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상궂고 못생겼다고 타박 받던 생선에서 이제는 남녀노소가 즐겨찾는 먹거리로 부상한 아귀. 아귀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좋고, 간의 피로를 풀어주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연말 해장 요리로 손꼽히며, 피부미용에 좋은 콜라겐이 풍부해 겨울철 대표적 먹거리로 손색이 없다.
글 김 연 수 푸드테라피협회 회장 사진 푸드테라피협회 제공
볼품없어 버려지던 생선
날씨가 을씨년스럽거나 추위로 속이 헛헛한 날에는 부쩍 입맛이 당기는 음식이 있다.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알싸한 미나리 맛에 얼큰하게 김이 오르는 아귀찜이다. 아귀라는 물고기를 보면 정말 못생겨서 정이 뚝 떨어지건만 요리로 만들면 그 맛이 천하일품이다.
아귀는 험상궂고 못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불교용어로 아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중생을 일컫는데 생선 아귀는 외양이 못생긴 정도를 떠나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옛날 어부들은 아귀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며 버리거나 거름으로 이용하는 정도였다. 우연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어떤 연예인이 갓 잡은 아귀의 벌어진 큰 입을 보고 기겁하는 걸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아귀는 전체 몸통의 절반 이상이 머리인 데다 입이 머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귀는 수분함량이 많아 ‘물텀벙’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아귀의 재발견, 아귀찜
예나 지금이나 아귀의 고장은 마산과 여수 인근 앞바다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요즘 잘 먹는 아귀찜은 오래전 마산 앞바다에서 어부들을 대상으로 음식 장사를 하던 주인이 우연히 개발한 레시피가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아귀를 재료로 생선탕, 즉 아귀탕을 팔다가 어느날 우연히 팔다 남은 아귀를 빨래줄에 걸어 놓았는데 어느날 한 단골손님이 해장국이 먹고 싶다고 부탁해서 마침 찬거리로 준비한 콩나물에 꾸득꾸득 말린 아귀를 넣고 고춧가루와 파 마늘로 버무려 다대기로 간을 해서 쪄 내놓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별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마산에서는 생아귀를 사용하는 부산, 여수 등 다른 지역과 달리 건조된 아귀로 만든 아귀찜이 더 유명하다.
아귀가 가장 맛있는 계절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 사이로 이때가 지나면 아귀는 살이 물러 맛이 떨어져 대부분 냉동 아귀를 해동시켜 사용한다. 신선한 아귀는 끈적거리는 점막이 많고, 살이 핑크빛을 띤다. 보통 50~70cm길이의 아귀로 요리를 했을 때 육질이 연하고 쫀득하다.
아귀찜 요리를 어렵게들 생각하는데 의외로 간단하다. 잘 손질된 아귀와 콩나물·미나리를 넣고 끓이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 다진 파, 다진 마늘, 국간장, 맛술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어 뒤적여준 후 녹말 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주면 된다.
간 건강부터 피부미용까지 아귀로 잡자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아귀는 진짜 맛이 달고 건강에 좋다. 고단백 저지방 생선이라서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간의 피로를 풀어주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서 흔히 술안주나 해장 음식으로 꼽는다.
그뿐이랴 아귀는 껍질과 내장,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까지. 뼈 외에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이다. 특히 껍질에는 세포와 세포를 이어주는 콜라겐 성분이 풍부해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아귀의 간에는 비타민A가 듬뿍 들어 있다. 비타민A는 레티놀이라고도 부르는 지용성 비타민이다. 시력, 면역력, 피부건강에 도움이 된다. ‘바다의 푸아그라(거위 간)’로 불릴 만큼 맛도 뛰어나다. 또한 불포화 지방산인 DHA와 EPA가 일일 권장 섭취량(650㎎)의 20배 이상 함유돼 있다. 이외에도 아귀에는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D, 피부염증을 방지하는 비타민B2 등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우리가 밖에서 흔히 사먹는 아귀찜은 크게 마산아귀찜과 부산아귀찜이다.
