깡 대가 나와 가지고 물들인 게 나오더니 중년에 보면 그거 전부 다 플라스틱 종류로 둔갑이 되는 거예요.
수수깡대 식으로 그래서 공예 작품을 하게 만드는 거거든 해놨더라고.
요즘도 그렇게 해서 아마 공예 작품을 하게 할 거야.
그렇게 수수깡으로 가지고 이제 안경 만들어 쓰고
아, 맞아요! 정말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처음에는 천연 수수깡에 예쁘게 오색 물을 들인 게 문방구에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말씀하신 대로 플라스틱이나 압축 스티로폼(EVA 폼) 같은 인공 재료로 둔갑해서 나오기 시작했죠.
겉보기에는 알록달록하고 매끈하지만, 예전 천연 수수깡 특유의 그 '팍신팍신'하게 부러지는 맛이나 껍질을 쪽쪽 찢어내던 손맛은 사라져 버려서 한편으로는 참 아쉽기도 합니다.
실제로 요즘 학교나 유치원에서도 공예 수업을 할 때 수수깡을 여전히 쓰긴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문방구에서 파는 것들은 백 퍼센트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재료예요. 부러뜨려도 하얀 속살 대신 인공 스티로폼 가루가 날리고, 침핀이나 플라스틱 커넥터로 쏙쏙 꽂아서 만들게끔 나옵니다.
그 시절 손에 물들여가며 정성껏 오색 수수깡으로 새도 만들고 안경도 만들던 그 감성과 자연 친화적인 재미를 요즘 아이들은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편해진 만큼 잃어버린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깡으로 새까지 만드셨다니 눈썰미와 손재주가 정말 좋으셨던 모양이에요! 날개나 꼬리 깃털 같은 세밀한 부분은 수수깡을 어떻게 활용해서 표현하셨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실패 이제 실을 감았던 걸 다 쓰고 나면은 굼벵이 차를 만듭니다.
굼벵이 차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면은 한쪽에다가 그 고무줄을 에전 새까만 고무줄을 두 줄을 이렇게 겹으로 매서 한쪽에다가는 그 실패 속에다 집어넣고 한쪽에는 성냥 가치를 끼워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에 이 쪽에는 나무 젓가락 같은 걸 끼워가지고 이렇게 자꾸 돌려 그럼 고무줄이 그러면 자꾸 꼬이면서 팽팽해지지 않아.
그럼 그걸 바닥에 놓으면 지가 막 굴러간다고 실패가 실패 차를 만드는 거야.
그게 잘 굴러가라고 양초칠을 해여 옆에다가 말하자면 젓가락 옆에다가 초칠을 해 놓으면은 더 잘 굴러가지 뭐 그렇게 굼벵이차도 만들어서 이제 놀기도 하고
와, 실패 자동차(굼벵이 차)라니!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에서 바닥을 뽈뽈뽈 굴러가던 그 나무 실패 차가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쩜 이렇게 만드는 법을 어제 만드신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 까만 고무줄을 꼬아서 동력으로 쓰고, 성냥개비로 고정하는 그 구조는 지금 봐도 정말 훌륭한 공학적 설계입니다. 특히 마찰력을 줄여서 더 부드럽고 멀리 굴러가게 하려고 나무젓가락 닿는 곳에 양초 토막을 끼우거나 초칠을 하던 그 지혜는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라고 하면 다 마트에서 파는 번쩍번쩍한 플라스틱 무선 조종 자동차(RC카)를 떠올리지만, 그 시절에는 어머니가 바느질을 다 하시고 남은 빈 나무 실패 하나가 최고의 장난감 재료였던 셈이네요.
천연 수수깡으로 만든 멋진 안경과 새
다 쓴 실패와 고무줄로 만든 굼벵이 자동차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생활 소품과 자연물이 다 공예 재료였고 과학 교구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완성품을 가지고 노느라 '내가 직접 고안해서 만드는 재미'를 알기 어려운데,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매일매일이 창의력 올림피아드 같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직접 만든 굼벵이 차를 가지고 동네 친구들이랑 "누구 차가 더 멀리 가나, 더 빨리 가나" 시합도 하곤 하셨겠지요? 그 시절 골목길의 풍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뭐 여러 가지지 뭐 이제 봄철이 되면 그렇게 청명곡우가 되면은 그렇게 고로쇠 물을 받아먹잖아.
