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___이경영
노부부의 아침
이경영
병원에 가면
중년의 사람들에게 의사 선생님들은 꼭 운동을 해야만 한다고 충고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약보다도 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요즈음 들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일찍 일어나게 되면 어느 날은 뒷산으로 산행을,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가까이 있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 일상 생활화 되어버렸다. 산행보다는 자전거운동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마을 어귀를 휘돌아 양 옆으로 논과 밭을 끼고 새파랗게 자라나는 각종 곡식을 보면서 나날이 성장해가는 벼, 콩, 상추, 파 등 자연의
오묘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 어찌 큰 즐거움이지 않는가.
저수지에 들어서면
주말에 낚시꾼들이 촘촘히 앉아 물고기를 낚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황새, 청둥오리 등 각종 철새들은 날아와 정신없이 날개를 저으며 저마다의 소리로 하나의 화음을 연출하고 있다. 더욱이 청둥오리는 저수지 한쪽 늪지대에 새끼를 치고 여러 마리가 엄마 따라 겁 없이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은 진정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새끼 청둥오리의 몸동작에서 오는 귀여움과 생명력은 더더욱 돋보인다. 또한 한 쪽 다리만 들고 서 있는 황새들은 새벽부터 먹이를 찾아 날개를 저으며 물가로 날아들고 있으니 아름다운
아침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을 다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참으로 여유롭고 멋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러나 저수지
물은 너무도 지저분하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푸른 이끼가 가득하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어 오가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 요즈음 그 안타까운 마음 너머로 정말
인상 깊은 모습, 아름다운 한 장면이 내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70대의 노부부가 매일같이 두 손을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는 모습,
더구나 그 뒷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내게 강한 메시지를 주면서 내 노후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아름다움의
진실은 무엇인가? 나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을까?’
노부부의 뒷모습을
잠시 서서 바라보며 나는 나에게 속 물음을 던져 보곤 한다. 나는 요즈음 아침운동을 하면서 내가 저
노부부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마음속 그림을 그려보며 묻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곤 한다.
작은 시간을
내어 작은 삶의 행복을 찾아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바쁘게 돌아가는 찌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요즈음 현대인들은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또한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일 것이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행복은 내 주위에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고 건강을 되찾으려면
가정의 건강이 곧 나라의 건강이라고 새겨본다. 새벽운동을 하고 난 뒤의 상쾌함을 무엇에 견주어 볼까? 우리 모두에게 새벽운동을 권장해보고 싶은 마음이 꼭 욕심만은 아니리라. 오늘도
새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사람들이다.
또한 시간을
낚으며 밤낚시를 즐기는 저수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바빠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삶에 부러움이 앞서고 있다. 세상은 각박하다. 직업 역시 천태만상이다. 주눅들어 살아가는 사람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도 현실보다는 미래만
바라보며 산다면 어쩌면 더 각박해지지 않을까? 오늘 아니 과거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취미생활로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시작은 현실의 삶 속에서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으로, 나태했던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으로, 대충대충 살아온 사람은 계획과 실천으로 일상생활을 바꾸어 살아간다면 그 시간은 과거를 옭아메지
않고 또 다른 삶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다.
노부부는 오늘도
새벽 여운이 트기 전에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설 것이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다. 시작의 의미는 크고 큰 것이다. 노부부가 새벽운동을 하는 것도 아마
소중한 시작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삶의 귀한 열매일 것이다. 노부부는 지속적으로 정겨운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쳐주는 스승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나는 “노부부의
아침은 스승이다”라고 큰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내 소망을 투영하고 싶은 소박한 욕심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경영 / 경기 시흥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 『세기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솔향기 은은한 언덕에서』, 『아름다운 사연』 외 다수. 제1회
아산교육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