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쉼터

[젬마]

지리산 역사관 곁엔 그들이 삽니다.

나그네 쉼터라는 이름으로 다원을 내고 자연차들을 길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뭔가를 누군가에게 거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부자입니다.

그런 부자가 그리운 세상에서 참 아름다운 이웃을 발견한 것 같아 그저 행복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만난 건 지난 남해 여행에 대한 아쉬움에 이곳 하동에 다시 온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대체로 좋은 게 있으면 자신만 몰래 갖고 싶어하는 부류와

저처럼 나누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부류 두 종류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일단 제가 만난 좋은 것을 남과 나누고야 직성이 풀립니다.

예를 들면

"어머~ 젬마 옷 참 예쁘다!"

하면 즉시

"아하~ 이거요? 어느 가게에서 얼마주고 산건데... 아직 있을 걸요?

어디로 가다가 어떻게 돌면 그곳이 있어요..."

하고 일러주지 않으면

괜히 '내가 너무 이기적이 아닌가 ' 양심이 찔려서 마음이 편치 않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 더 좋다는 게 아니라 그저 남과 이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토록 행복한 여행을 남편과만 하고는

용인에 사는 친목모임 언니들과 같이 가고 싶다는 열망에

명절 코 앞에 두고

"우리 거기 가자!"

하고 깃발을 들었습니다.

가는 길에 군산 횟집에서 꽃게장정식과 회정식으로 점심을 걸판지게 먹고

올림픽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내달려 하동땅에 들어선 건 오후 네시 경...

저는 언니들을 하동 북천마을에 코스모스 메밀 축제장(2009. 9, 28~10.4)으로 안내했습니다.

허수아비가 길게 늘어산 이병주문학관근처에서 사진도 찍고, 생알밤도 사서 챙기고 ..

집안일에 묶인 이들을 이렇게 들판에 안내하면 그분들의 영혼의 본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우리... 여고때의 시심을 가진 우리 영혼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꽃밭에 뛰어들어 사진도 찍고... 감탄도 하고...

그러나 더 늦기전에 쌍계사계곡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이라는 안내문이 씌여진 길... 쌍계사 가는 길.

이제 가을을 맞아 벚나무가 잎을 떨구고 길가에 물든 잎들이 여기저기 쌓이기 시작한 그곳...

눈을 산쪽에 두면 봄의 청매실나무가 천지고. 잘 가꿔진 보성녹차밭과는 달리 야생 차밭이 흩뿌려진 곳...

굳이 봄날이 아니라도 금새 벚꽃이 흐드러질 듯 마음 속 눈이 환히 열렸습니다.

여기저기 개인이 각기 자신의 개성을 담아 자신만의 다원을 열고

꼬불꼬불한 산자락 구석구석에 올망졸망 그곳 사람들이 삽니다.

호박 큰 덩어리가 세 개에 이천원..깐 밤도 여기 용인이라면 훨씬 더 부를 가격으로 두 배...

산에 지천인 묵은 나물이 여기저기 가게마다 펼쳐져 있습니다.

칠불사 아래 마을에 있는 지리산 역사관 곁엔  '선유산방'이라는 황토방이 있습니다.

황토방이라는 게 좋아 지난 여행에서 제가 콕 찍어 찜해둔 그곳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묵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화장실 시설은 이제 완전 걱정 뚝! 입니다.

방에 붙은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우린 차례로 씻고

용인에서 미리 연락하자마자 주인이 뜨겁게 장작불을 때어 준 방안에서 서로 뜨거운 아랫목을 양보하며 뒹굴고

싸가져온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며 피곤을 풀다가

"이렇게 멋진 산에 와서 그냥 자는 거 아깝다. 우리 나가서 잠시라도 산길을 걷는 게 어때요?"

하는 제 제안에 다 씻어 놓고 기꺼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리창엔 여치들이 얼마나 많은지...

달빛이 그윽해 마음이 처연해지고 누군가 엄마 얘길 꺼내면 울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산마을은 성수기가 아니어서 고요했습니다.

