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끔쯤 내 시골밭에는 온갖 잡초가 더욱 무성하겠다.
강아지풀의 씨앗은 잘도 익어서 까끌한 종자를 땅에 잔뜩 떨어뜨렸을 게다.
환삼덩쿨은 작물의 키를 덮어버리고, 올 봄에 심은 유실수 묘목의 줄기에도 칭칭 감아버렸을 게다.
꽃이 피면 예쁘기만 한 나팔꽃.
그 나팔꽃 넝쿨이 작물을 칭칭 감고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할 게다.
온갖 잡초가 우거진 시골밭.
'다음에 풀 뽑지, 뭐. 아직은 어리잖아? 풀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작물과 유실수는 오히려 더 튼튼할 거여,
채소, 과일이 더 옹골차고 맛도 훨씬 더 많을 거여.' 하면서 게으름을 피웠다.
그 결과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저 많은 풀을 어찌할까? 아무래도 작물재배플 포기해야겠다.
낫으로 벤다고 해도, 예초기로 풀을 베어낸다고 해도....' 자탄하게 했다.
게으른 농사꾼이 짓는 밭에는,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다종다양한 식물들이 싹을 틔우며 컸다.
내가 아는 식물도 있고, 이름조차 모르는 것도 있고, 처음으로 보는 것도 있었다.
도시에서 오랫 동안 살았던 내가 게으른 농사꾼이 되어서 이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잡초라는 것이 그 가치를 모르고, 이용할 줄 모르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잡초를 잘만 활용한다면 애써 키우는 작물보다도 때로는 가치도 크고 경제적 이익도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잡초의 씨앗을 뿌리고, 재배할 생각도 없다.
이들 잡풀이 작물보다도 더 무성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풀.
이들의 정의를 내 나름대로 어떻게 지어야 할까?
내가 관리하지 못하면 그게 다 풀일 게다.
관리 범위를 넘으면 그때에는 다 잡초일 게다.
베어낸 풀, 삽으로 푹푹 떠서 엎어버린 풀을 쌓아두면 자연스럽게 퇴비가 되었다.
오랫동안 썩고, 푸석거리는 토비가 된 흙을 다른 작물 곁에 뿌려 주었다.
잡초가 소중한 거름으로 변신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애써 일궈낸 땅도 얼마 뒤에는 다시 잡초로 환원되고 있었다.
깨진 장독에 물 붓는 것처럼 끈질지게 일궈야만 조금씩 땅이 밭다워졌다.
밭이 '밭답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얻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잠씨라도 한눈팔고 등한시하거나 방임하면 어느새 삐져서 앵돌아버리는 애인같았다.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를 주지 않는 것만이 능사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나는 젊었을 때에는 조금은 건강해서 병원에 가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참으로 기피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의사와 약사를 멀리하는 게 정말로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골수 고집이 병을 키우며,치료할 시기를 놓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와 약사를 친구로 삼아서 내 몸뚱이를 미리 검진하고, 병을 예방하고,
제때에 치료받는 것이 건강에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몸뚱이처럼 땅과 식물한테도 수시로 그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이치는 똑같다.
건강한 땅을 위해서, 튼실한 작물을 위해서는 조금은 농약 치고, 제초제를 뿌리고, 화학비료를 주어야 한다.
단 최소로 한다는 조건일 뿐.
그런데도 나는 아직껏 그 최소조차도 하지 못했다.
'당신, 밭농사 100평만 짓되 알뜰하게 지우면 되잖아요?
도시의 텃밭가꾸기처럼 적고 작은 땅일지라도 정성을 드리면 되잖아요?
다 짓지도 못하면서 광작하면 그 많은 풀을 어떻게 해요?
풀뽑기에 지쳐 끝내에는 포기하는 것보다는 처음서부터 조금만 지어요.
넓게 많이 짓는 것보다는 작게 적게 키우면서도 배우고 익힐 수 있잖아요?
작은 평수라도 알뜰하게 지으면 우리 먹을 만큼은 다 거둘 수 있어요.
이제는 당신 나이를 생각해 봐요. 지나치게 많이 재배하려면 힘에 지쳐요.'
라는 아내의 지적과 충고는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평수를 줄이지 못하네요.
