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建築Architecture은 건물建物Building과 구별된다. 건물은 필요에 따라 단순한 건조 기술로 만드는 구조물이지만 건축은 ‘조형造形 의지와 이데올로기가 담긴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건축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개성과 인격의 실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건축을 삶을 위한 도구로만 이해해서는 자칫 그 속에 담겨 있는 실체를 놓치게 된다. 앎이란 깨달음이며, 삶이란 변화이다. 위대한 건축은 그 깨달음과 변화를 담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예천 초간정의 기품이 선비의 절제된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안동지방의 건축물들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이라면, “건축을 통해서 한 시대의 역사를 읽고, 인간을 읽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통해서 건축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앎이란 깨달음이며, 삶이란 변화이다. 위대한 건축은 그 깨달음과 변화를 담고 있다. 영원한 건축이란 그 깨달음을 전달해 주어 또 다른 앎을 가능하게 하며, 항상 변화하면서 또 다른 삶을 얻게 하는 건축이다. 건축은 집을 짓는 기술이 아니다. 건축이란 집을 매개로 벌어지는 개별적인 깨달음의 과정이고 집단적인 문화 활동이다. 따라서 역사 속의 건축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건축인들이 고민했던 생각들이며 그들이 도달했던 깨달음이며 그들이 성취했던 실천의 결과와 행위들이다. 과거의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나 장식이 아니고 심지어는 공간과 그 구성 방식도 아닌 지식이며 지혜이며 정신이다. 능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능동재사는 산기슭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지형적 조건을 자연스럽게 건축에 끌어들였다. 재사 영역을 이루고 있는 지형은 위는 높고 아래는 낮아 완만한 경사로 흘러내린다. 따라서 재사가 자리할 앞과 뒤 그 고저의 차이를 감안하여 건축물의 공간구성을 결정하였다. 이처럼 안동지방에 산재 되어 있는 수많은 재사 건축의 유형을 살펴보면 뚜렷한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볼 수 있다. 안동 권씨 시조인 권태사의 묘제를 올리기 위하여 참제원들이 줄지어 묘소로 오르고 있다.
첫째, 재사 건축의 입지 조건을 들 수 있는데 재사는 일반적으로 묘소 근처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터에 묘소를 쓰기 위한 풍수적 조건과 재사를 짓는 풍수적 요소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음택 풍수와 양택 풍수로 구별되는 풍수론의 조건은 합치될 수 없기에 음택 풍수론으로 비추어 보아 명당인 터 근처에다 재사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재사 건물들은 묘소 바로 아래에 자리 잡지 못하고 묘소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지어질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다. 능동재사도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데 실제로 태사공의 묘소는 재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건너편 산기슭에 모셔져 있다. 따라서 묘소 바로 아래에다 재사를 짓지 않고 여러모로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이유도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함이다.
둘째, 재사 건물을 지음에 있어서 각 건물의 공간구성과 배치에도 일정한 유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재사는 제사를 받들기 위해 엄격한 절차와 절제된 행위를 통해 묘제를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받들게 된다.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지어진 건물이기에 재사에는 제사를 수행하기 위한 제사음식의 준비, 묘제에 참여하는 문중 성원들의 숙식 제공, 묘제의 수행, 묘제 후 음복까지 묘제를 지내게 되는 제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구성과 건물의 규모가 결정지어지게 된다. 또한 재사의 규모 면에서도 시조의 묘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시적이지만 많은 문중 사람이 대거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감안하여 건축물의 공간구성과 배치를 결정하고 나아가서는 대청과 누마루의 설정까지도 이에 따르게 된다. 또 재사로의 출입을 위해 부설되는 대문의 경우에도 의례용과 일상용으로 구분하여 하나는 묘제를 지내는 날에만 개방하고 다른 하나는 일상적인 출입문으로 사용하기에 대부분의 재사는 2개의 문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조건들이 재사의 규모와 형식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능동재사 평면도
셋째, 재사 건축은 내적으로는 가문 내에서도 문중 성원 간에 위계질서를 상징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가문의 단합과 결속, 명문가임을 자랑하고자 하는 과시욕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재사는 외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강한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매우 개방적인 공간구성을 보인다. 또 묘제는 철저하게 장손과 원로를 중심으로 해서 제의를 직접적으로 주관하는 유사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안마당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소통하게끔 열려 있다. 나아가서 재사 건축에 담겨 있는 각 공간의 배열과 공간의 구성은 문중 내의 위치에 따라 엄격하게 결정되고 이와 같은 각 공간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어 제의를 수행하는 데 선택과 소통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게 구획되어 있다. 능동재사의 경우에도 안동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지워진 재사 건축의 여러 가지 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이 이 지역에 수없이 생겨나는 재사 건축의 한 유형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동권씨 능동재사는 이웃해 있는 풍산류씨 금계재사와 안동김씨 태장재사, 북후면에 있는 진성이씨 가창재사와 함께 대규모 재사 건축물에 속한다.
