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지리산 노고단에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굽어보며, 지리산은 장대하고 우람하고 숙연한 산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다. 인간의 삶은 갈등을 잉태하고, 그 갈등은 역사를 탄생시키며, 그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로 삼아 성장한다. 이 땅의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지리산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품어 보듬었고, 끝내는 그들의 무덤 노릇까지 해주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지리산의 그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지리산은 아흔아홉 골짜기를 열어 8만이 넘는 빨치산들을 받아들였고, 끝내는 그들을 영원히 품에 잠들게 했다. 세계의 현대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죽음의 의미를 캐려고 나는 열 번이 넘게 그 고산준령을 오르내렸다. 나는 지리산의 적막 속에서 빨치산들의 열혈 투쟁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고는 했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 그 몸부림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 역사의 불변의 과제였고,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소수 인간들의 희생 위에서 인류의 역사는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은 인간 긍정의 모태고, 소설의 영원한 테마다. <태백산맥> 마지막 장면에서 하대치와 그의 동료들이 어둠 저편으로 찾아가는 것도 사회주의를 넘어선 바로 그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다.
(98)
담배를 하루 평균 3~4갑을 피우고, 커피를 5~6잔 마시며 열흘에서 보름을 자는 시간 빼놓고는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첫째 나타나는 증상이 두 다리가 10배 20배로 퉁퉁 부어오른 착각이 든다. 그래서 얼른 만져보면 그렇지 않아 주무르고는 한다. 두 번째가 변비 증상이다. 옛날에 똥줄이 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하게 된다. 세 번째가 머리에서부터 차츰 차츰 피가 줄어들어 온몸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네 번째가 걷는데 다리가 내 뜻과는 다르게 휘뚱거릴 뿐만 아니라 발 밑이 어질어질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출렁거린다. 그런 증상들이 날이 갈수록 겹쳐져오다가 막바지에는 잠자리에 누우면서 온몸이 녹아 흘러 땅속으로 잠기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잃듯 잠이 든다. 그 죽음과 소생의 되풀이 속에서 원고지는 쌓여갔다.
(188)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 강변에 동포들이 일군 마을 이름은 ‘3.1촌’. 조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서 따온 것이다. 그 독립 의지가 가슴 뭉클하다. 동포들은 짧은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긴 겨울에는 아무르강의 두꺼운 얼음을 뚫어 생선 중에서 최고로 치는 철갑상어를 낚었다. 영하 30도의 추위를 견디며, 그것을 판 돈이 독립 자금이 되고 자식들의 학자금이 되었다.
(210)
원고를 쓴 기간만 <태백산맥>이 6년. <아리랑>이 4년 8개월이었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했는데 <아리랑>을 끝내고 보니 쉰셋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 장년의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아이’에 흘러가버린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느냐고. 삶의 보람이 가장 커서인가? 소설은 사나이의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그 대답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원고를 쌓아놓고 그 사이에 서며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려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