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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06
#혜진의 집 서재(밤)
동원에게 등 돌린 채 문 앞에 서 있는 혜진.
혜진: ...
동원: 왜 대답을 못해. 삿뽀로 가서 무슨 짓 하고 돌아다녔냐고 묻고 있잖아.
혜진: ... 나도 모르겠어요. 무슨 짓을 한 건지.
동원: 혼자 간 게 아니란 말이지? 삿뽀로에?
혜진: ...
돌아선다.
혜진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는 동원.
너무나 편안한 혜진의 눈이다.
소리 없이 웃더니 문에 등을 기대는 혜진.
혜진: 그냥 죽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용기가 없었거든요. 당신한테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볼 용기가요.
동원: ...
혜진: 나보다 젊고, 발랄하고... 이쁘고...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고) 뭐라고 물어볼까요. 그저 잠깐 바람 피는 거예요, 당신? 조금 그러다 그만 둘 거예요, 당신? 그러다 당신이 이혼하자고 그러면 어떡하나.
동원: ...
혜진: 그래요. 당신 나 사랑해서 결혼한 거 아니잖아요. 동경에서 근무할 때 심심하고 외로우니까 잠깐 사귄 여잔데 내가 서울까지 쫓아와서.
동원: 그따위 넋두릴 듣겠다는 게 아냐.
혜진: 넋두리요?
동원: 누구하고 삿뽀로엘 같이 갔었느냐고 묻고 있는 거야.
혜진: 지금 그 얘길 하고 있는 거예요.
자신도 모르게 버럭 내지르는 혜진.
그 기세에 흠칫 입을 다무는 동원.
혜진: 나리말구요. 나래 낳을 때 난산이었잖아요. 의사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아침에 제왕절개 수술하자고 해서 당신은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한밤중에 갑자기 진통이 시작됐는데 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젊은 인턴이 달려왔어요. 내가 하혈을 하고 죽는 시늉을 하니까 나보다 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대요. 그저 내 손을 꽉 잡고 부인 힘내세요. 괜찮을 겁니다. 힘내세요. 부인...
동원: ...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웃는다)
혜진: ... 얼굴이 땀범벅이 되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그 젊은 인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당신 말고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면요. 그 사람뿐이었어요.
동원: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 친굴 다시 만났다 그 말이야?
혜진: ... (바라보는)
동원: 뭐야 대체.
혜진: ... (미소 짓더니) 그럴지도 모르죠.
동원: (뭐라고 하려는데)
혜진: (막듯이) 그런 식으로 만났다구요. 그저 아무데나 높은데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때문에 무서워죽겠는데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구요.
동원: ... (바라보더니 기막히다는 듯 웃으며) 어렵게 나오는군.
혜진: 어려울 거 없어요. 당신두 나처럼 일년 넘게 지옥 속에서 살다보면 그런 거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동원: 이해?
혜진: ...
동원: 뭘 이해해? 남편이 바람 좀 피웠다고 집 나가서... (문득 생각난 것처럼) 잤어? 그래?
혜진: ...
동원: 그랬냐구?
혜진: ... 네.
동원: ...(아연해서 바라보는)
혜진: ... (갑자기 겁에 질려) 여보.
혜진이 동원에게 다가간다.
피해서 문 쪽으로 가는 동원.
혜진: (막으며) 그게 아니구요.
동원: 비켜.
혜진: 잘못했어요.
동원의 허리를 끌어안는 혜진.
그런 혜진을 난폭하게 뿌리치는 동원.
고꾸라지듯 방바닥에 주저앉는 혜진.
밖으로 나가 문을 꽝 닫는 동원.
혜진: ...
움직이지 못하는 혜진.
#동. 거실(밤)
어둡다.
서재 문을 가만히 열고 나오는 혜진.
혜진: ...
어두운 거실을 둘러보는 혜진.
동원 보이지 않는다.
#동. 부엌(밤)
혜진: ...
동원 보이지 않는다.
#동. 거실(밤)
부엌에서 나오는 혜진.
안방으로 가려다 현관을 본다.
반쯤 열린 현관문.
#동. 현관 앞(밤)
동원이 현관 앞 계단에 앉아있다.
가만히 밖으로 나와 바라보는 혜진.
동원: 이리와 앉아봐.
혜진: ...
동원과 좀 떨어져 앉는다.
동원: (힐끔 보더니) 그렇게 외로웠어?
혜진: (숙이는)
동원: ... (바라보다 한 숨 푹 내쉬더니) 당신하고 하기 싫은 결혼한 거 아냐. 당신이 나릴 임신해서 할 수 없이 결혼한 게 아니라구.
혜진: ... (가만히 고개 들어 본다)
동원: (고개 돌리며) 이혼하고 싶어?
혜진: ... (숙이며) 아뇨.
동원: 그럴 생각으로 그랬다면 이혼하구.
혜진: ... 아녜요.
동원: (보더니) 정말 우연히 만난거야? 삿뽀로 갔다가?
혜진: ...
방바닥 내려다보며 끄덕이는 혜진.
동원; ... (가만히 혜진을 바라보더니) 아니지, 당신?
혜진: ...
동원: 내 약을 올리려고.
혜진: (본다) ...
동원: (멈추는) ...
혜진: (바라보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동원: (버럭) 아니라고 하면 좀 안 되냐.
혜진: ... (가만히 고개 돌리는)
동원: (한 숨 푹 내쉬고) 그냥 살자. 비긴 셈 치고.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가는 동원.
움직이지 않는 혜진.
동원: (멈춰서) 안 잘 거야?
혜진: ... 조금만 이따요.
동원: 그러든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동원.
혜진: ...
추운지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웅크리는 혜진.
