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저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완벽하지도 못하면서 완벽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몇 번씩 속으로 연습하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흠 잡히는 게 싫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내게 신경도 쓰지 않는데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마음을 졸였습니다.
우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습니다. 완벽하기를 원하는 데 완벽하지 못한 제 모습을 누구에게 들키기 싫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늘 초조했습니다. 뭔가 제 약점을 들킬 것만 같아서입니다.
좀 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노출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세월이 훨씬 흐른 다음에야 깨달았습니다.
요즘도 뭔가 제 약점을 들키면 한동안 몸살을 앓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내 훌훌 털고 일어섭니다. 혼자 끙끙거려봐야 저만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순간 인생이란 약점 투성이고 어리석음 투성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철이 들기 시작한 걸까요?
오히려 약점 있는 사람에게서 더 친근함을 느낍니다.
종종 허점이 보이는 사람이 정답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반갑다.’
이지고잉, 책 제목입니다. 느긋한, 너그러운, 편안한 걸음걸이, 단어 그대로는 ‘쉽게 가자’입니다.
좀 오래된 책이기는 하지만 그저 노력하는 게 최고이고 그저 바쁘게,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책 표지에 ‘노력하다 지친 당신에게’라는 글귀가 눈길을 잡아당깁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 째는 ‘무리하지 마’입니다. 세상엔 온통 ‘최선을 다해, 포기 하지 마’라는 말뿐입니다. 그 말이 약인 줄만 알았지 독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은 아닐까요?
편도선이 붓고 코 속이 헐고 어깨죽지가 딱딱해지고, 됫골이 뻑뻑해질 때 기억할 단어입니다.
‘무리하지 마, 쉽게 가, 이지고잉.’
누군가 지쳐 있을 때 ‘조금만 더 힘내?’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어때?’라는 말을 곱씹어 볼 수 있다면, 정말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거 아닙니까?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둘 째는 ‘때론 포기도 필요해’입니다.
포기해야할 상황인데 너무 뜨거운 사람은 포기에서 오는 좌절감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끝장났다고 해서 인생까지 끝장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떤 결과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을 자유도 누릴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포기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그건 또 다른 시작도 없다는 걸 의미하지요. 그러지 맙시다. 때론 포기도 필요합니다.
셋 째는‘슬플 땐 울어도 돼’입니다. 언젠가 어느 연애인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 마시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월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얻었던 상처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는 그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딸이 연애인이 되어서 딸에게 누가 될까봐 술을 끊어버린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엉켰던 마음을 얼마나 후련하게 했을까요?
눈물은 마음의 독을 씻어 주는 청량제이기 때문입니다.
넷 째는 ‘적당히 해’입니다. 잘못하면 대충 대충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적당히란 ‘정도에 알맞게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의 뜻입니다. 계속 달리고 쉼이 없이 달리기만 하면 어딘가 터지기 쉽습니다.
종종 숨이 찰 때, 아! 힘들다, 하는 생각이 들 때 이렇게 외칠 수 있다면요.‘적당히 해’
이지고잉! 쉽게 생각하기란 게으름이 아니고 행복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달리는 것도 인생을 뜨겁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유가 있는 것처럼 노력하지 않을 자유도 있음을 안다면, 좀 너그럽게 나를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종종 중얼거려봅니다.
‘무리하지 마, 때론 포기도 필요해, 슬플 땐 울어도 돼, 적당히 해.’
이지고잉! 쉽게 가자! 그러다 보니 가을 한복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