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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할 말이 있는데….”
뜸 들이며 꺼내는 이야기 중 굿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놈, 또 무슨 사고를 쳤구나. 속으로 침을 한번 꼴깍 삼켰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으니까 말해 봐~”라는 말을 쿨하게 건넸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첫 학기를 보낸 아이는 조금은 민망하고 죄송하단 표정으로 자신이 기숙사 규정을 위반해 2주간 퇴소하는 징계를 받을 것 같다고 했다. 무엇을 어겼냐고 물으니 ‘전담’이란다. 형들이 피는 ‘전자담배’를 호기심에 빌려 한번 펴본 게 걸렸다고, 다시는 그럴 일 없을 테니 엄마가 용서해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담배였구나. 그래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애가 호기심에 담배를 한번 펴보는 게 요즘 세상에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지. 나 역시 대학교 때 뒤늦은 방황을 하느라 입에 넣을 거 못 넣을 거 많이 털어 넣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내 아들은 좋은 것만 몸에 들이며 자라길 바랐는데 어느새 전자담배를 피워보았다는 고백을 듣게 되니 내 새끼도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구나, 확! 정신이 든다. 한편으론 사고의 내용이 고작 ‘담배’여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가하는 해악에는 단호히 분노할 준비가 되어있다 보니, 고작 선배 형들의 담배를 피우다 걸렸다는 고백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선택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하니, 이참에 집에서 학교까지 대중교통으로 등하교하는 수고를 해보라 했다. 자동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학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두 시간씩 걸리니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곱씹으며 반성하기엔 알맞은 고행의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일 돌을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고행까지는 아니어도, 새벽부터 버스에 비몽사몽인 몸을 싣고 등교하고 늦은 밤 축 처진 몸을 버스에 싣고 돌아오다 보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각오를 다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네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니 그걸로 됐어. 2주간 통학 잘하며 정리하도록 해. 엄마도 늘 실수로부터 배웠거든.” 제법 멋진 멘트를 날리고 대화를 마무리하려는데 아이가 다시 한번 뜸을 들인다.
“근데, 엄마… 나랑 이번에 같이 걸린 친구가 한 명 있거든….”
2절이 있는 줄은 몰랐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녀석인데 이번에 함께 걸려 ‘2주간 기숙사 퇴소’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단다. 문제는 아이의 집이 대구라 안동으로 등하교할 수가 없다 보니 2주간 있을 곳을 구해야 하는데 혹시 우리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내면 안 되겠냐는 말이었다. 하이고,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지금 네가 친구 걱정하게 생겼냐? 필터를 거치지 않은 잔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던 순간, 다시 침을 삼켰다. 친구의 집이 ‘대구’라는 말이 가슴에 콱 박혔기 때문이다. 대구면 좀 막막하겠네. 다른 방법이 없네…. 정말. 쉽게 허락의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마음으론 이미 친구가 덮어야 할 아들 녀석의 이불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있었다. 아들은 내가 곰곰이 생각하는 걸 보더니 “친구한테 된다고 이야기할까?”라고 살짝 고삐를 당길 태세다. “잠깐 기다려 봐, 아빠한테도 이야기해야지.” 아들 녀석의 징계 건도 아직 모르는 남편에게 친구 녀석을 2주간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어떻게 전한담? 어느새 선택의 공을 엄마한테 넘기고 이어폰 음악에 빠져있는 철없는 아들 녀석이 좀 얄미워졌다.
우리 가족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재회한다. 남편은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둘째도 평일을 기숙사에서 지내다 보니 금요일 밤이 되어야 가족 모두가 완전체로 모이게 된다. 다 같이 모여 살던 시절에는 시시하거나 당연하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지금은 너무 애틋하고 소중해서 어느새 나는 금요일만 손꼽는 사람이 되었다. 다 같이 둘러앉는 저녁 식탁, 가족이 함께 걷는 밤 산책 시간, 낄낄대며 주고받는 시시껄렁한 대화, 한 치도 봐주지 않고 눈 흘기며 싸우는 탁구 경기까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꿀맛 같던 요즘이었다. 평일 내내 회사 일을 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외롭게 지냈을 남편을 고려해 주말은 따로 약속을 잡거나 타인을 집에 들이지 않고 가족만의 시간을 누리는 걸 우선순위로 두었는데 갑자기 둘째의 친구를 2주간 집으로 들여야 한다니,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다. 날도 더운데 옷차림도 불편해지고, 청소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고, 생활공간을 새롭게 분배할 생각을 하니 사람을 들이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싶다. 가족들이 이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 큰 남자 둘이 함께 눕기에는 침대가 작다 보니 친구에게 방을 내준 둘째가 따로 몸을 누일 공간이 필요하다. 어디서 자라고 하지? 막내에게 엄마랑 2주간 함께 자자고 부탁을 좀 해볼까? 친구에게 주말엔 대구 집에 다녀오라는 조건을 걸면 고3 딸내미와 남편이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이려나? 모처럼 나타난 아들의 이웃 앞에서 내 마음이 분주해졌다.