추원루에서 바라본 정침(안채),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안마당은 묘제에 참여하는 많은 문중 성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넓게 구획했다. 능동재사는 2층 누각형 건물인 추원루를 중심으로 한 제례 영역과 유사채를 중심으로 한 제사 영역 그리고 관리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주사영역으로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건축물의 쓰임새에 따라 기능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시조 묘제를 받듦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전체 영역은 높은 죽담 위에 자리 잡았다. 죽담은 2단으로 구획했는데 아랫단은 자연석 다듬돌을 2단으로 쌓고 화단을 조성하여 여러 화초와 나무를 심고 문화재 지정 안내판을 세워두고 있다. 위는 역시 자연석 다듬돌을 이용하여 7단으로 훌쩍 높아진 죽담을 쌓아 일곽을 이룬 다음 세 영역으로 나누어진 재사 건물을 세웠다. 전체적인 평면구성은 평면도에서 보듯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좌측에 높은 축대를 쌓은 추원루를 전면에 내세워 문루를 삼았고, 안마당 건너 우뚝 솟은 재사 안채와 그 앞 양쪽에 시립한 동 ‧ 서재가 튼 ㅁ자를 이루었다. 또 동재의 우측에는 임사청, 전사청 및 주사가 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고 있어 전체 배치가 ‘날 일(日)’ 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과 같은 평면을 이루고 있다. 추원루(追遠樓)는 능동재사의 정문 구실을 하는 누각 건물의 이름이다. 추원이라 함은 ‘먼 조상을 추모(追慕)한다’는 뜻이다. 이 누각은 재사가 협소한 관계로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불편하여 나중에 지은 것인데, 행사 시에 참제자들은 이곳에 모여 시사를 봉행할 제관과 집사를 뽑기도 하며, 우천(雨天)으로 인해 묘소에서 행사를 봉행할 수 없을 때는 이곳에서 ‘망제(望祭)’를 올리기도 하고 묘제 후 음복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전체 14칸인 2층 구조로 매우 큰 규모이다. 1층은 어칸에 출입문인 대문을 부설하고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 3칸은 판벽으로 막아 폐쇄형 평면을 하고 있으나, 2층은 난간 드린 누각으로 4면을 완전히 개방하여 안팎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획했다. 이는 안동지역의 재사 건축에 있어서 누마루는 밖을 향하고 있는 3면을 판벽과 판문으로 막아 폐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과 달리 추원루는 전체가 개방되어 있어 재사 건물로는 특이한 구조로 받아들여진다. 무릇 세상에는 끊임없이 변할 때 더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도 많다. 선인들의 자취가 서린 문화유적은 오랜 풍상에도 변치 않았을 적에 더 큰 감동을 준다. 더욱이 그 유적을 둘러싼 자연조차도 옛 모습 그대로라면 감동은 더욱 커진다. 권태사 묘소 / 제수 진설 묘제 봉행 / 능동재사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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