혜진: (소리) 추억 같은 건데... 그냥 담아둘걸. 언제 어디서 왜 찍었는지도 모르는 기념사진처럼 그냥 내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둘 걸.
점점 웅크리며 두 팔로 몸을 감싸 안는 혜진.
#혜진의 부엌(새벽)
서서 계란후라이 마시듯이 먹는 동원.
옆에 우유 잔 들고 서 있는 혜진.
동원: (우유 받으며) 당신 오믈렛 잘 만들잖아.
혜진: 계란후라이 대신 오믈렛 만들어 드려요.
동원: (우유 마시며) 앞으론 집에서 여섯시엔 나가야 될 거 같애. 헬스 들러서 운동 좀 하고 샤워하고 여덟시 전에 사무실 가서 회의도 하고 (우유 잔 들고) 아침에 애들 얼굴두 못 보고 출근하겠네. 갈게.
거실로 나가는 동원.
#동. 거실(새벽)
현관에서 구두신고 현관문 열려다 뒤돌아보는 동원.
동원: (장난치듯) 헬스 가는 거야, 조깅이 아니고.
혜진: ... (잠깐 어리둥절해서 보는)
동원: ... (웃는다)
혜진: 그게 무슨 말예요?
동원: (유행가 가락에 맞춰서) 깜빡 깜빡 깜빡 깜빡이는...
혜진: 형광등.
동원: (보더니) 이리와 봐.
혜진: ...
주춤 동원에게 다가가는 혜진.
기다리고 서 있는 동원.
혜진: (좀 떨어져) 왜요.
동원: (웃으며) 정말 그랬어?
혜진: ...
동원: (웃음이 남은 채) 아냐?
혜진: ... (바라보다) 네.
동원: ... (웃음이 사라지는데)
혜진: 다녀오세요.
돌아서 애들 방으로 가는 혜진.
혜진: 일어나 학교 갈 준비해야지.
동원: ...
그런 혜진을 바라보는 동원의 눈가에 다시 감도는 씁쓸한 미소.
#달리는 차 안(새벽)
운전하는 동원.
앞에서 느릿느릿 가고 있는 차.
추월을 하려고 애쓰지만 차들이 꽉 차서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 위에.
동원: (소리) 차 한 잔 나눴겠지. 북해도의 어느 찻집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집 나갔는데 화딱지두 났을 거고... 어쩌면 술 한 잔 마셨을지도 모르지. 그러다 취해서 횡설수설... 염병할 알 게 뭐야. 술두 못 마시는 주제에 취해서.
여전히 느릿느릿 가고 있는 차.
동원 화가 나서 크랙션을 마구 눌러댄다.
#헬스클럽의 수영장 안
풍덩-
물 속에 뛰어들어 요란한 동작으로 접영을 하는 동원.
동원: (소리) 결단을 내려야 돼. 우물쭈물 넘어갈 일이 아니라구. 어디까지 간 건지 알아내야 한다구.
#동. 샤워장 안
세찬 샤워기 물줄기에 머리를 디밀고 숨을 참고 있는 동원.
이윽고 숨이 막혀 고개를 젖혀 물줄기를 벗어나서 두 손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는 동원.
그 얼굴 위에.
동원: (소리) 하동원이 아내가 바람이 났다. 그래서 헤어진 거다.
신음하는 동원.
#동원의 새 사무실.
멍하니 앉아있는 동원.
현필과 대진, 석환이 열심히 주식 시장의 동향에 관해서 보고를 한다.
동원의 눈에는 현필 등의 움직임이 판토마임에 불과하다.
동원: (손가락으로 마치 모스 부호를 치듯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 학교를 다닐 때나 사회에 나와서도 난 항상 최고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실수를 줄여왔기에 최악의 경우에 빠진 적은 없었다. 난 인생이 신비롭다는 의견에 반대다. 우리의 삶을 조금만 신경을 써서 들여다보면 얼마나 단조로운가.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능에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동물적인 본능에 약간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성이 더해진 것이 인간의 참 모습이 아닐까.
현필: 부장님.
동원: 응?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정지한다.
잠깐 현실의 소음에 살아났다 다시 사라진다.
현필이 열심히 설명한다.
다시 멍해지는 동원.
동원: (소리) 따라서... 따라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와이프가 바람을 피웠다?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혼란에 빠진 동원.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점점 빨라진다.
현필: 어디 편찮으세요?
동원: (벌떡 일어나서) 철강 준 팔아버리고 금융 준 사들여.
현필: 외국인들은 금융 준 팔고 반도체하고 철강 쪽은 사던데요.
동원: 걔네들한테 한두 번 당했냐. 한번 엇박잘 놔 보자구.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고 있는 동원.
#증권가의 거리.
점심시간이다.
사방에서 벌 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금융가의 직원들.
#스파게티 집안
포크로 정성껏 스푼에 대고 스파게티 가락을 감아서 입에다 쑤셔 넣는 신중호.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동원이 씨익 웃는다.
신중호: 왜.
동원: 대학 졸업하고 종합상사에 취직을 했는데 회장 조카하고 같이 근무를 했어. 이뻤지.
신중호: 여자?
동원: 좀 사겼지.
신중호: (웃으며) 어쩌다 놓쳤누?
동원: 이태리 식당엘 가자고 해서 갔는데 사실 난 양식 체질이 아니었거든. 그때까지만 해두 막걸리타입이라.
신중호: 스파게티하고 상관이 있나보네. 나보고 웃는 폼이.
동원: 포크로 스파게티를 떠먹는데 그게 잘 안되잖아. 스푼에 대고 휘휘 감아서 먹어야 되는데.
신중호: 자장면 먹듯이 스파게티를 먹었다?