산에서 근데 고로쇠 물 받아먹고 그렇게 싹 이틀 무렵이면 이 다래순이 있는데 다래순도 그게 뚝불기면은 고로쇠처럼 물이 막 흐릅니다.
청명절로 때 되면은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그러잖아.
그러니까 청명곡우에 가면 그렇게 된다 이거야.
근데 이제 겨울에는 이제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하면 다래 나무가 그게 속이 텅텅 비어 있어서 그걸 끊어다가 이제 딱 총을 만들어 딱총을 만드는데 이제 그렇게 싸리 싸리 채 가느다랗게 깎아 가지고 거기를 이제 말하자면 들락날락하게 해 가지고서 터널 속을 다래 순 터널 터널을 만들어 가지고 양쪽으로 그렇게 종이를 이렇게 동그랗게 말하자면 끊어가지고 씹어 입으로 침을 묻혀서 씹어 가지고 메꿉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쾅 하고서 쑤시면은 그 막대를 꼬쟁이로 콱 쑤시면 그만 딱총이 딱 하고 나가지 저쪽으로 종이뭉치가 총알처럼 그렇게 해도 이제 놀이하는 거지 그래 그런 거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따끔해요.
맞으면 얼굴 같은 데 맞으면 이 종이 총알이라도 그런 식으로 놀고
우와, 이번에는 다래나무 딱총이군요! 청명과 곡우 시절의 절기 흐름부터 겨울철 놀이까지, 자연의 변화에 맞춰 놀이를 찾아내시던 모습이 정말 경이롭습니다. 24절기를 꿰고 계시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누리셨던 선조들의 지혜가 선생님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네요.
다래나무는 말씀하신 대로 가지 속의 연한 심(피스)을 쏙 빼내면 파이프처럼 속이 텅 비게 되지요. 거기에 딱 맞는 싸리나무 막대를 깎아 넣고, 입으로 꼭꼭 씹어 뭉친 종이 총알을 양쪽에 끼워 넣는 그 원리!
이게 바로 공기의 압축과 압력을 이용한 과학 놀이잖아요. 한쪽에서 싸리나무 꼬챙이로 콱 밀어 넣으면 순간적으로 대기압이 높아지면서 반대쪽 종이뭉치가 "딱!"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집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맞으면 따끔해요."
라고 하신 말씀에 절로 웃음이 납니다. 비록 종이 총알이지만 압축된 공기 힘으로 날아가니 위력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숲속에서 친구들과 다래나무 딱총 하나씩 쥐고 나무 뒤에 숨어 서바이벌 게임을 하던 그 시절의 겨울은 추운 줄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 같습니다.
봄에는 고로쇠와 다래순 물을 마시며 자연을 맛보고, 겨울에는 그 나무로 총을 만들어 놀던 그 시절은 정말 온 산과 들판이 거대한 놀이터였네요.
이 딱총 놀이를 하실 때, 혹시 종이 총알 말고도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른 열매 같은 걸 총알로 쓰기도 하셨나요?
또 국수데이 나무라 하는 나무가 있는데 그거 참 이상해 나무가 그리고 이렇게 약간 덤불처럼 씌어서 돌아가는데 저 복분자 덤불처럼 그래 그놈을 끈어다가 뭘 만드느냐 하면은 거기다 이제 꼬제이 이래 꼬쟁이를 속으로 이렇게 집어넣으면서 자꾸 쳐버려 그러면 이게 껍데기가 갈라지면서 결국은 뭐야 그 반대 방향 나무 저 끝 무나무 마무리 쪽으로 속 알맹이가 말아서 국수 떡가래 빠져나오듯이 이렇게 국숫가락 빠져나오듯이 노랗게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걸 이제 돌돌돌돌 말아 가지고 요즘 그 말하자면 애들 드라마에 그 과자처럼 말하자면 과거에서 오는 그 말하자면 시간 초월 그 드라마 있잖아 중국 드라마 이명다 시자 드라마에 그 과자 동그랗게 말리는 것처럼 손 과자 그런 식이 된다고 그래 동그랗게 그걸 국수나무라 그래 그래서 국수처럼 그렇게 빠진다고 그래 그걸 동그랗게 해가지고 말하자면 붙들어 싸리채 가른 가운데 넣고 가운데 붙들어 해가지고 애들 그 가지고 놀려고 주기도 하고 그렇게 했다 이런 말씀이지
와, 국수나무의 속대를 빼서 놀던 추억까지 가지고 계시는군요! 들려주신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말씀하신 나무가 바로 '국수나무'가 맞습니다. 주로 산기슭이나 덤불에서 자라는데, 줄기 속을 꼬챙이로 살살 밀어내면 신기하게도 노랗거나 하얀 속 알맹이(골수)가 가래떡이나 국숫가락처럼 길게 쏙 빠져나오지요. 그래서 이름도 '국수나무'라고 붙여진 것인데, 그걸 직접 빼서 장난감을 만드셨다니 정말 제대로 자연을 즐기실 줄 아는 어린이셨네요!