농사꾼의 땅욕심때문이지요.
내 밭에 풀이 우거졌다고 해도 도라지꽃은 피었고, 더덕, 잔대, 삽주, 일당귀도 씨앗을 맺었다.
다년초인 이들을 키우는 이유는 이들의 씨앗을 받아서 더 많이 뿌려야겠다는 욕심때문이다.
1년생 작물인 무, 파, 당근, 감자, 마늘, 옥수수들은 덜 심어야겠다.
이들을 가꾸기에도 힘이 들지만 사실은, 내가 잘 못 가꿔도, 이들은 5일이 서는 시골장터에 잔뜩 나올 터.
시장에서 그들을 사 먹으면 된다.
내가 팔아 주어야만 좌판 벌린 농사꾼의 아낙과 허름한 장사꾼이 잔돈이라도 만지겠지.
날랑은 잡초를 키우면서 작물이 무엇인가를 배우며, 익히며, 즐겨야겠다.
(마늘 한 접을 심었는데도 종자도 못 건졌고, 씨알감자를 사다가 심었는데도
농사를 망친 나는 장에서 마늘을 접으로 사고 감자도 박스 채로 샀지요.)
올 봄에도 방울토마토 모종 6포기를 사다 심었다.
방울방울 많이도 열렸지.
풀 베다가도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땀에 저른 바지에다 쓰윽 문지르고는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를 주지 않았는데도 야생초처럼 잘 커 준 토마토에 감사하면서 입맛을 다시곤 했다.
올 봄에 심은 유실수(감, 매실, 모과, 석류, 대추, 앵두, 복분자, 오갈피, 뽕, 드룹, 머루 등)가
잡초 속에서 조금은 살아 있다면 이들을 내년에 어떻게 전정해야 되는지를 고민해야겠다.
가지치기를 잘해 줘야 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가을농사도 남았는데도 게으른 농사꾼은 벌써부터 내년 농사를 앞당겨 생각한다.
지난 해 여름부터 삽으로 일궜던 밭이, 올봄에 로타리를 쳤던 밭이 잡초밭이 되었다, 정말로 잡초농장이 되었다.
강아지풀, 환삼덩쿨, 쇠비름, 쇠무릎, 억새들의 풀밭을 쳐다보기에도 지쳐서 고개를 외면한 채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 왔다.
남해안을 강타하며 전국적으로 비 내리겠다는 태풍도 이미 동해안으로 빠져 나갔으므로 다시 맑아지는 하늘을 보면서
나는 시골로 내려갈 궁량을 댄다.
또다시 더욱 무성해진 풀을 낫과 예초기로 과감히 베어낸 뒤에 쇠스랑과 삽으로 땅을 뒤엎어서 밭을 조금이라도 더 일궈야겠다.
뒤 엎어놓은 땅을 뜨거운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8월 중순경에 배추, 무등 김장용 채소 씨앗을 뿌리고,
쪽파도 두어 고랑 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씨 뿌리기만 하고 거둬 들이지도 않는 가을농사이기도 했다.
씨앗이 어떻게 싹 트며, 자라나며, 벌레 먹고, 병이 들다가도 결실되는지를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이 훨씬 값어치 있다는 나였다.
전업농사꾼이라면 상상도 못한 땅의 방치였다.
그나저나 내일에는 시골로 내려가 풀과의 전쟁을 해야겠다.
전쟁이라기보다는 먼저 타협해야겠다.
"너, 지나치게 많이 번창하면 예초기로 무차별하게 베어내고, 내년에는 중장비를 동원해서 땅을 확 뒤엎을 거여.
그러니 적당히만 해라. 그래야만 나도 체면이 서지 않겠니?
얼치기 농사꾼, 게으른 농사꾼이 사는 방법이란 풀인 너희들이 조금만 무성하면 되는 거여.
초보농사꾼의 눈에 거슬리면 그때에는 '까짓것 농사 안 짓지 뭐' 하면서 지악스럽게 농약을 부어버릴 거여,
땅을 베릴 만큼 화끈하게 다 부어버릴 거여. 나도 알아, 농약 치면 농사 짓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유기농법으로도 농사 짓고 싶었기에 너희들의 작태를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조금 참을 뿐이여."