동원: 슬슬 피하길래 내가 뭐 잘못했냐고 물어봤더니 다음에 이태리 식당에 갈 때는 젓가락을 꼭 가지고 가시죠, 그러는 거야.
신중호: (웃는) 그래서 딱질 맞았다.
동원: 며칠 고민하다 사표 쓰고 회살 나오는데 회사 앞에서 딱 마주쳤어. 홧김에 한 마디 해줬지. 야, 스파게티가 별 거냐. 이태리 놈들 먹는 자장면이지.
신중호: 뭐 그렇다고 사표까지 써.
동원: 걔하고 학교두 같이 다녔거든.
신중호: (웃으며) 재벌 조카사위 돼보려고 거기 입사했다.
동원: 신 형, 왜 이혼했어?
신중호: 나?
동원: 와이프 참하다고 들었는데.
신중호: (시계 들여다보더니) 점심시간 다 끝나 가는데.
동원: 신 형이 바람 피웠다고 이혼 당했을린 없고 학교 때부터 그 방면엔 선수라는 거 와이프도 알고 결혼 했을 거 아냐.
신중호: 그런 얘긴 술 한 잔 들어가야지. 안 그래?
웃음으로 넘기고 스파게티 열심히 먹어대는 신중호.
#동원의 새 사무실 안
현필 들어오다 흠칫 멈춘다.
책상 위에 놓인 주문서를 들춰보고 있는 동원.
마른침 삼키는 현필.
동원: 반도체 샀어?
현필: ... 네.
동원: 철강주도 샀네?
현필: 네.
동원: 금융 준 팔았구.
비로소 현필 본다.
현필: 부장님 아침에 딴 생각하고 계시는 거 같애서... 사표 쓸까요.
동원: ...(물끄러미 부더니) 잘했어.
현필: (환하게 웃으며) 미련한 곰 안 버리시고 육년 넘게 데리고 있으신 보람 있으시죠.
동원: 내가 딴 생각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니.
현필: ...
동원: 내 얼굴에 써 있든.
현필: 좀 시건방진 소리긴 하지만 웬만큼은 부장님 머리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죠.
동원: ...
바라보더니 넥타이 느슨하게 풀며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 스위치 작동한다.
동원: 너 왜 장가 안 가니.
현필: 가 뭘 해요.
동원: 독신주의자야.
현필: 널린 게 여잔데요, 뭐.
동원: 여자 구하기가 쉬워졌다.
현필: 솔직히 말씀드려서 장가가기 겁나요. 하두들 놀아나니까.
동원: 너 처녀 따져?
현필: 아유, 그런 건 진즉에 단념했구요.
동원: 그런데 뭐가 겁나?
현필: 골치 아프죠. 결혼하구두 바람피고 그러면.
동원: 넌 안 필거냐 장가가면.
현필: 피겠죠.
동원: 그러면서 와이프 바람피는 건 왜.
현필: (놀라며) 부장님은 사모님이 바람펴두 괜찮으세요.
동원: (러닝머신 스위치 끄고 내려오며) 니들 정말 그러냐?
현필: 뭐요.
동원: 과거 안 따진다며 남녀 불문하고.
현필: (웃으며) 그걸 어떻게 따져요? 다 터놓고 사는데.
동원: 다 그래?
현필: 다야 아니겠죠. 다 그러면 대한민국 벌써 망했게요.
동원: ... (바라본다)
현필: 왜요.
동원: 어느 쪽이 옳은 거야. 과거 따지는 게 잘못된 거냐. 그래두 따지는 게 옳은 거냐.
현필: ... (한숨)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동원: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변하니까 참 힘든 세상이다, 그렇지?
현필: 네. 어지럽죠.
동원: 오늘 주문 낸 거 정리해 놔. 잠깐 나갔다 올게.
양복 상위 들고 문 쪽으로 가는 동원.
현필: 사모님한테 무슨 문제 있어요?
동원: 없어, 임마.
문 닫고 나간다.
현필 안도의 한 숨 쉬고 돌아서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고.
동원: (얼굴 디밀고) 그런 소문이 도냐. 우리 집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구.
현필: (펄쩍) 아뇨.
동원: ...(노려보듯 본다)
현필: (더 펄쩍) 아녜요. 무슨 소문요.
동원: ...
계속 노려보다 문 조용히 닫는 동원.
#어느 카페
피아노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
스툴에 혼자 앉아 스카치잔 만지작거리는 동원.
잔속의 얼음들이 불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그 얼음을 가만히 흔들어보는 동원.
동원: (소리) 질투? ... 와이프가 나 아닌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상상을 해 본다. 아니 상상을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는다. 그럴 위인이 못 되는 여자라서? ... 그게 아니다. 질투가 아니라 자꾸만 화가 날 뿐이다. 바람을 피웠든 아니든 그 원인을 나한테서 찾고 있는 와이프가 나를 화나게 만들고 있다.
#어느 헬스클럽 주차장
다애가 두리번거리며 온다.
차를 찾을 수가 없다.
리모콘 키를 꺼내 스위치를 누른다.
주변에서 차문 열리는 소리.
다애: ... (본다)
예전에 타고 다니던 차가 보인다.
#고수부지
다애의 차가 달려와 급정거한다.
동원의 차가 멎어있다.
차에서 내려 동원의 차에 타는 다애.
다애: 차는 탈 게요. 집은 옮길 생각 없어요.
동원: 내가 불편해서 그래.
다애: 집에 올 땐 전화하고 오세요. 드나드는 사람 많으니까 불쑥 나타나면 곤란해요.
동원: ...
바라보다 싱긋 웃으며 의자 뒤로 팔을 뻗어 다애를 안으려한다.
차에서 내리는 다애.
차 타고 떠난다.