마산아귀찜은 말했듯이 마른 아귀를 사용해 맛이 쫄깃하고 비린내가 없다. 반면 부산아귀찜은 생아귀를 사용함으로 비린내 때문에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마산과 달리 아귀 내장이 모두 들어간다.
마산아귀찜에는 깊은 맛이 있다면 부산아귀찜에는 싱싱한 맛이 있다. 마산이든지, 부산이든지, 아니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든지 이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가족들과 매콤한 아귀찜으로 즐거운 만찬을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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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푸드를 찾아서
죽음과도 바꿀 맛 황복
고급 식재료로 손꼽히는 복. 종류가 많은 만큼 요리법도 다양하다. 제철이 되면 미식가들은 살이 부드럽고 담백한 복어의 매력에 푹 빠진다. 하지만 맛있다고 해서 함부로 먹을 수도 없다. 치명적인 독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맛과 아찔한 위험을 함께 가진 진미, 복어를 알아본다.
글 김 연 수 푸드테라피협회 회장 사진 푸드테라피협회 제공
역사 속에서도 복어의 맛을 노래하다
대밭 밖에 복사꽃 두세 가지 따스한 봄 강물을 오리가 먼저 아네 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움 돋으니 이제야말로 하돈(河豚)이 올라올 때 - 소동파의 시구 중에서 -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극찬한 황복은 복요리의 백미로 손꼽힌다. 소동파는 ‘하돈(河豚)’, 즉 ‘강의 돼지’라고 부르며 그 맛을 극찬했는데 아마도 황복의 배가 돼지처럼 볼록해 그렇게 부른듯하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잠깐 말하자면, 복어는 온대부터 열대의 해역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연해성 어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는 복어 종류 중에 복섬, 졸복, 자주복, 까치복, 황복, 밀복, 흰점복, 개복치 등 21가지 종류만 먹을 수 있도록 허가돼 있다. 보통 참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겨울에 맛있다는 자주복과 지느러미만 노란색인 까치복, 그리고 복국으로 많이 쓰는 밀복으로 은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복어 독은 주로 복어의 내장과 알 등에 있고 껍질에도 있을 수 있는데, 살에는 없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내장을 터트리지 않고 독 부위를 제거해야 한다. 반드시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이 다뤄야하는 이유다.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100배에서 1천배 정도에 이를 만큼 매우 강력한 신경독소로, 현대과학의 힘으로도 이렇다 할 해독제가 아직 없다.게다가 무색·무미·무취라서 구별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제거했어도 미세한 독은 남아있기 마련이니 복을 먹을 때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에게 복은 늘 미식(美食)의 첫손이면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 부녀자 생활지침인 『규합총서』를 보면 “피와 알에 독이 많아서 잘못 먹으면 반드시 사람이 왕왕 죽으니, 사람이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한때 맛을 밝혀 해를 입는 이가 있으니 애달프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독을 무서워하면서도 복 예찬은 끊이지 않았다. 영조 때 겸재의 친구였던 이병연(1671~1751)은 풍요로운 봄날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늦봄에는 복엇국 /
첫여름에는 웅어회 /
복사꽃잎 떠내려 올 때 /
행주 앞 강에는 그물치기 바쁘다’
최고의 식감과 담백한 풍미, 황복
황복은 일반 복과 달리 회귀성 어종이다. 바다에서 2, 3년간 25~30㎝로 자란 뒤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 사이에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몸통이 다른 복어보다 두세 배 크고 무게는 800~900g 안팎. 중국에서도 잡히지만 파주 임진강 황복을 최상품으로 친다. 힘들게 강을 거슬러 올라와 육질의 탄력이 다른 복보다 훨씬 좋다. 황복회는 접시 무늬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써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회를 얼마나 얇게 써느냐를 놓고 주방장끼리 시합을 하기도 한다. 황복회는 복요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조리해도 보통 1㎏ 회를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이 족히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다. 이때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것은 보통 뱃살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넣었다가 건진 뱃살은 부드럽고 연해 씹히는 질감이 최고인 부위다. 그렇지만 황복을 찾는 미식가 중에는 수컷에서 나오는 고단백 정소 즉, ‘이리’를 먹기 위해 황복 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독이 없다는 이리는 살짝 데쳐서 참기름과 약간의 간을 해 먹는다. 씹을 새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황복은 피를 맑게 하고 숙취 해소와 간 해독에 좋아 몸이 약한 사람과 당뇨·간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글루타티온 성분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손상을 막아준다. 흔히 복요리에는 꼭 미나리가 등장한다.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황복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미나리와 함께 먹으면 맛과 향이 일품이다.