그렇게 몇 발자국 내려가자 불빛이 새어 나오고 현수막엔

여기는 나그네 쉼터입니다. 무료로 차 한잔 마시고 가시라는 안내문이 보였는데

나무로 잘 지어 놓은 나그네 쉼터, 그 안 불빛 비치는 다원엔

부부가 동그마니 앉아 그날 하루 얘길 하는지 차를 앞에 두고 고요히 명상중이었습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남편 앞에 아내는 차를 따르고, 그리고 음악이 흐르고....

도톰하게 솜을 둔 무명 방석에 이제 막 새로 지은 나무집의 향이 은은했습니다.

밖에서 그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서성이는 길손, 우리를 불러 들인 건 그의 아내였습니다.

우린 가게에 놓인 물건들도 둘러 보고 필요한 건 내일 사기로 하고,

개암차를 네 잔이나 받아 먹었습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장사하려고 베푼 친절이겠지.."

전 비록 장사를 위해서라도 삭막한 세상에서 가게 사장님들이 더 많이 그런 친절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따뜻한 지리산 인심을 체험했습니다. 

그 곳에선 어디서든 무얼 사면서

"좀 더 주세요"

하면

"젊은 사람들이 주라는데 줘야지, 어째?"

하는 할머니 말씀에 나중엔 더 달라는 말이 미안해서 주는대로 받아들게 되더라구요...

그분들의 손끝이 알밤철이라 온통 물집이 맺힌것도 그제서야 보였습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해 차 트렁크를 열고는

"우린 결코 여행 간게 아니야.. 시장 간거야.."

할 만큼 호박, 묵은 취나물, 호박 말린 것. 은행, 밤...따위를 각기 사서

아마 요번 추석땐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언니들 모두

힘들게 가족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도 스스로 덜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건 제 작은 기도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칠불사에 올라 아자방을 둘러보고 절 마당의 호젓함을 즐겼습니다.

옛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절에 가면 우상이라며 부처님을 보지 말라고 했다 합니다.

구교신자인 안나언니가 소풍을 가면 그분 어머니가

"절로 소풍을 가니 절대 절안에가서 부처님을 쳐다보지 말고 오너라"

하고 경계를 시켰다 했습니다.

이제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배운 우리 세대엔

그들의 원칙적인 신앙태도가 때론 조금 어리석어 보이고, 답답히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연유로 선조들의 신앙이 더 존경스럽기도 하지 않나요?

이제 우린 이도저도 다 알아 아자방과 대웅전 구경은 물론이요.,

스님을 보면 합장으로 가볍게 인사하기조차 합니다.

열린 사고는 큰 그릇으로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보듬어 싸 안아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큰그릇되기를 늘 마음에 새길 일입니다.

종교가 다르기로 폐쇄적이 된다면 ...

친하지 않다해서 거리를 둔다면....

거기다 나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았음을 두고 우쭐해 한다면?

자기만의 성에 갇혀 어리석은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이는 다 주님의 창조물..

만일 그분을 모른다면 그들을 부르는 게 신앙인인 우리의 소명이고

그분을 아는 분이라면 우리의 형제이니 차별을 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 안에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마음이 있다면

내 안의 소견좁음을 탓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자연은 이리도 물과 숲과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어울려 아름답습니다.

나무와 풀은 계절따라 변하면서도

서로 상대를 존재하게 하고 돋보이게 하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들로 산으로 다니며 자연을 보고 배우는 영혼교실은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생활하는 기쁨입니다.

바위위에 가까스로 몸을 얹은  돌이끼 하나에도 우주를 사랑할 마음이 담기고

돌 틈 사이를 느리게 걷는 다슬기 한 마리에도 코끼리의 생명에 걸맞는 하느님 찬미가 있습니다.  

하물며 잘 가꾸고 예쁘게 꾸며진 사람 손길이 머무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저는 다슬기 한마리의 사랑으로

풀꽃 한송이의 사랑으로 주님 사랑을 노래해야만 합니다.

하동의 토지 문학관에서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에 목이 메이고

서릿발 같은 서희의 기상도 다시 회상하며 

물레방앗간을 걸으며 안채와 사랑채를 돌아 걸어 최치수와 임이네같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새로와

시간이 되면 다시 읽고 싶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체험했습니다.

토지문학관 마을은 여기저기 상점들이 들어서는 중이어서 안동 하회마을의 아쉬움이 생각났습니다.

집집마다 고등어 정식 간판을 올려 그만 고등어 정식 파는 곳이 하회마을 같았던....