보고 있는 동원.
갑자기 다애의 차가 후진해서 동원의 차 옆으로 와 멈춘다.
얼른 차창 내리는 동원.
다애 운전석에 꼼짝 않고 앉아있다.
기다리는 동원.
다애: ...
한 숨 푹 쉬고 차창 내린다.
동원: (몸을 차창 쪽으로 길게 빼며) 뭐.
다애: ...
노려보듯 바라본다.
동원: (또 한번 소리친다) 뭐.
다애: 내 계획을 다 망쳐놓은 거 알아요?
동원: (웃으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다애: ...
동원: (웃으며) 뭐.
다애: 그럴 뻔 했다구요.
홱 떠나버리는 다애.
바라보는 동원.
멀어지는 다애의 차.
동원: ...
신음하듯 시트에 머리 기대는 동원.
동원: (소리) 정말 이혼이라두 해버려.
뒷머리로 시트를 두드리는 동원.
#다애의 가게 앞
다애의 차 와서 멎는다.
파킹맨이 달려온다.
파킹맨: 새 차 사셨어요?
다애: 전에 타던 거잖아요.
파킹맨: 난 또 새 차 사셨나 했죠.
열쇠 받아 차에 타는 파킹맨.
다애 가게 본다.
준수가 쇼윈도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동. 안
들어오는 다애
다애: 명잔.
준수: 잠깐 나갔어.
다애: 덥네.
손으로 얼굴 부채질하며 커튼 젖히고 안 쪽 방으로 들어가는 다애.
가방 소파에 던지고 윗옷 벗어 던지는 다애.
준수: (문기둥에 기대서) 요즘두 만나?
다애: (본다) ...
준수: 차가 그대로길래.
다애: 응.
간단히 대답하고 미니냉장고에서 물 꺼내 마시는 다애.
준수: ... (바라보는)
다애: 왜... 내가 더러워 보여?
준수: 아니.
다애: 그런데 왜 아는 척 해.
준수: 사실은...
다애: 뭐.
준수: 같이 파리나 갈까 했지.
다애: 나하고?
준수: 밀라노 간 김에 베니스도 가 보고.
다애: 또 그 얘기야?
준구: 뭐.
다애: 한 달이나 두 달 밖에 못 산다면서.
준수: (히죽 웃는다)
다애: 그런 여행 난 싫어.
준수: 두 달 밖에 못 산다는 게 아냐. 두 달만 살고 그만 두겠다는 거지.
다애: 뭘 그만두는 거야? 사는 거 말고.
준수: ...
다애: ... (기다리는)
준수: 생각해 봐. 시간 낼 수 있으면.(돌아서는데)
다애: 성구씬 어딨어?
준수: (멈추는) ...
다애: 일본에 같이 있었던 게 아냐?
준수: (보더니) 들어올 수가 없잖아.
다애: 수정이 때문에?
준수: ...
다애: 그게 성구씨 잘못이냐구.
준수: 또 올게.
밖으로 나가는 준수.
#동. 앞
나오는 준수.
명자: (오며) 가게 안 보고 어딜가요.
준수: (가게안 가리키며) 왔어요.
명자: 말 해 봤어요?
준수: ...
명자: 또 싱겁게 웃다가 그만 뒀구나. 다애 성구씨가 강하게 나가면 꽉 잡힐 애예요. 속으로 성구씨가 그래주길 바라고 있다니까.
준수: 기다려봐야죠.
명자: 시간 없대두요.
준수: 만나는 사람 있는데요, 뭐.
명자: 성구씨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성구씨가 우물쭈물 하니까 그 사람 다시 만나는 거라구요.
준수: (웃는)
명자: 다 정리 했었어요. 그러니까 가게까지 정리하려고 했던 거 아녜요. 몰랐어요?
준수: ... 알아요.
명자: 그러니까 푸쉴해야죠.
손으로 콱콱 미는 시늉하는 명자.
준수: 그럴게요.
웃고 가는 준수.
명자: (뒤에다 대고) 다애가 잘못되면 그건 성구씨 책임예요.
대답 없이 가는 준수.
#동. 안
들어오는 명자.
다애: 왜 쓸데없는 말을 해.
명자: 성구씨가 오해하는 거 같으니까 그렇지.
다애: 가게 비우지마. 둘이 마주치기 싫으니까.
명자: 나 같으면 성구씨 꽉 잡겠다. 잘 생겼어 집에 돈 많어.
다애: 그럼 니가 꼬셔봐.
안으로 들어간다.
명자: (턱 밑을 손등으로 바치고) 이게 바쳐줘야지 꼬시지.
#여의도 공원
박병식이 서류 봉투를 들고 어슬렁 온다.
박병식: ...
학생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 동원이 보인다.
와이셔츠 바람으로 드리블하고 슛하고 수비하고 펄펄 나는 동원.
부근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박병식.
마지막 슛을 멋지게 성공시키는 동원.
이겼다.
같은 팀 학생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농구대에 벗어뒀던 양복 집어 들고 박병식에게 오는 동원.
동원: 미안합니다. 좀 늦으시길래.
박병식: 기운이 좋으십니다.
동원: (들고 있던 양복 주머니서 돈 봉투 꺼내며)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병식: 아직 일 안 끝났는데.
동원: 더 이상 그 여자 뒷조산 안 해두 됩니다.
박병식: 그래요?
동원: (돈 봉투) 받으세요.
박병식: 착수금 받은 걸루 됐습니다. 마무리두 못 지었는데.
동원: 우리 본부장님이 주시는 거니까 받으세요.
박병식 무릎 판에 봉투 놔두는 동원.
박병식: 이 돈은 받으면 안 되는데.
동원: 되게 고지식하시네.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부탁 하나 더 할게요.