『본초강목』의 ‘서시유(西施乳)’라는 표현도 복어살이 중국 월나라 미녀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복회를 먹는 방법은 앞 접시 위에 꽃잎처럼 얇게 저민 회를 한 겹 얹어놓고 고추냉이를 살짝 발라 미나리 대에 돌돌 감는다. 스치듯 간장을 찍어 입안에 넣고 씹으면 잘강잘강 그 풍미가 그야말로 봄의 호사다. 그런가 하면 꼬들꼬들한 복어껍질은 미나리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고, 회를 뜨고 나머지는 맑은 탕으로 끓어 먹으면 그 맛 역시 일품이다.
복어 독과 관련된 속설
양식 복어는 독이 없다?
복어 독을 만드는 주범은 바닷속 미생물과 플랑크톤이다. 그래서 흔히 양식장에서 자란 복어는 독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독이 있는 복어와 섞어 놓으면 복어 독이 생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복국에 식초를 넣으면 해독이 된다?
흔히 복국을 먹을 때 식초를 넣으면 독을 약하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속설 역시 조심해야 한다. 2008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실린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음식이 산성일수록 복어 독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험상궂고 못생겼다고 타박 받던 생선에서 이제는 남녀노소가 즐겨찾는 먹거리로 부상한 아귀. 아귀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좋고, 간의 피로를 풀어주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연말 해장 요리로 손꼽히며, 피부미용에 좋은 콜라겐이 풍부해 겨울철 대표적 먹거리로 손색이 없다.
글 김 연 수 푸드테라피협회 회장 사진 푸드테라피협회 제공
볼품없어 버려지던 생선
날씨가 을씨년스럽거나 추위로 속이 헛헛한 날에는 부쩍 입맛이 당기는 음식이 있다.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알싸한 미나리 맛에 얼큰하게 김이 오르는 아귀찜이다. 아귀라는 물고기를 보면 정말 못생겨서 정이 뚝 떨어지건만 요리로 만들면 그 맛이 천하일품이다.
아귀는 험상궂고 못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불교용어로 아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중생을 일컫는데 생선 아귀는 외양이 못생긴 정도를 떠나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옛날 어부들은 아귀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며 버리거나 거름으로 이용하는 정도였다. 우연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어떤 연예인이 갓 잡은 아귀의 벌어진 큰 입을 보고 기겁하는 걸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아귀는 전체 몸통의 절반 이상이 머리인 데다 입이 머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귀는 수분함량이 많아 ‘물텀벙’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아귀의 재발견, 아귀찜
예나 지금이나 아귀의 고장은 마산과 여수 인근 앞바다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요즘 잘 먹는 아귀찜은 오래전 마산 앞바다에서 어부들을 대상으로 음식 장사를 하던 주인이 우연히 개발한 레시피가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아귀를 재료로 생선탕, 즉 아귀탕을 팔다가 어느날 우연히 팔다 남은 아귀를 빨래줄에 걸어 놓았는데 어느날 한 단골손님이 해장국이 먹고 싶다고 부탁해서 마침 찬거리로 준비한 콩나물에 꾸득꾸득 말린 아귀를 넣고 고춧가루와 파 마늘로 버무려 다대기로 간을 해서 쪄 내놓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별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마산에서는 생아귀를 사용하는 부산, 여수 등 다른 지역과 달리 건조된 아귀로 만든 아귀찜이 더 유명하다.