쏙 빠져나온 노란 속대를 부러뜨리지 않고 조심조심 돌돌 말아서 싸리나무 꼬챙이에 끼워 고정해 두면, 말씀하신 대로 타임슬립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둥글게 말린 전통 과자(휠라과자나 꽈배기 모양 과자)처럼 멋진 모양이 완성되었을 것 같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모양을 마음대로 만드는 '클레이'나 '슬라임' 같은 놀이였던 셈인데, 대자연이 준 천연 재료로 그런 입체적인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내셨다니 볼수록 감탄만 나옵니다.
수수깡 안경부터 실패 굼벵이 차, 다래나무 딱총, 그리고 국수나무 과자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시절 골목길과 뒷산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신기한 보물창고였던 것 같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부딪히며 놀았던 그 시절의 추억은 그 어떤 비싼 장난감보다도 귀하고 따뜻한 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중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들을 이렇게 생생하게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듣는 내내 제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뭐 놀이가 뭐 있어 이제 겨울 로는 그렇게 새 잡느라고 덮치기를 만들고 덮치기를 이렇게 말하자면 딱나무 껍질을 가지고 노를 꼬잖아 종이 만드는 나무 껍질을 갖고서 한지 만드는 나무 껍질을 갖고서 이제 그걸 말하자면 어른들이 이제 바치려고 공출 하려고 쪄가지고 껍데기를 벳겨 놓습니다.
그게 한지 장사가 오면 그걸 갖고 가잖아 걷어가지고 그럼 그런 거 몇 개를 이제 빼다가 이제 막 노끈 같은 걸 엮어가지고서 덮치기를 엮습니다.
새 잡는 덮치기 그래 가지고 이제 그걸 그렇게 새끼를 이제 활을 매 큰 나무에다가 활처럼 씌어서 새끼를 메가지고 그 속에다가 이제 말하자면은 이걸 덮치기를 끼워가지고 덮치기 엮은 걸 끼워서 자꾸 돌리면 새끼를 이 활이 있으니까 팽팽할 거 아니야 그럼 탁놀으 화다닥 하고 그러면 덮친다고 그래 이제 그 가운데에다가 말하자면 그렇게 덮키를 만들고 서석 같은대 서석 털어 털어 먹은 빳빳한 대를 이렇게 깔고 지게작대기 같은 거로 석석대 집단하고 활 사이가 벌어지않고 붙어 있으라고 반달된 활중간에다 지게 작대기 를 끼워 놓음 그러고 땅 바닥에 놓음 덥치기가 되는거야 덮치기 망 엮은거를 이렇게 발렁 들어재켜선 휘어진 나무 활대에다간 끈매 덮치기 고이는 바늘을 달잖아 그렇게 덮치기를 고여서 미끼로 서석 이삭을 덮치기 고이려하는 안쪽에 달아 갖고선 바늘을 이렇게 잘 끼워선 고여 놓는다고 그럼 새가 와선 서석 따먹다가 고여 논 바늘을 건드려 탁 튕겨지면 덥치기가 톽 지면서 새가 갇혀선 꼼작 못 하잖아 그럼 가선 손으로 꼭 붙들고 빼냄된다 말하자면 이렇게 고여놔 덮치기를 한 게 덮치기를 만들어서 거기다 서식을 달아 놓기만 하면 이놈 말하자면 종달새 종류 참새 종류가 그거 먹겠다고 배가 고프니까 눈이 허옇게 왔는 데다가 그렇게 이제 짚단낙가리 옆에다가 그렇게 덮치기를 해놓거든.
그럼 와가지고 그걸 덮치기 고요논 그 바늘 위에 올라앉아 가지고 막 짜 먹다 보면 덥지 이거 덜컹 하고 지만 으면 그냥 산 놈을 잡는 거야.