박병식: 지금 하시죠, 그럼.
동원: ... (망설이는)
박병식: 이 일하고 관계된 일이면.
동원: 필요하면 전화할 게요.
양복 어깨에 걸치고 가는 동원.
박병식: ... (돈 봉투 내려보다 생각나서 서류 봉투 들어 보이며) 이거 가져가시죠.
동원: (멈춰서 본다)
박병식: 그동안 모아둔 자료들인데.
동원: 버리세요.
가버리는 동원.
박병식: ...
서류봉투.
안에 든 사진들을 꺼내서 본다.
다애 사진들.
가게에 들어가는 준수 사진.
그런 사진들 끝에 다애의 원룸 앞에서 다애와 강아지 들고 얘기 나누고 있는 혜진의 사진도 있다.
#어느 카페(밤)
들어서는 혜진.
혜진: ...
안쪽 자리서 손들어 보이는 동원.
가서 앉는 혜진.
동원: 애들은.
혜진: 아줌마 늦게 가라고 그랬어요.
동원: 여기 저녁도 되구 술두 마시는 덴데 저녁부터 먹을래.
혜진: 당신은요.
동원: 난 별루.
혜진; 저두 밥 생각은 없어요.
웨이터 온다.
동원: (보지도 않고) 좀 이따 와.
웨이터 도로 간다.
동원: 정리 좀 하자. 내 성격 알지. 뭐든 정릴 안 해두면 못 견디는 거.
혜진: ... 그러세요.
동원: 앞으론 당신 맘대루 살어.
혜진: ...
동원: 난 당신 일에 일체 상관 안 할게.
혜진: ...
동원: 왜 말이 없어.
혜진: 비긴 셈 치자면서요.
동원: 그런 말이 아냐. 앞으로 당신 맘대로 살라구.
혜진: ... (보더니) 갈라서자 구요?
동원: 그러고 싶어?
혜진: 아뇨.
동원: (힘주어 강조하듯) 그러니까!
혜진: ...
동원: ... (뭔가 터지려는 걸 꾹 참고 버티더니) 웨이터.
웨이터를 손짓해 부른다.
웨이터 온다.
동원: (혜진에게) 와인 한 잔 할까?
혜진: 네.
동원: (웨이터에게) 하우스 와인 두 잔.
웨이터 간다.
동원: ...
혜진 못 보고 고개 돌리며 끙끙대는 동원.
혜진: 그렇게 괴로워요?
동원: (본다)
혜진: ... (가만히 한 숨 쉬고) 아녜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동원: (기가 막힌)
혜진: 당신한테 복수하고 싶어서...
치미는 감정에 얼른 고개 돌려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아버리는 혜진.
동원: 정말 아냐?
혜진: ... (본다)
동원: (눈으로 묻는다)
혜진: 네. 아녜요.
동원: 듣긴 좋네, 아니라니.
혜진: ...
동원: 당신 해산할 때 젊은 인턴한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지?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어. 가령 길을 가다 이쁜 여잘 봤는데, 아 저 여자하고 연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런 생각은 할 수 있는 거 아냐? 물론 눈에 띄는 여자마다 반해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거야 안 되겠지만... (지그시 본다)
혜진: ... (마주보는)
동원: 여자두 그렇겠지. 야, 저 남자 멋있다. 뭐 꼭 바람기 같은 건 아니래두. 안 그래.
혜진: 글쎄요.
동원: ...
혜진: 남들은 모르겠구 난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동원: 해산할 때 당신 손을 잡아주던 젊은 인턴한테 사랑을 느꼈다고 했잖아.
혜진: ... (미소 같은)
동원: 좋아, 그건 어떻든.
웨이터를 손짓하는 동원.
웨이터 온다.
동원: 와인 그만 두고 메뉴 가져와.
웨이터 간다.
동원: (식탁에 팔 굽혀 대고 얼굴 바싹 디밀며) 당신 살고 싶은 대로 살어. 대신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두 이혼은 안 할 거야. 당신보다 더 좋은 여자가 있어두 가정을 깨고 싶진 않다구. 막상 결혼하면 당신보다 나을 것두 없으니까. 골치만 아프지.
혜진: ... (미소 같은)
동원: 됐지? (편히 앉으며)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나한테 불평하지 말고.
혜진: 그게 당신 해결책이에요. 그 여잘 계속 만나기 위한.
동원: ...
혜진: 그거예요?
동원: 맘대루 생각해.
혜진: ...
동원: (손짓하며) 내 인생에서 당신이 차지하고 있던 이 만큼... 그걸 포기했다는 뜻이야.
웨이터가 와서 눈치 보며 메뉴 놓고 간다.
동원: (메뉴 피며) 뭐 먹을까.
혜진: ...
동원: 골라봐.
다른 메뉴 건넨다.
혜진: (동원 보며) 스테이크요.
동원: 안심, 등심?
혜진: 티본이요.
동원: (보더니) 밥 생각 없다더니 당신 배가 고팠나보군.
혜진: ... (한 숨 푹 내쉬더니) 힘내야죠.
가만히 웃어 보이는 혜진.
동원: (보더니 소리) 흥... 계속 해 보시겠다?
싱긋 웃는 동원.
마주보던 혜진이 따라서 가만히 웃는다.
#동. 앞(밤)
안에서 문 열어주는 동원.
나오는 혜진.
뒤따라오는 동원.
파킹맨이 뛰어온다.
번호표를 주는 동원.
혜진: 이것두요.
뛰어가려는 파킹맨에게 번호표 내미는 혜진.
동원: 차 가져왔어?
혜진: 네.
동원: 왜.