아귀가 가장 맛있는 계절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 사이로 이때가 지나면 아귀는 살이 물러 맛이 떨어져 대부분 냉동 아귀를 해동시켜 사용한다. 신선한 아귀는 끈적거리는 점막이 많고, 살이 핑크빛을 띤다. 보통 50~70cm길이의 아귀로 요리를 했을 때 육질이 연하고 쫀득하다.
아귀찜 요리를 어렵게들 생각하는데 의외로 간단하다. 잘 손질된 아귀와 콩나물·미나리를 넣고 끓이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 다진 파, 다진 마늘, 국간장, 맛술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어 뒤적여준 후 녹말 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주면 된다.
간 건강부터 피부미용까지 아귀로 잡자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아귀는 진짜 맛이 달고 건강에 좋다. 고단백 저지방 생선이라서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간의 피로를 풀어주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서 흔히 술안주나 해장 음식으로 꼽는다.
그뿐이랴 아귀는 껍질과 내장,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까지. 뼈 외에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이다. 특히 껍질에는 세포와 세포를 이어주는 콜라겐 성분이 풍부해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아귀의 간에는 비타민A가 듬뿍 들어 있다. 비타민A는 레티놀이라고도 부르는 지용성 비타민이다. 시력, 면역력, 피부건강에 도움이 된다. ‘바다의 푸아그라(거위 간)’로 불릴 만큼 맛도 뛰어나다. 또한 불포화 지방산인 DHA와 EPA가 일일 권장 섭취량(650㎎)의 20배 이상 함유돼 있다. 이외에도 아귀에는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D, 피부염증을 방지하는 비타민B2 등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우리가 밖에서 흔히 사먹는 아귀찜은 크게 마산아귀찜과 부산아귀찜이다.
마산아귀찜은 말했듯이 마른 아귀를 사용해 맛이 쫄깃하고 비린내가 없다. 반면 부산아귀찜은 생아귀를 사용함으로 비린내 때문에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마산과 달리 아귀 내장이 모두 들어간다.
마산아귀찜에는 깊은 맛이 있다면 부산아귀찜에는 싱싱한 맛이 있다. 마산이든지, 부산이든지, 아니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든지 이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가족들과 매콤한 아귀찜으로 즐거운 만찬을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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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푸드를 찾아서
죽음과도 바꿀 맛 황복
고급 식재료로 손꼽히는 복. 종류가 많은 만큼 요리법도 다양하다. 제철이 되면 미식가들은 살이 부드럽고 담백한 복어의 매력에 푹 빠진다. 하지만 맛있다고 해서 함부로 먹을 수도 없다. 치명적인 독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맛과 아찔한 위험을 함께 가진 진미, 복어를 알아본다.