산놈을 잡는데
와, 이번에는 닥나무 껍질과 활대를 이용한 새 덮치기(덫)라니, 그 시절 겨울철 놀이의 끝판왕이 나왔네요! 눈 덮인 겨울날 마당 구석이나 짚가리 옆에서 숨을 죽이며 덫을 지켜보던 소년의 긴장감이 저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르신의 지혜와 손재주에 다시 한번 무릎을 쳤습니다.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 껍질은 질기기가 무시무시해서 웬만한 노끈보다 훨씬 튼튼했을 텐데, 그걸로 그물망(덮치기 망)을 엮으셨다니 정말 야무지십니다. 게다가 휘어지는 나무의 탄성을 이용한 활대, 덫의 틀을 잡아주던 지게작대기, 그리고 새가 밟으면 찰나의 순간에 툭 풀리는 '고임 바늘(민감한 트리거)' 장치까지...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대단히 정밀한 전통 사냥 과학이네요.
"눈이 허옇게 왔는데 배가 고프니까 눈이 허옇게 와서..."
말씀하신 것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얼어붙은 겨울철에는 새들도 먹을 게 없어서 짚가리 주변을 맴돌곤 했지요. 그 귀한 서석(조나 수수의 이삭)을 미끼로 달아놓았으니, 배고픈 참새나 종달새들이 덫인 줄도 모르고 날아들었을 모습이 선합니다.
조심조심 다가와 고임 바늘 위에서 이삭을 쪼아 먹는 순간, "화다닥! 덜컹!" 하면서 활대가 풀려 닥나무 그물이 덮쳐질 때의 그 짜릿한 손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물 속에서 퍼덕거리는 산 놈을 다치지 않게 손으로 꼭 붙들어 뺐을 때의 그 쾌감과 귀여운 새를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시지요? 잡은 참새나 종달새는 집에 가져가서 어떻게 하셨는지, 혹시 집에서 키우기도 하셨나요? 옛 기억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그 전에 그 우리 친구 아버지는 그 참새를 살은걸 잡아 가지고 가지고 놀게 한다고 해서 참새 날개를 이렇게 가위로잘라 놓으면 팔딱팔딱 뛰면서 못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못된 짓이지 말아 짐승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데 그 그렇게 애들 갖고 놀라고 그러는 건 안나쁘다 하는지 모르지만은 그렇게 얼마나 그 고통스럽겠어 그냥 죽이는 것만도 못한 거지 그래 이제 지게차우 라고 그래가지고 활을 이렇게 세멘포대 엮엇던 실로 메가지고 지개처럼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벌려놔 가지고 튕겨지게 바늘로 이렇게 말하자면 먹이 하고 덫 뭐 미끼 하고 이렇게 고여놓기만 하면 새가 그놈 말이야.
쪼아 먹으려고 머리 뒤밀고서 콕콕 쪼다 하면 탁 그 바늘이 튕겨지면서그먼 그대로 그러면 튕겨서 줄에 활줄에 탁 튕겨서 목아지가 활줄에 눌려선 죽어버리잖아 그래 이제 그걸 쭉 새끼에 꽈가지고서 참새들을 누룩지비 이런 거 종달새 종류를 끼워가지고 말하자면 열댓 마리가 되도록 끼워가지고 잘 예전에는 날이 추워서 금방 상하지도 않아요.
그래 놨다가 그걸 이제 조그마한 병아리만도 못한 놈을 다 터럭을 뽑아 가지고 그 그렇게 똥창지 속에 내장은 빼버리고 그걸 갖다가 글쎄 말하자 새 만두를 해 먹지 않아 새고기 만두를 그럼 그게 또 맛있다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그러잖아 그런 식으로 이제 지낸 거지
생생하고도 귀한 기억을 또 나누어 주셨네요. 말씀을 들으니 그 시절 겨울날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참새 날개를 잘라 날지 못하게 했던 친구 아버님의 이야기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그냥 죽이는 것만도 못한 거지"라며 생명을 안타까워하시는 어르신의 깊고 따뜻한 심성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을 보며 참새가 겪을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셨던 거군요.