혜진: 당신 딴 데 갈 데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동원: (코웃음 치듯 웃는다)
혜진: 그래요, 편하게 사세요. 나두 당신하고 이혼하고 싶지 않아요.
동원: 그래, 그게 좋아.
혜진: 당신 인생 속에 차지하고 있던 내 자릴 버렸다고 했죠? 그게 뭐 여자란 뜻이겠죠. 아내면서 애들 엄마면서 또 성적대상이기도 한 여자. 그런 뜻으로 이해했는데 맞아요?
동원: 비슷해.
혜진: 엄마노릇 충실히 할게요.
동원: 하동원의 와이프 역할두 충실히 해야지.
혜진: (본다)
동원: (마치 혜진의 공격을 막듯 두 손을 펴서 막으며) 나 역시 그럴 거야.
혜진: ... (비로소 소리 없이 웃으며) 알았어요.
혜진의 차 몰고 와 내리는 파킹맨.
혜진: 내 차가 먼저 나왔네요.
동원: 여깄다.
파킹맨에게 팁 주는 동원.
다시 달려가는 파킹맨.
우두커니 서있는 혜진.
동원: 먼저가. 따라갈게.
혜진: ... (바라본다. 점점 간절하게)
동원: 왜.
혜진: 오늘은 집에 안 들어오면 안돼요?
동원: ... (잘 못 알아듣고) 들어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혜진: 들어오지 마세요.
도망치듯 차에 타고 떠나는 혜진.
동원: ...
바라보다 기가 막히다는 듯 하늘 보고 헛웃음 웃어대는 동원.
#밤거리
달리는 혜진의 차.
#동. 차안(밤)
프론트윈도우 앞의 풍경이 빗물에 젖은 듯 어른거린다.
와이퍼로 유리를 닦는 혜진.
그 혜진의 눈에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유리를 닦아내는 와이퍼.
#다애의 원룸 안(밤)
소파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다애.
핸드폰의 벨소리 계속 울린다.
명자: (얼굴에 마사지하며) 받아봐, 끄던지. 시끄러워 죽겠다.
계속 울리는 벨소리.
명자: 안 받을 거야?
다애: ...
말없이 핸드폰을 명자에게 던진다.
얼결에 받는 명자.
명자: 내가 받어?
다애: ...
명자: 궂은일은 꼭 나 시키지. (플립 열고) 여보세요. (기다리다 어깨 으쓱)
#달리는 동원의 차안(밤)
핸드폰 끊는 동원.
차를 돌려서 왔던 길로 돌아간다.
#다애의 원룸 안(밤)
명자: (핸드폰 침대에 던지며) 오늘 밤엔 전화 더 안 올 거다.
다애: ...
명자: (얼굴 다듬다) 야, 난 정말 너 이해 못 하겠다. 너 결심 했었잖아. 그 사람하구 관계 끊고 성구씨하고 새 출발해 보겠다구.
다애: ...
고양이처럼 웅크린 다애의 얼굴에 미소.
명자: 성구씨도 바람둥이냐, 준수처럼.
다애: 준수가 성구구 성구가 준수래.
명자: 뭐?
다애: ...
명자: 그게 무슨 소리야.
다애: 둘이 내기했대. 날 모텔에 데리고 가는데 며칠이나 걸리나.
명자: 미친놈들. 하필이면 왜 모텔이냐 구질구질하게. 기왕이면 호텔로 데려가지.
다애: ...
벌렁 누워버리는 다애.
명자: 정말 그랬대?
다애: ...
명자: 그럼 준수가 부자네. 성군 가난뱅이구. 아니, 성구가 준수구 그러니까 준수가 가난뱅이야. (머리 아파서) 뭐야, 헷갈리게 왜 그런 장난을 쳤대.
갑자기 다애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명자: 왜 그래 너. 다애야, 진정해.
다애: 돈이나 벌까?
명자: 응?
다애: 돈이나 벌어서 신나게 쓰고 다니는 거야. 파리도 가고 뉴욕두 가고... 돈을 막 뿌리면서... 맛있는 것두 사먹고 천 달러짜리 구두를 백 켤레 사는 거야... (힘이 빠지며) 그럼 행복해질까?
명자: 조오치.
다애: 그래. 좀 나아지겠다.
환하게 웃어 보이는 다애.
#경복궁 부근의 갤러리아 앞
전시회 포스터.
문 앞에 걸린 개장시간표.
오전 11시다.
전화 걸고 있는 혜진.
혜진: ... (기다리다) 왜 이렇게 늦게 전활 받아요?
#혜진의 거실
파출부: (전화) 일 하느라고 전화벨 소릴 못 들었어요. 할 일이 좀 많아야죠.
불안해서 부엌을 힐끔거리는 파출부.
#갤러리아 앞
혜진: (전화) 청소 좀 깨끗이 해 놔요. 대충대충 보이는 데만 치우지 말구... (문 쪽 본다)
문을 여는 갤러리아 직원.
기다리던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혜진: 그리구 아줌마. 애들 학원에서 기다렸다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갈 거니까 저녁하지 마세요. 알았죠.
핸드폰 끄고 안으로 들어가는 혜진.
#혜진의 부엌
거실에서 들어오는 파출부.
멀끈하게 생긴 사내가 식탁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파출부: 깡깡대긴. 성질이 저 모양으로 못됐으니까 남편이 바람이 났지.
사내: 집에 들어온대.
파출부: 걱정 마. 저 여편네 요즘 하루 종일 싸돌아다니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니까. 참, 맥주 먹을래. 여기 사장님이 맥주 좋아해서 냉장고에 가득 들어있을 거야.
사내: 양준 없냐.
파출부: 양준 표 나잖아.
사내: 물에다 홍차 저어서 채워놓으면 돼.
