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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불교와 대승불교
(1) 소승불교는 윤리적이고 역사적인데 반해,
대승불교는 종교적이며 철학적 입니다.
(2) 소승불교의 경전은 팔리어인 반면에,대승불교의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며 각 전파지역에서 각각의 언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소승불교의 해탈 혹은 열반이란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로 개인적인 것인데 비해,
대승불교에서이는 보리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4) 소승불교에서 열반이란 무명으로 인한 세속적인 부정한 것들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대승불교에서는 부정한 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대불변의 고요함, 순수함,영생에 대한 모호함을 없에는 것입니다.
(5) 소승불교에서 스님들은 성문(Sravaka)라 불리우며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오로지 나한 (Arahantahood)를 얻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열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대승불교의 수행자들은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기 위해 또는 바라밀(도피안)로
알려진 완벽을 추구하고자 시도하기 위해 보디(Bodhi)를 구하는 서약을 한 보살의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강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바다와 같은 거대한 느낌을 주는 최고선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6) 소승불교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은 주로 Sangha의 후원자로, 공양을 하거나
의복을 제공하거나 스님들을 위한 사원을 건립하거나 다른 사무들을 도맡아 하며,
5, 8계와 hearing discourse 를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대승불교에서 평신도
들은 보살로서 인정되며 그 역할은 소승불교의 평신도와 같습니다.
(7) 소승불교신자들은 붓다가 한겁에 단한번 나타났다고 믿는 반면,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 안에 부처가 있다고 믿습니다.
(8) 소승불교에는 공성(Sunyata)의 개념이 없으며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다고 합니다.
(9) 소승불교 명상 혹은 vipassana, sila 수행은 그 사람의 영적 발전을 위해
그 사람 자체를 정화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믿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은 스승에
대한 헌신이며 예불의식등은 그 중요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간에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습니다.
(1) 두 종파 모두 집착, 증오, 망상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2) 두 종파 모두 사성제와 8정도를 인정합니다.
(3) 두 종파 모두 이 현세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4) 불교의 두 종파 모두 모든 세속과 만물이 무상하고 찰라적이며
santana 안에 있고 anatmakam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대승불교
대승은 중생에게 가르침을 전파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소승은 자신의 구제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한, 중, 일의 북방불교는
대승불교이고 동남아의 불교는 소승불교의 성격을 가집니다.
다음 내용(두산백과사전에서 퍼옴)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될겁니다.
삼론종(三論宗) ·법상종(法相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진언종(眞言宗) ·율종(律宗) ·선종(禪宗) 등이 대승불교에 속한다.
석가 입멸(入滅) 후 500년경(BC 100년?)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
까지 여러 파로 갈라져 자파(自派)의 주장만이 최상의 것이라고 고집하여 온 불교의
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 재래불교를 소승(小乘:Hinayana)이라 폄하(貶下)하는 한편,
대승이라고 칭하면서 이타적(利他的)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 라는 뜻으로,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
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成佛)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일체중생을 모두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활동을 펴 나갔다.
이 불교운동의 전거(典據)로는 대승불교의 경전이 속속 이루어진 데 있었다.
먼저 《반야경(般若經)》이 나왔다.
'공(空)’의 사상을 강조하는 《반야경》은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함과 동시에,
일체의 집착(執着)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실천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어 일체를 포함하여 ‘일승(一乘)’을 교설(敎說)하고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을 세우는
《법화경(法華經)》, 광대한 불타[毘盧遮那佛]의 세계를 교설하는 《화엄경(華嚴經)》,
재가거사(在家居士)인 유마(維摩)가 오히려 출가자(出家者)를 교설하는 《유마경(維摩經)》,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를 찬탄하며 일체중생의 구제를 약속하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등이 이루어져 종래의 불교를 일신하는
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뒷받침하였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
졌거니와, 2∼3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출현하여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어 일체중생에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여래장(如來藏)을 교설한 《승만경(勝캐經)》
등의 경전이 이루어졌고, 또한 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凝集)시키는 유식(唯識)사상의
대두에 이어 5∼6세기에는 불교논리학인 《인명(因明)》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대승불교 초기부터 일반민중의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다라니(陀羅尼)》를 외우고
주법(呪法)을 교설하는 밀교(密敎)가 성하여 7세기 이후 불교활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밀교는 ‘대승’보다는 ‘금강승(金剛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승불교는 한(漢)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 ·티베트 ·한국 ·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北方佛敎)’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에는 고구려 문자왕(文咨王:재위 491∼518) 때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
등 삼론(三論)을 비롯한 천태(天台), 열반(涅槃) 등의 교법이 들어와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였다.
또한 길장(吉藏)은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三論宗)을 개종(開宗)하는 등 한국에서의
대승불교는 마침내 독자적인 노력에 힘입어 발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소승불교
소승불교는 초창기의 전통을 따르는 보수적인 불교로 개개인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남방불교로도 불린다. 사람들을 인도하여 해탈(解脫)을 얻도록 하는 불교
유파(流派). 소승은 열소(劣小)한 수레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는 큰 수레가 아니라고 한다.