그때 가슴 속에서 아주 작은 쿵! 소리가 들렸다. 뭐지? 뭐가 불안한 건가?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친구를 데려와도 되냐고 묻던 둘째의 표정이 다시 떠오른다. 그 표정은 ‘우리 엄마는 이런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어, 이런 일은 엄마랑 상의해야지’라는 확신에 찬 얼굴이다. 나로부터 ‘놉!’이란 답변이 올 거라곤 0.000001%도 상상해보지 않은 천진한 저 얼굴. 자신도 부모 앞에 면목 없는 상태면서 친구를 위해 부탁을 하는 그 마음이 기특하다고 잠시 생각하긴 했지만, 그 마음속에 스며있는 나와 가족을 향한 믿음을 읽고 나니 기분이 좀 묘했다. 엄마가 허락하면 아빠는 물론, 누나, 남동생까지 결국은 마음을 모아줄 거란 생각, 우리 가족은 이쯤은 해줄 수 있는 가족이란 아이의 부심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둘째는 틈만 나면 친구를 집에 초대하곤 했다. 새롭게 사귄 여자 친구도, 코찔찔이 시절부터 같이 놀던 동네 친구도,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반 친구들도 어렵지 않게 집으로 불러들이곤 했다. 잠시 몇 시간 머물다가 가는 아이들의 친구들이야 언제든 환영하며 맞아줄 수 있지만 이번 건은 2주간 머무르는 장기 프로젝트 아닌가. 겁 없이 부탁하는 둘째가 신기하기도 하고, 아직 답을 주지 않은 상태면서 머릿속에선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나도 우습다. 둘째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새겨진 걸까.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어떤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가만히 돌이켜보게 된다. 사고 친 건 얄밉지만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모른 척하지 않는 선한 마음, 엄마와 상의하면 해결책이 생길 거란 확신의 마음을 마주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아이의 말 한마디를 타고 아이 안에 새겨진 17년의 세월이 말을 거는 느낌이다.
집은 또 다른 품이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지만 정중하게 마음을 두드린 이에겐 스르륵 열리는 비밀스러운 품. 돌이켜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집이란, 가족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면서 다양한 여행자들이 삶의 이야기를 갖고 찾아오는 게스트하우스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집으로 여러 이웃들을 초대하곤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엄마와 아이 모두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집이란 걸 알아서이기도 하고, 삶의 비슷한 과정을 통과하는 이들과 집밥을 먹으며 밀린 안부를 나누다 보면 왠지 나도 조금 괜찮은 이웃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동네 이웃과 교회 셀 식구들로 시작됐던 초대가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 대학원 동기들, 오랜 친구 가족의 초대로 이어졌고, 입양 가족이 된 2008년부터는 입양 생태계를 지키는 다양한 분들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입양 자녀를 키우는 선배 가정, 입양을 꿈꾸는 예비 가정, 홀로 서기를 시작한 성인 입양인, 아이를 입양 보낸 후 재회를 기다리는 생모, 고국을 찾은 해외 입양인,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실천가들과 마주 앉아 삶의 한 자락을 나누노라면 이곳이 경기도의 어느 아파트라기보다 지구 어딘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떨 땐 함께 우느라 목이 메기도, 또 어느 땐 너무 많이 웃어 볼이 아프기도 했지만, 서로를 한껏 끌어안고 잘해왔다 격려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다 보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밀물처럼 다가오곤 했다.