파출부: 양주? 찾아봐야겠다.
신나서 싱크대 벽장 뒤지는 파출부.
어디서 강아지 짖는 소리.
파출부: 시끄러워.
양주 찾다 버럭 내지르는 파출부.
#갤러리아 안
그림.
바라보는 혜진.
혜진: ...
다음 그림으로 옮긴다.
그림.
혜진: ...
반대편으로 돌아서는 혜진.
가려다 멈춘다.
앞에 준수가 서 있다.
혜진: ...
무심한 눈길로 준수를 바라본다.
준수: ...
마른침 삼킨다.
혜진: ... (바라보는)
준수: ...
문득 혜진의 눈길이 자신을 지나 뒤쪽 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에 뒤돌아본다.
벽에 걸린 그림.
준수 다시 혜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혜진이 준수 쪽으로 오고 있다.
긴장하는 준수.
천천히 준수 쪽으로 와서 지나쳐가는 혜진.
움직이지 못하는 준수.
그림을 보고 있는 혜진.
그림.
프로그램을 펴보는 혜진.
그림과 프로그램에 적혀있는 그림을 확인하고 옆쪽으로 걸어간다.
그림.
바라보는 혜진.
돌아선다.
혜진: ...
준수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혜진: ...
천천히 다음 그림으로 향하는 혜진.
#부근 커피숍 안.
준수: ...
창가에 앉아있는 혜진을 바라보고 있다.
커피와 케잌을 시켜놓고 책을 읽으면서 조심조심 먹고 있는 혜진.
#인사동의 거리
혜진 온다.
떨어져 따라오고 있는 준수.
어느 골동품 가게로 들어가 이것저것 고르고 있는 혜진.
골동품 가게를 나오는 혜진.
건너편 길에서 혜진을 바라보고 있는 준수.
무심히 다른 가게로 들어가는 혜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준수.
작은 물건 하나를 사는 혜진.
돈을 치르고 밖으로 나오는 혜진.
혜진: ...
길 건너편 본다.
준수 보이지 않는다.
#경복궁 부근 길
혜진 온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본다.
길.
혜진: ...
#부근 주차장
차 안에 앉아있는 혜진.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 모습 위에.
오타루의 바다가 등대를 덮치고 있다.
#학원 앞(저녁)
나리와 나래가 달려온다.
안아주는 혜진.
혜진이 뭐라고 하자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나리와 나래.
차에 타고 떠난다.
길 건너에 모터사이클 위에서 보고 있던 준수가 헬멧의 눈가리개를 위로 올린다.
그 얼굴 위에 덮치는 오타루의 사나운 파도.
#이태리 식당 안
입가에 스파게티 소스를 잔뜩 묻히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나래.
혜진이 나리의 입가를 닦아준다.
그러다 문득 식탁 너머를 바라본다.
준수가 보고 있다.
준수: ...
혜진: ...
순간 마주치는 눈길.
준수: ...
혜진: ...
나래가 혜진의 손을 잡아당긴다.
혜진 나래 본다.
뭐라고 재잘대는 나래.
웃으며 대답해주는 혜진.
준수: ...
바라본다.
애들과 활짝 웃고 있는 혜진의 모습을.
#어느 한적한 길(밤)
혜진의 차 온다.
#동. 차안(밤)
혜진: 엄마하고 드라이브하니까 좋지.
나리: 응. 맨날맨날 저녁 사먹고 드라이브하면 좋겠다.
나래: 나두.
뒷자리서 앞 시트에 얼굴 내밀고 까불거리는 나리와 나래.
나래: 엄마, 노래 불러봐.
혜진; 노래?
나래: 엄마 노래 잘 부르잖아. 근데 요샌 왜 노래 안 불러.
나리: 박수.
박수치는 나리와 나래.
혜진: 엄마가 무슨 노래 불러줄까.
나래: 섬그늘.
나리: 섬그늘이 뭐니.
나래: (노래 부른다) 엄마가 섬그늘에.
혜진: (노래)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나리와 나래도 따라 부른다.
신나게 부르는데 혜진의 차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터사이클.
깜짝 놀라 브레이크 밟았다 놓는 혜진.
차가 덜컹한다.
혜진: 조심해. (놀라서 반쯤 뒤돌아보며) 괜찮아.
나리: 엄마, 저것 좀 봐.
나리와 나래가 일제히 앞을 가리키고 있다.
혜진 앞을 본다.
혜진: ...
혜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리와 나래가 환성을 지른다.
준수가 모터사이클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달려가고 있다.
더욱 환성을 질러대는 나리와 나래.
혜진 이윽고 소녀처럼 웃기 시작한다.
준수가 모터사이클에서 안장에 두 발을 딛고 올라 핸들을 놓으려고 한다.
불안한 혜진.
더욱 환성을 지르는 나리와 나래.
준수가 이윽고 핸들에서 두 손을 놓고 우뚝 일어선다.
두 팔을 벌리고 마치 하늘을 날듯이 가슴을 한껏 제친다.
혜진: ...
혜진 역시 가슴이 벅찬 듯 가쁜 숨 내쉬며 웃고 있다.
준수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휘청한다.
모터사이클이 중심을 잃고 길가로 미끄러진다.
차 안의 아이들이 놀래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급히 길가에 차를 세우는 혜진.
혜진: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차에서 내려 달려가는 혜진.
길가에 쓰러진 모터사이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준수.
혜진: 다쳤어요. (준수를 들여다본다)
준수: ...
눈 감고 움직이지 않는 준수.
혜진: (앉으며) 눈 좀 떠봐요. 내 말이 안 들려요?
준수: ...
천천히 눈을 뜨는 준수.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혜진.
준수: 맞죠?
혜진: ...