인도의 불교사를 보면, 첫째로 석가모니 재세(在世)의 BC 6∼BC 5세기의 근본불교와,
둘째, 석가모니 멸후(滅後), 갠지스강 유역에 교단을 넓히고 《아함경(阿含經)》 등의
원시경전이 성립된 약 2세기 간의 원시불교(여기에는 근본불교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셋째, 아소카 왕의 불교 귀의(歸依)로 불교교단이 급속히 발전 확대됨과 동시에 교단
분열이 일어났던 부파(部派)불교, 넷째, BC 2∼BC 1세기경에 대두되기 시작한
대승불교로 대별된다.
대승불교는 부파 중에서 진보적·혁신적이었던 대중부(大衆部) 및 재가신자 집단,
즉 보살중(菩薩衆)이 중심이 되어, 그 당시까지 우세한 세력을 유지하던 전통적·보수적
불교에 대항하였던 종교운동이며, 그때 스스로를 대승(大乘)으로 자칭하고 기성불교를
소승으로 낮추어 불렀다.
따라서, 후자가 스스로를 소승으로 자칭하는 일은 없다.
그 기원에서 소승불교는 원시불교를 포함하여 말하는 경우와 직접 대승운동의
상대방이 되었던 보수적인 모든 부파만을 일컫는 경우의 두 가지 용법이 있다.
부파는 처음 불멸(佛滅) 100여 년 후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의 2파(根本·部)로
나뉘고, 그후 약 1세기 동안에 대중부 계통이 계속하여 그후 약 1세기 동안에 상좌부
계통이 분열하였다. 이 분열의 사정과 명칭은 제전(諸傳)이 일치하지 않으나, 북
전(北傳)의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의 기록에 따르면 새로이 성립한 18부파
(枝末十八部)를 근본 2부와 합해 ‘소승 20부’라 한다.
그러나 남방소전의 《도사(島史)》에서는 불멸 후 약 100년 동안에 상좌대중부의
근본분열이 있고, 그후 약 100년 동안 대중부 계통의 5부, 상좌부 계통의 11부로 분열
하여 도합 18부의 부파를 전하고 있다.
각 부파는 자파의 권위와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각각의 입장에서 종래의 성전을
편집 집대성하였는데, 이로써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이 성립되었다.
또한 이에 대한 해석·주석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깊은 이해에 의해 체계화되어
논서가성립하였다.이를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부르며, 논장(論藏)으로 총칭한다.
경·율·논의 3장은 각 부파에 의해 정비되었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주로 스리랑카
상좌부의 3장과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하는 논장에 지나지 않는다.
부파 중 가장 유력하였던 설일체유부는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에
의해 일체의 법이 실유(實有)라고 주장하며(法體恒有), 그 법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실재한다(三世實有)고 하였다.
또한 법의 체계를 5위(位) 75법(法)으로 정비하였으며, 동시에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자기 일신의 정진, 덕목의 실천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 수행의 단계를 세분하였을 뿐 아니라 열반(涅槃)을 유여(有餘)·무여(無餘)
열반으로 2분하여 수행의 구극에 도달한 아라한(阿羅漢)도 유여열반에 이를 뿐
이라 하였다. 이러한설일체유부의번쇄한교학은《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
毘婆沙論)》에서 집대성되었다.
비바사는 광해(廣解)의 뜻으로 당시의 학자 또는 학파의 다수의 이견(異見)을 열거
하여, 소승불교의 모든 문제를 망라하고 있는 것으로 후에는 불론의 연구·정리가
이 학파의 주된 과제가 되고 있다.
그 외 경량부(經量部)는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설에 대하여 과미무체설
(過未無體說)을, 법체실유설(法體實有說)을 부정하고 가유설(假有說)을 주장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종자설로서 종자는 식물의 종자가 발아의 능력을 내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업력(業力)을 업과(業果)로 이끄는 힘을 말한다.
우리의 업과를 일으키는 종자가 현세에서 내세까지 멸하지 않고 존속할 때, 이것을
세의식(細意識) 또는 일미온(一味蘊)이라 하며, 이것이 윤회의 주체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자·훈습(熏習)은 후세의 아뢰야식(阿賴耶識) 사상의 원류가 되는 것으로
주목된다. 또한 무루(無漏)의 종자는 범부(凡夫)에게도 내재하며, 이것이 계발되면
불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대중부의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에 통하며, 대승불교의
불성론(佛性論)의 원류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경량부 계통에서 발달한 것이 하리바르만[訶梨跋摩]의 《성실론(成實論)》
및 바수반두[世親:320∼400?]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다.
특히 후자는 그후 인도·티베트에서도 깊이 연구되었으며, 소승불교의 전형적인 대표
작으로 인정되었고, 중국에 전래되어서는 ‘구사종’이라는 일파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경량부는 설일체유부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정하여 실유의 범위를 한정
하였지만, 대개 상좌부의 실재론적인 법의해석(人無我·法有)과 실천의 자기 중심적
경향[自利]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공격도 완전히 이 두 가지에 집중되어 각각 법무아(法無我)에서
공(空)으로, 이타(利他)에서 자비(慈悲)로 발전하였으며, 보살(菩薩)사상이 형성되었다.