글 김 연 수 푸드테라피협회 회장 사진 푸드테라피협회 제공
역사 속에서도 복어의 맛을 노래하다
대밭 밖에 복사꽃 두세 가지 따스한 봄 강물을 오리가 먼저 아네 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움 돋으니 이제야말로 하돈(河豚)이 올라올 때 - 소동파의 시구 중에서 -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극찬한 황복은 복요리의 백미로 손꼽힌다. 소동파는 ‘하돈(河豚)’, 즉 ‘강의 돼지’라고 부르며 그 맛을 극찬했는데 아마도 황복의 배가 돼지처럼 볼록해 그렇게 부른듯하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잠깐 말하자면, 복어는 온대부터 열대의 해역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연해성 어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는 복어 종류 중에 복섬, 졸복, 자주복, 까치복, 황복, 밀복, 흰점복, 개복치 등 21가지 종류만 먹을 수 있도록 허가돼 있다. 보통 참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겨울에 맛있다는 자주복과 지느러미만 노란색인 까치복, 그리고 복국으로 많이 쓰는 밀복으로 은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복어 독은 주로 복어의 내장과 알 등에 있고 껍질에도 있을 수 있는데, 살에는 없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내장을 터트리지 않고 독 부위를 제거해야 한다. 반드시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이 다뤄야하는 이유다.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100배에서 1천배 정도에 이를 만큼 매우 강력한 신경독소로, 현대과학의 힘으로도 이렇다 할 해독제가 아직 없다.게다가 무색·무미·무취라서 구별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제거했어도 미세한 독은 남아있기 마련이니 복을 먹을 때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에게 복은 늘 미식(美食)의 첫손이면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 부녀자 생활지침인 『규합총서』를 보면 “피와 알에 독이 많아서 잘못 먹으면 반드시 사람이 왕왕 죽으니, 사람이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한때 맛을 밝혀 해를 입는 이가 있으니 애달프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독을 무서워하면서도 복 예찬은 끊이지 않았다. 영조 때 겸재의 친구였던 이병연(1671~1751)은 풍요로운 봄날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늦봄에는 복엇국 /
첫여름에는 웅어회 /
복사꽃잎 떠내려 올 때 /
행주 앞 강에는 그물치기 바쁘다’
최고의 식감과 담백한 풍미, 황복
황복은 일반 복과 달리 회귀성 어종이다. 바다에서 2, 3년간 25~30㎝로 자란 뒤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 사이에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몸통이 다른 복어보다 두세 배 크고 무게는 800~900g 안팎. 중국에서도 잡히지만 파주 임진강 황복을 최상품으로 친다. 힘들게 강을 거슬러 올라와 육질의 탄력이 다른 복보다 훨씬 좋다. 황복회는 접시 무늬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써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회를 얼마나 얇게 써느냐를 놓고 주방장끼리 시합을 하기도 한다. 황복회는 복요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조리해도 보통 1㎏ 회를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이 족히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다. 이때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것은 보통 뱃살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넣었다가 건진 뱃살은 부드럽고 연해 씹히는 질감이 최고인 부위다. 그렇지만 황복을 찾는 미식가 중에는 수컷에서 나오는 고단백 정소 즉, ‘이리’를 먹기 위해 황복 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독이 없다는 이리는 살짝 데쳐서 참기름과 약간의 간을 해 먹는다. 씹을 새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황복은 피를 맑게 하고 숙취 해소와 간 해독에 좋아 몸이 약한 사람과 당뇨·간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글루타티온 성분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손상을 막아준다. 흔히 복요리에는 꼭 미나리가 등장한다.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황복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미나리와 함께 먹으면 맛과 향이 일품이다.
『본초강목』의 ‘서시유(西施乳)’라는 표현도 복어살이 중국 월나라 미녀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복회를 먹는 방법은 앞 접시 위에 꽃잎처럼 얇게 저민 회를 한 겹 얹어놓고 고추냉이를 살짝 발라 미나리 대에 돌돌 감는다. 스치듯 간장을 찍어 입안에 넣고 씹으면 잘강잘강 그 풍미가 그야말로 봄의 호사다. 그런가 하면 꼬들꼬들한 복어껍질은 미나리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고, 회를 뜨고 나머지는 맑은 탕으로 끓어 먹으면 그 맛 역시 일품이다.
복어 독과 관련된 속설
양식 복어는 독이 없다?
복어 독을 만드는 주범은 바닷속 미생물과 플랑크톤이다. 그래서 흔히 양식장에서 자란 복어는 독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독이 있는 복어와 섞어 놓으면 복어 독이 생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복국에 식초를 넣으면 해독이 된다?
흔히 복국을 먹을 때 식초를 넣으면 독을 약하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속설 역시 조심해야 한다. 2008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실린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음식이 산성일수록 복어 독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