준수: 모른 척 하는 거죠?
혜진: ...
가만히 일어나는 헤진.
누워서 바라보는 준수.
혜진: ...
가만히 돌아서 간다.
하늘보고 쿡쿡쿡 웃어대는 준수.
차에 타는 혜진.
놀라서 보는 나리와 나래.
혜진: ...
망설이듯 준수를 바라보다 시동 거는 혜진.
차가 떠난다.
준수와 준수의 모터사이클을 지나서 달려간다.
준수: ...
웃음을 멈추고 죽은 듯이 두 눈을 감고 있는 준수.
#혜진의 거실(밤)
들어와서 불 키는 혜진.
따라 들어오는 나리와 나래.
혜진: 복순아, 복순아. (둘러보더니) 얘가 어디 갔지.
나리: 복순아. 언니 왔다.
나래: 복순아.
사방으로 찾아다닌다.
#애들 방안(밤)
불 키는 나래.
나래: 복순아 (찾아보더니) 엄마, 복순이 없어.
#동. 부엌(밤)
나래: 복순아, 나와 봐. 언니야.
여기저기 찾는다.
#동. 안방(밤)
침대 밑이랑 찾아보는 혜진.
밖에서 복순이 찾는 나리와 나래 소리.
혜진 거실로 나가려는데 강아지 낑낑대는 소리.
혜진 욕실로 간다.
#동. 욕실(밤)
문 여는 혜진.
혜진: 복순아 여깄니?
낑낑대는 소리.
불 키는 혜진.
혜진: (놀라며) 복순아?
변기 뒤에 처박혀 낑낑대고 있는 복순이.
혜진: 누가 여기다 가둬 놨어.
얼른 강아지 안는 혜진.
좋아서 핥는 강아지.
혜진: 어이구 무서웠어. 우리 복순이가.
#준수의 오피스텔 방안(밤)
어둡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준수.
준수: ...
옆얼굴.
이지러진-
#혜진의 거실(밤)
들어오는 동원.
동원: 애들은.
혜진: 자요.
동원: 벌써.
혜진: 밖에서 스파게티 사줬더니 맛있다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일찍 잠들었어요.
동원, 애들 방으로 간다.
#동. 애들 방(밤)
문 여는 동원.
바닥에 이불 피고 강아지 가운데 놓고 잠든 나리와 나래.
동원: 바닥에서 자네.
혜진: (등 뒤에서) 서로 복순이 데리고 잔다고 다투다가.
잠든 애들.
그 옆에 펴놓은 큰 이불.
동원: (돌아보며) 당신 여기서 자려구.
혜진: 셋이 같이 자쟤요, 애들이.
동원: ...
방문 닫는다.
#동. 거실(밤)
동원: ...
안방으로 가려다 힐끔 돌아다본다.
혜진: 왜요.
동원: (돌아보더니) 이쁘네, 당신.
혜진: (기막힌)
동원: 그거 봐. 맘 편히 먹으니까 당장 얼굴이 훤해지잖아.
생글거리며 손으로 혜진의 볼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 손을 탁 치는 혜진.
동원: 앗 뜨거.
손을 흔들며 뜨거운 시늉을 하더니 웃어대는 동원.
#준수의 오피스텔 안(밤)
침대에 얼굴 묻고 엎드린 준수.
마치 오한이 나듯 몸을 조금씩 떨고 있다.
그 위에-
준수: (소리) 어딜가는데.
성구: (소리) 천국. 어쩌면 지옥이 될 지도 모르지.(웃는)
#어느 해안의 도로(회상)
달리는 성구의 차.
곡예를 하듯 커브 길을 돌아가는 성구의 차.
#어느 어촌의 부근(회상)
성구 온다.
뒤떨어져 멈칫거리며 오는 준수.
성구: 뭘 해. 빨리 오잖구. 천국이 가까이 왔다구.
준수: ...
멈춘다.
선창가의 횟집들이 보인다.
뒷걸음질치는 준수.
성구가 달려와 준수의 손을 잡아끈다.
성구: 죽었다구? 네가 세살 때 사랑하던 누나가. 그래서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구.
준수: (겁에 질려 나직이) 놔.
성구: 따라와.
준수를 끌고 가는 성구.
허둥거리는 준수.
성구: 나 같으면 좋아서 춤이라도 추겠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니.
준수를 끌고 오는 성구.
멈춘다.
횟집 수족관에서 뜰채로 활어 한 마리를 건지고 있는 여인.
바라보는 준수.
준수의 손을 놔 주는 성구.
여인이 뜰채를 들고 돌아선다.
무심히 안으로 들어가려다 준수 쪽을 바라본다.
성구: ...
준수: ...
숨이 막히는 준수.
여인의 손에서 뜰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바람에 생선이 바닥에 떨어져 펄떡인다.
준수가 뒷걸음질친다.
퍼뜩이는 생선.
이윽고 돌아서 도망치려는 준수.
성구가 준수를 잡아 여인 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발버둥치는 준수.
그런 준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여인.
성구에게 잡혀 버둥거리던 준수가 이윽고 비명처럼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준수의 오피스텔 안(밤)(현실)
침대에 엎드려 신음하며 온몸을 떨고 있는 준수.
침대가 마치 지진이 난 듯 떨리고 있다.
이윽고 발작이 가라앉는 준수.
죽은 듯이 엎드려있다.
준수: ...
여전히 침대 바닥에 얼굴 처박은 채 뭐라고 중얼거린다.
좀 더 얼굴 가까이 가면
“어머...니.”라고 내뱉고 있다.
그러자 오므라드는 준수의 몸.
마치 자궁 속에 든 태아처럼 있는 힘을 다해 온몸을 웅크리는 준수.
-6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