성불(成佛)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이 보살에 대해 소승불교에서는 성문(聲聞:석존의
가르침을 직접 들어 열반에 이르는 성자)과 연각(緣覺:스스로 깨달아 열반에 이르는
성자)이 이상적인 인간상이 되고 있다.
소승불교 중, 상좌부 계통은 스리랑카·미얀마·타이·라오스 등에 전해져 현재에도
민중 속에 확고한 기반을 잡고 있다. 한편 대중부 계통은 후에 대승불교로 발전하여
중국·한국·일본 등 북방에 널리 유포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철학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인도에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있었고, 그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여러 종교들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릇된 출가중심적 불교 이타행
(利他行)이 결여된 소승적(小乘的)인 것과 믿음에 대한 반성으로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주안점은 계율이나 교법에 얽매여 전통을 고집함으로써 형식화 되어
가는 부파 불교의 벽을 깨뜨리고 특정인 즉 출가 수행승 만이 중심이 되는 좁은
생각을 물리치자는 것이었습니다.
중생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석존의 자비와 지혜를 믿고 보살의 길인
육바라밀의 완성을 위해 정진한다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석존의
참뜻이었고, 석존이 현세에 출현했던 근본목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서력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고 2~3세기에 이르러 용수,
제바 등의 뛰어난 사상가에 의해 사상적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이른바 초기 대승불교시대로서 기나긴 대승불교의 역사를 통해 대승불교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대라 하겠습니다.
대승불교의 사상적 특징으로는 붓다관을 새롭게 하여 무수한 붓다와 보살을
창조해냈다는 점입니다. 무신론적인 소승에 대해 대승은 유신론적이며, 1불
사상에서 다불(多佛)사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즉 과거불사상(過去佛思想)을 발단으로 해서 미래불사상(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해서 석존 대신 중생을 구제한다는 사상)이 일어났으며 아울러 내세불
사상(서방정토의 아미타불 또는 동방묘회국의 아촉불)과 시방변만불사상
(十方遍萬佛思想 : 이 세상의 사방 어느곳에나 붓다가 가득 차 있다는 사상,
그 대표적인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내재불사상
(內在佛思想 : 붓다는 현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상)
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다음 특징으로는 소승이 자기형성에 중점을 둔데 반해 대승은 대중구제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上求菩提), 아래로는 대중을 교화한다는
(下化衆生) 출가주의에서 재가주의로 중점이 바뀐 점입니다.
또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만든 점입니다.
보살이라는 말은 원시경전에도 나오지만 원시경전에서는 부처가 되기 전의
석존 즉 <수행자로서 불도에 정진하는 자>라는 뜻이었으나 대승에서는 이를
확대 해석해서 불교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소승에서는 아라한은 될 수 있어도 붓다가 될 수는 없다고 한데 대해 대승
에서는 모든 중생 보살도인 육바라밀을 완전히 닦으면 해탈한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소승의 분석적 방법에 대해 대승에서는 직관적 방법을 중시한 점입니다.
불교식 표현으로는 분별(分別)적 방법에서 무분별(無分別)적 방법으로 변한
것입니다. 즉 분별지(分別智)에 대한 무분별지(無分別智 ? 般若라고도 함)라는
술어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석존이 연기설을 설한 것도 그 방법은 분석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분별의 가르침 즉 지혜의 도(道)는 범속한 대중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석존 당시의 제자들이 대부분 교육 받은 귀족 출신의 우수한 지성들
이었음을 감안할 때 석존의 이런 분석적인 방법에 수긍이 가는 것입니다.
이런 분별적인 엘리트주의의 불교를 직관적 방법에 의해 대중쪽으로
되돌리려고 한 것이 대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발생
아소카 왕이 죽은 뒤, 인도는 다시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 중앙아시아에서 쿠샨왕조가 새로 나타났다.
쿠샨왕조를 세운 민족은 이란 계통으로, 처음에 박트리아에서 일어나 뒤에
인도 북서부의 간다라 지방에 도읍을 정하였다.
쿠샨왕조의 제3대 카니슈카 왕은 많은 절과 탑을 세우고, 500여 명의 승려를
모아서 불경을 정리하는 등, 불교를 장려하고 보급에 힘써 불교는 널리 퍼졌다.
당시의 불교는 학문 연구에만 치우쳐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으며, 중생을 구제
한다는 석가의 근본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경향을 소승이라고 비판하는 승려들 사이에서 대승불교가 생겨났다.
이 때부터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갈라졌다.
소승불교는 스리랑카ㆍ미얀마ㆍ베트남 등 남쪽지방으로 퍼지고, 대승불교는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북쪽지방으로 번졌다.
-검색,편집-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법문 불경 잘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