이런 일상이 다른 가족의 삶에 부담을 주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남편이 회사에 있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을 활용해 초대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가끔 이야기가 길어지는 어떤 날은 하교한 아이들도 함께 둘러앉아 이 작은 마을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집안의 생기, 꽉 찬 신발 더미에서 전달되는 열기를 보며 ‘오늘도 손님이 오셨구나. 맛있는 음식이 많겠네’ 생각했다고 했다. 손님이 두런두런 꺼내놓던 낯선 삶의 이야기, 선물로 들고 온 다른 나라의 신기한 물품,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던 인생 질문들을 함께 곱씹던 시간은 아이들의 기억에도 드문드문 남아있다. 그중에는 아이들과 친해져 함께 게임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은 이들도 있고, 남편까지 아는 사이가 되어 명절마다 찾아오는 사이가 된 이도 있다. 경북으로 이주한 후 우리 집은 주말에만 내려오는 남편과 기숙사에서 지내는 둘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되었다. 남편도 흔쾌히 허락했기에 나도 대문을 신나게 더 활짝 열었다. 요즘엔 내가 이끄는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 선생님들이 글쓰기 고민을 가지고 오거나, 아직 화해하지 못한 삶의 장면을 끌어안고 온다. 이렇게 ‘품’을 필요로 하는 이가 끊임없이 찾아오고, 함께 머무는 사이 씩씩해져서 올라가는 모습이 그간 아이들에게 무엇을 새겼을지 떠올리자, 친구를 우리 집에 머물게 하고 싶은 둘째의 마음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금요일 밤, 집으로 내려온 남편에게 둘째 이야기를 건넸다. 남편은 아이의 담배 건에 대해서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둘째의 친구는 이미 집에 들이기로 작정한 듯 “2주간 데리고 있으려면 당신이 힘들지 않겠어?”라고 물어왔다. 다음 주부터는 앞으로 살 집의 건축이 시작되느라 현장을 오가며 분주할 텐데 하필 이런 때 사고를 쳐서 내 고생이 많다는 걱정이었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남편은 평일엔 서울에 있을 테고 주말에 내려오더라도 친구는 대구 집에 다녀올 테니 마주치는 시간은 일요일 저녁 아주 잠깐뿐이다. 둘째와 친구가 머무는 2주간의 평일은 온통 나의 수고만 요구되는 기간이라 조금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걱정에 앓는 소리를 좀 하려는데 내 지난 행적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멈칫했다. 평소 그렇게 사람을 많이 초대하고, 환대하길 좋아하던 내가 고작 2주간 아들 친구를 맞이하는 시간 앞에서 이렇게 계산기를 두드리다니. 내가 초대한 사람에겐 언제든 문을 열면서, 아들이 초대한 친구는 내 상황에 따라 이러니저러니 불평이 많구나. 초대니 환대니 말만 거창했지 결국 내 만족이었네. 나란 사람 참 별거 없네.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큰 목소리로 건넌방 둘째에게 소리쳤다. “둘째야~ 친구한테 연락해서 같이 지내자고 해라.” 아들이 내 얼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신나게 통화하는 둘째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온다.
일요일 저녁, 둘째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 다 같이 저녁밥을 먹는 건 친구에게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 둘째에게 카드를 주며 먹고 싶은 거 둘이 사 먹고 오라 했다. 저녁을 먹고 8시쯤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하는 친구의 양손에는 키친타월 두 팩이 들려있었다. 수줍게 인사하며 키친타월을 건네는 친구에게 잘 왔다고, 우리 아들 방이 좀 냄새는 나겠지만 편히 지내라고 밝게 인사를 했다. 트렁크를 풀고 거실로 엉거주춤 나온 친구와 둘째에게 수박을 썰어 건네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남편은 내일 대중교통으로 첫 등교를 할 두 놈의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 아이들을 곁에 앉혀두고 첫차 시간을 알아보고, 갈아탈 정류장을 찾아보며 학교 앞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는데 뭔가 잘 안 맞는 분위기다. 8시 30분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이 동네에서 잡아탈 수 있는 첫차는 시간대가 너무 늦는다며 뭐라 뭐라 말이 많다. 한참 동안 앱을 들추고, 경로를 찾던 남편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어떡하냐. 얘네 버스 시간이 안 맞는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학교에 맨날 지각이야.” 뭐라고? 첫차를 타도 늦는다니 그게 말이 돼? 갑자기 눈앞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두 놈 먹이고 재우는 것만도 쉽지 않은 결정인데 설마 새벽부터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그런 말은 아니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말을 참고 성난 눈으로 남편에게 속마음을 난사했다. 아들과 친구 모두 분위기를 읽었는지 아무 말이 없다. 앱을 이용해 이리저리 확인해보던 남편이 다시 한번 나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보, 힘들겠지만 당신이 아침마다 등교시켜 줘야겠어.”