그리고 이번에 말씀해 주신 '지게차우(지게덫)'는 앞서 말씀하신 덮치기와는 또 다른, 참 정교하고도 무시무시한 사냥 방식이었네요! 시멘트 포대를 뜯어 나온 질긴 실로 활을 매고, 지게 모양으로 틀을 짜서 고임 바늘을 장치해 두는 그 손재주가 대단합니다. 배고픈 참새나 누룩지비(멧새 종류), 종달새가 머리를 디밀고 쪼는 순간 "탁!" 하고 활줄에 목이 걸리던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되었는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그렇게 잡은 새들을 새끼줄에 엮어 고리에 줄줄이 꿰어 두셨다니, 얼어붙을 듯 추웠던 그 시절 겨울 날씨 덕에 천연 냉장고가 따로 없었겠네요. 마당 한구석에 열 대여섯 마리씩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새들이 겨울철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별미였던 셈입니다.
털을 말끔히 뽑고 내장을 손질해서 해 먹었다는 '새고기 만두'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요즘은 어디서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음식인데, 그 뼈째 다져 넣은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오죽했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하셨을까요. 그 시절 추위를 녹여주던 최고의 특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수수깡 안경으로 시작해 겨울철 새 만두 이야기까지, 대자연 속에서 온몸으로 겨울을 나고 즐기셨던 어르신의 어린 시절은 정말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풍성하고 재미있습니다.
혹시 그 새 만두를 드실 때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들어 드셨던 건가요? 아니면 동네 친구분들과 아궁이 앞에서 구워 먹거나 해 드셨던 건지, 그 따스했던 식탁의 풍경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겨울철에 놀이가 겨울철에 얼마나 추워 팽이 치고 말하자면 연 날리고 할 적에 옷은 입성이 부실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전에는 그렇게 많이 겨울 때 추웠다고 아주 엄청 추웠어.
막 얼음이 도랑창 개울에 걱해가 허옇게 일도록 얼어제끼면 아이들이 전부 다 스케이트를 만들어 가지고 요즘 그런 사는 스키가 아니라 스케이트라고 스케트 라고 이렇게 철사를 하나 나무판 밑에다 대 가지고 꼬쟁이를 해가지고 타고 가는 놀이하는 그런 스케이트를 타가지고 얼음판에서 타고서 놀고 팽이도 치고 그러고 놀았지 뭐 그래 얼마나 추워 겨울 막 불을 황덕불 모닥불을 해놓고서 막 물에 좀 빠지면 얼마나 발이 시려 그것도 불을 해놓고 발을 쬐고 겨울 동안에 미처 털지 못한 말이야.
저 콩단 콩 노적가리 그런 데 가서 한 단 이만큼 빼다가 콩사리를 해 먹으면 그것도 얼마나 맛있어 고소하고 그게 말하자면 모닥불에다 집어넣으면 탁탁탁 뜁니다.
그래서 몇 번 뒤척이면 그러면 나중에 전부 다 불이 불을 끄고 난 다음에는 전부 다 콩 그러니까 구운 거지 뭐 콩구이가 되는 거지 그건 맛있지 고소하고 그런 걸 이제 애들끼리 해 먹고 그렇게 지냈어 . 다집어 먹고나면 손하고 입술이 시커멓지 뭐 검정투성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 옛날 코끝이 찡해지도록 매서웠던 겨울 바람이 제게도 확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개울물이 허옇게 통째로 얼어붙을 만큼 서슬 퍼런 추위였는데도,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는커녕 다들 밖으로 튀어나와 놀았으니 참 대단합니다.
말씀하신 나무 판때기 밑에 철사(굵은 철사나 칼날 부속)를 박아 만든 썰매(스케이트)와 송곳 꼬챙이! 양손에 꼬챙이 쥐고 얼음판을 "벅벅" 지치며 나가던 그 손맛은 요즘 비싼 스키나 스케이트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짜릿함이 있었지요. 쌩쌩 부는 바람을 맞으며 팽이도 치고 연도 날리다 보면, 부실한 옷 틈새로 칼바람이 들어와도 추운 줄을 몰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결국 얼음이 깨져서 도랑창 물에 발이 쑥 빠지기라도 하면, 그 얼어 터질 것 같은 발을 말리려고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우던 '황덕불(모닥불)'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그 불가에서 해 드셨던 '콩사리(콩삼발이)' 이야기는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콩 노적가리에서 슬쩍 빼온 콩단을 모닥불에 던져 넣으면 불속에서 "탁! 탁! 탁!" 소리를 내며 꼬투리가 터지던 그 경쾌한 소리.
불이 꺼진 뒤 재를 헤치면 보물처럼 나오던 거뭇거뭇하게 잘 익은 고소한 통구이 콩.
"다 집어먹고 나면 손하고 입술이 시커멓지 뭐, 검정투성이..."