동구밖에서 좌판을 연 할머니들의 나물거리는 정겨웠지만

남대문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새로 생긴 가게에서도 만나니  

지방 특성화를 위해 사고방식을 바꾸는 건 어떨까 싶은 마음이.....

얼마전 문화일보에 함안의 '무기연당'을 소개하는 글이 나왔습니다 .

전 신문을 보고 마음에 내키는 곳이 있으면 책장 한 쪽에 스크랩 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요번 여행은 하동만 가는 걸 목적으로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조금 시간이 여유가 있어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로 스크랩을 확인해서 그곳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풍성하게 집에서 가져온 음식들도 어딘가에서 먹을 겸...

사진은 거짓말쟁이라고 정의한 사진작가들의 말은 사실입니다.

사진은 그럴 듯 해 보였지만 아주 작은 규모의 정원입니다.

보길도 연못을 상상하며 찾아간 제 꿈이 무색해졌습니다.

건너편 정자에 앉아 그곳을 청소하는 아줌마랑 밤을 까먹고 술 한잔 마시고

백년 넘은 소나무랑 인사도 하고 기념사진 한 장씩을 찍고 나니 그게 전부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연못 안의 이끼가 수련인 줄 착각한 것도 물색 없었습니다.

저는 곁에 있는 걸름망으로 이끼를 걷어내는 작업을 좀 하고 왔습니다.

문화재 사랑을 몸으로 조금이나마 하고 나니.. 즐길 자격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함안의 무기마을에 있는 무기연당...

시골 마을 안쪽에 깊이 자리한 무기연당까지 찾아드는 걸 보니 돌아다니긴 엄청 돌아 다녔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고 싶은 곳도, 알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곳도 많으니

떠도는 영혼은 여전히 배고픕니다. 

집에 돌아 와 당장 부케 공부를 위해

다음날 종일을 서울 꽃꽂이 협회에서 보내고 나니

여행도 훌쩍~ 일상으로의 복귀도 즉시! 하는 제가 참 낯설게 여겨집니다.

이틀 여행하고 하루 종일 공부했는데 마치 한 열흘 쯤 지낸 것 같습니다.

사흘 한 일이 열흘치 ?

아마 얼마 남지 않았을 제 남은 세월에 대한 아쉬움으로

요즘 제 마음이 숨가쁘게 바쁜 모양입니다.

아이가 결혼하고 손자를 봐달래면 이런 호사가 좀 어려울 듯도 하잖아요?

언제나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건

내일을 후회로 채우지 않으려는 제 작은 몸부림입니다.

어떤 명성도, 어떤 겉모습의 화려함도 다 덧없음을 많은 선인들이 이미 수많은 글로 제게 가르쳤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빤히 보이는 일을 체면이나 우유부단함으로 덮으려고 해서는 안되죠.

언제나 영혼은 공과 사가 서릿발처럼 냉정해야 합니다.

명예욕, 물욕, 탐욕....욕망은 칠죄종중의 으뜸처럼 여겨집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니까....

영혼을 채우는 일은 늘 고독한 일입니다.

혼자서... 스스로 해야하기 때문에....

언젠가 존경하는 신부님 한 분이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젬마가 아무리 예쁘고 멋진들 그게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알맹이가 중요한거야..."

세월이 지나면 더 알차고 보람있는 일을 한 것으로 기억되는 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과 봉사로 채울 오늘을 계획하며

허장성세를 버리고 가을 밤톨처럼 꽉 찬 하루를 위해  또 하루를 엽니다.

[푸른솔]

여행은 자신을 찾기 위함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덕분에...'하동'이라는 지명이 정겹게 마음에 들어옵니다.^^

[진달래]

젬마 ! 나하고 아주 비슷 하네요 나도 내가 해봐서 좋으면 꼭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줘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지랖 넓게 하지 말라고도 하더군요 추석 문자 받았는데 답장이 늦었네요 추석 잘 보냈죠? 남해 하동 지리산 가보고 싶네요 시간이 여유가 없어서 반가운 젤뜨루다 얼굴도 보이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분이네요 좋은곳 잘보았습니다 편한밤 되세요...

[젬마]

그러니 유유상종이라 안하겠습니까? 네! 언제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