오 주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요? 사고는 저 녀석들이 쳤는데 왜 제가 이 고생을 하냔 말입니다. 아들의 담배 건은 십 보, 친구 데려와 2주간 머무는 것도 백 보 양보해서 허락했는데 이젠 학교까지 태워다 주라고요? 노우 노! 이제는 저 녀석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대중교통 등교라는 고행을 해가며 치기 어린 선택을 반성해야 할 타이밍이에요. 갱년기에 접어들어 수면의 질도 한참 떨어지는 제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녀석들 라이드까지 해줘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사랑의 주님, 저는 분명 문을 열어 이웃 청년을 환대했습니다. 이 정도면 다 한 거 아닌가요. 이젠 아들이 회개하고, 친구를 손수 챙기며 이웃사랑을 몸에 새겨야 할 때인데 왜 계속 제 몫만 늘어나는 거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속마음은 속사포 랩이 되어 하늘로 쏘아졌다. 내밀한 기도라 소리를 낼 순 없었지만, 이번 기도만큼은 너무 간절해 왠지 직통으로 전달됐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과일 접시를 치우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산란한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마음속 어디선가 작은 밀물이 들어온다. 여기저기에 레이스 같은 포말을 일으키던 밀물이 오가더니 모래사장 위 ‘누구의 이웃인가’라는 글자를 새긴다. 대구에서 올라온 저 친구는 누구의 이웃일까, 내 아들이 데려왔으니 아들만의 이웃일까? 그럼 그간 우리 집을 다녀간 수많은 이들은 누구의 이웃이었을까? 엄마의 그 많은 이웃을 가족들은 어떻게 마음 열고 환대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가족 중 누구도 ‘엄마의 이웃이니 알아서 하세요’라며 돌아서지 않았던 걸까. 아들의 이웃이면 곧 내 이웃인데 조금 더 수고하는 게 왜 그렇게 억울했던 걸까? 말줄임표가 계속 찍히는 마음속으로 형 친구를 위해 기꺼이 방을 내어준 막내의 얼굴이, 예민한 고3임에도 웃으며 맞이해준 큰딸의 얼굴이 두둥실 떠오른다. 서울로 올라가며 친구 녀석 신경 좀 써주라는 남편의 얼굴과 한 치도 의심 없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부탁하던 둘째의 환한 얼굴까지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오르자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두 눈을 꼭 감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가슴팍에 모아본다. 죄송해요. 하나님, 제게 보내신 이웃 청년에게 더 잘할게요.
“얘들아~ 일어나자, 학교 갈 시간이다.”
새벽 여섯 시 사십 분, 두 녀석의 방문 앞에서 목소리로 알람을 울린 지 2주가 지났다. 마치 아들 다섯은 키워본 여장부처럼 선명하고 우렁찬 내 목소리가 맘에 든다. 다섯 시 알람에 맞춰 일어난 나는 샤워부터 화장, 아침 식사를 거뜬히 마친 후 오늘 하루 건축 현장에 필요한 것들을 다 챙긴 상태다. 어젯밤도 글쓰기 모임을 마치느라 자정 넘어 잠들어 피곤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즐겁게 마무리하자고 마음먹는다. 돌이켜보면 아침 운전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들을 노래를 고르느라 조금 신경을 쓰고, 녀석들이 돌아오는 밤엔 어떤 과일을 깎아둘지 고민했던 것을 제외하면 2주간 특별히 해준 게 없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녀석임에도 2주간 친구를 챙기느라 수고가 많았던 둘째와 끽소리 없이 엄마 침대에서 잠들었던 막내, 아침부터 사라지는 엄마 때문에 홀로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어야 했던 큰딸과 매일 카톡으로 둘째와 친구의 안부를 묻던 남편이 이번 ‘환대’의 일등 공신이란 걸 나는 안다. 어느새 학교 앞에 차를 세우니 친구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며 공손히 인사를 건넨다. “그래, 다음엔 다른 일로 더 반갑게 만나자. 둘째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렴.”(웃음) 빙그레 웃음을 띤 두 청년이 씩씩하게 멀어진다. 내 이웃이 된 청년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사라진다.
첫댓글 사고치고(?^^) 함께 집에 온 두녀석도 넘 기엽고, 그아이들이 함께 지내도록 허락해준 엄마와 아빠^^ 학교까지 등교를 시켜줘야 하는 상황이 되고~^^
글을 읽고 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녀석이 아주 오랫동안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이 되겠지요^^