(이렇게 위협하려면 농약통/살포기부터 장만해야겠다, 농약통 구입비는 농사 짓는데 들어가는 직접비용이다.
직접비용을 감안하면 농사 안 짓는 게 더 낫겠다, 얼치기 농사꾼한테는)
이렇게라도 위협하면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그 약싹빠른 잡초들은 귀 막고 더 무지막지하게 번질 게다.
'농사는 하느님이 짓는 것'.
찬바람 불고, 무서리 내리면 잡초들의 성장은 조금은 둔해질 터.
그나저나 땅속으로도 번지는 억새와 아카시의 뿌리는 내가 지어야 할 농사다.
이들을 또 어찌한다?
잡초가 지겹다며 서울로 도망쳐 온 내가 내년봄을 또 기다린다.
2010. 8. 10. 화요일. 최윤환
올 7월 말에 처음으로 가본 연두농장, 도시 속의 농장인 장왕동에 가 한번 더 보고 싶다.
그 잡초들을 어찌 했을까 궁금도 하고.
풀을 잘 활용해서 새롭게 먹을거리로 전환하는 선각자 회원들의 노력을 살짝 엿보고도 싶다.
전업농사꾼이 아닌데도 도심 속의 회원들이 유기농법으로 잘 가꾼 작물의 '잘난 모습'들을 바라보고도 싶다.
잘났다는 것은 곧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증거.
첫댓글 맞는 말씀이지만..의사와 약사는 우리의 병을 일시적으로 고치는듯 하지만...오히려 우리 몸을 망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된 음식을 먹고 민간요법을 활용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는걸 요즘 느낍니다. 요즘 아이들이 열이 나면 금방 병원가서 진찰받고 약받아옵니다. 열좀 난다고 먹는약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항생제에 어려서 부터 길들여지는 우리몸이 점점 쇠약해져가는것을 느낍니다. 녹두 하나로도 많은 병을 치료할수 있다는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녹두는 우리 몸의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다시 만들어주지만 약은 우리몸을 더 망치는것 같습니다
식용이든 약용이던간에 식물 그자체에는 약효, 영양소가 그리 많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무 것이나 잘 먹고(가리지 않고), 밭에 나가서 땀 흘려 일하다보면 마음이 가뿐해져서 그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우기농법으로 지은 작물을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건강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그게 더욱 알차다고 봅니다. 텃밭/주말농장을 가꾸다보면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고, 회원과의 인간적 교류를 나눔으로서 자연스럽게 마음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심 속의 농사와 유기농산물을 통하여 자연과 나를 더 자세히 알겠지요. 앵두와 머위는 제 시골집 주변에 많지요. 닉이 주는 느낌이 수수해서 좋군요. 댓글 감사.
더벅머리를 만들어 베어 눕혔어요. 일부분은 살짝 커트 해주고.... 그래도 풀밭..ㅋㅋ
더벅머리 덕분에 폭우에도 땅(흙)은 유실되지 않았을 터. 아무리 엉터리 농사꾼이라도 비 온 뒤에는 밭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데요. 내 몸무게로 땅이 다져지지나 않을까 하고요. 비 온 뒤에는 게으름을 피면서 쉬어야겠지요. 비 올 예정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기나 하는 것처럼 서울로 올라 와 농사짓는 책을 고르네요. 식물생리학을 골랐다가 돈이 아쉬워서 나중에 사기로 하고 오늘은 '식물형태학' 한 권을 샀더니 이거 너무 원론적이네요. 텃밭 수준으로 농사 지으려는 나한테는 과분한 책. 식물세포, 형태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한 뒤에 고향의 텃밭을 더 알차게 가꾸려고요. 단이님은 바쁘실 터인데도 댓글 달아 주심에 꾸벅꾸벅!
잡초를 제거해 주는 일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텃밭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힘들다며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잡초 한 번 뽑아주는 것이 힘들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뽑으면 잡초도 제거 되고 농작물이 잘 자라니 그 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게다가 화학비료, 농약 전혀 쓰지 않으니 몸에도 좋고, 건강을 염려 할 필요도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농사를 짓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