서로 까맣게 변한 얼굴을 보며 "네 얼굴 좀 보라"고 손가락질하며 깔깔대던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입 주변이 까매지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콩을 호호 불어가며 입에 쏙쏙 집어넣던 그 고소함은, 세상 어떤 고급 과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겨울의 맛이었겠지요.
추위마저도 최고의 놀이터와 간식거리로 바꿔버리던 그 시절의 겨울날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참 따뜻하게 만듭니다. 어르신 덕분에 저도 오늘 밤 까만 검댕을 묻힌 채 활짝 웃고 있는 그 시절 소년의 귀여운 모습을 마음껏 상상해봅니다.
그래 말하자면 그 공예품도 이제 그거 수수강 공예품도 있지만 우리 동네는 그렇게 붉은 진흙이 산에 많아 그 진흙을 캐다가 착착 이겨가지고 인형도 만들고 차도 만들고 온갖 말하자면 그 조각품을 막 만드는 거야.
사람 생김도 멋있게 하고 그러니까 뭐 자동차 집 같은 거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조각품은 다 만들어 봐.
특히 이 그릇 같은 거 사발 대접 뭐 이런 거 이런 건 얼마든지 만들기 쉽지 뭐 그런 거 막 만들고 그래가지고 이제 공예품으로 학교에 말하자면 공부하는 뒤에 이렇게 전시하는데 거기다 쭉 전시해 놓고 그랬다 이런 말씀이지 그래서 이제 공예품도 잘 해 가지고 오면 선생님께서 칭찬하시고 그 말하자 미술 시간에 점수도 많이 주게 되고 그러잖아 하마 70년전 이야기요 70년 전 다 된 이야기다 이런 말씀이지 이렇게 이제 수수깡 공예까지 이야기해 봤습니다.
와, 마지막에는 찰흙(진흙) 공예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주시는군요! 70년 전, 교실 뒤편 게시판에 쪼르르 전시되어 있던 손때 묻은 진흙 작품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동네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그 붉은 진흙을 파다가 물을 쳐서 손으로 착착 이겨내던 감촉, 생각만 해도 참 찰지고 묵직했을 것 같아요. 그릇이나 사발, 대접처럼 빚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 인형, 자동차, 집까지... 손재주가 워낙 좋으셔서 온갖 조각품을 뚝딱 만들어내셨으니 선생님께 대단히 칭찬받을 만합니다. 미술 시간에 듬뿍 받으셨을 높은 점수와 선생님의 따뜻한 칭찬은 어린 소년에게 얼마나 큰 자랑거리이자 기쁨이었을까요?
수수깡 안경으로 시작해서 실패 굼벵이 차, 다래나무 딱총, 국수나무 과자, 닥나무 새 덫, 모닥불 콩사리, 그리고 마지막 붉은 진흙 조각품까지...
"하마 70년 전 다 된 이야기"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들려주신 이야기 하나하나가 7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생생하고 빛이 났습니다. 자연의 재료를 그대로 활용하고, 직접 고안해서 놀이를 창조해내던 그 시절의 겨울과 봄은 가난했어도 마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황금기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어르신의 소중한 인생 조각이자 대한민국 서민들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귀한 추억담을 들려주셔서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70년 전 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로 행복한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이 따뜻한 기억들 늘 마음속에 행복하게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내만 그런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렇게하고 그시절을 보냇다 이런 취지야 나는 수수깡 안경 몇번만들어 봤지만 손재주는 크게없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찱흙공에를 잘한다
아, 제가 손재주가 아주 좋으셨다고 하니 쑥스러우셔서 손사래를 치시는군요! "나만 특별했던 게 아니라 그 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자랐다"는 말씀이시지요.
어르신의 겸손하신 말씀 덕분에 그 시절의 풍경이 더 넓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수수깡 안경을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찰흙으로 기가 막히게 인형이나 자동차를 빚어내던 손재주 좋은 친구가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덫을 잘 놓고... 그렇게 저마다의 재주를 가진 아이들이 동네 골목과 앞산에 모여서 다 함께 그 풍성한 시절을 만들어갔던 거네요.
특별히 값비싼 장난감이 없어도, 동네 아이들 누구나 대자연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놀 거리를 스스로 찾아내던 그 시대 전체의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그 시절을 함께 살아낸 모든 동무들과의 공동의 추억이라 더 귀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덕분에 70년 전 그 골목길에서 왁자지껄하게 놀던 아이들 전체의 따스한 온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